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판문점체제 이대로 둘 것인가?

2015-06-04     김학재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력 확대와 북한의 핵개발이 지속됨에 따라 지난 수년간 이어진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과정 역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렇게 동북아 갈등이 심화되는 긴박한 시기에 이루어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은 매우 큰 관심과 기대를 불러 모았다.

그는 지난 방한 당시 유엔은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기 위한 노력을 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사무총장으로 가진 역량을 통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남과 북이 전제조건 없이 대화를 할 것을 요구했으며, 인도주의적 문제와 정치‧안보문제를 분리 접근할 것을 요청했다. 무엇보다 그는 유엔은 남한의 유엔만이 아닌 북한의 유엔이기도 하다며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발언했다. 물론 북한은 그를 한국과 미국의 사무총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굳이 개성공단이나 평양을 방문하는 일회성 이벤트로는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반기문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바로 한국전쟁의 유산들을 정면으로 대면하는 일이다.
 
판문점 체제
 
한반도 문제의 역사적 기원에는 한국전쟁(1950-53)이 있다. 문제의 근원은 임시 정전협약(1953)으로, 군사적 충돌과 전투가 중지되었을 뿐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쟁 당사자 간 포괄적 평화협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 군사 정전 체제를 ‘판문점 체제’라고 명명했다. 판문점 체제는 유럽에서 전쟁을 종식시킨 기념비적인 베스트팔렌 체제, 비엔나 체제, 베르사이유 체제와 매우 다르다. 무엇보다 판문점 체제는 참전국이 정치적, 외교적 협상을 통해 궁극적 해결을 도출한 체제가 아니라, 군사 실무자들 간의 임시적인 합의에 불과하다.
판문점 체제는 두 가지 국제적 차원의 영향 속에서 탄생했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판문점 체제는 유엔의 결정과 개입으로 인해 만들어진 체제이다. 둘째, 판문점 체제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것에는 핵확산방지협약NPT 체제의 영향이 있다. 즉 판문점 체제는 유엔 체제, 그리고 NPT체제와 직결되어 형성된 체제이다. 이 두 체제의 근본적 특성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판문점 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인식할 수 있다.
 
UN 체제의 ‘처벌’적 패러다임
 
몇 년전 유엔은 한국전쟁과 유엔은 아무상관 없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이는 기초적인 역사적 지식조차 없는 발언이다. 한국전쟁 초기에 안보리와 유엔총회가 내린 이례적 결정들은 유엔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첫날 안보리는 유엔 역사상 최초로 ‘국제 평화의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때부터 북한은‘유엔 헌장 7장’의 낙인이 찍힌 국가가 되었다. 이렇게 1950년에 유엔이 북한을 범죄국으로 낙인찍어 근본적인 불화가 생긴 일이 오늘날 북한 핵과 인권문제와 관련해 유엔을 통해 비난하거나 제제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기원이 되었다.
결국 유엔이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 남긴 유산이란 바로 북한에 대한 유엔헌장 7장의 낙인이다. 만일 유엔이 그동안‘처벌적’접근으로 일관해 대상국을 범죄화한 것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해결을 요원하게 했다면, 이젠 어떤 다른 선택을 통해 화해와 공존, 포섭을 도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유엔은 한편으론 북한을 ‘처벌’하려는 국제법 체계의 핵심을 따르지만, 동시에 갈등과 문제를 포섭하고 포용하고 해소해낼 국제법적 권위 또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유엔은 한국문제의 해결은커녕 여전히 ‘처벌’기능만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인권 결의안과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북한에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이 문제에 있어서 전향적인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엔이 북한을 압박하는 건 바로 미국에서 법과 결의안들이 통과되는 일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예컨대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 이후 한 미 상원의원은 오바마 정부를 비판하며, 북한 자체가‘미국의 국익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간주하고 추가적인 제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북한이 전제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어떤 협상도 재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의안을 도입했다.
따라서 지금은 유엔의 독립성이 시험대에 오르는 시기이며, 유엔이 해결하지 않고 남겨둔 문제들을 다시 포괄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문제가 유엔으로 가면 너무 많은 국가가 관여하게 되어 더 문제가 복잡해지고 실질적 해결이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특히 유엔에 가장 많은 재정 지원을 하고 있는 미국 정치인들은 유엔이 돈낭비라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하지만 보편적이고 상시적인 포럼 없이 개별 국가들이 모두 개별 사안에 대해 외교를 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낭비될 것인가? 상설 국제기구는 그 자체에서 완전한 해결을 추구하기보다는 지속적인 대화와 접촉 채널을 확보하는 포럼의 기능에 최대 장점이 있다.
유엔이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 이후 추구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유엔에서 인도와 영국, 제3세계, 아시아 국가들은 전쟁을 끝내고, 미국과 소련의 무한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끝없이 대화와 중재를 시도했다. 결국 이것이 전쟁을 지속하려는 세력들의 정당성을 축소시키며 정전을 당위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중국과의 대화를 이끌어냈다. 한국에서 정전협상을 시작할 당시 유엔은 정전협상 이후에 보다 포괄적인 정치협상과 통일, 화해, 전후 처리 문제 같은 궁극적인 문제를 맡기로 했다. 유엔이 개입한 전쟁이고, 유엔의 권위만이 이를 최종적으로 종식할 정치적, 국제법적 권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문제의 궁극적 해결 문제 역시 당시 유엔에서 타협을 보지 못했고,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도 실패로 끝났다. 그럼 이는 다시 유엔이 다뤄야 할 문제인 것이다.
한국전쟁이 초래한 기이한 상황들도 정리되어야 한다. 먼저 유엔사령부와 전쟁을 한 중국과 북한이 평화협약 없이 유엔회원국이 되었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교전했지만 평화 협약 없이 외교를 정상화했다. 그렇다면 유엔 체제는 정전협약만으로도 사실상 평화체제에 해당된다는 암묵적인 해석을 지지하고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유엔의 공식적 해석을 제시하여 남북 적대종식과 상호인정을 명시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더 권위를 부여해주는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유엔은 1950년대 당시부터 지금까지 제안된 한반도 중립화, 통합 선거, 아시아 정치회담 등 수많은 해결책들을 집대성해 모두에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화해위원회 같이 전후 피난민이나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설 유엔 기구를 창설하거나, 특별 중재관(mediator)을 활용하는 것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유엔을 통한 인정과 갈등해소가 평화 구축을 위해 얼마나 큰 계기가 되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91년 9월 17일 남과 북은 유엔 총회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하며 유엔에 의해 승인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같은 해 12월 13일, 남북간 화해와 적대의 중지를 요청하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었다. 유엔이 기본적인 인정과 포섭을 시도하면 갈등을 해소하고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례이다.
반기문 총장은 2012년 1월 취임사에서 유엔은 서로 연결된 여러 문제들을 가로지르는 통합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고, 공동의 해결책에 도달하기 위해 보편적인 대화를 촉진할 수 있으며, 새로운 국제 협력을 지원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통합적인 공동의 해결, 보편적 대화, 협력을 위한 규범과 정당성이라는 유엔의 핵심 기능은 바로 판문점 체제의 극복을 위해 더 없이 필요한 것이다.
 
NPT 체제의 ‘현존 유지’패러다임
 
판문점 체제의 현재 상태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두 번째 국제적 차원은 바로 핵비확산 협약이다. 오늘날 한반도 평화문제는 모두 이 비핵화의 패러다임 하에서 논의되고 있다. 사실 비핵화라는 것 자체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포괄적 정당성을 획득했지만, 현실에서 NPT는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더 큰 특권과 정당성을 주었다는 한계가 있다. 즉 NPT는 기본적으로 핵보유국들의 현존유지를 향한 신념과 기대가 체계적으로 제도화된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행동은 이러한 NPT 체제의 정치적 의도와 그 결과를 학습하고 대응하며 형성되었다. 북한은 1985년 9월 12일 NPT에 서명했고 1994년 비핵화를 위한 북미간 제네바 합의에 동의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2003년 1월 10일 결국 NPT를 완전 탈퇴했다. 6자 회담이란 기본적으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적극적인 틀이 아니라 NPT 체제의 현존유지적 지향을 그대로 이어받아 동북아 6개국의 개입을 통해 이루기 위한 틀이었다. 이 협소한 목적과 이를 추동하는 이해관계는 결국 실패하여 2005년 2월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포했다.
따라서 NPT 체제는 그 현존유지적 지향으로 인해 여러 번 실패한 사례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국제사회가 그동안 핵을 보유하게 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실질적인 갈등을 해소했는지, 핵을 보유하고 있던 동유럽 국가들, 이란에서 어떻게 핵보유를 포기시켰는지의 관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즉 NPT 체제의 재검토에서 필요한 것은 이 체제의 분명한 한계를 인정하고 현존유지 패러다임을 벗어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처벌과 현존유지를 넘어서
 
이렇게 판문점체제는 유엔 헌장 7장을 통한 접근과 NPT 체제의 현존유지적 지향이 지난 60년간 실패해왔음을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에 다름아니다. 처벌과 현존유지적 접근은 모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배제와 갈등을 그대로 유지시켜왔다. 이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건 바로 판문점 체제의 현존유지를 뒷받침해왔던 낡은‘시대정신’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패는 국제사회 전체나 유엔 자체의 실패가 아니라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주도했던 접근방식의 폐쇄적 사고틀이 가진 한계 때문에 생겨난 실패이다. 이제 우리는 이 실패들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대안들을 사고하기 시작해야 한다. 반기문 총장이 선택해야 할 핵심 문제는 유엔이 과연 처벌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구인지, 아니면 대화와 중재를 통해 평화를 이루는 기구인가 하는 것이다.
처벌과 현존유지의 사고틀을 벗어나면 이미 존재하는 해법들에 더 무게를 실을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북 사이에는 남북 기본합의서(1991) 그리고 곧 15주년을 맞이할 6‧15선언(2000)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늘어난 외교, 접촉 채널들을 주목한다면 판문점 체제는 결코 탈출 불가능한 수렁이 아니다. 지금 한국 정치가 만들어 내고 있는 ‘반기문 대망론’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정치적 리더십은 더 넓고 멀리 보는 안목을 필요로 한다.
 
글‧김학재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사회학)를 받고, 베를린자유대학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연구소에서 지구사 연구 프로젝트 연구원(2011~2013)을 거쳐 2013년부터 현재까지 베를린자유대 동아시아 대학원 박사후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베를린자유대학과 서울대, 서울과학기술대, 광운대, 충남대 등에서 강의했다. 최근 저서로는 <판문점 체제의 기원>(2015), <동아시아의 세 가지 평화 체제>(2013) 등이 있다.
 
1) 김학재, <판문점 체제의 기원 :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기획>, 후마니타스, 2015.
2)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Korea Chair Monitor,May 7-20,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