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과 진짜 종지부를 찍기 위해선

2015-06-04     알랭 그레쉬

튀니스와 사나에서 일어난 테러를 보면 민간인을 상대로 한 공격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대중을 결집하고, 군사동맹을 맺고,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이 가결된 바 있다. 그런데 공공의 적에 집중한다고 해서 근동지역의 정치적 현실에 맞설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전 세계 미디어의 비호를 받으며 호메로스식 전투가 전개됐다. 2014년 6월에는 이슬람국가(IS)조직이 모술 점령을 시작으로 바그다드는 물론 터키 접경지대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해 시리아 코바니의 경우에는 80%까지 점령했다. 치열한 전투는 몇 달간 계속됐다. 이곳 쿠르드민병대는 미국 공군뿐 아니라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방정부가 파견한 군인 150여 명과 무기도 지원받았다. 서방측 언론이 열정적으로 보도한 이 전투는 2015년 초 IS조직이 물러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런데 IS라는 테러리스트집단에 어느 정도 손상을 입힌 그 전쟁 영웅들은 누구인가? ‘쿠르드족’이라 총칭되는 그들은 대부분 쿠르드노동당(PKK)의 시리아 지부인 민주동맹당(PYD) 소속이다. 그런데 PKK는 십여 년 전부터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EU)이 지목한 테러조직 중 하나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PKK에게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면 ‘테러리즘을 옹호한다’고 비난을 하곤 했지만, 코바니에서 쿠르드민병대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미국과 이란이 핵에 대한 역사적인 협의안을 논의하고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이란과 헤즈볼라는 더 이상 미국의 이해를 위협하는 테러조직이 아니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상원에 제출하는 상황에서 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1)
1938년 여름에는 유난히 사건과 사고가 많았다. 한 남자가 7월 6일 이스라엘 하이파 시장에 폭탄을 설치해 23명이 사망하고 75명이 다쳤는데 이중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였다. 7월 15일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테러로 10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다쳤다. 열흘 후 다시 하이파에서 폭탄이 폭발해 39명이 사망했다. 희생자들은 모두 아랍계 민간인이었다. 모두 1938년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대(大)소요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르군이 자행한 테러다. 이르군은 수정시온주의 운동을 이끄는 단체의 군사조직으로 두 명의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과 이츠학 샤미르를 배출했다.(2)
 
문명과 야만의 모호한 경계
 
저항군인가, 자유를 위한 투사인가, 범죄자인가, 야만인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는 언제나 타인에게 쓰고 절대 ‘우리 편 병사’에게는 붙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어제의 테러리스트가 내일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놀라운가? 앞서 기술한 PKK와 시온주의 무장단체 사례를 통해 테러리즘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모호한지 알 수 있다. 테러리즘은 사상이 아니라 일련의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탈리아 극우조직과 스리랑카 타밀엘람해방호랑이와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을 테러리즘과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말할 것도 없다. 비록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적극 협력했던 이스라엘(3)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PLO와 ANC를 가리켜 ‘테러조직’이라고 비난했다 해도 말이다.
테러리즘을 군사적 수단으로 여길 수도 있다. 소위 약자의 무기다. 알제리혁명 당시 혜성같이 나타나 1957년 프랑스군에 체포된 무하마드 라르비 벤 므히디 알제독립지역수장은 왜 민족해방전선은 카페나 공공장소에 폭탄을 감춘 바구니를 놓아 테러를 일으켰냐는 심문관의 질문에 “당신들 비행기를 주면 바구니를 드리리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며칠 뒤 심문관에게 잔인하게 살해됐다. 게릴라와 정규군이 사용하는 무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희생자의 수도 달라진다. 하마스와 협력군이 2014년 여름 가자전에서 민간인 세 명을 희생시켰으니 테러리스트로 간주해야 한다면, 가장 낮은 수치의 자료인 자국군의 통계를 보더라도 어린이 수백 명을 포함해 8백 명에서 1천 명을 학살한 이스라엘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테러리즘이라는 개념은 모호하고 불명확하다. 그런데 그 개념은 이를 넘어, 테러리즘을 분석할 때 정치색을 제거해 테러리즘과 관련해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2001년 9월 24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 의회에서 ‘우리는 악과 투쟁 중’이라고 선언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경멸합니다. 그들의 지도자는 스스로를 임명하니까요. 그들은 우리가 누리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투표와 집회의 자유,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자유를 혐오합니다.” 그 말대로라면 테러리즘과 맞서기 위해 미국의 근동지역 전쟁정책을 개편하거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난을 끝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야만인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프랑스 주요 정치인들이 주장하듯이, <샤를리 엡도> 테러범인 쿠아치 형제와 파리 포트 드 뱅센에 위치한 코셔 식품점에서 인질극을 벌인 아메디 쿨리발리가 근본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분노로 그런 행동을 했다면 리비아와 말리와 사헬지대에서 이끄는 정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자문할 필요도 없다. 프랑스 하원은 1월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던 바로 그날, 이라크 내 프랑스군 활동 연장을 단숨에 가결했다.
2001년부터 계속된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해, 애초 설정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성적표를 만들어 볼 때가 아닐까? 메릴랜드대학교의 ‘글로벌 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알카에다와 소속 지부는 2007년과 2010년 사이에 매년 200여 건의 테러를 자행했다. 2013년에는 600건으로 그 수가 무려 3배나 늘었다.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칼리파를 선언한 2014년에 발발한 테러 횟수는 다시 신기록을 세울 게 불 보듯 뻔하다.(4) 테러리스트의 수는 어떤가? 서방측 통계를 보면 외국인 2만 명이 IS조직과 이라크 및 시리아의 극단주의단체에 합류했고 그중 3천 4백 명이 유럽인이다. 닉 레이머센 미국 국가반테러센터장은 “지난 20년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예멘, 소말리아 지하드가 되려고 떠난 사람보다 시리아로 떠난 외국전투원이 압도적으로 많다”라고 단언했다.(5)
‘테러와의 전쟁’ 성적표는 지정학적 분쟁과 인명피해를 고려하지 않고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2001년부터 미국은 때로는 연합군의 도움을 받으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에서 전쟁을 치렀고,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에서 일어난 전쟁에도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리비아 정부는 붕괴됐고, 이라크는 종파별 안배주의와 내전으로 암흑기를 보내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공권력은 흔들리고, 파키스탄에서는 탈레반의 활동이 역대 최고로 활발하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05년 ‘건설적 혼돈’을 언급하며 부시 행정부의 근동지역 정책을 정당화했고, 조만간 이 지역에 민주주의 찬가가 울려 퍼질 거라고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혼돈은 미국이 ‘거대한 중동’이라고 부르는, 파키스탄에서 사헬에 이르는 지역 곳곳으로 확산됐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이 건설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유토피아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됐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자행한 ‘테러리즘’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호 아래 자행된 ‘표적폭탄테러’, 드론과 특공대 파견, 임의 구금, 고문으로 민간인 수만 명이 희생됐다. 결혼 피로연이든 출산파티든 장례식이든 예외는 없었다. 미국이 ‘표적’으로 삼아 쏜 포탄으로 인해 모두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톰 엥겔하트 기자는 2001년부터 2013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예멘에서 8건의 결혼식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밝혔다.(6) 이 사건이 서방국가에서 언급될 일도 없겠지만 언급된다고 해도 그 희생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부차적인’ 익명의 희생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은 가족이, 곧 형제자매와 부모가 있다. 희생자 가족이 받은 상처가 미국과 서방국가에 대한 분노를 키운다는 사실이 놀라운가? 이라크를 침공해 파괴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야 할까? 한 번도 제소되지 않은 범죄가 근동지역에서 점점 더 과격한 선동의 물결이 일어나도록 부추기고 있다.
테러리스트라는 적을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고, (마누엘 발스 프랑스 총리처럼) ‘이슬람 파시스트’로 축소해석하고,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뒤를 잇는 새로운 전체주의를 상대로 한 3차 세계대전을 운운하는 서방국가는 알카에다와 IS조직에게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 심지어 나치독일에 비견되는 가시성과 명성과 영향력을 부여했다. 외국군이 강요하는 질서에 저항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런 테러조직이 명성을 떨치고 한층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서방국가가 인위적으로 도와주는 셈이다.
미국 지도자 중에는 지각 있는 사람도 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2014년 10월 미국 이슬람교도와 희생제를 기리는 자리에서 근동지역을 방문한 경험과 IS조직에 관한 논의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지도자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평화가 자리 잡지 못해서 IS조직이 활개를 치고 사람들의 분노가 깊어져 시위대가 거리로 나서는 겁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그런 흐름에 대처해야 합니다. 굴욕과 존엄성의 상실 간의 상관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7)
그렇다면 ‘테러리즘’이 팔레스타인과 관련이 있고, 이라크가 붕괴된 건 IS조직이 확산된 것과 관련이 있고, ‘표적’ 암살은 서방국가에 대한 증오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튀니지 바르도박물관 테러와 리비아의 무정부상태, 그리고 튀니지에서 버려진 지역의 처참한 상황도 관계가 있는가? 사람들은 이 지역에 엄청난 경제적 지원이 이루어지되 국제통화기금(IMF)의 장기인 생색내기식 지원으로 부정과 분노가 야기되지 않길 헛되이 기대한다.
전 CIA요원이자 저명한 이슬람전문가인 그레이엄 풀러는 얼마 전 <이슬람 없는 세상 A World Without Islam>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자신의 책을 한 줄로 요약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모하메드라는 예언자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서방국가와 근동지역의 관계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생각이 반직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서방국가와 근동지역 사이의 관계가 나쁜 이유는 이슬람과 종교를 제외하고도 많습니다. (…) 십자군(서방국가의 경제, 사회, 지정학적 도전), 제국주의, 식민주의, 서방국가의 근동지방 에너지 자원 통제, 친서방국가 독재정부 수립, 서방국가의 지속적인 정치적‧군사적 개입, 국경 재편성, 서방국가의 이스라엘 설립, 미국군 침범과 전쟁,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미국의 완강하고 우회적인 정책 등이 있죠. 이중 어느 것도 이슬람문화와 관련이 없습니다. 이 지역이 점점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그러니까 이슬람교와 이슬람문화권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놀랄 일도 아니지요. 마찰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좀 더 고결한 언어를 빌어 자신의 대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리스교도 십자군 군인도 그랬고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투쟁’을 부르짖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였죠.”(8)
일부 급진적인 이슬람교주가 전파한 증오의 메시지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슬람을 개혁하는 건 그 신도들이 할 일이다. 반면 수십 년간 혼돈과 증오를 부추긴 서방국가들의 정책에 대해 성찰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테러와의 전쟁’ 전문가들의 조언은 접어두자. 30년 전부터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문가의 말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저서 <어떻게 서방국가는 승리하는가?How the West Can Win>(9)를 소개하면서 어떻게 하면 ‘테러를 종식’시킬 수 있는지 담았다고 설명했다.(10) 이 책은 새로운 십자군 군인의 애독서다. 그의 방법은 ‘문명 전쟁’을 일으켰고 이 지역을 만인이 해결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혼돈 속으로 몰아갔다.
 
 
글․알랭 그레쉬Alain Gresh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저서로는 <중동 이해를 위한 100가지 열쇠(Cent Clés du Proche-Orient)>(2006)등이 있다.
 
번역․서희정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Cf. Jack Moore, ‘US omits Iran and Hezbollah from terror threat list’, <Newsweek>, New York, 2015년 3월 16일.
(2) Uri Avnery, ‘Who are the terrorists ?’, 1979년 5월 9일자 <Haolam Hazeh>에 게재된 후 1979년 가을 <Journal of Palestine Studies>, Beyrouth에 다시 게재됨.
(3) ‘남아공과 이스라엘이 공모하는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8월 참조.
(4) Gray Matter, ‘Where terrorism research goes wrong’, International
New York Times, 6 mars 2015년 3월 6일자 참조
(5) Associated Press, 2015년 2월 10일
(6) Tom Engelhardt, ‘Washington’s wedding album from hell’, Tom
Dispatch, 2013년 12월 20일, www.tomdispatch.com/blog
(7) Joseph Klein, ‘Kerry blames Israel for ISIS recruitment’, 2014년
10월 23일, www.frontpagemag.com
(8) Graham E. Fuller, ‘Yes, it is islamic extremism – But why?’,
2015년 2월 22일, http://grahamefuller.com
(9) Farrar, Straus and Giroux, New York, 1986.
(10) Benyamin Netanyahou, <평화와 안정, 테러 종식을 위하여>, L’Archipel, Paris,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