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침묵하는 세대’는 끝났다
2015-06-04 알랭 비키
나이지리아처럼 인터넷 사용자 수가 6천 5백만 명에 달하는 국가라면 소셜네트워크가 들썩이는 것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7일 자정 무렵, 나이지리아 인터넷에선 세네갈 다카르의 로이터 통신이 전하는 한 뉴스가 앞 다투어 전달되고 있었다. 임기 말의 굿럭 조너선 대통령과 과거 군부 독재자였던 무함마두 부하리 퇴역 장군 간의 대결로 요약할 수 있는 이번 대선 및 총선의 선거일이 예정된 2월 22일에서 3월 28일로 연기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북부 지역에서 무장단체 ‘보코 하람(Boko Haram)’과 대치중인 정부군이 선거 보안을 지킬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나이지리아 독립국가선거관리위원회(INEC)의 결정에 의한 일이었다.(1) 나이지리아의 가수이자 사회운동가인 아도케 아요바미델레 알라데코모는 “선거 연기 뉴스 이후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소셜네트워크 상에 점점 더 잔혹한 글들이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치과의사인 아버지와 법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 최대 경제도시인 라고스의 주립대학에서 역사와 통계학을 전공한 아도케는, 지난 대선이 치러졌던 2011년까지만 해도 정치에 대해 별 걱정이 없었다고 밝혔다. 아도케는 “사실 군사독재가 끝나가던 시점인 199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예전에는 별다른 관심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특히 나이지리아에 다시 일어날 활력을 어떻게 잘 이용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2년,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는 1960년 독립 이후 거센 항의의 물결에 휩쓸렸다. 정부가 휘발유 보조금 철폐를 결정하면서 연료 가격이 갑작스레 두 배로 폭등한 까닭이었다. 그러자 2012년 1월 초, 아도케는 ‘히어 더 보이스(Hear the Voice)’라는 곡을 발표했다. 그녀는 이곡을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들과,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설명했다.(2) 길거리 시위 한복판에서 뮤직비디오가 촬영되기도 한 이 노래는 곧 젊은 시위대의 찬가가 되었다. 일주일에 걸친 이들의 시위에서 공무원과 노동자, 실직자와 민간기업 종사자, 펜티코스트파(派)와 무슬림단체들, ‘날리우드’(3) 배우들과 인디음악인 등이 모두 한데 섞여 만들어진 군중 수십만 명은 공분했다. 한편 2014년에는 나이라(나이지리아 화폐)의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생활필수품의 수입가가 더욱 상승하기도 했다. 현재 나이지리아의 총 인구 1억 7천만 명 중 15~34세 사이가 6천 4백만 명이며, 그중 3분의 2는 직업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4)
아도케는 자신의 소규모 회사 ‘SSV(Sticks, Strings and Voices)’에서 티셔츠를 만들기도 하고 음악 컨셉을 구상하기도 한다. 지난 2월 25일 라고스 프리덤 파크에서 열린 아도케의 콘서트는 ‘나이지리아, 이제 그만(Enough is Enough, EiE)’이라는 단체를 후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미 아다몰레쿤 대표가 이끄는 이 단체는 2010년에 결성되어 삶의 질 향상과 부패 방지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젊은이들을 한데 모으고 있다. 특히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인터넷 사이트(www.eie.ng)를 이용해 젊은이들에게 투표에 참여해야 하며 소셜네트워크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나이지리아의 소셜네트워크 사용자 수는 페이스북이 천 백만 명, 트위터가 6백만 명에 달했다.(5) EiE는 그 이외에도 다양한 외부 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미국의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가 만든 ‘열린사회재단(Open Society Foudnations)’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2012년 당시 굿럭 조너선 대통령이 마침내 석유 가격 인하를 발표하자 나이지리아의 양대 노동조합인 나이지리아노동협의회(NLC)와 노조협의회(TUC)가 시위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된 젊은 시위대는 이러한 투쟁을 포기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이어가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 진압으로 열댓 명의 사망자가 생겨났다. 그중에 이제는 무참하게 죽어간 젊은이의 상징이 된 23세의 여학생 무스타파 무이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침묵하는 세대’가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글·알랭 비키Alain Vicky
아프리카 베넹에서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김보희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Rodrigue Nassa Ngassam, ‘보코 하람의 위협 하에 놓인 카메룬(Le Cameroun sous la menace de Boko Hara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불어판), 2015년 1월호.
(2) 해당 영상은 인터넷에서 확인 가능하다.
(3) 할리우드(Hollywood)의 이름을 본따 붙인 나이지리아의 영화 산업을 가리키는 표현.
(4) Tunji Akande, ‘Youth unemployment in Nigeria : A situation analysis’, 브루킹스 연구소, 2014년 9월 23일.
(5) Christopher Akor, ‘Youth, Social Media and the Fuel Subsidy. Protests of January 2012 in Nigeria’, http://codesria.org/IMG/pdf/chris_akor_nigeria.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