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떠미는 정글의 미디어법

2009-06-04     이승선 |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

 ‘신방 겸영’ 전면 허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어
방송광고 개편하면 소수 매체 고사 당할 것
약탈적 신문시장 개혁 없인 신뢰회복 불가


 석 달 열흘은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시간이다. 단군신화의 환웅은 사람이 되려고 찾아온 곰과 호랑이에게 한 줌의 쑥과 스무 개의 마늘을 던져줬다. 햇빛을 보지 않고 석 달 열흘을 견디면 사람이 되도록 해주겠다는 약조였다. 곰은 여인이 되어 단군왕검을 낳았다.
거창할 뿐만 아니라 길기조차 한 이름의 기관 두 개가 100일 동안 나라 안팎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하나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회의 상임위원회 중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졌다. ‘문광위’ 혹은 ‘문방위’로 줄여 부른다. 다른 하나는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이다. ‘미디어’ ‘발전’ ‘국민’ 세 단어를 모아 만든 한시적인 위원회로 ‘미발위’ ‘미디어위’ ‘국민위’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국회 문방위 산하기구로 지난 3월 13일 출범한 미발위는 석 달 열흘의 시간에 미디어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모종의 역할, 특히 국민의 여론 수렴이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미발위 출범부터가  파행적

그러나 애초에 정한 100일 시한을 보름여 앞두고 미발위 활동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미발위의 출범 자체가 파행의 산물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12월 초 이른바 ‘미디어관련법’안들을 발의했다. 방송 종사자들을 비롯한 야당,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저항으로 법안 처리가 저지됐다. 올해 2월 미디어 관련 법안들이 다시 상정돼 문방위를 기습적으로 통과했다.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압박 속에 여야는 미디어 관련 법안을 논의할 사회적 기구 구성에 합의했다. 여당 추천위원 10명과 야당 쪽 추천위원 10명 등 모두 스무 명으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를 구성하고 3월 6일부터 6월 15일까지 100일간 관련 법안을 논의한 뒤, 그 결과를 ‘입법 과정에 최대한 반영’하기로 했다. 미발위의 위상, 회의 공개 여부, 공청회 진행, 여론 수렴 방식 등을 놓고 미발위 위원들 간의 내부 갈등이 심화됐다. 또 미발위가 진행하는 각종 활동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차갑고 역할 수행에 대한 기대치도 높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지난해 후반기부터 입법 파동의 진원이 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의 내용과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미디어 관련 법안의 범위는 상당히 혼란스럽다. 신문법과 방송법 등 매스미디어와 관련된 법들로 이해되기도 하고, 정보통신망법이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처럼 표현의 자유 혹은 프라이버시 보호의 범주에서 다뤄지기도 한다. 큰 틀에서 미디어 관련 법안에 포함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1월 초, 저작권법과 디지털방송 특별법안은 4월 초에 본회의 의결을 거쳐 통과됐다. 따라서 현재 미발위에서는 신문법안, 방송법안, IPTV법안, 정보통신망법안 등 4개 법안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논의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미디어 겸영과 관련한 문제로서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 보도 전문 채널의 시장 진입을 허용할지 여부다. 현행법 체제에서 신문은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 전문 채널에 진입할 수 없다. 대기업 역시 이들 방송사업 분야에 대한 진출이 금지돼 있다. 여당 쪽 법률 개정안은 신문법의 겸영 금지 규정을 삭제하고 방송법의 진입 금지 규정을 개정해 신문과 대기업으로 하여금 지상파 주식·지분 총수의 100분의 20, 종합편성·보도 전문 채널의 100분의 49까지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미디어 겸영을 통해 신문시장을 활성화하고 방송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여당 쪽 주장이다.

미디어산업 부문의 고용이 크게는 4500여 명, 취업유발 효과는 2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상파 방송 3사에 의해 방송여론 시장이 독과점돼 있으므로 신문의 방송 진출을 통해 여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반면 야당을 비롯한 반대 진영은 현실적으로 겸영을 통해 방송사업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신문은 조·중·동 등 소수에 한정되고, 따라서 기존 신문시장 여론 독점 현상이 방송 부문에까지 확대돼 국내 여론 다양성 기반이 크게 침해될 것으로 내다본다. 미디어산업 유발 효과도 기존 국내 미디어산업의 고용지표를 보거나 미국 등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여당 쪽 주장은 터무니없고 오히려 미디어산업의 집중으로 인해 고용 감소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2006년 헌법재판소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금지한 현행 신문법 규정이 민주주의 존립 기반으로서 여론 다양성 확보 장치라면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나라도 드물고, 더불어 지상파 방송과 신문의 겸영을 무제한 허용하는 나라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동일한 지역에서 신문과 지상파 방송의 결합을 금지하거나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통신 등 미디어 사업부문의 일부 영역에 한해 겸영을 허용하는 등 규제 조치를 가하고 있다. 전자에는 미국이 속하고, 일본과 유럽의 각국은 후자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문이 지상파·종합편성·보도 전문 채널을 제외한 타 방송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현행법으로 이미 보장하고 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사이버 모욕죄 신설도 시대착오적

둘째, 방송광고 관련 제도의 변화를 둘러싸고 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는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만이 지상파 방송사들의 광고를 판매대행하도록 규정한 현행 방송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면서 올해 말까지 이를 개정하도록 결정했다. 헌재 결정 이전부터 코바코 체제의 변화가 추진돼왔는데, 이를테면 민영 미디어랩을 도입하고 코바코에 의한 광고의 연계판매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광고 연계판매 시스템은 지역방송사와 종교방송 등 특수한 상황에 처한 취약 매체의 주요한 재원이 돼왔다. 방송광고 관련 제도의 변화는 종교방송은 물론 지역방송을 고사시켜 지역언론의 기능 자체를 궤멸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헌법재판소 결정과 글로벌 미디어 산업환경의 요구를 감안할 때 코바코 독점 체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점은 서로 인정하면서도 미디어랩 제도를 제한적 경쟁체제로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전면적으로 시장을 개방해 각 방송사로 하여금 광고판매대행사를 개별적으로 운영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더불어 지역방송 등 취약한 매체에 대한 광고 보장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셋째,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을 둘러싼 논란이다. 여당 쪽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현행 사이버 명예훼손죄 외에 모욕죄를 새로 규정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정보통신망에서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더욱이 사이버 모욕죄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됐다.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기관 등에 의한 사법처리 절차가 개시될 수 있게 했다. 정부와 여당은 댓글 등 사이버상에서 난무하는 개인에 대한 모욕스런 표현의 피해를 예방하고 제거하기 위해 모욕죄의 신설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에 네티즌들의 무차별적인 악성 댓글이 영향을 주었다면서 이 죄의 신설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반면 야당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사이버상의 모욕죄 신설이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적 견해의 표출을 억압하기 위한 장치라고 비난하면서 기존의 형법상 모욕죄 규정만으로도 충분히 댓글 등 사이버 모욕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존 모욕죄는 고소죄임에 비해 개정안의 신설 모욕죄를 반의사불벌죄로 다루는 것 역시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겁박하려는 통제 장치의 일환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모욕죄 규정을 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고,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표현 행위에 대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역시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 행사가 자제되거나 소멸돼가는 추세다.

 미발위에서 집중적으로 논의 중인 미디어 관련 법안의 쟁점은 대략 위와 같다. 이 세 가지 쟁점은 어느 것 하나 소흘히 취급할 수 없다. 다만, 논의의 핵심에서 다소 벗어나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 매우 중요한 쟁점들이 더 있다. 신문의 방송 겸영 허용 여부 못지않게, 혹은 더욱 중요한 점은 신문시장의 거래질서 회복이다.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대로 신문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를 판별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시장의 공정질서를 회복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함에도, 오히려 일부 신문법안들은 신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제고할 수 있는 규정들을 삭제하려고 한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광고캠페인과 독자들의 신문상품 선택에 필요한 신문의 광고·판매 관련 정보의 제공 규정을 없애려는 시도가 그중 하나다.

학계나 시민언론운동단체, 그리고 헌법재판소까지 이미 불공정하고 약탈적이기까지 한 우리 신문시장의 무질서를 통탄해왔다. 신문상품의 질적인 경쟁은 하지 않고 경품을 제공해 다른 신문사의 독자를 빼앗아오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시장의 위축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특히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급격한 붕괴는 신문 내용에 대한 불신과 신문시장의 불공정성으로 인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신문산업의 진정한 활성화는 신문상품과 신문시장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서 비롯돼야 한다. 따라서 신문법 개정 방향은 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할 수 있는 명료하고 합리적인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적용해 신문시장의 독과점, 혹은 불공정한 거래행위를 해소하는 데 맞춰져야 할 것이다.

광고중단 조치로 사업자 순치

또 하나 방송광고와 관련한 일부 신설 규정들이 제대로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 미디어 겸영을 통한 방송시장 구조의 재편, 방송광고 판매 시스템의 변화뿐만 아니라 가상광고와 간접광고의 도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옛 방송위원회는 이미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를 확대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일시 유보하고 있지만 중간광고의 확대는 광고총량제 허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즉, 프로그램별로 광고 시간을 제한하는 현행 방식 대신 일간 혹은 주간 단위의 전체 광고 시간만을 규제하고 프로그램별 광고 시간 집행은 방송사업자의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변환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야만 방송사업자로서는 중간광고가 주는 과실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소수 대상, 혹은 공익성 강한 프로그램들은 홀대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더욱이 가상광고와 간접광고의 신설·도입은 서울에 소재한 큰 방송사들의 광고수입을 크게 증진시키고, 지역방송을 비롯한 다른 매체들의 존립 기반을 흔들어놓을 것으로 예측된다. 미디어의 매체별 균형발전과 미디어가 터잡고 있는 지역 간의 언론균형 발전을 위해 미디어 관련법의 광고 규정들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특히 여당의 방송법 개정안은 이런 광고제도를 신설·도입하는 대신 방송사업자의 방송 행위에 대한 제재의 한 방법으로 ‘광고 중단’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방송법 개정안의 광고 관련 규정은 수도권 소재 일부 방송사들의 광고수입을 확대해주는 대신 지역방송을 비롯한 취약 매체의 수입을 크게 감소시키고, 더불어 광고 중단 조치를 통해 방송사업자들을 순치시킬 수 있는  위협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

 6월 국회에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이 처리될 것인지 불투명하다. 더욱이 지지부진한 미발위가 여론조사 실시 등 몇 가지 쟁점 때문에 공중분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3월 초에 여야가 합의해서 꾸린 ‘국민위원회’가 미디어입법 전쟁을 100일간 휴지시켰을 뿐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날 가능성도 크다. 환웅에게 석 달 열흘을 약조하고 불과 스물하루 만에 사람의 몸이 된 곰의 지혜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

글ㆍ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로 언론법제를 전공했으며 현재 한국방송학회와 한국언론법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