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능청, 아바나의 열정

2009-06-04     김신환 | 여행작가

쿠바 아바나의 중심 카피톨리오의 계단에 앉아 있으면 아주 특별한 차들이 눈에 띈다. 195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시보레다. 미국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이 골동품 같은 차들이 쿠바에서는 지금도 버젓하게 택시로 사용된다.  이 시보레 택시를 타보는 것은 여행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체험이다. 겉은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러나 막상 차에 오르면 속은 자전거보다도 못하다. 이 차가 어떻게 굴러갈까 싶다. 이같은 우려는 종종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호대기 중에 시동이 꺼져 출발도 못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차가 아직도 아바나의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 때문이다. 1958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쿠바혁명을 일으킨 후 미국은 쿠바에 단 한 대의 자동차도 팔지 않았다. 지금 쿠바에서 볼 수 있는 미국산 자동차는 모두 혁명 이전에 들여온 것이다. 쿠바는 미국에서 자동차를 수입하지 못하자 그 차를 고쳐가면서 타기 시작했다. 

시동 꺼지는 50년 된 특별한 차

 어쨌든 이 특별한 차를 보고 있으면 50년 동안 굴러갈 수 있게 차를 만든 미국이나 부품조차 구할 수 없는 차를 50년 동안 수리해서 타는 쿠바 모두에게 존경심이 인다. 마치 미국과 쿠바가 오래 버티기 내기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시보레 자동차가 아바나 거리에서 사라지는 날은 쿠바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하거나 미국이 50년간 내린 봉쇄를 푸는,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리는 소식을 보면 미국이 먼저 백기를 드는 모양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쿠바에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경제봉쇄를 푼 것은 아니지만 송금을 허락하는 등 그동안 강경 일변도였던 정책이 수정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아바나로 곧장 가는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굴욕스런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울화통만 터트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쿠바의 승리는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쿠바인의 몸속에 흐르는 만만디 본능에서 찾는다.

 

바인은 신대륙에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카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가 섞여 태어났다. 흑인의 원시적 주술과 놀이가 카리브해의 낭만에 취해 살던 원주민의 원초적 본능과 하나로 융합되면서 독특한 기질과 끼를 가진 새로운 쿠바인을 만든 것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저절로 몸이 흔들리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싶은 욕망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끼와 흥이 넘치는 사람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음악계가 주목하는 쿠바의 리듬, 살사와 맘보의 뿌리는 아프리카지만 카리브해의 바람을 쐬지 않았다면 이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활활 타오를 것처럼 격정적이지만 속삭임이 있는 살사와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끝없이 흔들리는 맘보의 리듬, 그 안에 쿠바인의 본능이 숨쉬고 있다. 50년에 걸친 미국의 경제봉쇄로 풀뿌리밖에 남지 않았어도 태평한 사람들의 표정 뒤에는 만만디 본능이 숨겨져 있다. 이 만만디 본능이 미국을 제풀에 지치게 만들고, 미국이 쳐놓은 경제봉쇄의 울타리를 능구렁이처럼 천연덕스럽게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다. 

끈끈하게 접근하고  쿨하게 돌아서

 쿠바인의 이 끈끈하면서 능청스런 본능은 아바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행자의 거리가 된 아바나 비에하에는 여행자를 상대로 돈벌이에 나선 쿠바인들이 많다. 그들의 돈 버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우선 쿠바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불도 붙이지 않은 기다란 시거를 문 여인이 있다면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사진을 찍으면 반드시 돈을 요구할 것이다. 친절하게 쿠바의 추억을 묻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1달러를 준비하는 게 좋다. 그들은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노동으로 여겨서 돈이나 볼펜, 담배 등을 요구한다. 광장의 한구석에서 기타나 트럼본을 들고 있는 이들에게 음악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그들은 아바나 비에스타 소셜 클럽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사진 찍을 기회를 주고 돈을 받으려는 속셈이다. 가끔은 아바나에서의 뜨거운 하룻밤을 제안하는 노골적인 눈빛을 보내는 여인도 만날 수 있다.

 희한한 것은 이런 경험들이 결코 여행자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격적이지 않다. 상대방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도 않는다. 여행자가 조금 언짢아하는 표정을 지으면 흔쾌히 돌아선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다음 날 다시 마주치면 처음 본 사람처럼 어제처럼 똑같이 행동한다. 그리고 또 쿨하게 돌아선다. 여행자들은 이런 아바나 사람들과의 만남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한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쿠바인의 그 만만디 본능을 인정하게 된다.

피로감 느끼지 않는 낭만주의자들

 아바나 사람들의 만만디 본능을 이해하게 되면 여행이 한결 재밌어진다. 여행자도 그들처럼 쿨하게 행동하게 된다. 카메라 초점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일상의 모습을 향하게 된다. 누군가 아바나의 자유를 물으며 말을 걸어오면 가벼운 웃음으로 물리친다. 말레콘 방파제에서 악기를 들고 서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음악을 기대하지 않는다. 어제 마주쳤던 젊은이와 다시 마주쳐도 처음 만난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가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능청을 떤다.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 된다. 

지금도 아바나의 거리가 눈에 선하다. 하루에 건물 한 채씩 무너져내린다는 그 도시에서는 50년이 넘는 경제봉쇄에도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음악만 들리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카리브해의 바람과 햇살이 핏줄을 따라 흐르는 그 열대의 낭만주의자들이 그립다.    

글·김산환*
*여행작가. 일간지 여행기자로 활동했으며 국내외를 돌며 여행기를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라틴홀릭>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