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침공 소동’의 진실은
2009-07-03 피에르 라르그랑주 |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왜곡과 거짓말, 대중들의 눈과 귀를 무시
1938년 나이 23살의 오선 웰스. 연극 연출가인 그는 <CBS> 라디오 방송에서 일했다. 10월 30일 그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1898년 작품 <우주전쟁>을 각색한 <뉴스>를 연출했다. 이 프로그램은 천문학자들이 화성 표면에서 빛을 감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 이 운석이 화성인들의 우주선임을 알리는 뉴스 속보가 이어진다. 우주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사망자들이 속출한다. 현장에 출동한 <CBS> 특파원은 화성인들이 쏜 광선의 첫 희생자가 되어 비명을 남긴 채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정작 사건은 다음날 일어났다. <뉴욕타임스>는 ‘우주전쟁 픽션을 사실로 착각하고 패닉 상태에 빠진 청취자들’이라는 제목 아래 이 사건의 여파를 소개했고, <보스턴 헤럴드>는 한술 더 떠 “이른바 화성인들의 침략이 전국을 패닉 상태에 몰아넣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매사추세츠의 <사우스브리지 뉴스>는 “우주전쟁에 대한 라디오 방송 이후 마을과 주 전체가 집단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평했다. 화성인의 상륙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청취자들이 침략자를 피해 도주를 시도했다는 등 수많은 기사가 청취자들의 동요를 상세하게 묘사했다.
문제는 방송을 듣고 패닉 상태에 빠진 미국인 수백만 명의 ‘흔적’을 어느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살한 사람의 흔적은 말할 것도 없다. 라디오 방송이 있은 뒤 며칠 동안, 신문은 몇몇 청취자들의 증언을 인용했지만 항상 똑같은 사람들의 말만 인용했다. 하지만 그 증언이 모든 신문에 반복 게재되면서 일반 독자들은 그들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른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1939년 대학교수들이 청취자 135명을 대상으로 사회심리학적 연구를 시행했다. 그들 중 100명 이상이 “라디오 방송에 몰두한다”는 이유로 선택됐다. 이 연구 대상자들을 근거로, 연구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 청취자 수가 1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보고서 서문에서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수치를 애매하게 줄였고, 결국 “이 프로그램은 소수 청취자들에게만 영향을 끼쳤다”라고 썼다.(1)
이 전설적인 패닉 상태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을까? 방송을 들은 일부 소수가 공포를 느끼기는 했겠지만, 청취자가 보였다는 종말론적 장면들은 웰스의 탁월한 연출 능력(특히 1940년 웰스가 제작한 영화 <시민 케인>의 성공 이후 더욱 돋보였다)과 관련됐고, 결국 신문과 출판업계가 만들어낸 이야기인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설자들은 애초의 상황을 생각해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서로 말을 베껴썼다. 그들의 기사는 수많은 사건들과 혼란을 언급했고, 여기에 자살한 사람과 유산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덧붙여졌다. 이렇게 신화가 만들어졌다. 모리스 베시는 그의 저서 <오선 웰스>(1963)에서 “수많은 군중이 교회를 공격했다. 약탈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봉기했다”고 적었다. 1971년 천체물리학자 에브리 샤츠만은 “뉴욕 사람들의 두려움은 점점 커졌고, 몇몇 사람들에게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자살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이야기의 이론적 발판은 1938년 10월 31일치 <뉴욕타임스>에 실린 단 하나의 이야기다. 피츠버그에 거주하는 주민 한 명이 라디오 방송을 듣고 음독자살을 시도했는데 그녀의 남편이 못하게 막았다는 것이다.
극적인 상황은 1985년 10월 10일 웰스가 사망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 가운데) 심장마비로 사망한 경우가 있었다. 이 사망자들의 배우자 한 명이 몇 년 뒤 웰스를 살해하려 시도했다.”(<피가로 마가진>, 1985년 10월 19일) 1988년 10월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의 거짓을 증명하는 디스크가 발행되면서 기자들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제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화성인 수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이 사망하거나 유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1990년 10월 26일) 하지만 이런 진정 분위기가 2년 뒤 <리베라시옹>이 “미국 전체가 화성인들의 침략을 피해 거리로 나섰다”(1990년 1월 20∼21일치)라고 쓰는 걸 막지는 못했다.
사실 ‘우주전쟁 사건’과 그 전설은 우선 언론인들, 좀더 넓게는 지식인들이 대중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패닉 정도를 평가하는 데 동원된 지수들 중에는 방송이 나가는 동안 방송사로 걸려온 청취자들의 전화가 40% 증가했다는 사실도 들어 있다. 좀더 많은 것을 알려고 전화를 하는 미국인들의 수가 갑자기 증가한 사실을 비이성적 행동으로 분석했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은 정보의 확실성을 확인하기 위한 이성적 행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938년 10월 30일 밤의 패닉 상태에 대한 신문의 묘사를 고지식하게 믿은 <뉴욕트리뷴>의 시평 담당자 도로시 톰슨은 “믿기 힘든 어리석음, 냉정함의 결핍,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무지”(1938년 11월 2일치)를 고발했다. 과연 대중의 고지식함인가 아니면 학자의 고지식함인가? 대부분의 작가는 그들이 쓴 ‘사실들’을 검증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이민족의 불가해한 사상을 헐뜯는 데 써먹던 모델들을 <CBS> 청취자들에게 적용했다. 또한 이 모델들은 비이성적으로 여겨지는 서구 대중의 행동에 대한 정신분석학 이론의 근거로 사용됐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이주민들이 대거 도시로 유입되면서, 교양 있고 이성적인 개인과 이른바 비이성적인 대중을 구분한 것이다.
글 피에르 라르그랑주
번역 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각주>
(1) 해들리 캔트릴, <화성의 침공: 패닉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