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투기기업들, 독일 동부 땅에 손대다

2015-06-04     라셀 크내벨

 

프로이센 귀족이 물러나고 농지공유화와 협동조합을 바탕으로 운영되던 시기도 저물고 과도기를 거쳐 독일동부농업은 이제 외국거대투자자의 구미를 돋우고 있다. 공산주의체제에서 물려받은 농업구조가 만들어낸 아이러니다.

 
“이것 좀 보세요!” 스테판 팔메는 관할 지역의 농지소유자를 색깔별로 표시한 지도를 컴퓨터 모니터로 보여줬다. 이 50대 남성은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기농곡물농장을 운영한다. 밀, 호밀, 스펠트밀, 보리, 귀리를 재배하는 경작지 1,100헥타르와 농장 건물 일부는 프로이센 왕정시대 대규모 토지소유주인 융커가 관리하던 영지에서 17세기경에 조성됐다. 그는 지도를 가리키며 “붉은색으로 표시된 작은 농지는 브란덴부르크주(州)가, 핑크색은 교회가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또 조금 더 넓은 지역을 짚으면서 “여기는 스타인호프, 저기는 토마스 필립 소유”라고 덧붙였다.
스타인호프는 독일 거대 가구제작사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 홀딩스이고, 토마스 필립은 재고할인매장체인이다. 이런 회사들이 경쟁자이니 팔메와 같은 대규모 농장경영자도 토지를 사거나 임대하기 어렵다. “지금 상황이 이렇습니다. 토지마다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어요. 무법천지라니까요.” 바이에른주(州) 출신으로 1996년에 이 지역으로 이주한 팔메는 이렇게 설명하며 안타까워했다.
1989년 독일이 통일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기존 농장경영자와 다른 투자자들이 동독 농업시장에 등장했다. 폐기물처리업계의 거물인 레몬디스는 1994년에 당시 독일민주공화국(DDR)이 직접 관리하던 영지 465곳 중 여럿을 사들였다. ‘국민의 재산’이라 불리던 이 농지는 당시 동독의 경작지 중에서 1/10 미만에 불과했다. 독일민주공화국 시절에 농업은 주로 농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945년 소비에트연방은 농지 100헥타르 이상을 소유한 지주에게서 땅을 빼앗아 국유화했고, 이 정책은 1960년까지 이어져 강제로 공유된 토지와 농기구를 바탕으로 농업협동조합이 설립돼 체제의 관리를 받았다. 농업협동조합 3,800개 중 3/4이상이 1990년 이후에도 새로운 법률형태로 활동을 계속했다.(1) 바로 이 점이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2007년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월스트리트가 붕괴되면서 투자자의 프로필과 투자규모가 바뀌었다. “금융위기가 농지에 투자하는 게 수익은 크지 않더라도 안전하다고 판단한 새로운 투자자를 불러 모았다”고 독일 최대 규모의 농민 집단인 독일농업인협회(DBV) 법무팀장인 울프강 크루거는 분석했다. 서독 투자자 중에는 가구회사인 스타인호프뿐 아니라 부동산과 양로원 분야 전문업체인 린트호르스트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농기업은 KTG 아그라르이다. 2007년 상장된 KTG는 현재 독일 동부에 산재된 농지 37,000헥타르와 농장 30곳을 운영 중이며 그 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KTG는 다른 투자자를 대리해 리투아니아와 루마니아에서도 활동 중이며 러시아에서는 독일정육업체에 공급할 사료를 재배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무엇보다 수익률이 좋은 곡물과 유채와 보조금을 받는 바이오가스에 큰 관심을 보인다.
독일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이 기업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스타인호프와 린트호르스트는 인터뷰를 거절했고 KTG는 홍보대행사를 앞세웠다. 중간 규모 투자자인 아그로에너지는 더욱 신중하다. 2008년 함부르크에 설립된 아그로에너지는 동독농업에 투자하는 것이 인플레이션 위험도 없고 수익률이 높다고 주주들에게 설명했다. 그렇게 2008년 첫 번째로 실시한 투자금 모집에서 3,400만 유로를 조달해 4천 헥타르가 넘는 농장 두 곳을 인수하고 2011년에 되팔아서 평균투자수익 13.5%를 올렸다. 이제는 추가로 농지 2만 헥타르를 매입하기 위해 1억 2천~1억 5천만 유로의 자금을 모으는 중이다.
물류회사, 안경판매체인, 구 금융대기업, 전 출판업자, 작센주(州)는 물론 몰도바, 폴란드, 칠레에 농지 수백만 헥타르를 보유한 설탕생산업자 등 새로운 투자자들도 독일 동부에 눈독을 들인다. “대단위로 농지를 사들이는 기업들은 토지를 직접 취득하지 않고 기존 농장의 일부를 매입하여 그곳을 관리한다”고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공동집필한(2) 안드레아스 티에츠는 설명했다. 사실상 독일법에 따르면 농지는 농민에게만 매도할 수 있다. 반면 농장 인수에 대해서는 제약이 없다. KTG를 비롯한 다른 투자자들은 이 점을 이용해 대규모 농장을 손에 넣고 농민을 일반근로자처럼 고용했다. 농장 취득이 곧 토지 취득으로 이어졌다.
독일 동부의 주를 모아 놓고 봤을 때 농지의 3/4가 소작지이다.(3) 이 농지는 개인, 과거 협동조합원, 체제 붕괴 이후 토지를 반환 받은 이민자나 교회의 소유다. 교회는 동부지역에 많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팔지는 않는다. 공산주의체제는 교회가 농지를 소유하는 권리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성직자가 마음대로 농토를 처분하거나 임대할 수는 없지만 토지대장에는 그가 소유주로 남아있다.
 
농지 투기매매로 농부들만이 피해를 보다
 
아그로에너지 이사인 모리츠 스필커는 “동부에 있는 대규모 농장경영자 모두 은퇴할 나이가 됐”고 “뒤를 이을 사람도 없다”고 했다. 본인이 경영하는 회사처럼 순식간에 수천만 유로를 조달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면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갑자기 농지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에 하나는 2007년 기준 독일 서부보다 동부의 땅값이 4배나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구동독 시절 농장의 구조에 있다. 독일 동부 농장의 평균 면적은 230헥타르로 서독 49헥타르와 프랑스 55헥타르에 비해 상당히 크다. 농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하던 농장은 1천 헥타르를 넘는 곳도 많다. “농지공유화 시절에 좀 더 큰 단위의 농장을 만들려고 여러 농지를 합쳤습니다. 독일의 상황은 독특해서 과거 공산주의였던 다른 유럽국가와 달라요. 독일이 통일되고 곧바로 유럽연합에도 가입하면서 구동독의 대규모 농장구조가 더 유리해졌습니다”라고 아른트 보어캄퍼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설명했다. 공산주의체제가 주도한 토지공유화가 오늘날 거대사기업의 농지투기를 불러왔다니 역사의 흥미로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농업협동조합원의 아들인 크루거는 “기업투자자들이 보유한 토지는 10만 헥타르 정도인데 동부 지역 농지 550만 헥타르 중 2%에 불과하다”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지방관리자와 정치인의 집계에 따르면 특히 비옥한 곳으로 투자가 집중되면서 새로운 지주 손으로 넘어간 농지는 약 10~25%에 이른다. 헬무트 클루터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지리학교수는 ‘신봉건주의’라고 평가했다. “프로이센 공국 시절에도 가장 큰 영지가 400헥타르를 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수천 헥타르는 말도 안 되고요. 거대한 농장이 공동농업정책의 지원을 받는다니까요.” KTG 아그라르만 해도 매년 6백만 유로의 보조금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사이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와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에서 땅값이 폭등해 2007년 대비 2배, 1990년 대비 3배 증가했고(4)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린트호르스트는 여기서 동남쪽에 자리 잡았고 KTG는 옆마을에 농장을 샀다”고 홀거 람퍼가 전했다. 금년 56세인 람퍼는 폴란드 접경지에서 농업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 회원 5명을 비롯한 조합원 12명과 람퍼는 토지 1,400헥타르에서 소 2백 마리를 기르는데 토지 절반은 임대 사용 중이다. 1987년부터 농장을 운영해온 람퍼는 “여기는 융커의 영지였다”면서 “대토지소유주라는 점에서 지금도 별반 다를 것 없다”고 비꼬았다. 농업기술자인 그는 농장을 시작하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 통일, 시장경제 전환, 공동농업정책 도입을 겪었다. 공동농업정책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새로운 투자자가 등장하고 농지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1990년대 농지가격은 헥타르당 1천 유로였는데 요즘에는 1만~1만2천 유로라면서 일반 농민들에게는 턱없이 높은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1992년부터 동독정부 소유의 농지와 삼림 400만헥타르를 사유화하기 위해 수립된 공공기관을 통해 20년 전에는 토지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토지운영관리단체(Bodenverwertungs- und -verwaltungs GmbH, BVVG(5))는 이렇게 70만 헥타르를 매도해 60억 유로 이상을 벌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BVVG는 동부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거기서 제시하는 가격은 더 이상 용납하기 어렵다”고 농민협회 DBV 부회장이고 브란덴부르크 주의원이자 1980년대부터 동부에서 농장을 직접 경영하고 있는 우도 폴가르트는 비난했다. BVVG는 오랜 시간 동안 동독 농업협동조합을 이어받은 농장주 등에게 특별우대가격으로 토지를 양도했다. 그러나 2007년 전략이 바뀌었다. 농지매매는 경매 형식으로 전환돼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이 토지 주인이 됐다. 이 방식 때문에 가격이 상승될 수밖에 없다. BVVG는 농지 가격 상승을 불러일으킨다는 비난을 전면 부인했지만 내부 문서에 따르면 평균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토지를 팔았다고 인정했다.
브란덴부르크에서 가족농장 100헥타르를 소유한 랄프 베링은 BVVG가 농지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게 확실하다고 했다. 베링과 그의 부인은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곡물을 재배하고 양을 기르며 베를린에서 판매할 사과를 키운다. 그는 독일 남서부에서 성장해서 29세가 되던 1992년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1958년 사회주의체제를 피해 도망쳤던 할아버지의 옛날 농장을 되찾았다. 베링도 할아버지처럼 권력, 그러니까 토지를 관리하는 공기업에 맞서고 있다. 그의 토지 중 상당부분이 아직 BVVG 소유이며 BVVG는 가급적 빨리 토지를 매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베링 부부가 이끄는 소규모농장의 생존 여부도 불분명하다.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토지를 판매하는 상황에서 저는 절대로 땅을 살 수 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땅도 다 잃겠지요. 그러고 나면 우리에겐 관광객을 상대로 운영할 펜션만 남겠지요.” 마을 한가운데에서 관광객들에게 농장건물을 빌려주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 베링은 한탄했다.
북쪽으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슈베린에서 틸 박하우스 사회민주당 소속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州) 농업부장관은 그냥 토지사유화를 중단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우리 주에서 아직 BVVG가 보유한 토지 약 5만 헥타르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취득해 젊은 농민이나 유기농법을 사용하거나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농장에 임대하려고 합니다.” 그도 동부 출신으로 한때 협동조합장이었지만 당분간 그의 제안을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글·라셀 크내벨 Rachel Knaebel
사회 및 환경운동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 'Basta Mag'에 정기적으로 글을 싣고 있다.
 
번역‧서희정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Michel Streith, ‘미래로 향하다. 구동독 포스트사회주의 농업 전환 초창기’, n°325-326, Paris, 2011.
(2) Bernhard Forstner, Andreas Tietz, Klaus Klare, Werner Kleinhanss and Peter Weingarten, ‘Aktivitäten von nichtlandwirtschaftlichen und uberregional ausgerichteten Investoren auf dem landwirtschaftlichen Bodenmarkt in Deutschland’, <Sonderheft>, n°352, Thünen-Institut, Braunschweig, 2011.
(3) 독일 전역의 농지 중에서 약 38%만 실제 농작민이 보유하고 있다.
(4) 2013년 구동독 지역 농지 1헥타르의 가격은 평균 10,500유로로 프랑스 5,750유로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싸다.
(5) BVVG는 구 동독기업 사유화를 위해 1990년에 설립됐다가 1994년 해산된 신탁관리청(Treuhand)의 계보를 있는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