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사회진보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2015-06-04     질베르 악카르

무신론이 수많은 신앙인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또한 종교가 수많은 무신론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반면에,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는 신을 믿는 자건 그렇지 않은 자건 간에 서로의 힘을 모았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해방신학이 널리 퍼진 라틴아메리카에서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경우에는 이런 유형의 연대가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과학혁명이 일어난 지 5세기가 지났지만 종교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실증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이들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종교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우리시대까지 영속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 가동 중인 사회적·정치적 실정에 저항하는 투쟁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명백한 종교의 성공과 더불어, 기독교 해방신학과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십거리가 되었다.
이 두 종교의 급성장과 양 진영의 세속적인 좌파의 운명 간 상관관계는 이들 종교의 본성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라틴아메리카의 세속적인 좌파와 운명을 함께한 해방신학은 사실상 현지에서 보편적인 좌파세력의 일환처럼 인식된 데 반해, 이슬람 근본주의는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인 국가에서 해방신학의 경쟁자로 발전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칼 마르크스의 이른바 "실질적인 불행"과 이에 책임이 있는 국가와 사회에 대항하기 위한 항의 수단을 만들고자 좌파를 대체한 셈이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상관관계는 이들 두 진영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들 사이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해방신학은 마이클 뢰비가 막스 베버의 개념을 차용해 주창한, 이른바 기독교와 사회주의 간 "선택적 유사성"의 가장 현대적인 표현이다.(1)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여기서 거론하는 유사성은 초기 기독교의 유산(이것이 사라지면서 기독교는 기존의 사회적 지배의 제도화된 이데올로기로 거듭났다)과 "공산주의적"(2) 유토피아 간의 유사성을 뜻한다. 따라서 1524년~1525년 사이, 신학자 토마스 뮌처는 1850년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주의의 상상 속 기대"(3)라고 묘사한 독일 농민반란 프로그램을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작성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선택적 유사성으로 인해 왜 1960년대 등장해 세계를 강타한 급진 좌파세력이 기독교적인 차원을 띨 수 있었는지가 설명된다. 특히 대다수의 국민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기독교인들인 "주변국”들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일례로 196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에선 쿠바 혁명을 필두로 급진화가 활기를 띠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를 보면, 급진화의 현대적 물결과 엥겔스가 분석한 독일 농민운동 간 큰 차이는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주창하던 기독교세력이 과거 공동체의 삶에 대한 향수(비록 원주민들이 이와 유사한 형태의 삶을 사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나 현대적인 사회주의적 열망, 즉 라틴아메리카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이 설파하는 열망에 경도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반대로, 이슬람 근본주의는 진보운동의 썩은 시체를 밟고 성장했다. 1970년대 초반, 중산층이 떠받치던 급진적 민족주의가 쇠퇴했다. 이 쇠퇴의 시발점이 된 상징적인 사건은 가말 압델 나세르의 죽음이다. 그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6일 전쟁에서 패한 뒤 3년만인 1970년에 사망했다. 이와 동시에 반정부세력들이 이슬람을 이데올로기의 기치로 내세우게 되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대다수의 국민이 이슬람인 많은 국가에서 확산된다. 이어서 좌파 잔존세력을 숙청하려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불길을 부채질하게 된다. 또 좌파세력의 몰락으로 생긴 공백을 차지한 이슬람 근본주의는 즉각 서구의 지배에 강력 반대하는 주요 매개체로 발돋움한다. 요컨대 이슬람 근본주의는 태동 때부터 서구의 지배에 반대했지만 초기 세속적인 민족주의 시대에는 이러한 운동이 미미했다.
서구의 지배에 대한 강렬한 저항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시아파 이슬람 내에서 새롭게 부각되었다. 이어 1990년대 초반, 이슬람 근본주의 군대가 전쟁 상대를 소련에서 미국으로 전환하며 수니파 이슬람 내에서도 근본주의 세력이 최전방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반전의 뒤를 이어 소련이 붕괴되고 미국은 중동에서의 지속적인 군대 개입을 다시 재개했다.
따라서 광대한 아랍지역 국가들 사이에는 두 유형의 근본주의, 즉 친서방과 반서방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친(親)서방의 요새는 이슬람 국가 중 가장 반계몽적인 사우디 왕국이다. 시아파 내의 반(反)서방의 요새는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이다. 한편 알카에다와 알카에다의 아바타인 이슬람국가(IS)는 수니파의 첨병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중세의 반동적인 유토피아를 추구하던 세력처럼 비치기도 한다. 이를테면 미래 지향적인 사회가 아닌 가상이나 신화 속의 과거 지향적인 사회 프로젝트를 꿈꾸는 세력처럼 묘사된다.
이들은 모두 초기 이슬람의 신화적인 사회와 국가를 복원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 이들이 초기 기독교 사상을 따르고 있는 기독교 해방신학과 함께 형식적으로는 교리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 프로그램은 자신들의 사회변방에서 살아가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공동체(이런 공동체의 창설자는 현 정부에 의해 처참하게 처형되었을 법하다)에서 유래한 "사랑의 공산주의"을 목표로 한 전반적인 이상주의 원칙을 표방하진 않는다. 이 프로그램은 또한 과거 16세기 독일 농부의 봉기 때 일각에서 도입을 외쳤던 공동재산의 형태도 거론하지 않는다.
 
신화 속의 과거를 지향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신화화되긴 했지만 예전에 "실제로 존재한" 중세의 계급사회를 모델로 도입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 모델은 대략 14세기 전, 자신들의 권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사망한 선지자로 탈바꿈한 상인이나 군벌 또는 국가나 제국의 창건자들이 도입했던 모델이다. 하지만 수세기가 지난 사회적·정치적 구조의 모든 복원시도가 그렇듯이, 이슬람 근본주의 복원 프로젝트 또한 반동적인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세력을 꼭 필요로 한다.
정통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유사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슬람을 복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세력은 사우디 왕국의 지원으로 인해 이슬람 주류 세력으로 거듭났다.(4) 이 세력은 자신들이 믿는 신의 언명처럼 간주하는 코란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를 통해 이슬람을 설파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다른 종교에서도 이 같은 방식을 쓰긴 한다)은 소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전유물인 동시에 제도화된 주류 이슬람 내에서도 주로 쓰는 방식이다. 요컨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코란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적용해야 한다는 교리를 설파하고 있다. 코란이 탄생하게 된 특별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코란에 대한 믿음을 준수하며 충실히 신앙생활을 하려는 정통 이슬람 세력은 특히 이슬람이란 반석 위에 정부를 세우기 위해 그 같은 교리(코란을 곧이곧대로 해석 적용해야 된다는 교리)를 강조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이들 세력은 특히 (이슬람이 번창하던 시대에 다른 종교와 전쟁을 치렀던 역사적 배경을 거울삼아) 모든 비(非)이슬람지배권과의 무장전쟁을 선호하고 있다.
정통 이슬람과 중세의 반동적인 유토피아 간, 그리고 초기 기독교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간 이 같은 유사성은 가치 판단의 대상은 아니지만 이슬람과 기독교 두 종교의 비교역사 사회학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된다. 물론 이 두 종교 내엔 또 다른 종교 성향이 존재하기는 한다. 기독교는 태동 이후로 줄곧 다양한 유형의 반동적이자 근본주의적인 교리에 자양분이 되는 경향을 통합해 왔다. 반면에, 이슬람은 억압받던 공동체, 즉 초기 이슬람이 이슬람 "사회주의" 경전을 제작할 때 썼던 몇몇 평등주의 잔재를 코란에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 내에 다양한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이지, 실제 이 두 종교의 역사적인 발전이 특정 유사성에 좌지우지된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종교들은 계급사회의 실제 구조에 적응하며 발전했다. 기독교의 경우 원래의 사회적 조건과 천양지차인 계급사회의 구조를 띠었지만, 이슬람의 경우는 그렇게까지 심한 계급사회의 구조를 보이진 않았다. 수세기 동안,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한″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한″ 이슬람보다 덜 진보적이었다. 가톨릭 내에서조차도, 현재 요제프 라칭거(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주도하는 주류 반동세력 및 그의 추종자들과, 라틴아메리카의 급진좌파 세력을 발판으로 새롭게 도약하고 있는 해방신학 추종자들 간에 맹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와 사회주의 간 유사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기독교의 역사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적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 같은 명제는 터무니없는 것일 테다. 또한 이슬람의 역사와 현재 이슬람 근본주의의 모태가 된 중세의 반동적인 유토피아 간 유사성을 인정하는 것도 이슬람의 역사가 본질적으로 근본주의적이었다거나, 역사적 상황이 어쨌든 간에 이슬람은 근본주의자들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란 의미가 전혀 아니다. 절대 그렇지가 않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와 이슬람 근본주의는 그 같은 인식(기독교는 사회주의적이고 이슬람은 근본주의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저항의 기치인 모든 종교의 다양한 역사적 용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그 같은 인식 덕분에, 기독교 해방신학은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아주 중요한 구성요소로 거듭날 수 있었던데 반해, 기독교 해방신학을 이슬람 버전으로 만들려는 (이슬람의) 모든 시도는 변방에 머물렀다. 그 인식은 또한 이슬람 근본주의가 현재 왜 이슬람 사회에서 엄청나게 존재감을 얻게 되었는지, 왜 이들이 반사회적인 측면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서구지배 거부의 화신인 좌파를 그렇게 쉽게 대체할 수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인지시켜준다.
그런데 현재 동양에 널리 전파되어 있는 피상적인 생각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역사적 관점을 무시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기본적인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몇 십 년 전, 공식적으로 무신론 교리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 공산당 중 하나인 공산당이 세계 최대 이슬람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했다. 이 정당은 친미 인도네시아 군부에 의해 1965년부터 피의 숙청을 당했다. 또 다른 예로,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반 남부 이라크의 시아파가 특히 지지하던 이라크 주요정당의 지도자는 종교인이 아니라 공산당원이었다. 뿐만 아니라, 1961년 이집트의 "사회주의" 전환기에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나세르는 충실한 이슬람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의 최대의 적이었다. 그가 절정기에 아랍 국가에 미친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따라서 이슬람의 모든 용도를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종교적으로 구체적인 상황 속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계급과 성별 지배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의 이슬람과 가령 서방국가에서처럼 억압받는 소수 민족의 정체성 표시로서의 이슬람 간 구분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이슬람 종교의 주요 정신적 기반에 대한 투쟁이 아닌 사회적, 정신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투쟁)은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가장 혁신적인 우선순위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임신중절과 같은 기독교의 일반적인 터부에 뜻을 같이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기독교 해방신학과 급진좌파 핵심 무신론자들의 고유한 사회적, 정신적, 정치적 사고는 나무랄게 거의 없다.
 
글•질베르 악카르Gilbert Achcar
2007년 이래로 런던대학교의 ‘동양과 아프리카 연구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이 글은 질베르 악카르가 자신의 저서 <마르크스주의, 오리엔탈리즘, 세계주의>(Actes Sud, Arles, 2015)에서 발췌해 수정을 가한 내용을 실은 것이다.
 
번역조은섭

 

파리7대학 불문학박사.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해 강의.
 
 
(1) Michaël Löwy, <신들의 전쟁, 라틴 아메리카의 종교와 정치(La Guerre des dieux. Religion et politique en Amérique latine)>, Editions du Félin, 파리, 1998년.
(2) 여기에 사용된 형용사 ‘공산주의적(communistique)’은 산업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 공식화된 공산주의 교리의 유토피아와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3) Friedrich Engels, <독일의 농민 전쟁(La Guerre des paysans en Allemagne)>, Editions sociales, 파리, 1974년 (1re éd. : 1850).
(4) Nabil Mouline, ‘이슬람 땅에서의 교조주의의 기승(Surenchères traditionalistes en terre d’isla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