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부조리한 낙하산 정책

2015-06-02     비키 칸

 

젖소는 우유, 토끼는 당근, 개는 개집. 어린이들은 참 짝 맞추기 카드 게임을 잘 한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는 매우 독특한 연상감각으로 짝을 맞출 뿐이다.

그는 2014년 11월 1일 새로 출범하는 EU집행위원회의 인사지명과 관련하여 에너지·기후 문제를 담당할 집행위원으로 한 석유회사(페트롤로지스 카나리아스)의 전직 대표인 미구엘 아리아스 카네트를 지명했다. 한편 자본시장동맹을 담당할 집행위원으로는 산업계를 열렬히 대변하던 전직 로비스트 출신의 조너선 힐을 선정했다. 또한 경제·재정 담당 집행위원에는 경영자 로비단체인 ‘산업동아리’의 전 부회장 피에르 모스코비치를, 연구담당 집행위원에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전 임원 카를로스 모에다스를 앉혔다. 그런가하면 사법담당 집행위원에는 한 체코 백만장자의 정치고문으로 활동했던 베라 조로바를 지명했다. 융커 집행위원장이 선택한 후보자들은 기나긴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유럽의회 의원들로부터 결국 최종 승인을 얻어냈다. 그러나 이 같은 인사 청문 절차는 사실상 EU기구 내에 횡행하는 또 다른 밀실거래의 결과에 불과하다. 유럽의회는 기껏해야 자국 정부가 지지를 철회한 슬로베니아 출신 후보를 교체하는 선에서 만족했다.

공모 문화, 기브앤테이크 논리, 슈퍼파워를 누리는 조직체계는 EU라는 케이크를 구성하는 주된 재료 중 하나다. 여기에 마치 케이크 위에 얹는 마지막 버찌 장식처럼, 이해관계라는 양상이 상층부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상 EU집행위원을 지명하거나 그처럼 막중한 자리에 적합한 인물을 감별하는 과정에는 아무런 규제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신임집행위원은 그저 임무를 맡기 전 ‘재정적 이해관계’를 자세히 기재한 신고서를 작성하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에는 ‘지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안만 다루지 않으면 끝이다. 그러나 이런 제약조건을 빼면, 사실상 EU집행위원회는 기차역의 중앙홀만큼이나 활짝 열려 있는 모양새다. 집행위원의 직업적 경력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조건이 없다. 그런데 EU집행위원은 집행위원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인사다. 집행위원회는 사실상 5억 명에 달하는 유럽 시민들의 삶을 관할하는 규제나 지침을 만드는 기구다. 요컨대 각 회원국의 장관보다도 더 막중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해관계라는 혼잡한 고속도로는 두 방향으로 통행이 이뤄진다. 먼저 한쪽에서는 기업경영자나 경영자단체 대표 출신들이 경영자들의 권익을 더욱 성실히 대변하기 위해 EU집행위원회를 비롯한 공기관으로 이동하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맞은편에는 EU의 전직 고위관료들이 사기업으로 향하는 코스가 열려 있다. 그들은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자문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인의 전화번호가 적힌 주소록을 팔며 인맥 장사를 한다.

가령 범대서양자유무역지대(TAFTA)(1) 설립을 성사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로비 회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만일 이 회사가 통상이나 산업 혹은 농업 부문과 관련한 고위급회담에 참여한 전적이 있는 전직 EU관료를 채용한다면 어떨까. 아마 이 회사는 가장 ‘적절한’ 대화상대자가 누구인지, 가장 대화에 적절한 시기는 언제인지, 또 어떤 논거를 들어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등을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인사가 직접 전 동료들에게 홍보서한을 보내거나, 혹은 그들과 전화 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서 회사 임원을 소개시켜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준다’는 명분을 들어서 말이다.

이런 서비스를 해주고 이익을 취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들은 이 같은 관행이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말한다. 사실상 그들이 엄정한 법의 틀을 벗어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EU기구를 떠난 마당에 과연 그들이 정작 가지지도 않은 직권을 남용했다고 비난할 수가 있을까? 그런가하면 느닷없이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부류도 있다. 모든 개인은 원하는 곳에서 일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한편 공직과 사기업을 오가는 관행이 “고위관료와 사기업의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소통을 원활히 해주기 때문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2)이라고 큰 소리 치는 이들도 있다.

  EU 낙하산식 인사정책의 폐해들

 그러나 지난 일을 조금만 되돌아봐도 이 같은 관행이 얼마나 EU기구 운영에 장애로 작용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령 2010년 독일 출신의 전 기업·산업 담당 집행위원 귄터 페어호이겐은 자신의 비서실장 페트라 에를러와 함께 컨설팅 회사 EEC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분명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절대 돈을 받고 로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지만, 사실상 고객이 “EU기구와 협상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전략”(3)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을 빼놓지 않았다. 한편 아일랜드 출신의 전 내수시장 담당 집행위원 찰리 맥크리비는 한 은행에 취업한 데 이어 라이언에어(아일랜드 저가 항공사-역주)와 센테니얼(컨설팅 회사-역주)의 이사직을 줄줄이 역임했다. 불가리아 출신의 메글레나 쿠네바 전 소비자보호 담당 집행위원도 BNP파리바의 이사로 영입됐다. 그런가하면 한동안 집행위원회에서 대외관계를 담당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베네타 페레로 발트는 보험회사 뮌헨레의 양탄자를 사뿐히 지르밟고 다니는 귀하신 몸이 됐다. 또한 벨기에 출신의 루이 미셸은 국제 협력·인도주의 지원 및 위기 대응 업무를 담당하는 집행위원직을 그만둔 다음 신용회사 크레디모에 둥지를 틀었다.

여기서 비록 더 많은 예를 들지는 못했지만, 이처럼 부지기수를 이루는 사례들 때문에 EU집행위원회는 이내 심기가 불편해졌다. 결국 집행위는 퇴임 집행위원에 대한 규제안을 한층 더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가령 2014년 융커팀에 자리를 내주고 짐을 꾸려 떠나는 집행위원 20여 명은 퇴임 이후 18개월 동안 재취업 시 사전에 반드시 이를 고지하여 재취업 여부를 미리 승인받아야만 한다(모든 직업상의 소득에 관해 유럽연합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과거에 맡았던 업무와 관련해서는 절대 집행위원회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벌일 수 없다.(4) 종전에는 사전 승인 기간이 1년에 그친 한편 로비활동과 관련해 아무런 금지규정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로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새 규정도 여전히 독직행위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집행위원들이 단체로 불공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기가 여의치 않다. 대개 집단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구체적으로 누구와 관련한 업무영역이 문제가 된 것인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종전의 규제개혁으로는 EU 관료들의 낙하산식 관행을 뿌리 뽑기에 역부족이었다. 비비안 레딩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99년 처음 EU집행위원에 임명된 그녀는 2014년 5월 유럽의회 의원에 선출됐다. 그러나 이후 그녀는 EU의 승인을 받아 광물채굴회사 니르스타, 베텔스만 재단, 아그파게바트(유럽 하이테크 제조업체-역주)의 이사직을 줄줄이 꿰차며 새로운 소득원을 손에 넣었다.

EU집행위원들은 보통 퇴임 시 기존 소득의 40~65%에 해당하는 넉넉한 수당을 지급받는다. 돈으로 환산하면 월 8,332~13,540유로에 달한다. 이처럼 퇴임한 집행위원들에게 수당을 제공하는 것은 일을 그만둔 뒤 너무 성급하게 제안 받은 일자리를 수락해 이해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문제는 이해관계와 관련한 재취업 규제기간이 18개월에 그치는 데 반해, 수당 수혜 기간은 무려 3년에 달한다는 점이다.

집행위원들이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면 종종 그와 함께 일하던 고위관료들도 모조리 함께 공직을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매일 같이 EU기구 운영을 위해 일하던 공직자들은 로비회사나 컨설팅회사 사이에서 아주 몸값이 높다. 특히 젊은 공직자들의 경우에는 낙하산 인사 관행이 단순히 양방향으로 통행하는 고속도로 수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돌고 도는 회전목마로 발전하기도 한다. 요컨대 사기업 경영진에서 공직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을 쉴 새 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만의 코스를 아주 공들여 개발하기도 한다. 가령 안식휴가 기간을 활용해 일단 벨기에 수도에 차후의 안락한 일자리를 확보해놓은 다음 기업에 들러 노닥거리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일례로 에르베 주앙장은 2014년 4월까지 EU 공직 가운데 가장 높은 직책으로 통하는 EU집행위원회의 국장직에 복무했다. 그러다 1달 이후 돌연 그는 프랑스 로펌 피달에 취직했다. 그는 집행위원회가 모든 직접적인 로비활동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버젓이 간접 로비활동을 벌이거나, 고객들을 상대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다. 사실 본인 입으로도 그는 피달 합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지 않았던가. “피달과 함께 일하는 것은 내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EU기구 운영과 관련해 축적한 지식과 과거 경력을 통해 습득한 역량, 그 가운데서도 특히 내수시장과 대외통상과 관련된 분야 혹은 집행위원회 절차와 관련된 업무에 있어 그동안 내가 쌓아온 역량을 회사 고객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5)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유럽의회 의원들

 에밀리 오라일리는 EU기구에 대한 비정부기구나 시민들의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해결하는 일을 맡고 있는 유럽고충처리위원회(유럽옴부즈만)에서 일한다. 그런 그녀는 최근 EU집행위원회가 이해관계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가 작성한 문서는 여느 공문서가 그렇듯이 전문용어로 거의 도배되다시피 했지만, 그녀가 내린 결론만큼은 명쾌하기 그지없다. 오라일리 유럽고충처리위원은 사실상 집행위원회가 내린 의사결정들을 뒷받침하는 논거나 자료를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위시로 “집행위원회가 문의에 응대하는 과정에는 행정적인 문제점이 많다”고 개탄했다. 이어 오라일리는 고위관직에 있던 인사가 사기업에 재취업하는 경우 이를 온라인상에 공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녀가 직접 조사작업에 나설 것이고, “이해관계와 관련한 규제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의심되는 경우 주저하지 않고 공직자가 위원회에 출두하여 사실을 증언해야 할 의무를 포함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감사 권한을 전부 사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그녀는 “여기서 자신이 권고하고 있는 사항은 기본적인 원칙에 있어 유럽집행위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그녀는 현재 EU집행위원이 아니고, EU집행위원회 소속 직원들에 대한 규제만을 담당하고 있다-역주)(7)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결론은 EU집행위원회가 집행위원의 독직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설치한 사무국(정확히는 특별윤리위원회-역주)의 국장으로 미셸 프티트(더욱이 그는 로펌 클리퍼드 찬스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한 전적이 있다)를 지명한 데 대해 그녀가 과거에 제기했던 비판과도 맥을 같이 한다.(8) 오라일리 위원은 2013년 완곡어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한 글에서, “프티트 씨의 사적 활동은 잠재적인 이해관계의 위험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9)고 지적했다. 그러나 어쨌든 EU집행위원회가 최종적으로 프티트의 이력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인사 교체에 나서기까지는 그로부터 12개월이 더 소요됐다.

비록 유럽의회 의원들도 공직자의 낙하산 관행을 비난하기는 하지만, 실상 그들의 비판은 한낱 ‘말 따로, 행동 따로’에 불과할 뿐이다. 가령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가 끝난 다음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 일부는 그 길로 당장 의회에서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유관 분야에서 활동 중인 사기업의 중책을 맡았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가장 거센 비난의 표적이 된 것은 바로 금융·보험 규제를 담당하는 유력 관청인 경제통화위원회에서 활동하던 4명의 유럽의회 의원이었다. 먼저 샤론 볼스 위원(영국 출신)의 경우에는 비상임이사의 자격으로 런던증권거래소 이사회에 합류했고, 알린 맥카시 의원(영국 출신)은 로비회사 소버린 스트래티지의 부회장에 임명되어 유럽 전략을 담당하였다. 그런가하면 피터 스키너(영국 출신)는 알리안츠SE에서 국제 문제와 유럽 문제를 다루는 수석고문으로 변신하였고, 코린 보르트만 콜 의원(네덜란드 출신)은 세계적인 보험회사 아혼과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의 이사회에 새 둥지를 틀었다. 한편 내수시장·소비자보호위원회에 소속되었던 덴마크 출신의 에밀리 투루넨은 뉴크레딧 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 공보업무를 담당하였으며, 산업연구에너지 위원회에 소속되었던 영국 출신의 피오나 홀은 직접 컨설팅회사를 설립한 이후 에너지 효율성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 락울을 위해 현재 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 마디로 유럽의회 의원들의 행동강령도 사실상 공직자의 낙하산 관행에 대해 말을 아끼는 EU집행위원들의 행동강령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과연 우리는 이 정도 수준의 행동강령에 만족해야만 하는 걸까?

 

글·비키 칸Vicky Cann.

현재 EU 관료들의 이해관계 문제를 감시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리볼빙 도어 워치'(Revolving Door Watch·회전문 인사 감시)를 운영하고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범대서양의 신 지정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6월.

(2) Transparency international UK, ‘Fixing the revolving door between government and business’(<Polcy Paper Series>, 제2호, 런던, 2012년 4월)에서 인용.

(3) www.european-experience.de/english/Our-Values.

(4) 유럽집행위원 행동강령, 브뤼셀, 2011년.

(5) 피달 그룹의 공식 성명, 파리, 2014년 5월 13일.

(6) Emily O'reilly, ‘Draft recommendation of the European Ombudsman in the inquiry based on complaints 2077/2012/TN and 1853/2013/TN against the European Commission,’ 유럽고충처리위원회, 스트라스부르, 2014년 9월 22일.

(7) Emily O'reilly, ‘Ombudsman to step un supervision of senior EU officials', 2014년 10월 20일, www.theparliamentmagazine.eu.

(8) 유럽고충처리위원회, 2013년 12월 18일자 보도자료 22/2013.

(9) Emily O'reilly, ‘Decision of the European Ombudsman closing her inquiry into complaint 297/2013/(RA)FOR against the European Commission', 스트라스부르, 2013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