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공식발표를 믿는가?

2015-06-02     쥘리앙 브리고 | 기자

 ‘리오픈911’은 9·11테러 재조사를 위해 싸우고 있다. 5월 2일 이 단체의 연례총회가 열 렸다. 의혹의 하루, 그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러분들 중에서 몇 명이나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이 비행기 충돌의 충격으로 인한 폭발로 붕괴됐다고 생각하십니까, 공식발표를 믿는 분이 몇 명이나 됩니까?” 2015년 5월 2일 파리 소재의 유스호스텔 아르타냥의 강당에서 개최된 ‘리오픈911’(ReOpen911) 총회에 참석한 70여 명 중 단 한 명만이 손을 들었다. 이 단체는 2001년 9·11테러를 재조하할 것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9·11 진실규명을 위한 미국 건축가 및 엔지니어 모임의 리처드 게이지 회장이다. 미국에서 방금 도착한 그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그리고 만들어 낸 이야기들을 가려내기 위해 왔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이 40대 백인남성들인 청중들 앞에서 그는 이 같은 여론조사로 그의 발표를 시작했다. “여러분들 중에서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이 비행기 충돌의 충격으로 인한 폭발로 붕괴됐다는 사실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계신 분은 몇 명이나 됩니까?” 이번에는 10명이 손을 들었다. 그가 던진 마지막 질문은 오늘 총회의 주제에 대한 청중의 동의 내지 지지 정도를 측정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서 몇 명이나 이 빌딩들이 통제된 상태에서 폭파 해체로 무너졌다고 확신하십니까?”

“왜 여러분 친구들을 데려 오지 않았습니까?” 손을 든 40여 명에게 게이지 회장이 질문을 던졌다. “분명 여러분들이 친구들에게 공식발표에 문제가 있으니 재검토해봐야 한다고 털어놓은 이후로 더 이상 친구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청중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고나서 ‘미국 84개 도시와 35개국에서 행한 400회의 강연’을 행해온 게이지 회장의 긴 논증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의 발표에 완전히 매료된 청중들은 장장 두 시간 동안이나 이어진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수십 번이나 똑같은 이미지를 보게 됐다. 고층빌딩들이 완전히 대칭을 이룬 채로 완벽하게 수직으로 내려앉는 장면들이었다. 이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이 장면은 ‘통제된 상태의 폭파 해체’라 부르는 것이 확실하다는 표시였다.

현재 실직 상태인 컴퓨터과학자 아르노(1) 씨는 “내가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했던 어떤 기자는 내게 엘비스 프레슬리가 마릴린 먼로와 함께 무인도에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고 했다”고 말한다. 이 단체의 인터넷사이트를 담당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아르노 씨가 생각하는 목표는 “의혹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공식발표 지지자들이 “제기되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다. 리오픈911이 온라인으로 상영하는 영상의 번역과 자막작업을 임시로 담당하고 있는 안내원 세바스티엥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런 짓을 저지른 주모자가 미국인이라거나 모사드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단지 나는 공식발표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단체에는 음모론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다른 것은 젖혀두더라도 공식보고서에 명백히 드러나는 비논리성에 대해 의혹을 표명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회원들 대부분은 무엇보다도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마티외 카소비츠나 마리옹 코티야르(2)를 보라. 9·11은 교리다.”

세바스티엥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랭 소랄과 비교한다”고 말하면서 소랄을 “결국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덧붙임으로써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 유용한 바보”(3)로 표현한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을 비방하는 주요 인물로 간주되는 카롤린 푸레, 피에르 앙드레 타기에프, 제럴드 브로너가 최근 쏟아놓은 말들에 흥분한다. 또한 그들의 주장을 따를 때 9·11 관련 공식발표를 재검토하는 데 가장 반대하는 공인들 중 한 명이며 <샤를리 엡도>와 <프랑스 앵테르> 전 경영진이었던 필립 발의 신작에 담긴 내용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제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9·11을 설명하는 리오픈911 회원들이 공통적으로 열중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수직으로 내려앉는 이 건물들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돌려보는 일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건물들이 그런 식으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게이지 회장은 이런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서 소방관들과 그들이 현장에서 보인 반응, 행인들과 생중계된 그들의 코멘트를 예로 들고, 다른 건물들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는 장면을 보여주며 장면들을 비교한다. 또한 강력한 폭발물인 테르밋(알루미늄 분말과 산화철 혼합물)이 건물 잔해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하는 전 세계 전문가들의 의견들을 총동원하기도 한다.

그는 “비행기 충돌의 충격으로 발생한 예기치 못한 붕괴”에서부터 “180미터 높이에서 시속 95킬로미터 속도로 나간 강철 빔 측면 분사,” “녹아내린 철과 철 미세구체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내용들을 지적한다. 그는 한 손에 레이저포인터를 들고 10개의 기준에 의거해 체계적으로 “그 어떤 비행기도 10만 톤의 강철 구조물을 붕괴시킬 수 없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 것도 없다 해도 이미지가 주는 충격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우리에게 진실이 감춰져 있다”는 확신을 깊이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역사는 때때로 음모론 지지자들 편에 서기도 한다는 걸 언급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좌파’로 분류하는 아르노는 진보적인 미국역사가 하워드 진이 베트남전쟁을 다시 재구성하며 “통킹만 미국함선 공격은 위장 술책”이라고 말한 사실을 언급했다. 하워드 진의 주장은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내용이다. 베트남전쟁은 1964년 미 군함 USS Maddox가 공격을 받게 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 공격은 북베트남 어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분명 미국의 동맹국이던 베트남 어정의 공격이었다. ‘리오픈’ 프랑스 지회의 청년 회장 릭시는 “시위현장에서 폭동을 야기하기 위해 파견된 경찰들이 시위대를 감옥에 가뒀다”면서 “이거야말로 정말 음모”라고 강조했다.

강당에서 게이지 회장은 잔해를 클로즈업하고, 강철 빔과 먼지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칭적 붕괴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면서 “사실들”을 재검토할 것을 끈질기게 주장한다. 이번 컨퍼런스에 다소 실망한 세바스티엥은 “이것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내부정보유출, 부시 대통령 집안과 빈 라덴의 관계, 펜타곤 공격 등 다른 사항들이 너무 많은데 단지 이 세 건물에 대해서만 집중한 것이 아쉽다”고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청중석에서는 이런 기술-건축학적 관찰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 미국의 자체 공격에 의해서 발발된 것이라는 믿음을 최종적으로 확인해 준 것은 무엇보다도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들이었다. “9·11테러 이후 이어진 전쟁비용으로 2~3조 달러가 들어갔다. 이 사건에 대한 심층추적을 재개하기 거부한 미디어들의 주인들은 군비, 은행, 보험, 석유 산업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9·11로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는 말이 강단에서 들려온다.

게이지 회장은 “여섯 개 기업이 언론매체의 90%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미디어는 우리들의 프로그램과 플랜에 부합하지 않는 프로그램과 플랜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직전에 그는 작은 모금함을 돌리며 ‘각자 유로를 기부’해주기를 부탁했다. “제7세계무역센터 붕괴에 대한 독자적 조사”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글‧쥘리앙 브리고Julien Brygo

기자, 『Boulots de merde! Du cireur au trader, enquête sur l’utilité et la nuisance sociale des métiers 빌어먹을 직업!: 구두닦이부터 트레이더까지 직업의 유용성과 사회적 문제에 관한 조사』(La Découverte, 2016)의 공동저자.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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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재에 응한 사람들은 성(姓)을 밝히지 않았다.

(2) 이 두 명의 프랑스 배우는 프랑스나 미국 TV와의 인터뷰에서 공식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3) 에블린 피에예, “극우의 이데올로기 혼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0월호 참조.

 

[보충기사]  위장 술책의 진짜 역사 

 

 

20세기 들어 상대적으로 일반화된 ‘위장 술책’(false flag)은 적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해 은밀하게 진행되는 작전이다. 이런 종류의 작전은 실제로 있으며, 그중에서 음모론에 무게를 실어줄 수 있는 몇 가지 대표적 사례를 소개한다.

 

- 1931년 9월 18일. 일본은 자국이 저지른 테러를 중국 책임으로 돌렸다. ‘무크덴 사건’(만주사변)으로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은 일본제국이 만주를 침공하는 구실이 됐다.

 

- 1933년 2월 27일 밤~28일. 독일제국 의회에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집권당이던 나치는 한 공산당 청년 투사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이 사건을 활용한다. 나치가 방화범에게 임무를 지시했던 것일까? 사건을 조작한 것일까? 단지 사건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둔 것일까? 밝혀지지 않은 의혹의 그림자가 존재하지만 나치의 책임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1937년 9월 11일. 파리에서 ‘까굴’(복면이라는 뜻)이라는 극우비밀결사조직이 공산당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로 경영자조합에 두 번의 테러를 자행한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들의 술책임이 신속하게 밝혀졌다.

 

- 1953년. 미국과 영국은 미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모하마드 모사데그 이란 정부 전복 작전(에이젝스 작전)을 기획하고 자금을 댔다. 특히 이들은 공산당에 책임을 전가하고 이란 정국을 불안정하게하기 위해 폭탄을 설치하기도 했다.

 

- 1954년 7월. 이집트 내 유대인들의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은 이집트 민족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돌릴 목적으로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소재의 영국 및 미국 건물들에 여러 차례 테러를 감행할 수 있었다.(수잔나 작전)

 

- 1964년 8월 2~4일. 미국이 공격을 받은 것처럼 위장하고 북베트남의 공격이라 비난한다. 이 ‘통킹만 사건’은 로버트 맥나마라 미 국방부 장관이 지휘한 것으로, 베트남 전쟁을 시작하는 구실이 되었다. (편집자)

 

번역 김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