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

2009-07-03     정인환 | 본지 국제 부편집장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
노엄 촘스키·질베르 아슈카르 대담, 강주헌 옮김, 사계절 펴냄, 2만2천원

미국이 기획하고 탄생시킨 중동의 유럽

“어떤 개념을 빈틈없이 정의하는 것보다, 그 개념을 식별하는 게 중요한 법이다. 그 개념이 쉽게 식별된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우리가 테러를 식별하는 기준에 합의하더라도 강대국의 행위가 그 정의에 해당된다면, 그 정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노엄 촘스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5년 7월 25일, 영국 런던에서 ‘특별한 회의’가 열렸다. 전쟁 기간에 벌어진 인권유린과 전쟁범죄를 단죄하기 위한 군사재판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를 두고 세계 각국의 국제법 전문가들이 마주 앉았다. 당시 회의에서 미국 대표단 쪽은 전쟁범죄의 뿌리가 되는 ‘침략행위’를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 정의했다.
첫째, 다른 나라에 대한 선전포고 행위다. 둘째, 선전포고를 했는지와 상관없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무력을 동원해 침범하는 행위다. 셋째, 선전포고를 했는지와 상관없이 육군, 해군, 또는 공군을 동원해 다른 나라의 영토나 함정, 항공기를 공격하는 행위다. 미국 대표단은 이어 “정치·군사·경제적 또는 기타 여하한 이유도 이런 행위에 대한 변명이나 정당화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의는 그해 8월 8일 나치 전범재판의 사법적 기초가 된 ‘국제군사재판소를 위한 런던헌장’ 체결로 이어졌다. 헌장을 기초로 그해 11월 21일엔 독일 땅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주요 전범자를 피고로 한 첫 전범재판이 열렸다. 런던회의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던 로버트 잭슨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검찰 쪽 수석고문으로 참여했다. 잭슨은 재판 기간에 “전쟁범죄를 처단하지 않으면 인류의 문명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잭슨이 정의한 ‘침략행위’는 1974년 12월 14일 열린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관련 결의안에서 거의 수정 없이 재차 인용됐다. 국제법적 근거가 제법 탄탄한 셈이다.

테러의 개념이 수용될 수 없는 까닭

‘빈틈없는 정의’는 얼마나 무게를 지닐 수 있을까? 현실은 초라하기만 하다. 촘스키의 지적처럼 강대국의 행위가 그 ‘정의’에 해당된다면, 받아들여지지 않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실제 잭슨의 정의에 따르자면 미국 역대 대통령 절대다수가 침략행위를 자행한 전범으로 기소를 당해야 하는 처지다. 굳이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을 들먹일 필요도 없겠다. 냉전 시절 세계 곳곳에서 미국이 벌인 숱한 ‘저강도 전쟁’이 모두 ‘침략행위’에 해당한다. 미국이 “해당 국가의 동의를 받지 않고, 그 국가의 영토 내에서, 폭력행위를 수행할 목적으로 무장집단을 지원한 행위”는 그 사례를 하나하나 입에 올리기조차 버겁다.

세기는 바뀌어도, 세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9·11 동시테러가 촉발한 ‘테러와의 전쟁’ 시대, 중동의 오늘은 한 치도 바뀌지 않은 지구촌의 현실을 상기시키는 주무대다. 그래서다. 중동 분쟁과 미국 대외정책의 위험천만한 관계를 논한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는 우리 시대를 읽어나가는 작은 나침반으로 삼을 만하다. 이 책은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반전운동가인 노엄 촘스키 미 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와 레바논계 프랑스인으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중동 전문가인 질베르 아슈카르 런던대 교수가 2006년 1월 초 사흘간 총 14시간에 걸쳐 나눈 대화를 세밀하게 정리한 대담집이다.

‘테러와 음모론, 이슬람 근본주의와 민주주의, 미국의 중동정책을 좌우하는 요인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대담의 주제는 폭이 넓고, 두 대담자가 쏟아내는 정보는 가히 ‘백과사전적’이다. 시대와 인물을 종과 횡으로 갈라 중동 각국의 어제와 오늘을 하나로 모아낸다. 중동에 관한 책이기는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부 세력’의 이해관계가 대화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를 돌아보지 않고는 오늘의 중동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테러와의 전쟁’은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이 고안해낸 게 아니다. 촘스키 교수는 레이건 행정부가 발족한 1981년을 테러와의 전쟁 ‘원년’으로 꼽는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조지 슐츠 국무장관을 비롯해 (당시 미)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현대의 역병,’ ‘우리 시대에 닥친 야만의 회귀’, ‘테러라는 사회악’ 등 온갖 수사적 표현을 동원해 테러를 비난했다”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가 즐겨 쓴 표현과 엇비슷해 보인다. 다만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집중한 테러는 ‘국가 주도의 국제 테러’였다.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범과 벌이는 전쟁으로 바뀐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란다.

이슬람 근본주의 지원하고 이용

본격적으로 ‘테러’를 논하기 앞서, 두 사람은 ‘개념 정의’에 초점을 맞춘다. 촘스키 교수는 “미국의 공식적인 법체계이고, 상당히 합리적인” 미 형법에서 테러의 정의를 취했다. 미 형법은 ‘테러’를 “협박, 강압, 공포 조성 등을 통해… 정치적·종교적·이념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폭력이나 폭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계산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합당해 보인다. 촘스키 교수는 지체 없이 “바로 미국 정부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고발한다. 그러니 다시, ‘빈틈없는 개념’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현실이 부른 개념의 혼란이다. 촘스키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법을 다루는 학술지에서조차 ‘테러’를 수십 가지로 정의하고 분석한다. 누구도 확실하게 ‘테러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우리’가 ‘그들’에게 행한 테러는 배제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행한 테러는 포함시키는 정의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렇게 정의하기가 쉽겠는가. 학자들은 테러를 국가 단위 이하의 조직에만 국한하려 애썼지만, 테러 국가들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미국을 배제하면서 테러 국가는 포함시키는 테러의 정의를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개념의 혼란’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를테면 아무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민주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아슈카르 교수의 지적이 아니어도 “지구상에서 가장 근본주의적 색채를 띤 왕국”이자 “전체주의 국가가 있다면 사우디가 바로 그곳”이다. “가장 반계몽적이고, 가장 수구적이며, 여성을 가장 억압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아슈카르 교수는 “사우디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는 그야말로 소름이 돋을 지경”이라며 “사우디와 비교하면, 이란은 여성 해방의 횃불”이라고 꼬집는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란을 광적인 종교국가로 매도하는 반면, 사우디를 ‘우리의 친구’로 부른다.

사례를 찾기 위해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2005년 2월부터 4월까지 사우디에선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지역별로 세 차례 나눠 치러진 당시 선거에서 투표권은 남성에게만 주어졌다. 입후보 자격도 당국의 허가를 받은 남성에게만 주어졌다. 당시 사우디 내무장관인 나이크 압드 아지즈 왕자는 쿠웨이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여성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성 전용 투표소를 따로 마련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렵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예 신분증이 없기 때문이란다. 더구나 당시 선거를 통해 배출한 지방의원은 전체 의석의 절반뿐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군주가 지명했다. 그런데도 부시 행정부는 “민주주의를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뗐다”고 치켜세웠다. 촘스키 교수의 표현처럼 “한마디로 코미디”였다.

모든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도 기실 이런 개념의 혼란, 인식의 착종이 불러온 괴물이다. 아슈카르 교수는 “지금 이슬람 근본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은 미국 정책의 직접적 산물”이라며 “(특히) 비정부 테러에 이슬람 근본주의란 이름을 붙이는 경향도 최근에야 눈에 띄는 현상”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1960년대까지만 해도 무슬림 세계를 전반적으로 지배하던 분위기는 세속적 민족주의였고, 아랍 세계에는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구현한 아랍 민족주의가 있었다. 이 세속적 민족주의자들은 석유자원을 국유화해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하려 했다. 미국 처지에선 세속적 민족주의자들이 ‘주적’으로 떠오른 셈이다. 아슈카르 교수는 “미국은 사우디 왕정이 시행하고 선전하던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가장 복고적이고 보수적인 민족주의를 분쇄했다”며 “세속적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등 중동 지역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던 좌파 사상이나 진보적 사상에 맞서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를 계획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오바마에 건설적인 변화 기대 힘들어”

아프가니스탄이 소련과 전쟁을 벌일 때도 이런 정책은 계속됐다. 그 전쟁에서 미국은 소련에 맞서 싸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무자헤딘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980년대 미국이 파키스탄에서 군부독재자 무하마드 지아울하크 정권을 지지한 것도 세속적 민족주의를 꺾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지원한 사례다. 그러니 1996년 무자헤딘의 후예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잡았을 때, 미국이 처음부터 이들을 지지하고 나선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결국 오랜 세월 스스로 키운 유령과 벌이는 허망한 싸움인 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다를까? 촘스키 교수는 “건설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을 잘랐다. 미 중동정책의 가늠자가 되는 팔레스타인 문제만 놓고 봐도 그렇단다. 지난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선거에서 이슬람주의 정치단체 하마스가 승리하자, 당시 상원의원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잘못 투표한 벌’이라도 주겠다는 심산이었을까? 그는 하마스가 집권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어떤 조직에 대해서도 직접적 지원을 금지하는 것을 뼈대로 한 ‘팔레스타인 반테러법’을 공동 발의하기도 했다. 촘스키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폭력행위를 포기하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간에 맺어진 과거의 협정을 인정할 때까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응징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작 미국과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강요해온 조건들을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촘스키 교수가 ‘암울한 진단’을 내린 시점은 대담집 개정판이 나온 2008년 3월 말이다. 당시 민주당 경선 주자였던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취임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20여 일간 유린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지난 5월 18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했을 땐,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유일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치켜세웠다. 예상은 들어맞고 마는가? 조짐이 좋지 않다.

정인환 국제 부편집장 inhwan@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