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계의 국적 뛰어넘는 연대파업
2009-07-03 셰머스 밀른 | 영국 <가디언> 칼럼니스트
정치인과 언론, ‘외국 노동자 반대’로 왜곡
5월 말, 영국의 에너지 분야에서 예고 없는 우발적 파업이 벌어졌다. 파업 노동자들은 회사가 노사 합의를 위반하고, 영국 외의 다른 유럽 국가에서 들여온 미숙련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지난 2월,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언론과 정치 책임자들은 ‘국수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이런 비난에 신빙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2월 2일 루이스 아마두 포르투갈 외무장관은 “이런 차별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 더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지도 모를 보호주의, 외국인 혐오증, 민족주의가 파급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1)이라고 말했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 역시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론의 여지가 없는” 사회운동에 대해 분노를 표시했다.
사건의 발단은 1월 28일 링컨셔 린지에 자리잡은 토털 정유공장 내에 유황 제거작업 단위공장을 건설하기로 하는 2억 파운드(2억3100만 유로) 규모의 하청 계약이 시실리 기업 이렘(미국 제이콥스의 하청업체)과 성사되면서 시작됐다. 이렘은 즉시 영국인 노동자들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노동자 200명으로 대체했고, 조만간 100명이 더 추가될 예정이다. 험버강 위의 바지선에서 기숙하는 이 ‘외국인들’은 다른 직원들과 철저히 격리됐다. 다른 직원들은 회사 쪽이 저임금의 외국인들을 내세워 임금과 근로조건에 관한 노사 협약을 위반하는 놀라운 계약서를 내밀지 않을까 의심하게 됐다. 이에 따라 예고 없이 우발적인 파업이 일어났고, 파업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서방세계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은 고집을 꺾지 않는다. 자유무역, 곧 생산 시스템들 사이의 불평등 착취를 바탕으로 한 경쟁 추구만이 성장을 가져오고, ‘국민적인 열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태도를 고수한 것이다. 웨일스에서 스코틀랜드 북동부까지 정유공장과 발전소 건설 하청기업이 고용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한 파업 앞에서 영국 정부와 미디어는 이렇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파업 시작 며칠 만에 영국 전역의 20여 개 정유공장과 발전소들이 문을 닫았다.
“이주노동자와는 무관하다”
일부 파업 참가자들이 “영국인에게 영국의 일자리를!”이라는 피켓을 흔든 일을 두고 이것이야말로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강력한 국수주의의 발현이라는 불길한 예측이 나왔다. 시장의 규칙을 거부하면, 이것이 종국에는 타인에 대한 거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영국 엘리트들은 분노했다. 고든 브라운 총리 역시 “납득하기 힘든” 파업이라고 평가했고, 유럽연합 통상 담당 집행위원이기도 한 피터 맨델슨 상무장관은 외국인 혐오증의 폐해를 경고했다. 반면에 보수 반동 언론들은 평소 파업 노동자들을 파괴자이자 이기주의자로 치부하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척했다.
대단히 도덕적인 이런 흥분은 곧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엠마 마르체가갈리아 이탈리아경제인연합 회장은 마거릿 대처의 말을 인용하면서 영국이 자유무역에 대해 “나약해지지 말 것”과 “저속한 국수주의적 본능”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호소했다. 프랑스의 <르피가로> 2009년 2월 3일치에는 ‘영국, 외국인들에 반대하는 파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평소 노동자들의 주장을 지지하던 사람들조차 신세대 극좌파 지도자인 반자본주의신당(NPA)의 올리비에 브장스노 대변인(지난 2002년과 2007년 대선에 최연소 후보로 출마하며 정치 스타로 부상했다-옮긴이)과 마찬가지로 “위기에서 비롯된, 특히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인 혐오 성향의 시위”를 걱정하게 됐다.
영국이든 다른 곳이든 간에 이 문제가 여론에 소개된 방식을 고려해보면, 이런 반응(2)이 나오는 데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이런 반응들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고, 장차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심각한 판단 착오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 즉 실체가 없는 ‘위기 담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영국 최대 노조인 유나이트(Unite)의 책임자 중 한 명인 데릭 심슨은 “건설 분야의 파업과 이주노동자들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 “이번 시위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계층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번 사태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기업 이렘은 노사 합의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하지만 프랑스 알스톰사가 건설한 노팅엄셔 스테이소프 발전소나, 독일의 에너지 기업 E.ON사 소유의 켄트 그레인섬 발전소에서는 임금을 삭감하고 현지 노동자들을 해고했다는 증거가 쌓여 있다.
처음 파업을 시작한 이 기업체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거릿 대처 정부 아래서 채택되고 신노동당이 갱신한 반노조 법률로 인해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사실 범법 행위로 간주된다. 고용주 쪽이 파업에 참여한 유나이트와 GMB 양대 노조 연맹을 법정에 제소하는 것을 막으려면 파업 참가자들의 강철 같은 단합과 조직의 힘이 필요했다. 어쨌든 이 두 노조 연맹이 공식적으로 파업의 책임을 지려면 무거운 벌금을 부과받거나 그들 자산의 일부를 압수당해야 한다. 소수 파업 참가자들이 “영국인에게 영국의 일자리를”이란 구호를 사용하게 된 것도 이런 동요 때문이었고, 2007년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극우파의 구호를 냉소적으로 사용했던 총리를 조롱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사실, 파업위원회의 주장에 이 구호가 포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와 반대로 파업위원회는 영국에서의 일자리는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직원에게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고, 모든 건설 현장에 노사 협약이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구호가 등장한 지 2~3일 만에, 린지에서 이 국수주의적 슬로건은 사라지고, 이주노동자들의 파업 동참을 권유하는 이탈리아어로 작성된 포스터가 등장했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자”는 구호가 적힌 피켓이 물결을 이뤘다. 결국 갈등이 외국인 혐오로 얼룩질 실재적인 위험은 완전히 피해갔던 것이다. 노조 투사들은 신중하기 마련이다.
또한 그들의 이런 신중함은 브리티시민족당(BNP) 같은 극우의 개입 시도를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절대 외국인 노동자들을 과녁으로 삼지 않았다. 단지 고용주와 정부만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 운동의 진정한 성격은 플리머스 레인지 발전소 파업에 폴란드 출신 노동자 100여 명이 동참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폴란드 노동자들도 파업이 이른바 토착민 노동자(영국 노동자)들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노동자 그룹을 축출하기 위해 한 노동자 그룹을 이용하는 걸 비판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주류 언론들은 보호주의의 위협과 노동자들의 인종차별주의라는 진부함에 매료돼 자기들의 시각에 현실을 끼워맞췄다. 2월 2일 <BBC방송>의 밤 10시 뉴스에는 한 파업 참가자가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노동자에 대해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그 문장 뒤에 이어진 “우리를 갈라놓는 차별 때문에”라는 문장은 편집돼버렸고, 그 결과 현지 노동자들이 동료 이주노동자들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냈다. 같은 시간, 타블로이드판 신문사들의 현장 기자들은 파업 참가자들이 영국 국기 뒤에 서서 사진을 찍도록 설득했다.
린지 공장의 폴 맥도웰 유나이트 대표는 “파업에 관한 언론 보도는 전적으로 허위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행동의 진정한 목표는 우리가 수년에 걸쳐 얻어낸 협약과 임금, 사회보장과 안전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결국 2월 4일 린지 정유공장의 파업은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게 현지 노동자들과 일자리를 나누고, 영국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근무조건과 임금을 감독하는 노조의 권리를 인정하기로 하는 협약을 맺으면서 종결됐다. 이 영광스런 결과는 또한 이주노동자에게 실시하던 검역도 그만두게 만들었다. 영국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을 자극하기는커녕 파업은 그들이 서로를 알게 해줬다. 고용주들은 앞으로 이 두 노동자 그룹을 가지고 장난치기 힘들게 됐다.
허점투성이의 EU 노동자권리 규정 지침
린지에서는 이렘사가 노사 합의에 어긋나게 숙련 노동자들 대신 미숙련(저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5월 19일 여러 공장에서 즉흥적으로 조업이 중단됐고 연대 파업이 이어졌다. 파업 참가자들은 단지 실업 증가뿐만이 아니라 그 유명한 유럽식 사회 모델이 지속적으로 약화될 것을 우려한다. 그들은 파견 노동자에 대한 유럽연합 지침(3)의 허점을 고발한다. 유럽연합 지침은 사회 덤핑으로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바로 이 지침 적용이 린지와 스테이소프, 그레인에서 분노를 폭발시켰다.
유럽연합 지침은 유럽연합 외의 다른 국가 출신 노동자들에게 극히 기본적인 권리만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최대한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유럽재판소의 최근 판례들(라발 사건, 바이킹 사건, 루페르 사건)로 인해 이 지침의 적용 범위와 회원국 내 노동자의 권리는 더욱 줄었다. 이 판례들은 일부 경우에 기업이 임금과 사회적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한 것이다.(4) 브라운 총리는 “시장을 적절히 규제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그의 내각은 최근 몇 달 동안 유럽 판례의 영향을 완화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해왔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보다 영국에서 분노가 더 격렬하게 폭발한 이유는 대처리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끈질긴 신자유주의적 성향과 그로부터 비롯된 일회용 임금노동 시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성장을 회복하고, 유럽을 경기 후퇴에서 끌어낸다는 고상한 계획에 따라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는 동안, 유럽의 기업체들은 외국 노동자들을 데려와 그들의 집에서 수백km 떨어진 초라한 숙소나 바지선에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1월과 2월의 파업에는 외국인 혐오증이나 인종차별주의가 자리잡고 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문제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매달 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나라에서, 곤경에 처한 노동자들은 안전하고 품위 있는 일자리 보장 장치가 연기 속에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 노동자는, 늘어나는 실업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고용주들이 임금 절감을 위해 하청이라는 불투명한 방식과 유럽의 경쟁 원칙을 이용해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각국의 중도 좌파 정부는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지 못했고, 오히려 우파에게 콤플렉스를 벗어나도록 길을 열어줬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을 외국인 혐오자로 폄하하는 미디어 엘리트들과 정치 엘리트들의 반복된 주장은 허구를 현실로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글·셰머스 밀른 Seumas Milne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각주>
(1) <르몽드>, 2009년 2월 4일.
(2) 제목을 예로 들자면, “속죄양이 된 외국인들”(<라 레퓌블리카>, 2005년 2월 5일치,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953호에서 재인용),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에 반대하는 파업: 노조 지도자들, 불만의 방향을 바꾸다”(<노동투쟁> 2009년 2월 4일, 2114호). <노동투쟁>의 이 기사는 “유나이트와 GMB 양대 노조 지도자들이 국수주의로 몰고 가는 쪽을 택했다”고 비난했다. ‘Marianne2.fr’를 보면, “민족주의적 선택이 위기 속으로 찾아들다”(2009년 2월 3일), “일부 과격주의자들이 시내 주점에서 이탈리아인 사냥을 벌였다는 소문이 나돈다”.
(3) 1996년 12월 1일치 유럽의회 및 집행위원회 지침 96/71/CE, <유럽연합 관보>, L. 18, 1997년 1월 21일.
(4) 안 세실 로베르, ‘사회 위기가 유럽의회를 따라잡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3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