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에 의한 평화 혹은 법률에 의한 평화?
그러나 1945년 6월 26일 전쟁 방지를 목적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된 유엔헌장은 각국이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무를 강제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특히 유엔헌장 서문(“우리 연합국 국민들은 일생 중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안겨준 전쟁의 참화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한편 유엔헌장 제2조 3항은 다음과 같은 사항도 규정하고 있다. “모든 회원국은 평화와 국제안보,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아니하는 방식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국제분쟁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할 수단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분쟁의 지속으로 평화유지나 국제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면, 분쟁 당사자가 먼저 교섭·심사·중개·조정·중재재판·사법적 해결이나 지역기구 및 지역협약의 활용을 통하여, 혹은 당사자가 선택한 또 다른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분쟁을 해결하여야만 한다.”(제6장 제33조)
우리의 편견과 달리 평화적 수단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 가령 “1990년대에는 국제분쟁을 군사적 수단(23회)보다 오히려 협상(42회)을 통해 해결한 사례가 더 많았다”고 토머스 그레밍거 대사도 지적한다.(1) 외교적 해결(교섭, 심사, 중개, 조정)인지, 사법적 해결(중재재판, 사법재판)인지에 상관없이, 유엔헌장 제33조에 명시된 평화적 수단이 분쟁 해결에 널리 사용된 셈이다.
특히 평화적 수단은 각국의 내전사태를 해결하는 데 주로 활용됐다. 가령 2005년 제3국의 길고도 적극적인 중개(mediation·국제분쟁의 평화적 처리를 위한 수단의 하나로, 분쟁 당사국 외의 제3자가 서로 대립 중인 당사국들의 입장에 서서 타협을 유도하는 노력을 하고 문제 해결책을 직접 제안하는 등 협상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을 말한다. ‘거중조정’이라고도 한다. 제3자가 분쟁 당사국들 간의 대화를 촉구하고 분쟁해결을 돕는다는 점에서는 주선(good offices)과 비슷하지만, 일반적으로 실질적인 문제에 관련하지 않는 주선과는 구별된다-역주)의 노력 끝에 분쟁당사자들이 영토 분리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면서 기나긴 내전에 종지부를 찍게 만드는 성과를 모두 두 차례나 거두었다. 먼저, 수단 정부와 수단인민해방군(SPLA)(수단 반정부 무장조직-역주)이 평화에 관한 총체적인 협정을 체결하면서 남수단 독립의 길을 활짝 터주었다. 다음으로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티모르 독립운동가 간 협정체결로 동티모르가 독립 국가의 지위를 획득했다. 2006년 6월 12일에는 카메룬과 나이지리아의 대통령이 바카시 반도가 카메룬의 관할이라는 2002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에 따라 영유권 이전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2013년 8월 13일 마침내 안전보장이사회가 과도정권의 종식을 선언하며, 양국의 평화로운 영유권 이전 절차에 박수를 보냈다. 한편 니카라과는 1986년 6월 27일 국제사법재판소로부터 역사적인 판결(국제사법재판소는 니카라과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준군사적 활동 사건이 국제법상으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역자)을 얻어내며 빛나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미국이 반미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니카라과 반군세력을 은밀히 지원하며 비밀공작을 폈다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은 미국 내에 그다지 심대한 정치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사실상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나 어쨌든 앞에 언급된 분쟁 해결 사례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곧 국제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법률이 당사국이 서로 적대국이 되어 대립하는 대신 각자 국제무대의 주역으로서 의견 교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본적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편 또 다른 평화적 수단 중 하나인 ‘주선’(good offices)의 경우에도 여러 나라가 눈부신 역량을 발휘했다. 가령 스위스는 1962년 프랑스와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이 에비앙 협정 체결을 하는 데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노르웨이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며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한편 쿠르트 발트하임 전 UN 사무총장도 1975년 키프로스에서 비슷한 임무를 완수했다.
윤리를 구실로 삼은 군사적 무력 개입
그럼에도 평화적 분쟁 해결은 여러모로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냉전 종식에 따라 잠시나마 꿈틀대던 희망은 이내 잠잠해진지 오래다. 2000년 라흐다르 브라히미가 이끄는 한 위원회(2000년 4월, UN 평화유지활동(PKO)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구성된 ‘PKO 패널’을 의미한다. 같은 해 8월 각종 권고안을 담은 ‘PKO 패널 보고서’, 즉 ‘브라히미 보고서’가 발표됐다-역주)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국제분쟁으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는 무려 5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구 유고슬라비아와 이라크의 전쟁은 국제공법(public international law·국가 대 국가나 국제기구와 국가, 혹은 국제기구 상호 간의 권리 의무를 규정한 국제사회의 법률로 우리가 흔히 ‘국제법’으로 부르는 것을 말한다. 반면 국제사법은 서로 국적이 다른 사인 간의 관계를 국제적으로 규율하는 법질서를 의미한다 -역자)을 파괴하는 실험장이 되고 말았다. 이후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서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1991년 4월 결의안 제687호를 통과시키며 이라크에게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묻는 등 스스로 무슨 국제사법재판소라도 되는 양 행세했다. 이어서 1998년 10월 24일에는 UN 안보리 결의안 제1203호를 통과시키며 유고슬라비아와 NATO 간에 맺은 협정을 승인해줌으로써, UN 군사개입의 문을 활짝 터주었다. 그러나 실상 UN 헌장 제53조에는 “지역협약이나 지역기구에 의해서는 어떠한 강제조치도 취해질 수 없다”는 점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2003년 5월 22일에는 결의안 제1483호를 통해 미국·영국·스페인이 제안한 이라크 점령 및 착취를 간접 승인해주면서,(2) 결과적으로 불법 행위를 허용하는 행태를 보였다. 한편 프랑스, 중국, 러시아는 미국의 승리가 임박(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한 상황에서 훗날 이권을 함께 나눠 먹고 자국의 교섭력을 유지할 요량으로 이 같은 상황을 묵묵히 용인했다.
우크라이나, 시리아, 예멘 등에서 현지 조직들이 벌이는 전투는 마치 냉전 시기 한국과 베트남, 앙골라, 니카라과 등지에서 일어났던 전투와도 흡사한 일종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사실은 최근 ‘예방적 자위권’이 다시 등장했다는 점이다. 과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전을 치르기에 앞서 UN 헌장 제51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이 권한을 마구 남용한 바 있다. 이처럼 오늘날 인권을 수단으로 삼아(3) 무력 사용에 나서는 일이 또다시 빈번히 자행되고 있다. 한편 서방은 ‘강도 높은 심문’을 실행하기 위한 기관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포로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거나, 불법적 군사력 동원에 나서는 등 마구잡이로 법률을 유린하고 있다. 전 스위스 검사장 딕 마티는 “이는 우리가 법률을 짓밟는 꼴이다. 민주주의 체제를 무너트리려는 자의 손에 흡사 총알을 쥐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식으로 계속한다면, 우리는 결국 체제 스스로가 자신이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4)
우리는 UN 헌장의 드높은 이상과는 여러모로 멀어졌다. 윤리를 도구로 한 무력 사용이 정당화되면서 분쟁의 이유도 매우 복잡하게 늘어났다. 군사적인 차원을 살펴보면, 군사참모위원회의 역할이 안보리에 대해 자문을 제공하고 지원을 하는 기구임을 명시한 UN헌장 제46조와 제47조가 오늘날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냉전 종식 후 지역 방위의 기능만 하던 NATO는 전 지구적 차원의 독자적인 집단안보기구로 탈바꿈했다. NATO는 서서히 동방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방법을 통해 UN의 특권을 야금야금 침범하기 시작했다.
2008년 9월 23일 UN과 NATO의 각 사무총장이 맺은 협정은 너무도 내용이 모호해서, 평화 유지와 ‘전쟁을 벌일 권리’(jus ad bellum·전쟁 선포의 정당성을 의미한다. 한편 jus in bello는 전쟁을 벌이는 동안 전쟁행위의 정당성을 의미한다-역주) 사이의 혼동을 초래한다. 특히 이 협정은 양 기구가 “정치적, 실천적인 영역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더 나아가 집행의 차원에서 모두, 좀 더 긴밀한 협력 (…), 정기적인 교류 그리고 대화”(5)에 나설 것임을 약정하고 있다.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한참 NATO 통합지휘체제로의 복귀를 추진 중이던 프랑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억지로 NATO와 이 협정을 맺도록 강요했다. 디미트리 로고진 NATO 주재 러시아 대사는 안보리를 거치지 않고 양 기구 사무총장들끼리 맺은 이 협정의 불법성을 맹렬히 비난했다. 훗날 러시아의 외무장관에 오른 세르게이 라브로프도 당시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으로서 지켜보았던 이런 서방의 악의적 행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감춰진 주먹’
한편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공공영역이 사기업화되는 현상으로 인해 군사적 약탈과 사회적 분쟁, 국지전 등이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1986년 12월 4일 UN 총회가 ‘발전에 관한 권리’를 인정하였지만, 이러한 발전권은 현재 ‘빈곤퇴치’에 밀려 등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전쟁은 저개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대국들은 국제통화기금나 세계무역기구의 개입을 통해 UN 헌장에 명시된 책무를 피해가려고만 한다. 심지어 알랭 족스는 이러한 현실을 일컬어 ‘기업의 통치’라는 표현을 쓰기를 서슴지 않는다.
1960~1970년대 개발도상국에 많은 희망을 불어넣었던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도 이제 뒷방 신세가 된 지 오래다.(7) 국제사법(private international law)과 기업 간 협의(8) 등이 우선시되면서, 정작 국제공법(public international law)이 무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공공사법기관 대신 상업분쟁을 심의하는 국제중재기구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범대서양자유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명시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다. 국제법 전문가 2인이 공동 저술한 한 저서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오늘날 국제관계는 주로 ‘국민에 대한 권력’과 ‘국민의 권력’이 대립하는 양상을 띠면서 전개되고 있다.”(9)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무얼까? 먼저 분쟁을 ‘문명’이나 혹은 종교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시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분쟁의 이면에는 지정학적, 경제적 이권이 도사리고 있음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경제적 영역과 군사적 영역이 한 쌍을 이루는 오늘날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세계 경제통합을 위해서는 미국의 힘이 필요하다. 이라크, 북한 등 현 세계화 체제를 위협하는 국가들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해줄 자가 필요한 탓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감춰진 주먹’ 없이는 절대 기능하지 못한다. 요컨대 맥도날드는 F-15기를 만드는 맥도넬더글라스(전투기, 항공기, 우주선 등을 제작하는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역자)가 없이는 결코 기능하지 못한다. ‘감춰진 주먹’은 실리콘벨리의 기술을 위해 안전한 세상을 추구한다. 그 ‘감춰진 주먹’이란 바로 군, 요컨대 미국의 육해공군을 의미한다.”(10) 정령 우리는 평화-발전이라는 쌍이 주축이 된 또 다른 종류의 세계관을 생각해내는 것이 불가능하기라도 한 것일까?
<각주>
(1) Thomas Greminger, ‘현 평화 프로세스를 통한 중개 및 지원 활동 : 참여, 협력, 시대적 상황의 중요성’, 스위스연방외교부(EDA), 베른, 2007년 2월 15~17일.
(2) Jules Duchatel, Florian Rochat, <UN : 만인을 위한 법률인가? 약육강식의 법칙인가?>, Cetim, 제네바, 2005년.
(3) Anne-Cécile Robert, ‘반기문의 위태로운 명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5월.
(4) Dick Marty, ‘테러, 반테러 그리고 정의’, Gipri 2008년 여름강의 (Yvonne Jänchen, <카이에 뒤 지프리>, 제8호, ‘이라크의 미래는?’, L'Harmattan, 파리, 2010년)에서
(5) Karl Müller, ‘UN과 NATO의 비밀 협정은 국제사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2008년 9월 23일, www.horizons-et-debats.ch.
(6) Alain Joxe, <글로벌 제국의 전쟁>, La Découverte, 파리, 2012년.
(7) Rolande Borrelly, ‘‘개발 이후’, ‘UNCTAD 이후’, 그리고 기타 몇 가지 근사치’, 위의 책(Jules Duchatel, Florian Rochat, <UN : 만인을 위한 법률인가? 약육강식의 법칙인가?>)에서
(8) Mireille Delmas-Marty, <상대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Seuil, 파리, 2004년.
(9) Monique, Rolqnd Weyl, ‘장롱 속에 넣어둔 국제법을 꺼내라’, <Publicetim>, 제32호, 제네바, 2008년.
(10) Thomas Friedaman,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저서 <대후퇴>(Serge Halimi, Fayard, 파리, 2004년)에서 인용.
글·가브리엘 갈리스 Gabrielle Galice
제네바 국제평화연구소(GIPRI) 소장. 크리스토프 미쾨와 <공화국에 대한 사유. 장 자크 루소의 발자취 속에 담긴 전쟁과 평화(Penser la République. La guerre et la paix sur les traces de Jean-Jacques Rousseau)>(2012)를 공동 저술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