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로 남고 싶은 ‘이상한 섬’ 마요트

2009-07-03     레미 카라욜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남동아프리카 작은 섬, 프랑스에 정식 편입 결정
가족사는 주변 섬들과 결별… 사회적 부작용 심각


프랑스 의회에서는 당장 올여름부터 아프리카 동남부 인도양에 있는 마요트섬의 향후 지위를 두고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4월 26일 마요트섬의 해외 도(道) 편입 국민투표가 가결됐기 때문이다. 국제적 비난 여론과 코모로제도로의 이주 압력 사이에서 파리는 까다로운 악곡을 연주하고 있다.

활짝 웃으며 열렬히 프랑스 국기를 흔드는 군중들의 환희 속에, ‘101번째 도(道)’라는 화려한 문구가 신문 1면을 장식했다. 4월 3일 현지 ‘대표’ 일간지 <마요트 에브도>(Mayotte Hebdo)는 과장된 문체도 서슴지 않았다. 아예 특집호를 발간해 앞서 닷새간 진행된 여론조사에 전적으로 할애했다. 3월 29일 “마요트섬이 ‘도’라는 단일 자치단체로 바뀌어 헌법 73조의 적용을 받고 해외 도 및 광역 도에 귀속 관할되는 데 찬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95.2%의 응답자가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 주도 세력이 몇 주 동안 굳히기 운동을 벌인 뒤 선거 광풍이 인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제 마요트는 2011년 4월, 프랑스의 101번째 도이자 5번째 해외 도가 된다. 현지 유력 기업들은 신문에 광고를 싣고 이를 환영했다. 10년째 이 작업을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 광고대행사 뤼비 오길비는 프랑스 삼색기를 바탕으로 장식한 광고를 통해 독자들에게 ‘거대한 운동이 원대한 구상에 봉사할 때, 성공이 때맞춰 찾아온다’라고 전했다. (동아프리카 프랑스령) 레위니옹 그룹의 자동차 판매·렌트 회사 ‘카이예’와 종합 건설회사 빈치 그룹의 자회사 ‘소제아 건설’도 같은 행보를 걸었고, 허브 작물 회사 ‘카낭가’사도 마찬가지였다. 코모로제도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식민회사 가운데 하나인 카낭가는 마요트섬의 운명과 그룹의 운명이 밀접하게 연결된 역사를 보여준다.

주변 섬들과 갈라선 마요트

마다가스카르와 모잠비크 사이에 위치한 마요트는 코모로제도에 속하는 면적 374㎢의 섬으로, 19세기 후반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피지배자 쪽에서 스스로 식민 상태에 남아 있길 원하는 건 전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 이곳에서는 ‘나의 조국, 프랑스’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듣거나 볼 수 있다. 물론 마요트로 배속되면 두 배의 월급을 받는 ‘본토’ 공무원에 대한 원한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 교구의 부총감은 ‘본국’을 떠나 이곳에 오는 교사들을 ‘선교사’에 비유한다. 현지인에 대한 우월감도 없지 않다. ‘백인들’의 저녁 모임에서는 “우리가 없었으면 저들은 어떻게 됐겠는가?”라는 말도 나온다. 마요트섬에서 식민화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았다. 1974년 12월 프랑스는 코모로제도의 4개 섬 거주민들에게 ‘독립을 원하는지, 프랑스 공화국의 일원으로 남길 원하는지’ 물었다. 그랑드코모르섬·앙주앙섬·모엘리섬의 경우에는 99%가 독립에 찬성한 반면, 마요트섬에서는 65.47%가 반대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마요트섬에는 해외 도와 해외령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자치령의 지위가 주어졌고, 이는 파리에 외교적 탈출구를 제공했다. 사실 1975년 11월 12일 이후 유엔이 코모로제도 전체에 대한 독립을 인정하면서 파리는 국제법에 대해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비난의 대상이 된 건 아니지만, 1997년 앙주앙섬에서 있었던 분리주의 갈등과 1999년 군부 쿠데타로 나타난 지역 균열의 원인 제공자라는 혐의를 벗긴 힘들다. 마요트의 ‘프랑스-아프리카’ 사회는 이런 식의 균열이 낯설지 않다.

마요트 편입, 국제적 명분 상실

마요트섬의 해외 도 편입으로 파리는 국제적 명분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2월 9일 아프리카연합은 마요트섬의 해외 도 편입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비난하며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2월 25일 발간된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 보고서는 “한 지역의 영토 보존을 해치려는 모든 시도는 유엔헌장의 원칙과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마요트 쪽에서는 분개했다. 마요트 민주주의운동 소속 의원 압둘라티푸 알리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이끄는 아프리카연합은 프랑스에 민주주의를 가르치려 들고 있다. 터무니없는 소리다”라며 열변을 토했다. 대중운동연합(UMP) 소속의 아메드 아투마니 두치나는 “프랑스가 마요트 사람들의 의지에 반해 여기 남기로 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한발 더 나아갔다. 수세대 전부터 ‘조화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틀로 여겨져온 도 편입은 코모로제도의 다른 섬들과의 분리를 위한 최종 단계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랑드코모르섬의) 모로니에 있는 코모로제도 당국은 “이미 다 짜고 치는 판”이라고 비난했다. 3월 29일에 있었던 국민 여론조사 이후, 코모로 당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악화됐다. 투표 전날 모로니 거리에서는 프랑스 국기가 불태워졌다. 4월 2일 아메드 자파르 코모로 외교장관은, 여론조사에 대해 “코모로제도 당국이 결코 용인할 수 없을 비우호적 행위”라고 언급했다. 마요트의 코모로 복속을 위한 운동단체인 ‘마오르 위원회’는 심지어 4월 9일 코모로 당국이 국제형사재판소에 프랑스를 제소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서쪽으로 100여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섬들을 분열시킨 프랑스 정부는 제 발로 움직이는, 다루기 힘든 괴물을 만들어냈다. 상원 보고서에서는 이를 “잠재적으로 폭발 가능한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프랑스 국립 통계경제연구소(INSEE)의 (2007년 7월 31일) 집계를 보면, 마요트섬의 거주민 18만6500명 가운데 3분의 1이 불법 체류 신분이며, 거의 모두가 코모로 국적자다. 도청 소재지 마무주와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제2도시 쿵구로 가면 이 비율이 50%까지 올라간다.

이곳의 현지 생산력은 2008년 수출이 수입의 1.4%밖에 안 될 만큼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어서, 다른 해외령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본토의 수혈정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물론 마요트섬의 국내총생산이 코모로제도의 독립한 나머지 섬들보다 9배가 높지만, 유럽연합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마요트섬의 경제는 아직 한참 뒤떨어진 비공식 경제 상태이다. 상원의원 앙리 토르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10인 이하 토목·건설 분야 기업 노동자의 80% 가까이가 불법 노동자 신분인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 노동은 농업, 어업, 토목·건설업, 택시업, 재택근무 분야에서 보편화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불법 체류자 고용 혐의로 재판을 받는 농장 경영주들은 이들을 계속 고용하고 있다. 농민연맹의 마디 라게라는 “달리 할 방도가 없다. 밭에서 일하겠다고 나서는 마요트 사람을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코모로 노동력은 이곳 시장을 부양해주고 있다. 코모로 노동력은 최저임금제도나 실업수당이 필요 없어 인건비 절감에 좋은 수단이 된다. 현재 마요트에는 프랑스의 8개 최저임금제도 가운데 성인 장애인과 노인 등 2개 범주만이 적용되고 있으며, 최저임금 액수마저 프랑스 본토와 다른 해외 도보다 낮다. 마요트의 해외 도 편입은 이런 상황을 ‘정상화’해줄 것으로 보인다.

불법 이민 반대하며 불법고용은 OK

불법 노동이 가장 극심한 분야 가운데 하나는 건설 분야이다. 1998∼2002년에 4천 이상의 가옥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토르 의원은 “마요트 사람들은 불법 이민을 강하게 반대하면서도 불법 노동시장의 발달은 외려 부추기고 있다”며, “1970년대에 마요트섬과 코모로제도의 다른 세 섬이 분리되긴 했어도, 양쪽의 관계, 특히 가족관계는 지속되고 있는 상태”라고 적고 있다. 사실 ‘불법 노동자’들이 모두 저렴한 노동력은 아니다. 이들은 서로 형제·사촌 사이거나 이모·조카 사이이며, 이는 정치적으로 끊을 수도 없는 혈연관계이다. “보통 마요트의 코모로 이주민을 통칭하는 데 ‘불법 이민자’라는 표현은 이들의 실제 현실을 나타내기에 별로 적절치 못하다. 익명성을 전제하는 이런 식의 표현은 마요트의 이민자 전체를 규정짓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사회학자 다비드 귀요의 설명이다.

어찌 됐든 프랑스는 마요트섬 주변에 벽을 설치해주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앙주앙과 마요트에 나눠 살고 있어 이 두 섬을 오가며 지내는 이나야의 경우, 1980년대에는 “마요트에 가서 가족도 만나고 일자리도 찾고 장도 보고 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거의 취득 불가능한 비자가 도입된 1995년, 모든 게 달라졌다. 그 뒤 앙주앙섬과 마요트섬을 가르는 70km 구간은 지구상의 대표적인 ‘바닷속 묘지’에 속한다. 협회별 집계 수치는 다르지만 지난 14년 동안 약 3천~6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콰사콰사’라고 하는 6~9m 길이의 작은 배에 잔뜩 짐을 싣고 바다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찰대의 눈을 피해 항해하느라 점점 더 위험한 항로를 택하다 변을 당한 것이다. 2008년에는 256척의 콰사콰사가 바다를 건너다 저지당했고, 이는 2004년보다 7배 더 많은 수치다. 모로니에서 ‘죽음의 항로’로 불리는 이 길은, 2005년 당시 프랑스 내무장관이던 니콜라 사르코지의 실적 위주 정책과 더불어 단속이 더욱 심해졌다. 그 결과 지난 3년 동안 5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배를 돌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치안 관련 예산 확충안에 동의했다. 지난 5년간 경찰 및 헌병 정원은 3배가 됐고, 당국은 레이더 3대와 감시선 4대를 사들였다. 공권력이 언제 어디서든 신원 확인을 할 수 있도록 법 또한 수정됐다.

경찰의 불법 체류자 과잉 단속

프랑스의 이민자 지원 비정부기구 시마드(Cimade)와 마요트 ‘국경 없는 교육 네트워크’의 주장을 들어보면, 마요트섬에서 단속은 일상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경 경찰(PAF) 공무원은 “유예 조처가 없으니 잘못 처리된 경우도 없지 않다”고 시인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카우보이처럼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매일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잉 추격이 경찰청장을 포함한 상부의 승인 아래 이뤄지고 있다. 혼자 온 미성년자들은 돌려보내는데, 그 부모들이 이쪽에서 살고 있다. 그 어떤 법적 절차도 지켜지지 않으며, 불법 체류자들의 구금 환경은 열악하다.”

2007년 실시된 위생환경 조사자료를 보면, 마요트에서 살고 있는 불법 체류자의 절반 가까이는 체류 기간이 10년 이상이다. 시마드의 플로르 아드리앙 마요트 지부장은 “마요트에서 학교 생활을 한 사람들도 많고, 여기에서 가정을 꾸린 사람들도 많다. 지위 합법화를 요구할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경찰청은 불법 체류자만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국은 시민의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드니 로뱅 경찰총장은 현 정책의 효율성을 “비단 정부에만 달려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부 마을에서는 경찰 병력이 불법 체류자의 목록을 작성해 이를 당국에 제출하기도 했다. 2003년과 2005년의 일처럼, 이들이 사는 집에 돌을 던진 사례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의원은 “갈등이 촉발되는 상황에서 코모로 사람들의 거부감이 외국인 혐오증으로 나타나면서 더욱 거세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 자신도 가끔은 이런 현상을 ‘이해’한다고 시인했다. 그는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부임한 지 몇 년이 지난 한 현직 관리는 비관론적 태도를 보인다. “난제는 점점 쌓여가지만,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거리에는 부모가 추방된 아이들이 급증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망명 요구자는 늘고 있으며, 이민 여성의 삶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이 관리는 “마요트의 프랑스 해외 도 편입이 마요트 사람들의 물질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해주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글·레미 카라욜 Rémi Carayol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