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선거에서 채찍을 든 자들이 승리를 거두다

2015-06-02     오웬 존스

 [전문] 이전 정부가 추진한 정책들이 사회의 무기력함을 가중시키기는 했지만 유럽연합을 휩쓸고 지나간 위기는 비단 퇴장하는 전 정부만 퇴출시킨 건 아니다. 바로 이 사실에 지난 5월 실시된 영국 총선의 교훈 중의 하나가 있다. 이 선거는 빈곤층에 대한 전쟁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억만장자 보수당 정부의 입지를 강화시켜준 결과를 가져왔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이 선거는 노동당에게는 허허벌판에서 당한 처참한 패배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폭풍이었다. 그때까지 여론조사는 2010년 선출된 데이비드 캐머런 수상의 보수당과 에드워드 밀리반드가 이끄는 노동당을 막상막하로 예측했다. 심지어 투표 당일날 조사기관들은 미세하나마 노동당의 우세를 점치기도 했다. 논설위원들과 소위 ‘전문가’들은 수상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 욕실에 밀리반드가 칫솔을 가져다 놓아야 할 것이라고 자신들의 ‘고견’을 제창하기도 했다. 단 의회에서의 다수당의 당수로서가 아니라 독립을 지지하는 스코틀랜드 독립당(SNP)의 도움으로 이룬 승리를 예측했었다.
예컨대 1992년 노동당의 승리를 예측했었던 것과 같은 여론 조사가 지닌 역사적인 오판들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 누구도 출구조사에서 밝혀진 보수당의 명백한 승리는 예측하지 못했다. 노동당 당원들 사이에서, 초반의 미심쩍은 마음은 개표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점차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초반에는 결과가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튼 보수당은 제1당이 되는 것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23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에서 다수의석을 획득했다.
노동당의 이 참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보수당과 그 자유-민주 연맹의 손에 정권을 몰아준 영국인들은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이래 생활수준이 가장 심각하게 하락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단 말인가? 유럽연합 내에서도 가장 큰 폭의 침체를 겪고 있지 않았던가? 십 수 년 전부터 사회보장과 공공 서비스 분야가 대폭으로 축소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더구나 이 모든 것들이 금세기 들어 경기회복의 속도가 가장 더딘 맥락 속에서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보수당은 2010년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었다. 보수당은 37%의 득표를 올렸다. 5년 전에는 36.1%를 얻었었다. 겨우 60만 표를 더 획득한 것뿐이다.
연립정부 전문가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10년 캐머런이 자유-민주당의 대표인 니콜라스 클레그와 함께 한 취임식에서 ‘두 당 중 약한 당이 스스로 망가지게 돼있다’고 캐머런을 안심시켰다. 그녀가 틀리지 않았다. 클레그의 당은 업무를 맡을 때까지 소위 ‘끔찍한 당’이라는 별명이 주던 이미지보다 덜 급진적인 척 하면서 보수당 일부 지지층을 안심시켰다. 동시에 자유-민주당은 캐머런과의 연정을 배신이라고 규정하고 맹렬히 비난한 신노동당에 절망한 좌파 지지층의 일부도 매혹하는 데 성공했다. 2010년 이들은 22%의 득표로 57석을 획득했다. 그러나 금년 5월 선거에서는 7.9%의 득표로 오직 8 명의 의원만이 간신히 런던행 택시를 탈 수 있어 당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캐머런은 동반자의 실패의 덕을 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더 큰 도움은 주 경쟁자인 밀리반드의 실패로부터 기인했다. 보수당이 추가로 얻은 표보다 노동당이 잃어버린 표가 더 많기 때문이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 그것은 좌파의 포퓰리즘과 우파의 인종차별주의 앞에서 뒤로 후퇴하고 있다. 이 점에서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당은 한편으로는 진보적인 스코틀랜드 독립당(SNP)과 녹색당에게, 다른 한 편으로는 나이젤 패라지(Nigel Farage)가 이끄는 영국독립당(UKIP)에게 밀리고 있다.(1)
스코틀랜드는 노동당에게 있어 초기의 걸출한 지도자들을 배출하게 한 지역이었고 역사적으로는 두터운 지지층의 바탕이었다. 2010년에 노동당은 스코틀랜드에 할당된 총 59개의 의석 중 41개 의석을 휩쓸었다. 그런데 2015년 일련의 정치적 반란이 하드리아누스 방벽(*) 너머까지 휩쓴 후, 노동당은 단 한 석의 의석만 건졌다. 스코틀랜드 독립당이 정확이 50%의 득표로 56개의 의석을 독점한 것이다. 그동안 명확하게 좌파로 인식되어온 밀리반드의 당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는 대처리즘이 이 지역에 끼친 영향으로 부분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신자유주의로부터 가장 먼저 피해를 보았으며 그래서 1980년 이래 꾸준히 보수당을 거부해왔다. 1997년 토니 블레어의 새로운 노동당이 권좌를 장악한 이래 스코틀랜드인들이 배신감을 경험하게 되어 이것이 좌파 지지층 내부에 균열의 공간을 만들었으며 여기를 독립당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곧 적어도 수사학적으로는 대중을 장악한 것이었다.
 
전략의 부재가 노동당의 패배를 초래
또한 국수주의자들도 2014년 9월 18일 실시되었던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결과의 덕을 보았다.(2) 물론 다수가 근소한 우세로 독립에 반대하는 투표를 했지만 차후 영연방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주제가 예전만큼의 호소력을 갖지는 못하게 되었다. 주요 미디어와 대사기업들은 독립에 ‘반대’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만일 독립을 선택할 경우 혼란스러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협박에 가까운 전략으로 시민들 사이에서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야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의 전략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캠페인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보수당의 전략을 답습한 것에 불과했다. 이것이 재앙이었다. 노동당을 무늬만 좌파인 ‘토리당 2중대’로 간주한 전통적인 스코틀랜드 지지층이 이탈해 나간 것이다. 정치에서나 사랑에서나 갑작스런 결별은 때로는 더 강력한 증오로 발전해 나가는 법이다.
스코틀랜드 북부에서 보고나 다름없는 도시를 잃은 밀리반드의 당은 남부에서도 패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노동당의 유일한 희망은 스코틀랜드 독립당의 지지를 업고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토리당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공격을 가할 줄 알았다. 캐머런의 선거 캠페인 진영은 하나의 그림을 그렸는데, 거기에서는 스코틀랜드 국수주의자인 알렉산더 살몬드의 호주머니 속에 노동당 지도자들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다. “밀리반드에게 투표하는 것은 스코틀랜드 독립주의자들에게 투표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였다. 이것은 물론 보수주의 성향의 지지자들을 안심시켰다. 또한 노동당이 잉글랜드 유권자들의 운명을 북부 분리주의자들의 자비에 맡긴다고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잉글랜드 유권자들에게는 하나의 위협이었으며, 언론 재벌 루퍼트 머덕이 소유한 보수주의 경향의 미디어들이 그 나머지를 해결했다. 이것이 투표 당일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밀리반드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 노동당이 집권하던 2008년 닥쳐왔던 금융위기가 문제였다. 그때 노동당은 신자유주의의 정수만을 취하려고 했던 은행을 제제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냈다. 같은 시기에 반대당인 보수당은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언론은 이를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보수당은 이를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았다. 금융위기가 은행가들의 파렴치한 욕심 때문에 닥쳐온 것이 아니라 노동당 정부의 과도한 지출 때문에 온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노동당 정부가 남긴 혼란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라고 선거 캠페인 때 외쳤다. “무엇 때문에 자동차 열쇠를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에게 맡겨야 하는가”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노동당 계열의 비평가들이 공공지출 분야에서의 결과를 들어 노동당을 옹호하려 시도했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더 혼란을 부추기기만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차적으로 토리당이 추진하고 강요하는 긴축 재정 때문에 나라의 경제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토리당의 성공적인 전략에 힘입어 노동당의 신뢰도는 특히 경제 분야에서 거의 제로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와 같은 공격에 맞서 노동당은 명확한 메시지로 대응하지 못했다. 밀리반드의 담화는 대학 강단에서나 적절한 수준으로 대중적인 지지는 얻지 못했다. 과도하게 희생을 강요당하는 중산층을 지칭하는 ‘질식당하는 계층’이라는 용어, 미래세대는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의 ‘영국의 장래’라는 용어, 국가적 통일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보수당의 벤자민 디즈레일리(1804-1881)가 이미 사용한 바 있는 ‘하나의 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것들은 헬륨 가스를 불어 넣어 하늘에 쏘아 올린 풍선이나 다름없다. 아무런 일관성도 없이 정치라는 하늘에 아무렇게나 쏘아올린 고무풍선 같은 제안들은 대중이라는 레이더에 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인플레이션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는 약속, 연료비의 한시적 동결, 전기시장에서 경쟁을 조장하겠다는 약속, 과세등급(상위 계층)의 50%선, 즉 일본 수준으로의 회귀, 2백만 파운드(약 270만 유로)가 넘는 가치에 대한 재산세 부과, 자유-민주당의 강령에서 차용한 제1구획세 등등. 만일 밀리반드가 집권에 성공했다면 영국은 G7 국가 중 가장 낮은 세율을 기록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임기가 시작되는 첫해에 공공지출을 최초로 줄여야 할 것이다.
스코틀랜드에서 노동당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스코틀랜드 독립당의 좌파 국수주의로 기우는 가운데 잉글랜드의 북부에서는 영국 독립당이 그 반대급부로 혜택을 누린다. 물론 결선 투표 없이 다수 득표자 당선이라는 영국의 선거 제도 때문에 의석은 단 하나밖에 얻지 못했지만 4백만 명의 유권자들이 실제로 이 당을 지지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노동당이 기대되었던 지역에서 보수당이 의석을 차지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이제 노동당에게 어떤 희망이 남아 있는가? 당 내부와 언론에서는 이번 패배가 기업 비친화적인 프로그램이 증명하는 것과 같은 좌파의 일탈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패배한 선거 다음날 사임한 밀리반드 후임들은 벌써 키를 이 방향으로 선회하겠다고 발표한다. 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스코틀랜드 독립당이나 녹색당, 영국 독립당으로 갈아탄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만한 전략은? 아무것도 없다. 노동당에게 있어 굳건한 기반이었던 노조의 지지에 대해서도 결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그러면 노동당은 역사적인 이 유대관계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만일 노조의 지지를 받는 급진적인 새로운 좌파 당이 출현한다면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은 분노가 희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1)오웬 존스, ‘사회의 분노, 우파에 투표하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2014, 10월 참조.
(2) 케이스 딕슨(Keith Dixon), ‘스코틀랜드 국수주의의 야망’,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2014, 9월. 참조.
(*)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 영국 잉글랜드의 컴브리아주·노섬벌랜드주·타인위어주에 걸쳐 있는 고대 방위시설. 383년 로마군대가 철수하자, 17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의 침입에 대비한 방벽으로 사용되었다. (역주)
 
글‧오웬 존스Owen Jones
<기득권층 그들은 어떻게 교묘히 (책임을) 모면하는가The establishment. And How They Get Away With It)>(2014년)의 저자.
번역‧이진홍
파리7대학 불어불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