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외가 아니다

2015-06-02     마리나 마에스트루티

“다음 음모론들에 대해 얼마만큼 공감하는지 1(전혀 공감하지 않는다)에서 7(전적으로 공감한다)로 대답하시오” 1. 에이즈는 남성들이, 엄밀하게 말하면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질병이다. 2. 미국의 달착륙선 아폴로호는 달에 간 적이 없으며,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은 미국중앙정보국(CIA)이 조작한 것이다. 3. 존 F.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암살은 어떤 외톨이가 홀로 벌인 일이 아니라 거대한 음모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4.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는 자동차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암살됐다…

음모론 공감지수 측정테스트를 만든 파스칼 에거와 아드리안 밴거터를 위시한 사회심리학자들은 수년째 음모론에 대한 공감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있다.(1) 사회심리학은 음모론을 ‘사회적 사유’(2)를 표현하는 여러 형태 중 하나인 집단적 생성물로 본다. 사회심리학은 우리가 추론하고 판단하는 일반적인 방식 중에서 음모주의가 전파되고 지속되는 데 유리한 관점에 특히 관심을 가진다.
우선 ‘결합 관점’을 살펴보자. 이는 별개의 두 사건이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으로, 1983년 대니얼 카네만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실험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3) 두 실험자는 실험참가자들에게 31살의 철학 학위 소지자이며 좌파성향에 반인종차별주의 운동가인 린다라는 여성을 묘사한 글을 보여주었다. ‘린다가 은행원이라는 가설(응답 A)과 은행원이면서 페미니스트라는 가설(응답 B) 중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한가?’라는 질문에 90% 이상의 실험참가자가 B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그녀가 지닌 본질적인 가능성보다 그녀에 대해 묘사한 글을 판단근거로 삼았다. 왜냐하면 은행원이면서 페미니스트인 사람보다는 은행원이 더 평범한 보통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린다를 묘사한 문구에서 은연 중에 풍기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는 비교적 고정된 견해와 사고. 고정관념-역주)과 암묵적인 사회적 관념으로 인해 실험대상자들이 결합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결합 관점’은 음모론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올리비에 클라인과 니콜라스 반 더 린덴은 9‧11 테러에 이를 적용했다. 별개의 두 가지 정보(1.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잔해에서 녹은 철근을 발견. 2. 알카에다 측 인물들이 비행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정보에 부시 정권이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를 접한 대부분의 실험참가자들은 이 두 개의 사실을 별개로 보기보다는 서로 연관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였다.(4)
인과관계를 따지는 방식에 관여하는 ‘고의성 관점’ 역시 음모론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존 맥클러, 데니스 J. 힐튼, 로비 M. 서튼은 최근 실험에서 이를 연구했다. 이들은 실험참가자들에게 고의 발화(범죄 행위)이건 자연 발화(태양, 더위)이건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 화재에 관한 글들을 보여주었다. 그 중 가장 그럴듯한 글을 고르라고 하자 실험참가자들은 대부분 고의 발화에 관한 글을 선택했다.(5) 일부 사람들이 음모론에 나오는 정보를 선호하는 이유가 이 관점에 의해 부분적으로나마 설명된다. 특히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실에 고의성이 결여되어 있을 때(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 사건, 에이즈 발현) 또는 공식적인 사실에 제시된 고의성이 모호할 때(9‧11 테러, 샤를리 엡도 테러) 더 그러하다.
다음으로는 ‘단순 노출 관점’이 있다.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됐듯이, 어떤 이론을 뒷받침하는 여러 의견을 접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무의식적으로 음모론에 동조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카렌 더글라스, 로비 서튼은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모순된 주장들에 대한 공감지수를 측정하고자 했다. 암살론을 주장하는 정보를 제공받은 학생들은 이 정보를 제공받지 않은 학생들보다 암살론에 더 높은 믿음을 보였다.(6)
이 관점의 윤곽을 명확히 하면서 다니엘 T. 길버트와 연구진은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정보를 제공받는 조건과 알고 있는 정보의 형태에 의해 영향을 받는 방식을 분석했다.(7) 두 그룹의 실험참가자들은 유죄여부를 결정해야하는 피의자에 대한 정보 리스트를 제공받았다. 이 정보 리스트에는 여러 ‘거짓’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데 빨강색으로 표시되어 있어 알아보기 쉽고, 따라서 이 정보는 고려하면 안 된다는 점을 실험참가자들은 알고 있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거짓 정보가 정상 참작 사유로, 두 번째 그룹에게는 형벌 가중 사유로 주어졌다. 더욱이 실험 참가자 중 일부는 추가적인 인지 업무(예를 들어 숫자와 리스트 항목을 연결하기)를 수행하며 정보리스트를 읽어야만 했다. 반면 다른 실험참가자들은 정보 리스트 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어서 모든 실험참가자들은 피고인의 유죄여부를 판단하고, 유죄라고 생각했을 경우에는 그에 따른 형벌을 내려야만 했다. 실험 결과, 거짓 정보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거짓 정보라도 이미 그 내용에 신경을 빼앗기면 모든 정보가 참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따라서 가중 사유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만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훨씬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확증 관점’이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을 무효로 만드는 정보보다는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확증 관점’은 음모론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와 관련해 피터 C. 웨이슨이 1960년 최초로 진행한 실험을 보자. 웨이슨은 실험참가자들에게 특정 규칙에 따라 구성된 3가지 숫자의 집합(예를 들어, 2, 4, 8)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실험참가자들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집합을 만들어 실험자에게 제출하도록 했다. 실험참가자들이 실험자가 사용한 규칙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집합이 규칙에 부합하면, 실험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추정한 규칙을 설명해야 했다. 웨이슨이 설정한 규칙은 아주 단순했다. 그가 설정한 세 개의 숫자는 ‘그냥 커지는’ 수였다. 그러나 실험참가자 대부분은 2의 배수나 짝수, 기하급수 같은 훨씬 복잡한 규칙을 생각했다. 게다가 그들이 실험자에게 제출한 3가지 숫자의 집합은 그들이 추정한 바를 거의 절대적으로 확증해주는 ‘확실한’ 예만 테스트해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설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규칙에 맞지 않는 숫자를 제시하는 것이었을 거다. 아주 소수의 실험참가자들만 규칙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 순서조합을 시도했을 뿐이다. 이 같은 ‘확증 관점’은 음모론이 자동적으로 효력을 발생하는 경향을 명확하게 해준다.
위와 같은 4개의 인지 측면의 관점들이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누구든 음모주의에 무감각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설명을 믿건 이에 동조하건 이것은 병적인 합리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용 가능한 데이터와 사회적 맥락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비교적 일반적인 일련의 추론, 판단의 결과다.
 
글‧마리나 마에스트루티Marina Maestrutti
 
번역‧조승아
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Pascal Wagner-Egger, Adrian Bangerter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 음모론 공감의 상관요소 (La vérité est ailleurs : corrélats de l’adhésion aux théories du complot), <사회심리학 국제 새순(Revenue internationale de psychologie sociale)>, Grenoble, 2007년 4월.
(2) 1973년, Michel-Louis Rouquette는 ‘일상적인 사유’를 지칭하기 위해 ‘사회적 사유’의 개념을 도입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것들과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것들(사회심리학에서 ‘연루’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사유를 말한다.
(3) Daniel Kahneman, Amos Tversky, ‘Probability, representativeness, and the conjunction fallacy’, <Psychological Review>, Washington, DC, no 90,1983.
(4) Olivier Klein, Nicola Van der Linden, ‘사회적 인지가 편집증이 될 때 혹은 음모론에 맞서는 회의주의의 위험요소들(Lorsque la cognition sociale devient paranoïde ou les aléas du scepticisme face aux théories du complot)’, Emmanuelle Danblon, Loïc Nicolas (의 지도하에), <음모의 수사학(Les Rhétoriques de la conspiration)>, CNRS Editions, Paris, 2010.
(5) John McClure, Denis J. Hilton, M. Sutton, ‘Judgments of voluntary and physical causes in causal chains : Probabilistic and social functionalist criteria for attributions’,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no 37, Chichester(영국), 2007.
(6) Karen M. Douglas, Robbie M. Sutton, ‘The hidden impact of conspiracy theories : Perceived and actual influence of theories surrounding the death of Princess Diana’, <The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no 148, London, 2008.
(7) Daniel T. Gilbert, Romin W. Tafarodi, Patrick S. Malone, ‘You can’t not believe everything you read’,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no 65, Washington DC, 1993.

 

<보충기사>

 9‧11을 둘러싼 5개 음모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모양새를 갖춘 음모론들은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상호 무효화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여기 9·11에 대해 가장 많이 퍼져 있는 음모론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두 대의 비행기는 납치범들이 납치한 것이 아니라 미군에 의해 원격조정된 것이다. 에세이스트 돈 폴은 2002년에 출간한 저서(<9/11, Facing our Fascist State>)를 통해 이 시나리오를 최초로 주장한 인물이다.
- 어떤 비행기도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지 않았다. 비행기는 사실 홀로그램이었다. 이 이론은 특히 ‘Stop Mensonge’ 사이트에서 “민간 및 군인 조종사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격증을 보유한 조종사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된 미국인 존 리어가 주장한 것이다.
- 납치범들이 비행기를 납치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들은 알카에다와 관계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구 정보국들과 관계있었다. 이 정보국들은 미국의 신보주의자들이 원했던 ‘테러와의 전쟁’에 유리하게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은밀히 테러를 조장했다. 독일의 언론인 유르겐 엘자사는 대부분의 비행기납치범들이 “미국 CIA, 영국정보기관 MI-6, 또는 독일연방정보국(BND)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거나 그 이전에 일했던 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 비행기납치범들은 확실히 알카에다 소속이다. 미 정보국은 그들의 테러 계획을 알고 있었지만 테러가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영어로 LIHOP(Let it Happen on Purpose)로 표현되는 이 ‘고의적 방임’ 이론은 미국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음모론이다.
- 비행기납치범들은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아랍 국가들을 테러국으로 몰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행동했다. ‘미군 전쟁대학교와 미국 군사아카데미 교수’인 앨런 사브로스키는 9·11을 “모사드가 고전적인 수법을 쓰며 기획한 작전”으로 이해한다.
 
번역 김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