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지원 아래 급성장하는 가스프롬

2015-06-04     카트린 로카텔리

 

 가스프롬은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위해 쓰이는 무기로 간주되는 게 보통이나, 이에 더해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성장을 도모하는 일개 기업이기도 하다. 현재 가스프롬은 경제적 이유 및 지정학적 이유에 따라 고객의 다각화를 추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스프롬과 러시아 정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그렇다고 가스프롬이 정부에 완전히 흡수된 건 아니다. 과거 소비에트 가스산업부를 직접적으로 승계한 가스프롬은 1989년 재정과 경영이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국영기업으로 변모했다. 당시 가스프롬의 회장이던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은 1992년 총리직에 오르고, 이듬해 그는 가스프롬을 합작 주식회사로 만든 다음 대대적으로 주식을 공매한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여전히 지분율 38%의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 러 연방 대통령이 된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막강한 지정학적 무기에 대한 정부 통제권을 다시 쥐게 된다. 푸틴이 자신의 측근인 알렉세이 밀러를 기업의 대표로 앉혔으며, 러시아 정부의 보유 지분도 51%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내 천연가스 비축량의 72%를 장악하고(1) 전 세계 보유 가스 매장량의 16.8%를 차지하는(2) 가스프롬은 세계 최대의 가스 생산업체이다. 2013년에는 생산량 4,870억㎥로 엑손모빌과 셸을 앞질렀고, 수출 물량도 2,337억㎥로 러시아 전체의 재화 및 서비스 수출량의 12%를 차지했다.
가스프롬이 생산하는 천연가스 중 절반은 국내시장에서 소비되는데, 이는 러시아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가스프롬은 정부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국내 소비자들에게 절반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하며, 개인 및 기업 고객 모두 동일한 가격 혜택을 받는다. 저렴한 가격의 에너지 공급은 가계 입장에서도 사회적 완충제로서의 기능을 할 뿐 아니라,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는 산업 부문에서도 간접적인 지원책이 된다. 대신 가스프롬은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가스프롬 엑스포트를 내세워 가스송출관을 통한 천연가스의 수송과 수출을 독점하는 특수를 누린다. 수출과 관련한 이같은 부수입의 일부는 정부 예산으로 흘러들어간다.
러시아의 다른 모든 석유 부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가스프롬 역시 수익세 이외에 다른 두 가지 세금을 더 납입해야 한다. 바로 수출세와 광물 추출세이다. 독립적인 민간 생산업체의 경우에는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세금이다. 이에 따라 가스 부문 기업들은 러시아 정부 세수의 5% 정도를 기여하는데, 러시아 정부로서 이는 부수적인 수입에 불과하다. 석유 부문 전체에서 기여하는 세수가 36%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스프롬의 이해관계가 러시아 정부의 이해관계와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가스프롬은 과거 멕시코 국영 석유회사 페멕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일단 정부의 부속기관이 아닌 하나의 엄연한 기업으로 바로 서기를 희망한다. 가스프롬 지도부와 러시아 정부 모두 가스프롬이 여느 메이저 업체와 다름없는 국제적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가스프롬은 국내외 안팎으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성장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으로서의 경쟁력 추구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특히 해외 수익의 대부분을 실현하는 유럽연합 시장에서의 상황은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기업으로서의 경쟁력 추구가 관건
 
시장점유율 30%의 러시아는 유럽연합 외부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이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이 공급원이 다른 국가로 대체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유럽 중부 지역에서는 천연가스 수입량의 70% 이상이 모두 러시아 산이다. 수입 물량 면에서 따져보면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이 규모가 큰 전략적 시장을 구성한다. 가스프롬은 소비에트연방 시절 유럽의 주요 사업자와 맺었던 Take or Pay (TOP: 의무 인수 계약) 형태의 계약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이탈리아 석유그룹 ENI, 독일의 에온 루흐르가스E.ON-Ruhrgas, 프랑스의 GDF-Suez 등이 그 주요 고객사이다. 20-30년 기간으로 체결된 이 계약에 따르면 유류 제품 가격에 가스 공급가가 연동되며, 또한 물량 면에서의 의무 조항도 부과된다. 이에 따라 구매자 측에서는 매년 정해진 가격에 일정량의 천연 가스를 의무적으로 사들여야 하며, 예정된 물량을 책임지지 않을 경우 위약금을 내야 한다. 위험 분담의 원칙과 안정적인 관계에 기반을 둔 이 같은 계약 구조 덕분에 러시아는 가스 공급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해 서시베리아의 거대 가스전으로부터 가스를 추출해 유럽 시장에 공급해왔다.
가스프롬이 유럽에 공급하는 가스의 대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이 같은 계약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가스프롬이 제한적으로 단기계약이라는 카드를 쓸 수도 있으며, 현재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한 계약 조건의 완화도 가능하다. 사실 1996년과 1998년 가스 관련 지침의 채택 이후 유럽 시장에서의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졌다. 더욱이 2009년에는 수송 부문과 생산 부문을 분리함으로써 전기 및 가스 시장의 개방을 마무리하기 위한 제3차 통합 에너지 기후변화 패키지가 채택된다. 2008년 이후에는 경제 위기에 따른 수요의 정체에 더해 미국에서 셰일 가스가 채굴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가스 공급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기계약 시장은 이 같은 불경기의 영향으로 금세 가격이 하락했고, (유럽연합 가스 수입량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장기계약의 공급가도 급락하긴 했지만 앞서 언급한 경우보다는 조금 더 느린 하향세를 보였다. 장기계약과 단기계약 사이의 격차가 꽤 벌어졌으나 이 같은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진 않은 것이다.
2011∼2012년 무렵 큰 폭으로 시장이 축소된 가스프롬은 유럽 고객사 대부분과 계약 조정에 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가스프롬은 연동제의 기본가를 낮추고 10~20% 정도의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3) 더욱이 2014년 6월에 비해 50% 이상 유가가 떨어지는 등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가스프롬은 한층 강화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야 했다.
2000년대 초 이후 러시아와 유럽연합 사이에는 본격적으로 굴곡의 역사가 펼쳐지는데, 이에 따라 양측은 공동정책을 정하는 데에 상당한 애로사항을 겪는다. 독일은 노르드 스트림 파이프라인 중심으로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가스 공급 라인을 보다 안정적으로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인 반면, 발트해 연안 국가들과 폴란드는 가급적 공급원의 다각화를 시도한다. 2006년과 이후 2014년에 있었던 우크라이나 분쟁 이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러시아 에너지 부문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제재가 있었음에도 가스프롬은 유럽의 신뢰할만한 가스 공급원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며 하나의 기업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하는 의지를 내비쳤다. 귄터 외팅거 에너지 부문 집행위원이 주도한 협상에서는 긍정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양측의 의지가 드러났으며, EU와 러시아 양측은 우크라이나의 가스 부채 문제를 해결하고 우크라이나를 통한 경유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굴지의 기업인 가스프롬이 지닌 강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스프롬은 시장에서 가장 낮은 가스 생산가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신규 생산 지역이 늘어나 이러한 비교 우위도 줄어들 수 있긴 하나 그럼에도 러시아의 가스 생산가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러시아의 가스 생산 중심지는 서시베리아 나딤푸르타스 지역인데, 우렌고이, 얌부르그, 메르베예 등 세 개의 가스전이 있는 곳이다. 1970∼1980년대부터 가스 생산에 들어간 이 대규모 가스전은 오늘날 그 추출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에 카라해(海)를 따라 이어져 있는 북극권의 야말 반도와 극동 지역, 그리고 해상에서의 가스 추출 등이 차츰 그 뒤를 이어 갈 전망이다. 가스프롬은 야말 지역과 동시베리아만 하더라도 2020년경 생산량의 20% 이상을, 2030년에는 5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동북아 시장에도 뛰어드는 가스프롬
 
러시아 국내 시장에서도 가스프롬은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 노바텍처럼 소위 ‘독립적’이라고 하는 민간 가스업체나 로스네프트같이 정부가 자본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일부 기업을 포함한 석유회사들은 이미 에너지 생산량의 27%를 담당하고 있다. 전기 산업 부문과 발전소에서도 현지의 수많은 에너지 수송 및 유통망을 관리하는 가스프롬 자회사 메이레기온가스의 시장점유율을 갉아먹은 상태다. 이렇듯 정부는 자국의 주요 기업을 경쟁에 노출시키고 있으며, 시장의 위력에 기대어 속칭 ‘정부 안의 정부’라 일컬어지는 거대 가스업체 가스프롬을 훈련시키는 상황이다.
가스프롬이 신규시장의 개척에 있어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수는 있으나, 2014년 5월 중국과의 장기 계약 체결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유럽연합 측과의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전략적‧경제적으로 상당한 효력을 나타냈다. 가스프롬의 이 같은 전략적 우회는 2014년 12월 가스프롬이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구축 사업을 포기한 것에서 확인됐다. 사우스 스트림 프로젝트는 흑해를 통해 시베리아와 유럽을 연결하여 불가리아까지 가스관을 부설하는 사업이었는데, 모스크바는 현재 이 같은 사우스 스트림보다는 터키로 연결되는 ‘터키 스트림’ 사업 쪽으로 더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를 비롯해 그리스에서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들이 현재 이 가스관의 연장을 준비하고 있다(박스기사 참고). 아시아 지역의 경우, 일본과 한국의 시장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계약이 규모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게 사실이다. 30년간 매년 380억㎥ 정도만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계약은 러시아가 완전히 동쪽으로 몸을 트는 기점이 됐다. 더욱이 이는 사할린에서 나가는 LNG 수출량을 늘려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30년간 공급되는 대(對) 중국 수출량은 대략 4천억 달러(3,800억 유로) 규모이다. 양국 간에 체결된 계약 조항은 대부분 기밀로 부쳐졌지만 계약가를 감안하면 러시아의 대 중국 수출 가스의 가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요율은 MBTU당 10~12달러(㎥당 0.33유로) 사이일 가능성이 높다.(4) 이 정도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들여오는 가스나 LNG 등 러시아의 주요 경쟁국에 비해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러시아의 대 중국 수출 사업을 위해서는 신규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이 구축되어야 하는데, 이는 아무르강 유역 하바롭스크를 거쳐 야쿠티아 지역의 차이안딘스코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스전을 이어주는 신규 파이프라인이 된다. 가스프롬은 또한 LNG 프로젝트의 수도 일정량 늘릴 예정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일본으로 LNG를 공급하는 프로젝트이다. 중기적으로 봤을 때 러시아는 연간 100G㎥ 이상을 아시아 지역으로 수출할 수 있을 전망이며, 동시베리아와 극동아시아 지역에 신규 생산 기지가 부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차이안딘스코예 다음으로는 이르쿠츠크 지역의 코비트카나 사하 공화국 내의 탈라칸 같은 곳에서 또 다른 가스전 개발이 이어질 예정이다.(5) 이 같은 수출 사업은 2007년 채택된 보다 포괄적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동 기획의 목표는 동시베리아와 극동아시아 지역으로의 생산 및 수송 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와 가스프롬은 러시아 산 가스 공급 문제를 두고 유럽과 아시아의 경쟁을 부추길 전망이며, 가격에 따라 이들 두 시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아시아는 꽤 많은 이점을 누릴 것이고, 유럽은 꽤 많은 부분을 잃게 될 것이다.
 
글‧카트린 로카텔리Catherine Locatelli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PACTE-EDDEN 연구실, 그르노블 알프Grenoble Alpes 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번역‧배영란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졸업.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등의 역서가 있다.
 
 
(1) 가스프롬 기준 자료
(2) 2013년 British Petroleum 확인 매장량,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London, 2014년 6월.
(3) James Henderson, Simon Pirani, <The Russian Gas Matrix: How Markets Are The Driving Change>,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 2014.
(4) Million British Thermal Units: 1MBTU=가스304㎥.
(5) 백근욱, <Sino-Russian Oil and Gas Cooperation: The Reality and Implications>,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 2012.
 
 
 
 <보충기사>
 
러시아가 사우스 스트림을 포기하는 이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4년 12월 1일 터키를 방문하면서 불가리아와 흑해 해저를 거쳐 유럽연합에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하는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건설 계획을 최종적으로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이 계획 실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 계획은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며 특히 아시아를 염두에 두며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우리 자원의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유럽 투자자(프랑스의 EDF, 이탈리아의 Eni, 독일의 Wintershall)들이 함께 참여한 이 계획은 카스피해 가스전과 중부유럽을 잇는,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나부코 가스관 계획을 중지시키기 위해 2006년에 시작됐다. 이 결정은, 2014년 3월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후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대해 경제제재를 채택하면서 심각한 외교적 갈등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사우스 스트림 포기는 경제적 논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3차 에너지 패키지 정책 시행을 두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의 오랜 협상에서 궁지에 몰렸다. 유럽연합은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가스관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이 모든 공급자들에게 가스관을 개방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 결과 예전에는 가스관 참여 에 있어 독점적 위치에 있던 가스관 보유회사들이 더 이상 예비적인 수송능력을 둘 수 없게 됐다. 러시아 회사는 필요한 투자액(약 320유로)을 경감하기 위해 예외조항을 주장해왔다.
여전히 러시아의 최대 시장인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러시아는 사우스 스트림을 흑해를 거쳐 터키로 가는 두 번째 가스관으로 대체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가 이미 이 계획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경로가 대단히 불확실해진다면 유럽은 엄청난 비용의 인프라를 건설하면서 가스 터미널이 들어서게 될 그리스-터키 국경으로 가스를 찾으러가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유럽의 대형 가스회사들은 가스프롬과 마찬가지 이유로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아직까지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지속가능한 합의를 통해 우크라이나 루트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가스 채무 관련 분쟁을 해결하도록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넣고 우크라이나 가스 산업 자유화를 위한 경제 지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글‧엘렌 리샤르Hélène Richard
언론인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