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세계 내의 강박관념

2015-06-02     아크람 벨카이드

 [전문]음모이론 역시 아랍 세계에 다시 만연하고 있다. 음모이론을 등에 업고 아랍 대중과 정부들은 몇 가지 사건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2012년 10월, 이집트의 민영일간지 <알 마스리 알요움>은 전직 이스라엘 외교장관인 치피 리브니 여사가 영국 일간지 <더 타임즈>의 칼럼에서 자신이 모사드 요원이었을 때 여러 명의 아랍 인사들과 성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확인해 주는 기사를 발표했다. 리브니 여사가 “아랍 인사들을 섹스 스캔들에 연루시키고, 그들을 협박하고, 그들에게서 이스라엘에 유리한 정치적 양보와 비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몸을 팔았다는 것이다.(1)
소셜네트워크와 다양한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 미디어에 의해 즉각적으로 중계된 이 뉴스는 아랍세계에 불을 붙였다. 라바트(모로코의 수도)에서 카이로와 무스카트(오만의 수도)까지 수많은 논설위원들은 이 사건에서 이스라엘이 자기 이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알 마스리 알요움>이 아주 신속히 기사를 철회하고 독자들에게 사과한다. 리브니 여사가 <더 타임즈>나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그런 선언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정보가 광속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우리의 철회 기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현재도 여전히 치피 리브니가 이스라엘을 위해 외교적 이득을 얻어내거나 비밀을 털어놓게 하기 위해 아랍 지도자들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확신하고 있다”라고 이 신문의 전직 기자가 확인해 준다. 신속히 점검해 보니 이 말이 사실로 확인된다. 수많은 사이트, 포럼, 심지어 신문들까지 <알 마스리 알요움>의 기사 철회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잘못된 진술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2012년 11월부터 이스라엘 드루즈족 시인이며 기자인 살만 마살라가 아랍어로 작성된 텍스트를 통해, 그 소문난 기사의 함정에 빠졌던, 자신들의 맹신의 원인에 대해 성찰하지 않았던 유명 문인들을 꾸짖었다.(2) 그러나 그의 이성에의 호소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많은 음모론이 아랍 세계 곳곳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음모나 결탁을 가리키는 용어인 ‘무아마라(Mouâmara)’가 단번에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나, 기괴한 정보 항목에 분류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2010년에 그런 경우가 발생했는데, 당시 이집트의 남시나이 반도 주지사였던 모하메드 압둘 파딜 슈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곧 샤름엘쉐이크 해수욕장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살인상어들로 하여금 공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이집트 관광산업에 타격을 주려고 모사드가 홍해에 상어들을 방출했다고 말이다.(3)
음모에 대한 비난은 중요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도 등장한다. 9‧11테러는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비열한 술책으로 간주되고 있다. 불안정과 분쟁의 증가를 가져온 2011년 아랍의 봉기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서구 강대국들의 음모로 재검토되고 있다. 첫 단계의 만족이 사라진 후에,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강제 퇴임한 이후에, 음모론적 설명이 모든 사회에 급속히 퍼져 나갔다.
알제리, 모로코, 걸프만 군주국들에서는 CIA, 프랑스 비밀정보국, 모사드가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혼란을 퍼뜨리기 위해 아랍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폭동을 일으키게 했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고, 심지어 그런 글을 읽을 수도 있다.(4)
이런 이데올로기적 해석이 시리아 상황에도 적용된다. 바샤르 알 아사드가 자국민들에 대해 저지른 폭력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체제는 유대국가의 지역 라이벌 중의 하나를 약화시키기 위해 워싱턴이 교묘하게 준비한 계획의 희생자들로 제시되었다.(5) 심지어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이 이끄는 이집트도 이런 유의 분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차라리 이 주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수많은 텔레비전 방송의 정부 대변인들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에 대한 2011년의 무자비한 시위가 무슬림 형제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이집트의 위엄을 침식하기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계획한 음모에 의해 발생했다고 단언하고 있다(다른 버전은 음모 가담국 리스트에 카다르도 포함시키고 있다). “아랍 세계에서 음모이론은 비이성적으로 인기가 높다. 사람들이 음모이론을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음모이론의 힘은 모든 것을, 때로는 상반되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가장 이성적인 논거도 단숨에 휩쓸려 가버린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에 빠져있다”라고 제네바 주재 요르단 외교관이 지적한다.
 
음모이론 전파의 원인은 정치지도자들
 
음모이론을 전파시키고 지속시키는 가장 큰 책임자들은 바로 자신들의 태만을 은폐하고 적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길 원하는 아랍 정치지도자들이다. 모로코에서는 이웃 국가 알제리가 서부 사하라 분쟁에서 취한 태도 때문에 모든 악행의 근원으로 비난받는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말 권력기관 및 안보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신문들은, 알제리가 서구 거대기업들에게 압력을 가해 모로코 왕국의 땅 속에서 석유를 찾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의심했다. 모로코가 탄화수소를 개발하지 못한 이유도 여전히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알제리에서 음모는 거의 조직적으로 프랑스와 연관되어 있다. 예전의 식민 강대국인 프랑스가 권력의 이런저런 분파를 도와주면서 계속해서 알제리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이후 수십 년이 지난 후 태어난 사람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알제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프랑스 비밀정보국(1871-1940)을 가리켰던 표현인 ‘두 번째 사무소’가 여전히 자국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영역에 있는 모든 이들이 파리가 알제리 지도자들을 조종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민족해방전선(FLN)의 민족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주의자들도 끊임없이 ‘프랑스 정당’의 존재를 비난하고 있다.
민족적 특수성을 넘어 음모 이론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랍 세계의 비밀정보국들이 수행하는 특유의 역할 때문이다. “비밀요원들이 소문을 끊임없이 퍼뜨림으로써 여론에 영향을 준다. 이 소문들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강요하고, 결과적으로 음모이론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모든 것은 강화된다. 음모의 존재는 아랍 세계에서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지금 이 순간, 젊은 민주주의투사들이 투쟁을 하는 것은 이집트의 주권을 해치려는 음모에 가담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길거리나 카페에서 그들이 서구의 자금을 받는다고 이야기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카이로의 알 아람 정치·전략연구센터의 한 분석가가 설명한다.
알제리의 한 첩보 전문가의 고백에 따르면, 군중의 맹목적인 믿음을 테스트하고 알제리에 대한 위협이 상존한다는 생각을 강화할 목적으로 군 방첩대가 실시하는 ‘연습들’이 바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를수록, 음모이론들이 반복되고 그 이론들이 우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에 나는 더욱더 경악하고 또한 서글퍼진다”라고 알제리 사회학자 나세르 자비가 고백한다. 그는 상당수 시민들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에 대해 얼마간의 합리적인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는 성향을 발견한다. “테러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그 테러를 상대화한다. 사람들은 뒤늦게 해명을 찾으려 한다. 사람들은 그런 폭력 행위에 대한 변명을 찾아낸다.” 갑자기 아쉬운 은인들로 뒤바뀐 타락한 아랍 독재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변덕을 한탄하는 이 대학교수는 “음모론에 대한 애정은 시민들의 양심 부재 혹은 포기에서, 상반되는 토론을 거부하는 데서, 자기 책임감을 거부하는 데서 생겨난다. 죄인은 항상 자신이 아닌 타인인 것이다”고 설명한다.
국제무대에서 주요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랍 세계에서 음모 이론은, 특히 제3자가 서구 국가들인 경우, 제3자에게 잘못을 전가하게 해주고 체제가 원치 않는 자기비판을 회피하게 해준다. ‘IS(이슬람 국가)’ 조직의 출현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이 점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우리 내부의 악마들에 대해 성찰하기 보다는 IS가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창설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그래야 IS가 환상 때문에 혹은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가증스러운 짓에 대해 자문하는 것을 회피할 수 있다”라고 젊은 이라크 교사인 아메드 무라드가 평가한다.
 
아랍세계 음모이론의 기원
 
아랍 세계가 음모이론에 쉽게 빠지는 성향은 이슬람 초기 시절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캐나다 셔브룩대 교수인 모하메드 우리아가 강조하는 것처럼, 이슬람 세계는 “메디나의 유대인들이 마호메트에 대해 음모를 꾸몄고, 그들이 이슬람의 도약을 방해하려고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6) 초기 신앙인들과 아랍의 유대민족 사이의 때로 폭력적이었고 힘들었던 관계들은 이슬람 초기의 단순한 돌발 사건으로 간주되기는커녕, 끊임없이 언급되고 수많은 글들의 소재가 되면서 일반화되고 있다. 이는 종종 동방에서보다 훨씬 더 평화적으로 동거했던 수세기의 세월을 지워 없애는 일이다. 우리아가 볼 때, 이런 역사적 강박관념에 의해 모든 중요 사건을 이슬람에 대한 음모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건들은 긴 세월 이어져온 이슬람에 대한 공격 중의 일부인 것이다.
예언자를 계승했던 세 번째 칼리프인 오트만의 권력에 저항하는 음모가 발생했는데, 그 음모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유대인인 압달라 이븐 사바가 656년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이슬람 신학자들이 끊임없이 강조해 온 것을 이 대학교수는 상기시킨다. 그 음모는 ‘거대한 불화’를 낳게 되었고, 불화의 정치적·신학적 결과가 지금의 이슬람 세계를 만든 것이다. 수니파가 지배하는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선지자 계승 전쟁으로 인해 이슬람의 두 번째 분파인 시아파가 탄생했는데, 이 탄생이 바로 ‘유대인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설교자들이 격정적으로 단언하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듣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랍 세계에서 음모이론들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모든 행동은 이슬람 역사를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다시 읽어본 후에 결정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글·아크람 벨카이드Akram Belkaïd
주요 저서로 <알제리를 향한 조용한 시선>(2005), <오늘날 아랍인이라는 것>(2011) 등이 있다.
 
번역·고광식
 
(1) 2012년 11월 2일 온라인에, 그 다음날에는 신문에 발표된 이 기사는 그 이후 일간지 인터넷 사이트에서 삭제되었다.
(2) 살만 마살라, ‘왜 아랍 사람들은 진실보다 거짓을 선호하는가?,’ Elaph.com, 런던, 2012년 11월 26일.
(3) ‘이스라엘은 상어공격이 모사드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BBC 뉴스, 런던, 2010년 12월 7일.
(4) ‘‘아랍의 봄’이 미국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비밀 서류’, Algeriepatriotique.com, 2014년 9월 21일.
(5) ‘시리아에서는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를 표적으로 삼는 유대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Tunisiesecret.com, 2013년 6월 23일.
(6) 모하메드 우리아, <아랍·이슬람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음모>, 정치학 석사논문, 퀘벡대, 몬트리얼, 2008년 2월.
 

<보충기사> 

          손쉬운 비난

 
어떤 사람들은 곳곳에서 음모를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음모론자들을 본다. 미디어에서는 비난이 활개를 친다. 그 비난은 대개 비판적인 생각들이 가진 설득력을 실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노동자들이여, 유럽연합이 지휘하는 급진자유주의 음모가 당신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 2005년 유럽헌법 국민투표 캠페인 중에 들었던 말이다. 3년이 지났지만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똑같은 의도의 비난, 똑같이 거짓인 주장들, 소박한 가정에 공포를 조장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내뱉는 똑같은 절반의 진실 뿐이다.”
 
장 카트르메르, <리베라시옹>, 2008년 5월.
 
“1995년경에 아크리메드(Acrimed) 사이트 같은 소규모 사업이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됐다. 상당히 주변적이지만 대단히 신랄한 이들은 ‘지배적 미디어’에 대한 비판에 뛰어들었다. 왜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결국 음모를 폭로하는 일은 재미가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급속히 음모론 제조소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필립 발, <코죄르>, 2015년 2월.
 
“짧은 정지 기간을 거친 후, 대단한 단순주의자들이 귀환했다. 공산주의의 종말 이래, 인텔리겐치아와 사회운동이 황당하게 다시 스탈린화되는 현상을 목도한다. (…) 음모론은 또다시 취약한 정신을 장악한다. (…) 문제가 되는 것은 제도 내 좌파가 아니라 이른바 ‘좌파 내의 좌파’와, 시대정신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간다는 점이다.”
알랭 핑키엘크로, <피가로>, 파리, 2003년 9월 11일.
 
“내 경우에는 부르디외의 사회학을, 음모를 꾸미는 네트워크 관련 전략에 관심을 갖는 사회학으로 본다. 나는 부르디외 사유의 모델과 패러다임이 음모론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피에르 앙드레 타기에프, <프랑스 퀼튀르>, 2009년 12월 18일.
 
“비판적 입장은 (…) 의심의 논리 또한 내포하고 있다. 물론 부르디외와 푸코는 그런 논리에 빠져들기에는 지나치게 총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훨씬 더 유치한 다른 방식의 수정을 거쳐, 고유의 부정적 의지를 갖고 있는 그룹으로 이루어진 지배자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도입했다. (…) 이런 사고방식은 특히 촘스키의 경우와 같은 상당수의 일탈을 설명해줄 수 있다. 부르디외 신봉자 중 한 명인 세르주 알리미는 이런 논리를 상당히 과대망상적인 것들로까지 밀고 나간다.”
앙투안 빅틴, <TOC>, 파리, 2005년 3월.
 
“노동자 투쟁의 축제. 음모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적합한 현장 관찰. 테크닉은 항상 똑같다. 최악의 행동도 저지를 수 있는 한 명의 적을 지적한다. 그 적은 바로 미국이다. 사탄의 프랑스 버전. 미국을 거쳐 여기서는 대자본의 음모가 목표가 된다.”
<아르테>에서 방영된 르포, 2004년 4월 13일.
 
번역 김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