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석유시대 이후의 에너지 모색

2009-07-03     아그네스 시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지역단체는 소비 줄이고 ‘자급형 농업’에 헌신
생명공학 업계는 해조류로 석유 만들기 몰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캘리포니아주가 경기침체에 신음하고 있다. 캘리포니아가 파산 직전에 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벤처기업들의 터전인 캘리포니아는 이미 화석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석유 시대 이후를 실험하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녹색 노다지를 꿈꾸는 실리콘밸리의 신규 투자회사들은 이 지역에서 수많은 ‘실험’을 하고 있다. 에너지 및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을 찾는 이 연구가 새로운 사회철학의 밑그림이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 20km 지점 실리콘밸리 인근에 위치한 신생 업체 솔라자임(Solazyme)은 새로운 꿈을 좇고 있다. 반도체 호황 뒤, 수백 개의 실험실들이 이곳에서 21세기 성배를 찾고 있다. 화석연료만큼 강력한 합성 연료를 해초 미생물(미세조류)에서 찾고 있다. 솔라자임의 공동 설립자이자 회장인 해리슨 딜런은 “솔라자임이 석유 같은 속성을 지닌 연료를 생산한 유일한 미생물 생명공학 회사”라고 주장한다.

이 회사의 새 연료 제조 방식은 미생물 유전자 재구성을 통한 유전자 이식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지만, 그 생산 과정은 수수께끼다. 이제 자연 발생되는 ‘바이오 연료’의 새로운 시대가 온 셈이다. 2008년 말 솔라자임은 해초 미생물을 가지고 항공기 연료로 쓸 수 있는 등유를 생산했다고 발표하면서, 온갖 지표를 내세워 이 등유가 항공기의 고도 비행에도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벤처캐피털에서 7500만 달러를 투자받은 솔라자임의 목표는 해초들이 수억 년에 걸쳐 해체돼온 과정을 단 일주일 만에 압축함으로써 언제든지 ‘재생 가능한 연료’를 생산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솔라자임의 발표는 마치 연금술사들이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딜런은 식물성 플랑크톤을 나무 찌꺼기와 기타 셀룰로오스 재료들과 섞어 산업용 소화조(消化槽)(1)에 넣으면, 이것들이 비료 구실을 해 혼합물의 발효를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이 밀폐된 환경에서는 인위적인 유전자조작에 의한 광합성 없이도 해초가 때로는 가연성 기름이 되고, 때로는 음식용 기름이나 또는 화학 산업용 기름이 된다.

하지만 노다지 같은 ‘녹색’ 황금을 얻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우선, 그것을 얻기 위한 기술력 못지않게 거의 모든 이들이 믿고 갈구하는 집단적인 신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신규 투자사업’은 빨리 진행돼야 한다. 투자자들이 결과를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작성된 허시 보고서 이후, 값싼 석유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 기업 ‘사익’(SAIC)이 미국 에너지부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이 보고서는 향후 에너지 자원 부족(2)에 대비해 대체에너지 쪽으로 눈을 돌리라고 권고했다. 21세기는 20세기만큼 풍성한 에너지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냉혹한 현실에 직면한 21세기는, 기술에 힘입어 낭비되는 풍요의 상징인 자연을 재구성하는 기적의 기술을 지녔다. 실리콘밸리는 장차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셀룰로오스를 에탄올로, 그리고 해초를 석유로 변환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해초들은 이산화탄소를 먹어치우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속성을 지녔다. 해초들을 사용하면 중공업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합성 연료로 변환시킬 수 있다, 즉, 화력발전소 근처에서 ‘생물 반응장치’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새로운 연료로 정제시킬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는 619개 화력발전소가 있다.

솔라자임의 경쟁회사인 ‘사파이어 에너지’는 이런 방식으로 해초를 재료로 한 휘발유를 2018년까지 연간 4억5500만ℓ를 생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빌 게이츠와 록펠러 가족의 지지를 받는 사파이어는 기존의 기반 시설에 사용되고 있는 석유를 해초 휘발유로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해초를 재료로 삼아 상용 연료를 생산하는 최초의 시설인 사파이어 통합 바이오 정유 공장은 미국 남부 뉴멕시코주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극히 소량에 불과한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밀폐 공간이나 개방된 공간에 설치된 ‘생물 소화조’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소화조 속에 많은 물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고갈 원인은 과소비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캘리포니아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이 농업용 펌프장이란 사실이다. 미 북부 지방의 물을 테하차피산을 거쳐 로스앤젤레스 계곡까지 보내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인 ‘포스트 피크 라이프’의 공동 창업자인 안드레 앙젤란토니는 삶의 풍요를 약속하는 이른바 ‘코르누코피아’(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풍요를 상징하는 산양의 뿔)(3) 기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실리콘밸리 자본이 아무리 과학과 신규 사업에 투여된다고 해도, 이 짧은 시일 안에 결코 석유 같은 화석에너지처럼 가격 경쟁력을 지닌 충분한 양의 대체에너지를 내놓지 못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의 주장을 따르자면 ‘에너지 붕괴’가 불가피하고, 이미 그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우리 인류는 금융·에너지·기후 등 일련의 세계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들은 이미 방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어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앙젤란토니는 “이는 마치 우리가 형편에 맞지 않게 과소비하며 살다가, 금고가 비었다는 것을 깨달은 기분”이라며 “에너지 붕괴에 대처하려면 고갈되는 에너지에 대한 전략적인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06년 산안드레아스 단층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가 파괴된 적이 있고, 지난 3년 동안 대규모 화재와 반복되는 가뭄 피해를 겪은 캘리포니아는 재앙의 심리학과 기술적인 낙관론이 혼재한 땅이다. 소노마 지방 세바스토폴, 즉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고 탈석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전환 마을’(transition town)(4)에 자리잡은 포스트 카본 연구소는 석유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경제학자·생물학자·사상가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5) 이 두뇌집단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기업의 취약성을 주로 성찰하고 있다. 석유 시대의 종말을 고한 리처드 하인버그도 두뇌집단의 저명한 대변인들 중 한 명이다.

환경 관련 책들을 저술한 기자 출신의 하인버그는 그의 저서 <파워다운>에서 값싼 연료 부족이 초래할 고통을 감내하기보다 차라리 에너지 소비를 의도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6)

캘리포니아는 에너지가 취약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가 화석에너지와 우라늄 같은 고갈되고 있는 연료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회사들의 최우선 과제는 기업의 활력을 높일 뿐 아니라, ‘전환 네트워크’의 공동 창업자인 영국인 로브 홉킨스(7)가 주창한 ‘전환 마을’ 이미지에 부합하는 전환 전략을 가동시키는 일이다.

친환경 지역 연대 강화해야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구릉 한복판에는 인구 1만3500명이 거주하는 지방 도시 윌리츠가 있다. 수천년 된 삼나무과의 세쿼이아가 빽빽이 숲을 이루고 있다. 생물학을 전공한 컴퓨터 공학자 제이슨 브래드포드는 환경 친화적인 이곳의 유일한 상업가에 자리잡은 ‘멘도네시언 카페’에 매일같이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하러 온다. 식당 벽에는 “자유는 당신이 그것을 정의하는 순간부터 생긴다”라는 문구와 향토 화가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브래드포드는 실리콘밸리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그의 활동 무대는 집, 정원, 과수원으로 한정돼 있다. 그는 정원과 과수원에 씨앗을 뿌리고, 식구들이 먹을 식량 일부를 심는다. 그는 승용차를 집 앞에 세워둔 채,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텃밭을 일군다.

에너지 관련 사이트 ‘오일 드럼’(8)의 편집인인 브래드포드는 ‘윌리츠 경제 지역화 협회’를 이끌고 있다. 이 단체는 세계의 흐름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벗어나 지역 연대를 통해 돌파구를 찾자고 외친다. 얼마 전에는 교외 지역의 몰락을 예고하고 도시화의 한계를 지적한 영화 <서버비아의 종말>(The End of Suburbia)(9)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퇴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고 생기를 되찾는 브래드포드는 삶의 방식만큼이나 삶의 이야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 부정적인 탐닉에서 건강한 탐닉, 다시 말해 정원을 가꾸고 토양 상태를 걱정하며 무관심 때문에 잊었던 것들을 보살피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인식론적인 불협화음을 겪고 있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생태적인 빚을 지고서 회사들을 세웠기 때문에, 이 빚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선 우리는 파괴한 것을 복원시켜야 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500만 명 이상이 내려받아 감상한 환경운동가 애니 레너드의 애니메이션 영화 <더 스토리 오브 스터프>(The story of stuff)(10)가 지적한 것처럼, 지금의 소비사회에서는 집단 치료가 필요하다. 환경단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삭 줍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는 마릴린이 과수원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과수원 땅 중 자신이 가꾸는 손바닥만 한 땅에 난 잡초도 제거하고, 과일과 채소를 챙겨 학교와 인근 자선단체에 배포하기 위해 왔다. 그녀는 지역 공동체의 응집력을 강화해 긴급 상황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11)

인구 10만3천 명의 리치먼드는 원래 높은 범죄율로 유명한 곳이다. 바로 이 도시에서 대량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단체들이 태양열판 생산 부문 등에서 지역에 뿌리를 내린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그린 포 올 & 솔라 리치먼드’는 이곳에서 반 존스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존스는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어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신임 자문위원이다. 샌프란시스코만의 동부에 위치한 이 도시의 조선소들은 더 이상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15만 배럴의 저장 능력을 갖춘, 항구 부지의 셰브론 정유소는 염소와 무수황산 같은 독성 물질을 퍼뜨리고 있다. 항만 주변의 주민들은 늘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다. 정유공장 확장 반대 시위에 가담한 수백 명의 시민들은 자신들에 대한 ‘차별적 환경정책’을 거부했다.

기업 논리 극복, 주민 참여가 관건


리치먼드의 게일 맥 로글린 시장은 자신의 도시에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어하는 강한 의지를 지녔다. 여기에는 지난 2월 통과한 오바마 대통령의 경기 부양책 일부가 작용하고 있다. 리치먼드시는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에너지를 관리하며, 지역의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건물 지붕을 태양열판으로 잇는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연방정부로부터 이미 약 100만 달러를 보조금 명목으로 받았다. 그런데 시의회는 주로 셰브론 정유소 편을 들고 있다. 시의원 대부분이 정유회사와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정치투쟁 덕분에, 2008년 11월 ‘T 조처’라 일컫는 조처가 주민 투표에 부쳐져 51%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 조처로 셰브론 정유소와 같은 오염물 배출 중공업 시설에 중과세하는 방식으로 법인세 제도가 바뀌었다. 2008년 26억 달러의 이윤을 창출한 셰브론이 세금으로 낸 돈은 고작 길모퉁이에 위치한 잡화상이 낸 세금보다 조금 많았기 때문이다. 황량한 리치먼드 교외의 거리를 할 일 없이 떼지어 활보하는 청소년들이, 어쩌면 시가 홍보하고 있는 단기 농업에 종사할 미래의 도시 농민인지도 모른다.

맥 로글린 시장 부인은 “도시 사방에 있는 공동 텃밭에서 식량이 생기고 있다. 심지어 이 지역 식품의 5%를 담당하는 단체도 있다. 이렇게 생산된 식품의 시장점유율이 상품 유통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고민 중이다”라고 했다. 이곳에서 새로운 철학이 만들어져 실험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캘리포니아의 이스트베이가 녹색지대로 바뀌는 거대한 전환이 서서히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글 아그네스 시네 Agn?s Sinai
번역 조은섭


<각주>

(1) 고온에서 특정 물질들을 생물화학적으로 처리하는 탱크.
(2) www.netl.doe.gov/publications/others/pdf/Oil_Peaking_NETL.pdf.
(3)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어린 제우스에게 먹일 젖을 내는 산양의 뿔. 뜻은 ‘풍요의 뿔’. 이 뿔을 가진 자는 원하는 것이 꽃이건 과일이건 곡물이건 모두 풍성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4) www.transitionus.org.
(5) www.postcarbon.org.
(6) <Powerdown: Options and Actions for a Post-Carbon World>, 2004.
(7) Rob Hopkins, <The Transition Handbook: From oil dependency to local resilience>, 2008.
(8) www.theoildrum.com
(9) 그레고리 그린(Gregory Greene) 감독의 2004년 영화. www.endofsuburbia.com.
(10) www.storyofstuff.com.
(11) www.eattheview.org, www.foodnotlawn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