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와 일본의 군사야욕
“일본은 외계인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는가?” 2007년 12월, 의회의 대정부 질의 중 야당 의원 야마네 류지가 던진 이 질문은 열도 전체에 엄청난 불협화음을 야기했다. 특히 방위성·교육성·과학성 장관에 이어 총리까지 나름의 답을 제시했고, 언론은 동요했다. 이시바 시게루 방위성 장관은 깜짝 놀란 기자들 앞에서 “우리는 미확인 비행물체(UFO)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UFO를 통제하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어떤 확실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하며, “이에 대비해 일본이 잠재적인 군사 개입의 법적 틀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많은 전문가들은 이시바 장관의 발언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지만 이는 일본에서 군사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1945년 아시아의 패자를 꿈꿨던 일본은 야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그리고 일본의 전쟁 포기를 명문화한 1947년 헌법은, 공식적으로 군대는 없지만 ‘자위대’를 보유한 일본의 국방정책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1) 상황이 이렇다 보니 2차 대전의 주요 승전국인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대중문화, 억눌린 욕망 드러내
일본 공상과학(SF) 영화, 만화, 소설 같은 대중문화의 3대 주제가 핵무기, 군인의 구실, 과학의 위상으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3대 주제는 일본인들이 1952년 4월 미군의 지배가 종식된 뒤 독립을 회복한 조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려주는 실마리다.
혼다 이시로 감독의 1954년 영화 <고질라>(2)는 모든 걸 파괴하는 어떤 바다 괴물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괴물의 등장이 태평양에서 벌어진 미국의 핵실험과 관련이 있다고 상상했다. 사실 영화 촬영 개시 몇 개월 전 일본 트롤선 한 척이 미국의 핵실험 여파로 방사능에 오염된 적이 있었다. 당시 언론은 ‘인류에 대한 두 번째 원폭’이라고 주장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떨어뜨린 지 10년도 못 돼 일본인들이 또다시 ‘미국산’ 원자폭탄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혼다 이시로 감독은 <고질라>를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 일본이 여전히 약하다는 것과 고질라의 도쿄 파괴가 괴물과 미국인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임을 상기시켰다.(3) 세리자와 박사라는 일본인 과학자가 고질라 문제의 해법을 제시했고, 이제 일본은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게 될 터였다.
3년 뒤, 혼다 감독은 <지구방위군>이라는 영화를 발표한다.(4) 이번에는 괴물이 아니라 핵전쟁으로 파괴된 행성을 탈출한 외계인들의 이야기였다. 이 외계인들은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 기슭에 정착한 뒤 과학이 지배했던 그들의 사회를 재건하려고 노력했다. “우리의 목표는 핵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밝힌 외계인들의 의도는 평화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일본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외계인들은 방사능에 오염된 자신들의 종을 부활시키기 위해 인간과의 교배를 원했다. 외계인 축출을 위해 일본군이 개입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일본을 구할 ‘로봇’에 환호
그러나 일본이 1956년에 가입한 유엔의 지원으로 인류는 마침내 외계인들을 지구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들의 재침입에 대비해 지구인들은 우주를 감시하는 위성을 발사한다. 소련이 발사한 인류 최초 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궤도 진입에 성공한 뒤 시나리오에 추가한 아이디어였다. <지구방위군> 속의 외계인들은 원격조종이 가능한 거대 로봇을 이용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다.(5)
파괴 로봇은 1950년대와 60년대 전반기 일본 공상과학 장르의 또 다른 특징이다. 파괴 로봇은 동서 대결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극단적인 취약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경제적 성공 덕분에 일본은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외계인들과 로봇은 이제 동맹군의 일원으로 등장했고 심지어 평화 재건에 기여하기도 했다. 1966년 7월부터 <도쿄방송>(TBS)에서 방영된 <울트라맨> 시리즈는 이 도식을 잘 설명한다. <울트라맨>은 지구 방위를 담당하는 ‘세계과학정찰대’에 속한 일본인 5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하야타는 임무 수행 중 우연히 울트라맨으로 변신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울트라맨은 지구를 위협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인이다.
마찬가지로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만화 <사이보그 009>는 세계 정복을 목적으로 인간과 기계를 조합해 만든 9대의 휴머노이드, 즉 사이보그가 어떻게 자신들을 조종하는 강력한 조직 ‘블랙 고스트’에 맞서는지 보여준다. 이미지는 명확했다. 일본인들은 강대국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걸 거부한 것이다. 1964년 <사이보그 009>가 처음 출간됐을 때 세계는 미국과 소련 사이 긴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해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기술력과 문화적 힘을 만방에 과시한 일본은 이 만화를 통해 미-소 두 진영의 지배에서 벗어날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주인공 시마무라 조는 블랙 고스트의 야심을 막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고 했다.
일본의 공상과학 장르에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도 희생하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1974년 마쓰모토 레이지의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6)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애니메이션은 우주를 여행하는 동안 인류를 위협하는 여러 외계 문명을 만나는 우주선의 모험을 그렸다. 마지막에 야마토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자살 공격을 감행한다. 교란의 요소가 기계든, 외계인이든, 돌연변이든, 이 교란은 지구 종말의 위협을 상징함과 동시에 사회 재건을 가져오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암시한다. 최근 15년 동안 최고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꼽히는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에서 거대 로봇은 절망을 전파하는 미지의 생명체와 싸운다.(7) 1995년 가을, 이 작품이 방영되기 직전 일본은 두 가지 외상(트라우마)을 경험하는데, 바로 1월 17일 고베 대지진과(8) 3월 20일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이다.(9)
지금의 ‘외계인’은 김정일?
확실히 현실은 공상과학 장르에서 보이는 것만큼 통제가 쉽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공상과학 장르를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미래에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었다. 이제 외계인의 침입에 대비한 조처를 묻는 야마네 의원의 질문이 더는 엉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국민들이 보기에 오늘날의 외계인은 김정일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위협은 2007년 외계인 논쟁 당시의 답변보다 더욱 명확한 정부의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글·오다이라 나미헤이 Odaira Namihe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도쿄 주재기자
번역·박수현
<주석>
(1) ‘알려지지 않은 일본’, <마니에르 드 부아>, 105호, 2009년 6~7월.
(2) 최근 영국영화연구소(BFR)는 미국 시장용 편집판이 아닌 원판으로 DVD를 제작했다. <고질라>, 이시로 혼다, BFI, 런던, BFIVD680.
(3) 오귀스트 라고네, <쓰부라야 에이지: 괴물의 마스터>, 2007.
(4) BFI는 이 영화도 DVD로 제작했다.
(5) 에드 클레나, coll. <빈티지>, 2009.
(6) 이 시리즈는 국제적 성공을 거뒀지만 프랑스에는 수입되지 않았다.
(7) 이 작품은 프랑스 디벡스(Dybex)사에서 DVD로 내놨다.
(8) 고베 대지진의 사망자 수는 6437명, 부상자 수는 4만3700명이다.
(9) 이 가스 테러로 12명이 목숨을 잃었고 5500명이 가스에 중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