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서평2

2015-06-04     안 세실 로베르

 박물관에서 만나는 처칠과 드골

커다란 집단적 움직임이 역사를 만든다. 이 경우 한 두 명 개인의 행동이 민족과 민주주의의 운명을 정하기도 한다. 1940년, 프랑스 정부가 항복과 정전협정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샤를르 드골 장군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동맹국인 미국은 드골 장군에 대해 의심을 품었으나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본능적으로 드골 장군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드골과 처칠의 이 같은 범상치 않은 만남을 짚어보는 전시회 ‘처칠-드골’이 샤를르 드골 기금의 후원으로 파리 군사박물관에서 열린다.(1)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두 개의 대형 전시실은 각종 디지털 장비가 갖춰져 있어서 영국 국립 고문서 박물관에서 대여한 귀중한 자료들을 관람할 수 있다. 여기에는 처칠이 1940년 7월 22일에 비밀조직인 특수작전국(SOE)을 세운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특수작전국은 훗날 <007-제임스 본드>의 작가가 되는 이안 플레밍을 비롯한 처칠의 여러 요원들이 활동했던 곳으로 독약 가루가 들어 있는 손목시계, 칼날을 숨기고 있는 만년필 등 다양한 아이디어 첩보 도구들이 발명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자유 프랑스가 세워지는 인내의 과정을 보여주는 당대의 오브제들, 즉 국기, 장식물, 우표, 동전 등을 볼 수 있다. 주로 드골과 협력한 아프리카의 식민지 국가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드골 망명정부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오브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에 이 전시회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처칠과 드골이라는 두 인물의 닮은 점(2)과 정치관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고 당시 상황을 분석하고 두 인물의 애국심과 대의, 그리고 적과 아군 앞에서 보여 준 두 인물의 용기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본 전시회가 인물 미화에만 힘쓰는 것은 아니다. 1915년, 해군상이였던 처칠이 주도한 다르다넬스 해협 제압 작전의 실패, 비시 회담 때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해 비굴할 정도로 아부하던 처칠의 행동, 그리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드골의 ‘지속적인 쿠데타’, 1958년 헌법 쿠데타 등 두 인물의 실책도 보여준다.
다만 이 전시회에서 안타까운 점은 드골에게 공산주의 레지스탕스는 나름 중요하고 비중있는 존재지만 이러한 관계를 지나치게 편협하고 단순하게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드골이 자유 프랑스에 미친 영향을 어느 정도 잘 보여주는 전시회다. 1944년 10월에 처칠은 드골의 권위를 인정했고 이러한 선언까지 하게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정부라 불려 만족하고 있습니다.’
 
<각주>
(1) 처칠-드골 전시회,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에서 2015년 4월 10일에서 7월 7일까지 개최, 129, rue de Grenelle, 75007 Paris, 개관 시간은 매일 10시에서 18시까지, 입장료는 8.50유로
(2) 참고할 도서 : Sophie Doudet, <Chrchill>, Gallimard, 파리, 2013년
 
글 ․ 안 세실 로베르Anne-Cécile Robert
 
번역 ⁃ 이주영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번역서로 <프랑스 엄마처럼>(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