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창작집단 ‘우밍’의 문화 게릴라운동

2015-06-04     뤼시 제프루아

1990년대 중반, 공동창작 집단 우밍이 문화와 정치에 전쟁을 선포하며 첫 걸음을 내딛었을 때 인터넷은 걸음마 단계였다. 당시 이탈리아 대안사회의 중심지이며 전통적인 ‘붉은 도시’였던 볼로냐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던 네 명의 학생이 팬진(동호인 잡지), 대안라디오, 락앤롤 무대 같이 자생적으로 발생한 문화공간에서 자신들의 무기를 갈고 닦고 있었다. 그때 이탈리아 정치는 요동치고 있었다. 기독민주당은 빈사상태에 있었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라는 새로운 인물이 한창 부상하는 중이었다.

나중에 우밍 그룹을 조직하게 될 네 명의 학생은 1994년 5년을 기한으로 조직된 백여 명의 유럽 예술가들의 네트워크인 루터 블리셋 프로젝트(1)에 참여하며 행동에 나선다. 루터 블리셋 프로젝트의 목표는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예술가들을 유명하게 만들고 거짓 사건을 연출해 ‘언론의 기만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중세도시 비테르보의 어느 숲에서 사탄숭배 의식인 검은 미사를 연출한 것이다. 허위 보도자료가 여러 언론사로 보내졌고 언론은 확인하지도 않고 기사화했다. 의식을 지내는 동안 연출한 강간 동영상은 이탈리아 1채널에서 방영되기까지 했다. 나중에 루터 블리셋은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이 연출한 속임수였다고 밝혔다.
1999년 루터 블리셋 프로젝트의 볼로냐 지부에 속한 네 명의 작가가 “위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전설을 창조하고, 인기 있는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며 역사소설 <큐(Q)>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5천부 정도 판매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탈리아에서 36만부 이상이 팔렸고(3) 10개 언어로 번역됐다. 16세기 초반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토마스 뮌처(4)가 주도한 농민전쟁을 비롯해 여러 전쟁에 참여한 재세례파 군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Q>의 예기치 않은 성공 후, 루터 블리셋 프로젝트는 상징적인 자살을 선언한다. 그리고 루터 블리셋이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다섯 번째 회원을 영입해서 우밍 공동창작 집단을 결성하게 된다. 우밍은 발음하는 방식에 따라 중국어로 ‘다섯 개의 이름(五名)’ 혹은 ‘무명(無名)’을 뜻한다.
우밍이라는 이름에서 작가를 고독한 천재로 신성시하는 것을 거부하고 모든 저작은 공동창작의 결과여야 한다는 우밍그룹의 신념을 잘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우밍 1, 우밍 2…라는 필명으로 단독작업도 가능하다.(4) 우밍의 작가들은 텔레비전 출연이나 사진촬영을 거부한다. 그렇다고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 신념이나 강박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고 독자들과 만남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우밍은 글쓰기에 집중하며 주류 문화를 거부하고 베를루스코니의 우파에게 빼앗긴 상상력의 세계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답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완전히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열 명이 함께 쓰든 한 명이 단독으로 쓰든 우밍의 이름으로 출간된 대부분의 책에는 역사대하소설, 추리소설, 박학한 지식, 대중문화가 버무려져 있다. 우밍에 영향을 준 인물들도 알렉상드르 뒤마, 제임스 엘로이, 세르지오 레오네, 필립 K 딕,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이탈로 칼비노, 돈 드릴로까지 다양하다. 모두 역사가 말해주는 권력에 고집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던 작가들이다.
1954년 한 해 동안 일어나는 일을 적은 소설 <54>는 두 진영으로 갈라진 ‘전후’에 그 어느 때보다 분쟁에 휩싸인 세계를 보여주고, <마니투아나(Manituana)>는 패자인 이로쿼이 인디언들의 시각에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을 묘사했다. 우밍1이 쓴 <레나나 봉(峰)>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세 명의 이탈리아인 포로가 케냐산을 등반하는 모험담을 통해 식민역사와 정면으로 대면하지 못하는 이탈리아를 비판하고 있다. 역사의 조역들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우밍은 역사학자 카를로 긴츠부르그와 시선을 공유한다. 미시사(microhistory)와 민중의 일상이 제도권의 역사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긴츠부르그의 역사관이다. 우밍은 잊힌 사람들의 역사를 되살리고자 <미국 민중사>를 쓴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시각도 소설에서 보여준다. 더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 혹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유해한’ 신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신화를 구축할 것을 주장한다.
 
새로운 상상력을 펴는 우밍
 
이탈리아 정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우밍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회문제에 대한 논의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2001년 제노바에서 G8 회의가 개최되었을 때 ‘우리의 깃발에는 ‘존엄’이라고 적혀있다’라는 글을 배포했고 지금은 자신들의 블로그 지압(Giap)과 트위터 (팔로워 45,000명)를 통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일례로, 2014년 11월 키워드 #Renziscappa(도망가는 렌치)를 만들어, 시위장소나 시민들의 항의가 두려워 렌치 총리가 자리를 피해야 했던 공식행사를 표시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지도를 트위터에 올렸다. 우밍에게 렌치 총리는 오성운동당의 대표 베페 그릴로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처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라는 신화를 재가동시킨 정치인에 불과하다.(6) “렌치의 정책은 허상일 뿐이다. 요란한 모더니즘, 청년을 우선시하는 문화, 광고 카피를 버무려놓은 실제 정책을 가리는 연막탄에 불과하다. 렌치는 유럽의 ‘트로이카’가 2011년 이탈리아에 처방한 정책을 글자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 복지예산 삭감, 민영화, 노동자의 권리 축소는 30년이나 된 낡은 정책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아무도 이 정책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5년의 이탈리아는 신자유주의에 점령된 탈민주주의 국가이다.” 우밍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밍의 급진적 입장과 반문화적 프로젝트에 대중은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최신작 <몽유병자들의 군대>(8)는 출간 1년 만에 이탈리아에서 46,000부 넘게 팔렸다. 하지만 반문화와 급진적 정치투쟁이 대중사회와 격리된 프랑스에서는 한 번도 우밍과 같은 그룹이 존재한 적이 없다. 우밍의 책들이 프랑스에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카라파의 눈>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된 <Q>는 판매가 너무 저조해 판매를 중단할 정도였다. 현재는 메타이에 출판사에서 우밍의 책을 출간하고 있는데 판매가 약간 호전되기는 했지만 3천 부 넘게 팔린 책은 드물다. 게다가 <몽유병자들의 군대>는 출간되지 못했다. 메타이에는 장당 22유로(약 25,000원)나 소요되는 800페이지짜리 소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번역 비용만 해도 엄청났다.
최근 우밍은 1년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순회하며 5년 넘게 작업한 <몽유병자들의 군대>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레볼루션 투어(Revolution Tour)'를 마쳤다. <몽유병자들의 군대>는 이야기 전체가 여성의 입장에서, 민중의 언어로 서술된 새로운 모습의 프랑스 혁명을 보여준다. 소설은 공포정치 시대를 배경으로 파리 성문 밖 셍탕투안에서 바느질하는 마리 노지에르, 페미니스트 여배우 클레르 라콩브, 인기를 잃은 이탈리아 희극배우 스카라무슈, 최면전문 의사 오르페 당블랑 등 역사의 ‘주역들’의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우밍은 이 소설이 공동창작하는 마지막 역사소설이 될 것이고 자신들이 걸어온 작가와 투쟁가로서의 긴 여정의 ‘종착지’라고 밝혔다. 첫 소설인 <Q>이래로 우밍의 모든 소설에는 ‘혁명, 혁명의 가능성, 반혁명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소설의 ‘몽유병자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의사나 혁명정부를 몰락시키기 위해 파시스트 무리가 꾸민 음모의 희생자가 아니다. “귀족들이 민중을 무시한 것처럼 지금의 엘리트들도 민중을 무시하는 것을 봤을 때 앙시엥 레짐의 몰락과 경제 침체와 극우파의 부상으로 취약해진 유럽 민주주의의 위기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한 이탈리아 비평가는 지적한다.(11) ‘집단 최면’의 메커니즘에 대한 묘사를 그릴로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은 비평가들도 있다. “몽유병자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카리스마에 이끌려 무조건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그처럼 베페 그릴로가 어떤 음악을 연주하는지도 모르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작가 중 한 명도 확인해 주었다.(12)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을 즐기는 우밍의 예상치 못한 행보는 계속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동화책을 출간했다. 자신들의 사이트에다 <이상한 지도(Cantalamappa)>가 ‘8세부터 108세까지 체제 전복자들을 위한 지도’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이 신화를 만들어 퍼뜨리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월 평균 방문자가 9만 명인 블로그는 네티즌과 동료 작가들이 우밍의 책, 글, 제안을 수정하고 확장시키는 광장이 되었다. 우밍도 자신들의 작품에 사람들이 손대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우밍의 모든 작품에는 저작권이 없다.(카피레프트) 지적소유권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카피라이트)을 반대하고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면 누구나 자신들의 저작 전체 혹은 일부를 복사하거나 무료로 다운로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더 많이 배포될수록 더 많이 팔린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현재 우밍의 모든 저작은 우밍 사이트에 전자책 형태로 올려져 있다. 다운로드를 하거나 영감을 얻거나 심지어 표절을 해도 무방하다.
우밍은 자신들의 저작을 다양한 멀티미디어로 활용해 확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설을 기반으로 창작한 음향 파일을 만들어 다운로드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몽유병자들의 군대> 출간에 맞춰 우밍 컨틴전트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발표하며 음악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자신들의 사이트에서 밝혔듯이 우밍은 ‘소설가 이상의 창작 집단’임이 분명하다.
 
글‧뤼시 제프루아Lucie Geffroy
<르몽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리베라시옹> 등의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번역‧임명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Luther Blissett. 자마이카 출신 프로축구 선수로 1983년 AC 밀란으로 이적했지만 큰 활약을 하지 못한 것으로 유명하다.
(2) Wu Ming Foundation, www.wumingfoundation.com
(3) Luther Blissett, <카라파의 눈(L’Œil de Carafa)>, Seuil, Paris, 2001.
(4) Thomas Müntzer (1489-1525). 독일의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 독일 농민전쟁을 주도했다.
(5) Wu Ming 1 - Roberto Bui, Wu Ming 2 - Giovanni Cattabriga, Wu Ming 3 - Luca Di Meo(2008년 우밍을 탈퇴했다.), Wu Ming 4 - Federico Guglielmi, Wu Ming 5 - Riccardo Pedrini.
(6) Raffaele Laudani, ‘이탈리아 인기총리, ’데몰리션맨‘ 마테오(Matteo Renzi, un certain goût pour la cass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 7.
(7) 이메일 인터뷰.
(8) <L’Armata dei Sonnambuli>, Einaudi, Turin, 2014, 808p.
(9) Métailié, Paris : Wu Ming 4, <L’Etoile du matin(샛별)>, 2012 ; Wu Ming, <Manituana>, 2009 ; Wu Ming 1, <New Thing>, 2007 ; Wu Ming 2, <Guerre aux humains(인간전쟁)>, 2007.
(10) ‘ “I pifferai incantano ancora”. Intervista sul Fatto Quotidiano e altre storie, viaggi, letture #ArmatadeiSonnambuli ’, 2014. 7. 8. www.wumingfoundation.com
(11) Roberto Paura, ‘Una rivoluzione senza rivoluzione?’, Quaderni d’altri tempi, n° 49, Milan, 2014.
(12) ‘ “I pifferai incantano ancora”. Intervista sul Fatto Quotidiano e altre storie, viaggi, letture #ArmatadeiSonnambuli’,op.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