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리: 경계에서 권역을 보다>

한국서평

2015-06-04     박승규

IS가 벌이고 있는 국제적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가 우리 일상을 위협한다. 미국 군대는 미국이 아닌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를 벌이고 이라크를 침공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고, 에이즈가 확산되면서 수백만 명이 더 죽어간다. 유럽연합은 계속 팽창해가고 있고, 우리에게 익숙했던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 이름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네팔과 중국 스촨성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인도네시아와 일본에서는 쓰나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줄어들고 있고,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과연 이 같은 세계적인 변화에는 공통분모가 있을까?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세계와 세계의 변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블레이(Harm de Blij)(2007)는 이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분야로 지리학을 제시한다. 지리학은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망라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세상에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리학이 관심 갖는 공간은 우리가 잠깐 살았다 버리는 곳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담고 있는 우리의 토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종한 등이 저술한 <세계지리: 경계에서 권역을 보다>(사회평론 펴냄)는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어떤 세계지리 책과도 차별성을 보인다. 새로운 시선으로, 변화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삶을 바라본다. 그것도 우리에게 익숙한 틀을 이용해 만화경 같은 세상사를 전해준다. ‘지리적 권역’을 중심으로 세계지리를 서술하는 것은 전통적인 방식과 커다란 차이가 없다. 다만, 이 책이 새로운 것은 지리적 권역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지역(카리브해의 섬나라들, 캅카스 지역, 지중해 지역, 중앙아시아, 북극해와 남극해)’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대륙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지리에 대한) 시선이 누군가의 관점을 대변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한계’(6쪽)를 넘어, ‘고정적 권역 중심의 세계지역에 대한 우리의 스키마를 해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때 권역과 경계의 호혜적 관계를 적극 활용하는 것’(7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세계를 10개의 권역, 곧 동부아시아, 동남아시아, 남부아시아, 서남아시아와 북부아프리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와 그 주위 국가들,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호주와 오세아니아로 나누고 있다. 저자는 이 10개의 권역을 다루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문제를 질문하고, 그 문제의 근원을 설명해준다. 가령,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소말리아 내전을 비롯한 여러 내전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유럽의 식민정책에 있음을 지적한다(383-392쪽). ‘북아메리카’에서는 흔히들 총기가 지배하는 국가라고 부르는 미국을 두고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514쪽), ‘남아메리카’에서는 한때 풍요로웠던 남미 국가들이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는 원인과 일부 국가에서 좌파 정권이 집권하게 된 원인에 대해 말해준다(572-574쪽).
10권역들 사이에 지리적 경계로 남아 있는 ‘경계지역’에 대한 내용은 조금 더 흥미롭다. ‘카리브 해의 섬나라들’에서는 우리에게 비교적 낯선 종교인 ‘부두교’(621쪽)에 대한 설명과 이 지역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크레올 문화’(613-622쪽)를 통해 카리브 연안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준다. ‘지중해’에서는 세계사에 대한 우리의 인식 지층을 두껍게 한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접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레반트 지역이 일찍이 지중해 지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레바논 산맥에서 자라는 풍부한 삼림이 배경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바논 일대에 삼림이 풍부한 것은 서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레바논의 산맥을 넘으며 뿌리는 지형성 강수 때문이다.(636-637쪽). ‘캅카스’에서는 가장 뜨거운 현안인 ‘국가 안의 또 다른 국가:엔클레이브’(675-679쪽)에 대해 알려준다. ‘엔클레이브(enclave)는 한 국가 영토 안에 지리적으로 완전히 포섭되어 있는, 다른 국적의 국민 또는 소수 민족이 거주하는 작은 구역을 의미한다’(664쪽). 이 같은 설명을 통해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민족 간의 갈등 및 분리, 독립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게 된다.
책을 읽는 재미는 ‘지리스토리’라는 코너를 통해 배가 된다. 에비앙 생수가 왜 유명해졌는지(126쪽)를 설명하고, 심포지엄이 처음에는 술을 마시기 위한 모임이었지만 모임에서의 이야기 주제가 삶과 죽음, 철학 등으로 옮겨지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심포지엄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169쪽). 그리고 ‘마룬 파이브(Maroon 5)’ 음악이 왜 소울적인 음악을 현대적이고 세련된 멜로디로 담아내고 있는지(618쪽)도 설명한다. 아메리카 대륙에 강제로 이주된 흑인 노예의 일부는 플랜테이션을 탈주하였는데, 이때의 탈주 노예를 ‘마룬’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경계지역이라는 용어가 적절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저자는 ‘경계지역이 권역의 변두리에 존재하는 지리적 경계’(39쪽)라고 적고 있지만, 경계지역은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권역들의 특성을 혼성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측면이 있어 경계지역이라는 용어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는 것이나, 캅카스나 중앙아시아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는 벨라루스와 몰도바 등이 경계지역에서 생략된 것도 약간의 의문과 더불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피상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삶의 의미 체계에 대해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계 여러 지역에 대한 사진이나 정보만을 나열하지 않고, 개개 현상들이 발생하게 된 역사적‧문화적 근원을 찾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도 그러한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세계지리에는 ‘특수지리학’의 입장이 견지되고 있었다. 각 지역 사람들의 특수하고 예외적인 삶의 모습을 전하는 데 익숙하였다. 반면에, 우리가 그 지역에 대해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을 말하는 데는 인색하였다. 이 책에서는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각 권역과 경계지역에 대한 역사지리적인 인식을 토대로 현재라는 지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삶의 실천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각 지역에 남겨져 있는,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하는 삶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삶의 세계를 보여준다. 각 지역의 정체성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인식되어야 하고, 변화하는 정체성을 통해 다른 지역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할 때 지역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아마도 이 점이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커다란 의미가 아닌가 한다.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의 주인공인 말로처럼 세계지도를 펴며 다양한 나라에 호기심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삶의 공통분모를 찾길 원하는 사람들, 나아가 세계시민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번역서에 의존해왔던 세계지리 책을 우리나라 저자들의 노력에 의해 우리나라 독자들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