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의 덫에 빠진 브라질

2009-07-03     르노 랑베르

룰라, 외자 유치로 연명하는 악순환 경제 못 끊어

“모두를 위한 정부”는 허울뿐, 자산가들만 배불려

에콰도르에서는 좌파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 ‘사회 및 연대’ 정책 덕분에, 지난 4월 26일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해 재선에 성공했다. 반면 파나마에서는 지난 5월 3일 선거에서 베를루스코니를 닮은 사업가 리카르도 마르티넬리가 혁명민주당(PRD)의 발비나 에레라 후보를 눌렀다. 에레라 후보의 선임은 재임 기간 중 빈곤층 감축 정책에 실패한 사회민주당의 마르틴 토리호스였다. 에레라는 선거 기간 중 자신을 남미대륙의 ‘극좌파’와 구분하며,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와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와 비교했지만 패배했다.  이처럼 엇갈린 선거 결과는 2010년 브라질과 칠레에서 치러질 대선의 전망을 어렵게 한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도 몇가지 호평을 받는 개혁 정책을 제외하곤 스스로 “저주스러운 유산”이라고 부르는 전임자들의 경제 유산으로 인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 ‘폰지 사기극’의 장본인 메이도프는 그래도 ‘부자들’에게만 사기를 쳤다. 하지만 브라질 정부는 부유층에게만 사기를 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그 빚을 떠안게 됐다."

2008년 5월, 미국 경제는 지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브라질은 다행히 모든 것이 괜찮았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이 “마법의 순간을 살고 있다”고 봤다.(1) 2007년 국내총생산이 5.67% 증가한 이후, 정부는 의기양양했다. “향후 15~20년간 현재 추세로” 성장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개의치 않았다.(2)

2008년 10월, 국제금융 시스템이 붕괴됐다. 브라질은 무사태평했다. 10월 4일 한 대담에서 룰라는 하와이풍의 유머를 섞어가며 “저곳(미국)의 경제위기는 말 그대로 쓰나미다. 만약 이곳에 경제위기가 닥친다면, 그것은 너무 작아서 서핑도 할 수 없는 잔물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고 호언장담했다. 몇 달 후, 루시아누 코티뉴 국가개발은행(BNDES) 행장은 한술 더 떠 세계 자본주의 체제 ‘주변’ 국가들의 성장은 ‘중앙’의 대격변과는 별개가 될 것이라는 이론을 들먹이며 “분명 탈동조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3)

그리고 2009년 3월, ‘잔물결’이 태풍과 함께 닥쳤다. 2009년, 브라데스쿠 은행은 국내총생산의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했다. 2008년 6월 당시 4% 이상 성장 전망에서 12월엔 2.5%로 전망치가 떨어지더니, 2009년 4월 들어선 -0.3% 성장률을 내놓은 것이다. 심지어 모건스탠리는 브라질 경제가 -1.5%까지 폭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수치는 1948년 이후, 브라질 경제의 최대 감소폭에 해당한다.(4)

올해 초부터 위기 증후 나타나

2008년 4/4분기에는 산업 생산이 19% 감소했다. 2008년 10월과 2009년 1월 사이에 노동인구의 거의 1%에 해당하는 80만 명의 샐러리맨들이 해고됐다. 이마저도 브라질 노동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비공식 부문의 해고는 빠진 수치다. 50만 브라질인들이 극심한 빈곤으로 되돌아갔다. 룰라 대통령이 마침내 문제 해결을 위해 서핑보드와 선글라스를 묵주와 미사경본(經本)으로 교환하겠다고 나섰다. “마법의 순간”은 빠져나올 수 없는 악몽이 돼버린 것이다. 룰라 대통령은 4월 6일 “유럽, 미국, 일본의 경제위기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했다”고 전했다. 3월 11일치 <파이낸셜타임스>는 짧은 논평을 통해 브라질의 경제 실적이 “전 지구적인 전염병에 대해 면역이 생겼는지를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했다. 탈동조화는 신화로만 살아 있다.

15년 전부터 모든 것이 브라질의 해외 의존도를 증가시켰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경제 금융화의 가속화였다. 사회학자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와 옛 노동운동가 룰라가 작동시킨 이 작업은 “사회주의로 통하는 길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5)

1960년대 후반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 들른 카르도주는 어떤 주변 국가가 해외 자본과 동맹을 맺었으으면서도 해외 의존도를 증가시키지 않고 발전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배 체제가 지방 단체와 지역 계층의 사회적 관행을 통해 마치 ‘내부의’ 힘처럼 재등장했고, 이들 단체와 계층이 외국의 이익을 증진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6) 하지만 20년 뒤 재무장관(1993~1994)을 거쳐 대통령(1995~2002)이 된 그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또 자신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마르크스가 상상도 못해본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자본이 급속도로 국제화했고, 오늘날 자본은 넘쳐난다. 일부 국가는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낼 수 있다. 예컨대 브라질이 그들 중 하나다”라고 천명했다.(7)

이후 카르도주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에서 작동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안정화 전략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판단하고, 외국 자본에 대한 개방을 자신의 핵심 전략으로 삼는다. 이것은 수입을 대체하기 위해 생산하던 ‘자율적인 발전’을 더 이상 촉진하지 않고, 반대로 수입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경쟁을 부활시켜, 생산성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이다. 카르도주는 브라질을 투자자들의 구미에 맞게 적응시킨 것이다. 관세장벽을 제거하고, 무역통제를 없애고, 야심찬 민영화 프로그램(두 번에 걸친 대통령 임기 동안 약 9천억 달러 규모) 이 진행될 수 있도록 헌법을 재정비했다.

1994년 1~2분기에 수입이 52.7% 급증했다. 수입 때문에 많은 브라질 기업들은 문을 닫거나 외국 업체와 합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외국 업체들은 1995~99년에 실시된 인수·합병 1233건의 70%에 참여했다. 강력한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현지 시사주간지 <베자>(Veja)조차 이런 대담한 비국유화(denationalisation) 과정에 당황하며 “자본주의 역사상 기업의 통제권이 이처럼 단기간에, 이처럼 집중적으로 이양된 것은 극히 드믄 일이다”라고 촌평했다.(8)

2000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 후벵스 히쿠페루는 외국 자본 개방 정책의 결과를 내놨다. 그는 완곡한 표현으로 “다국적기업의 무역 목표와  투자유치국의 경제의 목표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9)

1990년대 시장 개방으로 산업 무너져

카르도주 전 대통령 집권 때 브라질은 탈산업화하며 공식 실업률이 거의 두 배나 상승해 9%대에 육박한 반면, 1인당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장 개방과 무역 자유화가 가져다준 대가였다. 무역수지는 1994년 105억 달러 흑자에서 1년 만에 35억 달러 적자로 곤두박질쳤다. 1980년 이후 당시까지 줄곧 흑자였던 무역수지는 이때부터 2000년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결국 브라질은 외국 자본에 의존하는 국가가 됐다. 카르도주 스스로가 진단한 것처럼 “적자를 메우기 위해, 브라질은 외국 자본의 지속적인 유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10) 그래서 사람들은 외국 자본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에 의문을 품고 있음에도, 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자 폭은 노력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브라질에서도 투자자들의 목표는 이타 행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되도록이면 이런 상황을 이용해 한몫 챙겨, 국외로 외화를 유출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브라질은 미국 금융가 버나드 메이도프의 방식과 유사한 ‘폰지 사기극’을 작동시켰다. 사람들은 최근 메이도프가 오래된 사기 피라미드 형태를(11) 손질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을 알았다. ‘폰지 사기극’은 오늘 빚을 내어 어제의 빚을 청산하고, 내일의 빚을 청산할 준비를 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메이도프는 ‘부자들’에게만 사기를 쳤다. 하지만 브라질 정부는 부유층에게만 사기를 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그 빚을 떠안게 됐다. 특히 외국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고금리와 엄격한 예산 정책에 따라 빚을 청산해야 한다.

우리가 투기꾼의 이익을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펼친다면, 투기꾼의 행동에 호의를 보이는 게 당연하다. 브라질의 많은 갑부들은 고금리 정책하에서 브라질 국채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단박에 깨달았다. 기업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국채 매입에 뛰어들었고, 생산적 투자는 점차 뒷전이 돼버렸다. 카르도주 집권 때, 국내 부채는 900%나 증가한 반면, 투자 정체와 해외 의존도는 더욱 심화됐다. 특히 기술 부문이 그랬다.

브라질을 ‘현대화’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카르도주가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카르도주가 최고의 효과를 냈다. 1998년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카르도주는 4년도 채 안 돼,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불도저처럼 굴며 12년에 걸쳐 해낸 것과 맞먹는 일을 해냈다. 그의 정적인 룰라 다 시우바는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에게 카르도주는 ‘브라질 경제의 사형 집행인’일 뿐이다”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 ‘빨갱이’ 노조원이 당선되자 걱정이 앞섰다. 브라질 ‘오데브레히트’(Odebrecht) 산업 제국의 후계자 에밀리오(Em?lio) 오데브레히트는 “외국 투자자들은 좌파 프로필을 지닌 대통령 밑에서 브라질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자문했다”고 회고했다. 룰라 다 시우바는 자신이 패한 1998년 대선 캠페인 동안에 “이자를 지불할 것인지 혹은 국민의 배를 채울 것인지 사이에서, 나는 국민 편이다”(12)라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룰라는 당선 후 자신의 당선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선의 사건”이라면서 소수 지배자들을 안심시켰다.(13) 그리고 여당의 일부 강성 노조원들은 룰라 대통령이 곧 투자자들과 금융시장의 총아로 전락하자 놀랐다. 물론 투자자들이 그를 금융시장에서 흔들어댄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브라질 경제는 국제통화기금의 새로운 대출에 의존했다. 2002년 8월 14일치 <월스트리트저널>은 “통화기금의 대출이 너무 구조화돼,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는 룰라 다 시우바와 시로 고메스 같은 좌파 후보들이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계속 펼쳐야 할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룰라, 기존 경제 모델 못 버려

룰라 대통령은 이미 “소수 지배자들의 지지 없이 통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섰던 것은 아닐까?(14) 그는 항상 그들을 위해 통치하겠다고 흔쾌히 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경제학자 하비에르 산티소는 “카르도주와 룰라 사이의 권력 이양 자체가 우아한 정치적 교훈”이라며 이를 반겼다.(15) 하지만 이전 정부와의 단절을 고대했던 유권자들의 반응은 룰라의 고상함에 시큰둥했다.

물론 룰라 대통령은 그의 연설에서 경제 주권은 계속 지키겠다고 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이 외국 자본에 의존은 하고 있지만, 브라질이 호의적인 국제경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고, 자본이 유입되어 “브라질이 스스로의 주인이 된다!”고 여겼다.(16)

물론 한때 브라질의 무역수지 문제가 해결됐고, 수출은 2003년에서 2006년 사이에 연평균 20%의 비율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수출은 외국인 직접 투자의 새로운 물결에 고무돼서 증가한 것이다. 외국인 직접 투자가 2003년 100억 달러(국내총생산의 약 2%)에서 2008년에는 역사적 수준인 450억 달러(약 3.5%)로 상승했다. 말하자면 브라질의 수출 증대가 외국 자본의 침투를 강화한 꼴이 됐다.(17)

지난 1월 16일 룰라는 자신과 닮은꼴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에게 “모든 사람을 위한 통치”를 해야지 단지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통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 스스로가 열성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을 추천한 것이다. 사실, 투기꾼들을 위한 풍성한 회오리바람으로 변질된 브라질의 번영이 서민층에게 휴식을 제공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주로 보조금에 기반을 둔 현실적인 복지 프로그램 덕분이다.

예를 들어 2007년 수출 붐과 함께 외화 유입이 늘면서 달러 대비 헤알(브라질 화폐)의 가치가 20% 상승된 반면, 브라질 국채는 연간 13%의 수익률을 냈다. 결국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해외에서 달러를 빌린 브라질인들은 연말에 투자액의 30%에 이르는 수익을 냈다. 하지만 이때부터 늘기 시작한 국내 빚의 규모가 2009년 1월에는 1조6천억 헤알(6800억 달러)로 요즘 룰라 대통령이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브라질 외환 보유액의 3배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브라질의 경제 독립이 정말로 놀랄 일인가?

부유층 강화가 유일한 ‘성과’

이런 점에서 볼 때, 룰라 대통령의 유일한 진정한 성공은 국채의 80%를 소유한 2만 브라질 가구의 힘을 상대적으로 강화해준 것이다. 이들은 채권 수익으로 연방정부 예산의 30%를 독식하고 있다. 이에 반해 예산의 5%도 채 안 되는 액수가 보건비에, 2.5%가 교육비에 쓰이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이러한 모델을 받아들임으로써 취약점을 떠안았다. 카르도주조차 이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다. “만약 수십억 달러가 브라질에 유입될 수 있다면, 또한 이 돈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 만약 외화 유입이 ‘반드시’ 국가 개발에 도움을 주도록 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대량의 외화 유출이 국가경제를 약화시키는 것은 자명하다. 이것이 해외 자본 의존의 역설이다. 달러가 유입되면서 손실이 생기고, 반출되면서 더 많은 손실을 입는다는 역설….

국제금융 시스템이 붕괴되고 몇 달 만에, 브라질의 국제수지는 말 그대로 외화가 빠져나가는 여과기로 전락해버렸다. 우선 무역수지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실질적인 물가안정책을 도입하자 수입이 수출보다 더 빠르게 늘며, 2006년부터 흑자 폭이 줄던 무역수지는 2009년에 93개월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통화기금이 2009년 세계 무역수지가 11%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한 가운데, 브라질 경제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브라질의 생산이 의존하고 있는 외국 자본 확충도 한층 어려워졌다.

2008년에 외국 투자가의 이익과 배당금의 본국 송환이 거의 340만 달러로 국내총생산의 약 3%에 달했다. 이는 2007년 대비 50%, 2003년 대비 500% 증가한 수치다. 2008년 경상수지 적자는 지난 10년간 최대인 283만 달러로 국내총생산의 약 2.5%나 됐다.

이런 외국 자본 의존 현상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1969년에 칠레 외무장관 가브리엘 발데스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민간 투자의 의미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투자한 액수보다 몇 배 많은 액수를 해외로 반출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얻는 것보다 내주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호소했다.(18)

과거 일부 정부는, 꼭 좌파가 아니어도, 수입 대체를 기반으로 하는 좀더 자율적인 발전 프로그램을 옹호했다. 하지만 그런 프로젝트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 부르주아계급’, 즉 소수 지배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들 정부에는 오로지 한길, 사회혁명밖에 없었다. 사회학자 카르도주가 그들 중 한 명이었고, 노조원 룰라도 마찬가지다.

만약 룰라가 대통령이 된 뒤 브라질 경제의 ‘탈동조화’를 정말 희망했다면, 전임자의 경제 프로그램을 포용하기보다는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룰라에 열광하는 경제학자 하비에르 산티소는 룰라가 전임자의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일부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의 정책 변화를 구현할 것이라고 했다. 산티소는 그 이유를 룰라가 “계급투쟁, 경제계획 그리고 수입대체 전략과 같은 일부 표현들을 ‘민주적인 합의’, ‘제도 강화’, ‘경제규제 완화’ 및 ‘자유무역 개방’ 등의 표현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도구들로 무장한 룰라 대통령이 요즘 브라질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미국에는 무역량 증가를, 브라질인들에게는 절약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신에게는 중앙 경제의 ‘부활’을 봤다고 외치고 있지만, 외국 투자자와 국채 소유자들에게는 아무것도 또는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브라질 대통령은 현재 위기의 책임을 묻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문제를 만든 쪽이 아니라 수습하려는 쪽이다”라고 했다.(19) 과연, 사실일까?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번역·조은섭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로 <포도주 해시시 그리고 섹스>가 있고, 역서로 <텔레비전> <대나무> 등 다수가 있다.

 


 

<각주>

(1) ‘Brasil: Lula celebra el “investment grade” de Brasil’, <Infolatam>, 2008년 5월 1일.

(2) ‘The delights of dullness’, <The Economist>, 2008년 4월 17일.

(3) Jonathan Wheatley, ‘New economic figures rattle Brazilians’, <The Financial Times>, 2009년 2월 7일.

(4) Andre Solani & Fabiola Moura, ‘Latin America may contract 4 %, Morgan Stanley says’, <Bloomberg>, 2009년 3월 16일.

(5) Fernando Henrique Cardoso & Enzo Faletto <Dependencia y desarrollo en America latina>, 1969.

(6) 같은 책.

(7) Vinicius Torres Freire와의 대담, <Mais!>, 1996년 10월 13일.

(8) Geisa Maria Rocha, ‘Neo-dependency in Brazil’, <New Left Review>, 2002년 7~8월호 참조.

(9) 위의 글 참조.

(10) Fernando Henrique Cardoso(avec Brian Winter), <The accidental president of Brazil>, 2006.

(11) 그는 5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액수를 횡령한 혐의로 현재 수감 중이다.

(12) Christian Dutilleux, <Lula>, 2005.

(13) <La Folha de Sao Paulo>, 2008년 1월 27일.

(14) ‘Lula ataca oligarquias, mas poupa Sarney’, <O Estadode Sao Paulo>, 2009년 2월 6일.

(15) Javier Santiso, <Latin America’s politica leconomy of the possible>, 2006.

(16) 2005년 12월 13일 국제통화기금 차관 상환을 예상하며 한 발표.

(17) 이 수치는 l’Instituto de Pesquisa Economica Aplicada(IPEA)의 자료임.

(18) Andre Gunder Frank가 인용한 내용 참조, <Lumpen-bourgeoisie and lumpen-development>, 1972.

(19) ‘Latinoamerica elogiada por reaccien a crisis global’, <Latinforme>, 2009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