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산다는 것

2015-04-30     필립 페르송

1999년, 서른 두 살의 중국 사진작가 왕빙은 공식 허가 없이 소형 비디오 카메라만을 들고 몇 년 간 혼자 촬영을 떠나기로 한다. 동베이성 선양의 산업단지가 철폐되면서 폐쇄된 공장에 남겨진 노동자들을 촬영했다. 총 2백 시간을 촬영한 왕빙은 중국인민공화국의 ‘계획 경제’ 종말을 보여주는 9시간짜리 필름인 <레일의 서쪽에서>(2)에서를 만들어낸다.

왕빙은 사람들 곁에서 몸짓이 주는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개입하지도, 질문을 하지도 않고, 그저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왕빙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도, 그렇다고 자기 존재를 숨기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다. 왕빙의 영상과 구도는 엄격한 미학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인생의 경륜을 이해하기 위해 왕빙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시간이다.

<윈난성의 세 자매>(2010)에서 왕빙은 구도마다 어린 여자 농민들의 반복되는 동작을 그대로 필름에 담는다. 고도 3000미터가 넘는 마을에 거의 홀로 살고 있는 어린 여자 농민들이다.(2) 하지만 왕빙은 경제 변화로 일어난 취약한 상황을 필름으로 보여주지만 동정어린 시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어린 여자 농민들이 힘든 어린 시절을 버텨내기 위해 열심히 애쓰는 모습을 필름에 담는다. 

왕빙은 촬영 대상인 사람을 세밀하게 선정하고 그 사람들에 대해 어떤 평가도 하지 않는다. 주류 사회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지만 왕빙이 살고 있는 중국 사회를 구성하는 조용한 힘을 구성할 뿐이다. 어느 중국 여성의 일대기를 다룬 <펭밍>(2007)에서 왕빙은 3시간 동안 여성의 목소리를 담는다. 재교육 캠프에서 살아남은 전직 기자다.

왕빙의 필름은 등장인물들의 진실을 들려준다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하고 좁은 장소의 형광등을 조명으로 하는 방식을 통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예술적인 미학 대신 자연스러움을 담는 것이 특징이다.

왕빙의 마지막 장편 필름인 <미칠 때까지>(2013)는 윈난성의 어느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다.(3) 여느 때처럼 왕빙은 촬영 대상에 대해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필름의 크레딧까지를 다 봐야 비로소 정신병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정신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치료는 따로 없다. 환자들은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자신의 침대로 가거나 TV 시청실로 간다. 50명의 남자 환자들만 있는 정신병원이다. 폭력적인 환자들과 폭력적이지 않은 환자들이 함께 생활한다. 즉, 정신 이상자들, 알콜중독자들, 마약사범들, 노숙자들이 함께 수용된다.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들, 반정부적인 정치 입장을 취하거나 가족계획 같은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예전에 미셸 푸코가 묘사한 ‘대규모 유폐'의 병동을 떠올리는 이 정신병동이야말로 중국 사회를 은유적으로 상징한다. 

왕빙은 정치적 회유나 시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촬영을 했다. 당국으로부터 전혀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고 작품 의뢰도 받지도 못했으나(4) 계속해서 중국 경제 기적의 이면, 그리고 현대사회가 잊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글·필립 페르송 Philippe Person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Wang Bing, <A l’ouest des rails>(레일의 서쪽에서), Arte Editions, 147분
(2) Wang Bing, <Les Trois sœurs du Yunnan>(윈난성의 세 자매), Capricci, 283분
(3) Wang Bing, <A la folie>(미칠 때까지), 2015년 3월 11에 개봉
(4) Wang Bing, <Alors, la Chine>(자, 중국), Les Prairies ordinaires, 파리,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