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가능성을 열어주는 합의

2015-05-04     세르뱅 아흐마디

이란에 가능성을 열어주는 합의

이란 핵협상 잠정타결은 일단 이란의 승리로 여겨진다. 물론, 원심분리기의 수와 우라늄 농축 정도 문제처럼 이전에는 협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이란이 양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란은 그 대가로 서구, 특히 미국으로부터 협상상대자로 인정받는 위상을 확보했다. 이란이슬람공화국은 우선 경제적 차원에서, 그리고 어쩌면 장기적으로는 군사적, 정치적 차원에서, 지나날 이란을 험담하던 사람들과 새로운 협력 전망을 그려볼 수 있게 됐다. 비록 로잔에서의 잠정 타결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특히 대 이란 경제제재 해제에 관한 한 아직까지 이루어 진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중요한 견해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협력의 전망은 가능하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잠정 합의에 대해 이란의 지도자들은 크게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신중한 자세를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족을 숨기지도 않았다. 이란 혁명수비군 사령관에서부터 참모총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알리 라리자니 국회의장, 이란의 고위책임자들 모두 협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알리 카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상당히 뒤늦게 “로잔 합의문이 최종적 합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며 이란인들은 “화낼 것도 축하할 것도 없다”는 평가로 입장을 표명했다. 그의 발언은 이후에 진행될 일에 대한 경계처럼 들린다. 그러나 카메네이 자신이 이란 측 협상대표단에게 양보를 허락함으로써 이런 결과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이란 내 최고 강경파인 소위 ‘우려(Delvapassan)’ 운동을 중심으로 집결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 측근들만이 이 합의가 이란의 국익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을 뿐이다.  

이란 국민은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하나가 됐다. 로잔 합의의 성과는 협상팀을 지지해온 문화계 인사들의 위치 또한 견고하게 해주었다. 2014년 11월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쉬가르 파라디, 락샨 바니에테마드 감독을 포함해 6명의 영화인이 “합의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합의는 없다”는 주제로 캠페인을 벌였다. 이란의 지식인들이 이슬람공화국의 일에 이런 식으로 명확하고 긍정적으로 참여한 것은 30여년 만에 처음이다. 그와 동시에, 로잔 협상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술책 또한 민족주의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데 기여했다. 어쨌거나 착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협상 타결로 이란에 만연해 있는 불안과 초조의 감정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인플레를 통제하고 있다고 발표하고는 있지만 경제상황은 대단히 어렵고 이란인들은 일상적인 물가폭등에 지쳐있다. 불만이 커져가고, 특히 자동차산업과 교육 분야에서 파업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서구와의 화해는 이란에게 새로운 지정학적 문제를 만들어낸다. 협상을 통해 외교정책에서 이란의 통찰력이 드러났다. 많은 이웃국가들과 달리 이란은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중국 인접지역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영향권을 형성해내면서 일관성 있는 지역 및 국제 전략의 비전을 펼쳐 보였다.(1) 그러나 서방 측 협상상대자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어떻게 이 세력권을 유지할지가 문제다. 이란 외교관들이 이스라엘 인정과 같은 까다로운 문제와 핵 문제를 분리시키려고 주의해 왔기는 하지만 이란은 로잔 협정이 파국을 맞지 않도록 기한 내에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예멘과의 대외정책을 수정해나가야만 할 것이다. 

핵협상 잠정 타결이 이란 국내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는 문제도 남아있다. 이란이 당면해 있는 잘못된 국가경영은 이란 정권의 역사 및 성격 자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란에는 다양한 정치 경향이 공존하고 그들 중 어떤 세력도 다른 정치세력을 몰아내지 못했다는 특징이 있다.(2) 어쩌면 이란이슬람공화국 초기 성공의 수단이었던 것이 그 이후로 보수주의의 요인이 된 것은, 지도자들의 세력권 내에서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져야 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최근 30년 동안의 근본적인 변화는 사회 문제에 있어서 국민들과의 항구적인 갈등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란의 체제는 이슬람의 모양새를 보이는 정권과 급격히 도시화된 현대 사회의 발전 사이에 나타나는 모순에 대처하는 데 있어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3)


2013년 6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은 1차 투표부터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질서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집권 8년 동안 심각하게 약화된 국가 기구의 재건 외에 서구와의 관계 정상화, 그리고 이란의 고립 종식은 그의 주요한 임무다. 서구와 유럽과 직접적으로 대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망에 안심하고 있는 이란 지도자들이 변화를 택한다고 가정할 때 막상 어떤 모델을 따를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개혁가들이 추진하던 ‘고르바초프 식’ 개방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폐쇄적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인 중국식 모델 쪽으로 기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란에서 산업자본주의의 출현은 대단히 불확실하다. 이란의 경제가 다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체적으로 석유 관련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고된 이란 시장 개방이 이란의 산업을 강화하지 못하고, 화폐자본주의가 초국가적 대기업의 지역 안테나 역할을 하는 수많은 산유국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질 위험도 있다. 많은 점에서 이란의 변화의 길은 아직까지 요원하다.

 

글·셰르뱅 아흐마디 Shervin Ahmadi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1) ‘이란의 관점으로 보는 세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월호 참조.
(2) 샤라레 오미드바, ‘분파와 연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일어판, 2009년 7월.
(3) ‘미디어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이란 정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7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