독일 여성들이 잃어버린 것들

2015-04-30     사빈 케르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 여성들의 삶은 옛 동독이나 서독에서 여성을 바라보던 인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은 동독출신 여성과 서독출신 여성의 사회통합과정은  중단기적으로 삶의 조건이 평준화되면서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진단이 아니었을까? 2007년 독일 서부의 경우, 3~5세 자녀를 둔 여성 중 종일제로 일하는 여성 비율은 16%에 불과한 반면, 동부지역의 수치는 무려 52%에 달했다. 사실 과거 독일민주공화국(GDR)(동독-역주)의 출산율은 극도로 낮았다.(1) 그러나 지금은 독일 동부의 출산율이 서부의 수준에 맞먹을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그럼에도 양 지역 간에 이처럼 여성 고용률이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이다. 고용률 뿐만이 아니다. 혼외 출산율도 마찬가지다. 2009년 동부지역의 혼외 출산율은 61%에 달한 반면, 서부지역은 26%에 그쳤다.(2)사실 통일에 의한 사회·정치적 변혁으로 특히 심한 몸살을 앓은 것은 동독출신 여성이었다. 독일민주공화국 시절 여성들은 독일연방공화국(FRG)(서독-역주)과는 달리, 가정과 일을 조화롭게 병행하며 살아가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된 이후, 동독 출신의 여성들은 심각한 실업난에 처했다. 뿐만 아니라 생활방식이 급격히 바뀌었고, 인생계획을 재설정해야 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험을 했다(박스 글 참조).

다른 유럽국가처럼, 독일에서도 1950년대를 기점으로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현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독일민주공화국의 변화에 비하면, 독일연방공화국의 변화는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1980년대 말, 동독에서는 (가사 외의) 일을 하는 여성이 무려 92%에 달한 반면, 서독은 60%에 그쳤다. 그런 의미에서 동독은 그럭저럭 남녀평등이 실현된 사회라고 할 수 있었다(사실 전 세계적으로도 동독의 예는 거의 유일했다). 동독여성은 남편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반면, 서독여성에게는 전통적 가부장제와 가족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70년대에 이르면서 독일민주공화국의 출산율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동독정권은 다양한 출산장려책을 내놓았다. 특히 싱글맘이나 이혼여성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때로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할 역군을 양성해야 한다”는 등 이념을 이용한 선전으로 시민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출산장려책 덕에 동독의 여성은 자녀양육에 대한 부담을 덜고 순탄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반면 장벽 너머 서독의 경우, 엄마가 된다는 것은 대개 많은 것을 박탈당한 삶을 의미했다. 더욱이 배우자에게 버림받거나 이혼한 여성의 경우에는 출산은 곧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옛 독일민주공화국 출신의 여성들이, 통일을 삶을 위협하는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닌 셈이다. 그들로서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실업난을 겪으면서, 그때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가치체계가 무너져 내렸다. 동베를린에서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다 실직한 싱글맘 일로나가 경험담을 들려줬다. “고용센터를 찾아가서 ‘자녀 둘을 키우는 싱글맘’이라고 하면 헛소리 하는 사람 취급을 하죠. 맞은편에 앉은 직원은 제게 눈길 한 번 안 줍니다. 서둘러 서류만 작성하면 끝이에요. “네 됐습니다. 다음 분”하고 말이죠.” 독일민주공화국에서 여성은 언제 어디서나 철저히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갔다. 아버지나 가족의 사회적 역할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됐다. 자녀들은 가정과 떨어져 기관의 보호 속에 사회화의 과정을 거쳤다. 이런 자립을 중시하는 동독여성의 가치관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해서 함께 무너지지는 않았다.

2000년대 초 베를린에 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동독출신 여성과 서독출신 여성은 일과 자녀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양쪽 다 자녀를 자신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서독출신 여성은 일보다는 자녀를 중요시했다. 그들은 실직이 어떤 어려움을 가져오는지 알면서도, 일을 쉬는 기간을 자녀에게 온전히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인식했다. 반면 동독출신의 베를린 여성은 육아와 일, 둘 다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들은 재취업이 자녀를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울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직업을 가지면 자존감도 높아지는 만큼, 엄마 노릇도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독출신의 여성은 경제적 자립을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좋은 것으로 인식했다. 반면, 서베를린 여성들은 자녀에게는 엄마가 최고의 보모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아보육센터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한편, 정해진 노동시간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독일민주공화국 시절의 유연한 노동시간에 익숙한 동베를린의 엄마들은 탁아소 이용여부를 매우 중차대한 사안으로 여겼다. 더욱이 고용주도 채용정책을 세울 때 보육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고려했다. 과거 판매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실직자가 된 28살의 여성 아나는 싱글맘이라는 이유만으로 번번이 채용을 거절당하는 현실에 매우 격분했다. “항상 똑같은 질문을 받아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요. “뭐라고요, 자녀가 둘이라고요? 그건 좀 곤란한데요.” 제가 아무리 아이를 봐줄 곳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도통 들으려고 하지 않죠.” 그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매번 이 여성들에게 새로운 임신 가능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제가 아이를 또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도 최근에는 그에 대해 확언해야만 했어요. 이미 아이가 둘이에요. 또 가질 생각은 없답니다.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사실 독일민주공화국 시절만 해도, 입사면접장에서 그런 선언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나선 동독출신 엄마들은 이렇듯 매번 면접자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해보여야만 한다. 번번이 이런 모욕적인 대우를 감내하며 자신이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잘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하는 것이다.

반면, 서독출신의 베를린 여성들은 까다로운 노동조건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직 비서 출신으로 실직자 신세가 된 36세 싱글맘 폴라는, 하루는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완벽해 보였어요. 문서를 타이핑하고, 전화를 받고, 고객을 응대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잠시 후 면접을 보시던 여자 부장님께서 그러셨어요. “가끔은 주당 40시간 넘게 근무하거나 주말에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저는 그건 좀 곤란하다고 대답했어요. 예전 직장에서처럼, 주당 30시간에 한해 열심히 잘 할 수 있다고 말했죠. 제가 무슨 못할 말이라도 한 건가요! 그러자 부장님은 마치 실성한 사람마냥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군요. 실업자 신세를 전전하다 이제 겨우 일자리를 얻은 주제에 감사할 줄을 모른다고요. 나랏돈 축내며 사회의 기생충으로 살아가는 실직자의 삶이 그리도 자랑스럽더냐며 묻더군요.” 폴라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제가 무슨 엄청난 것을 원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저 일하기를 원하는 것뿐이라고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기 위해 아이를 맡겨야 하는 이 사회는 대체 뭘까요?”

사회학자 유타 기지와 다그마르 마이어에 따르면, “독일민주공화국이 실시했던 가족정책의 가장 긍정적 결과는 여성이 경제적 독립을 쟁취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오늘날에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그 시절에도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30% 낮은 임금을 받고 일했다. 대개 여성이 남성만큼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당시 여성의 삶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셈이다. 흔히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자주 도외시한다. 그럼에도 어쨌든 동독여성은 살 집이나 아이를 맡길 곳을 구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탄탄하고 믿을 만한 사회복지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회복지제도는 평등한 권리를 실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도 볼 수 있다.”자녀 두 명을 둔 28세의 기혼 여성이자, 현재 조리사로 일하고 있는 이델트라우트는 이런 과거 동독의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성이다. 그런 만큼 그는 현행 사회복지법이나 남편에게 예속된 현재의 삶을 매우 서글프게 생각한다. “우리는 배우자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돼 버렸어요. 우리의 삶은 배우자가 벌어오는 돈과, 국가가 판단하는 방식에 예속돼 있어요. 가령 국가가 주던 복지수당을 도로 가져가 버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주 골치 아픈 문제를 겪게 될 거예요. 그래요, 돈, 그 빌어먹을 돈이 항상 문제예요. 그건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죠.”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면서 동독의 남녀평등 모델은 해체됐다. 그럼에도 2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동독출신의 여성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인식하는 데 있어 과거 가치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살아간다.

 

 

 

 

사빈 케르젤 | 사회학자, 베를린 자유대학 연구원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Michel Verrier, ‘먼 과거에서 비롯된 ‘인구학적 문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9월.

(2) Joshua Goldstein, Michela Kreyenfeld, ‘Familie und Partnerschaft in Deutschladn', 막스플랑크인구통계학연구소, 로스토크,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