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없는 선거, 민주주의의 위기

2009-07-03     알랭 가리구 | 파리 10대학 정치학 교수

제한선거보다 낮은 투표율, 보편선거의 종말 암시
시민의식이 문제?… 정치권과 언론이 문제


유럽의회 의원 선거일인 2009년 6월 7일 일요일 오후 2시, 투표소에서 볼 수 있는 유권자는 3명밖에 없었다. 정장 차림의 노인과 고운 백발의 할머니 두 분. 한 할머니는 투표용지가 놓인 책상 앞에서 머뭇거렸다. 프랑스의 이 선거구에서는 24개 정당이 입후보자를 냈다. 이 할머니를 도와주러 온 투표소 소장은 투표용지 2개만 기표소에 들고 가면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3개를 집어들었다. 보편선거가 오직 소수 신자들만 치르는 쓸쓸한 종교의식으로 전락한 듯했다.

보통선거가 1848년 2월에 일어난 파리 폭동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처음 채택됐던 시절처럼, 다시 불확실한 미래를 맞고 있다. 당시 보편선거를 처음 조직했던 책임자들은 남자들이(당시에는 성인 남자에게만 투표권이 있었다) 과연 투표하러 갈지, 또 투표는 순조롭게 진행될지 걱정했다.(1) 투표 당일 약간의 소동이 벌어졌으나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80%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최초의 보편선거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물론, 당시에 걱정과 불안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몇 달 뒤인 1848년 6월에 실시된 보궐선거(2)에서는 투표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유권자들이 정부의 강압이 아닌 시민적 의무감에 충만해 투표장에 가서 지역 유지나 황제를 승인하기보다는 정당의 정강을 보고 투표하기까지는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프랑스 공화국은 상대적으로 높고 지속적인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보편선거의 제도화에 성공했다. 이후 선거는 프랑스 공화국에서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2009년 6월 7일 유럽의회 선거가 증명하듯이 지난 4반세기 동안 선거제도는 천천히 허물어졌다. 프랑스 등록 유권자의 59.5%, 독일의 56.7%가 투표소를 찾지 않았다. 폴란드(75.5%), 루마니아(72.6%), 슬로바키아(80.4%)에서의 기권율은 더욱 높았다. 벨기에에서만 매우 낮은 기권율을 기록했지만 이 나라에서는 투표가 법적 의무 사항이다.(3) 유권자가 투표소를 외면하는 경향은 지속적인 추세이다. 1979년에는 기권율이 전체 유럽 유권자의 38%에 불과했지만 1984년에는 41%, 1989년에는 41.5%, 1994년에는 43.3%, 2004년에는 54.6%. 2009년에는 56.8%로 높아졌다.(4) 프랑스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제외한다면 모든 종류의 선거에서 투표율 저하 현상이 목격된다. 유권자는 이제 간헐적으로 투표한다.(5) 이 추세대로라면, 미래는 유권자 없는 민주주의, 혹은 투표자가 드물어서 과거 제한선거 당시와 맞먹는 유권자 비율로 퇴보한 민주주의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투표율이 가끔 급등하는 이유

프랑스의 2009년 6월 선거에서 유효 투표율은 선거인 명부에 등록된 유권자의 36%, 총 잠재 유권자의 25%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기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유럽연합은 선거에 무관심한 유권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것이다. 2005년 프랑스에서 실시된 유럽조약에 관한 국민투표는 70%라는 ‘이례적인’ 참여율을 기록했다. 이는 장기적인 투표율 저하 경향이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4년 만에 다시 약 30%의 유권자가 기권에 합류했다. 이러한 투표율 등락 현상은 유권자가 자신의 한 표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면 다시 투표소에 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편선거는 오랫동안 시민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제도였다. 시민들은 보편선거를 통해 자신의 도덕적·실천적 가치를 믿었기 때문이다. 대표자가 충실히 자신의 의정활동을 보고함에 따라 시민은 중요한 정치적 선택에서 자신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대표자 선거에 임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적 사고는 희미해져갔다. 심지어 많은 이들은 이제 이러한 사고를 환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한 대통령이 자신의 직을 백지 위임으로 간주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유럽조약의 조문을 바꿔 의회에서 가결하도록 꾸민다면 앞서 말한 시민적 사고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고 무엇일까?

어떤 이는 투표율 저하가 시민의식의 약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직업 정치인들은 이런 변명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회피한다. 기권율에 관한 해석이 어렵고 심지어 아전인수 격일지라도, 여론조사는 그 의도와 상관없이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론조사는 오류의 위험 없이 신기록을 발표한 셈이다. 기권자들이 약간 가볍게 투표일을 잊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들은 백지투표나 무효표를 손수 투표함에 넣는 유권자와는 달리 투표소에 갈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 이를 단순히 무관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나 의도적인 무관심이다. 이들이 수동적으로 되었을까? 아마도. 그러나 정치에 대한 반감이다. 이들은 몇이나 될까? 아마도 2005년 이후 한 번도 투표장을 찾지 않은 30%의 유권자가 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많은 숫자임이 틀림없다. 이제는 많은 시민들이 타인에게 주목받기 싫어서 억지로 미사에 참석하는 마을 주민처럼 행동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2009년 6월 7일 저녁,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는 선거 승리를 자축하면서도 기록적인 기권율에 대해서는 아무런 견해도 내비치지 않았다. 입후보자 명부를 낸 다른 정당 대표들도 그다지 슬픈 모습은 아니었다. 어떤 정당은 자신의 패배에, 다른 정당은 자신의 승리에만 몰두한다. 그들은 기권율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야 걱정을 하기 시작할까? 70%, 80% 혹은 90%? 유럽 국가들의 기권율은 이미 막바지까지 올라가 있다. 그래도 이 국가들에서 대표자는 뽑히고 이 대표자들의 면책특권은 계속 확대된다. 그리고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보면 이 상황은 자신을 위해 투표할 후보자가 존재하는 한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집단적 실패는 그 결과가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승자의 만족감을 금지할 수도 있다. 승자는 적대자들보다 약간 더 많은 유권자를 모았을 뿐이다. 단지 대규모 기권율에 기인한 승리를 얻었을 뿐이다. 득표율과 의석 수만 놓고 보자면 선거 결과는 항상 승자와 패자로 갈린다. 그러나 프랑스 여당연합(UMP)의 득표율 27.8%와 유럽환경연합(Europe Ecologie)의 16.2%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실제로 전체 유권자 10명 중 1명(9.58%)꼴로 여당연합에 투표했을 뿐이고 유럽환경연합의 경우는 20명 중 1명(5.6%)꼴인 셈이다.

승자나 패자나 모두 패자다

여당연합은 정치논평의 주된 대상이었다. 여당연합 입후보자들이 선두를 차지한 것은 이들이 여당의 후보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당은 실상 소수의 표를 얻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여당의 득표율 27.8%는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여당 입후보자가 얻은 31.18%에 비하면 낮은 수치임이 틀림없다. 집권여당 입장에서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득표율이 현재 집권여당이 모을 수 있는 최대치라는 사실이다. ‘반사르코지’ 선거운동을 펼친 모뎀(Modem)(6)도, 2007년에 이미 힘이 빠진 극우정당도 모두 집권여당에 등을 돌린 상태이다.

유권자 연령 분포는 더욱 상황을 어둡게 만든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여당연합은 노년층의 압도적인 지지 덕분에 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 인구가 이토록 많은 노년층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한 정당이 이토록 노년층의 표를 쓸어담은 적도 없었다. 선거 당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당연합은 65살 이상 유권자층에서 61%의 유효 득표율을 기록했다.(7) 그런데 청년층은 대대적으로 기권하는 반면에 노년층은 투표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원칙적으로 정치담당 기자는 특정 정당을 옹호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정치 분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논평은 정치인들의 정치게임에 대한 수다에 불과하다. 이들은 직업 정치인들에게만 중요한 것 그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친여 언론은 여당연합의 성공과 이 당을 이끄는 위대한 정치인에 감탄한다. 이른바 야당지는 환경연합의 성공과 이 연합을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를 칭송한다. 기록적인 기권율은 침묵과 숫자 놀이를 통해 지면에서 지워진다. 이들에게 기권율은 백분율의 문제이지 절대적 숫자가 아니다.

물론 정치담당 기자들은 선거의 성공과 실패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라는 점도 알고 있다. 정치에서 철학자 오스틴에 의하면 “말하는 것이 행하는 것”(8)이다. 따라서 승리 혹은 패배가 있으려면 우선 이를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들은 얼마나 ‘니콜라 사르코지의 성공’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말했던가. 이렇게 하기 위해 이들은 모순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선거 결과가 프랑스보다는 유럽을 지향하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나왔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니콜라 사르코지에게 프랑스 내부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 이들은 반사르코지 정서가 거부됐다고 말하면서 여론조사를 근거로 사르코지에 대한 적대감이 투표의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분석이라는 이름을 걸고 편파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은 논평들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 우리는 아직 가늠하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이들의 아전인수 격 해석에 속아왔던가?

정치논평은 스스로 슬그머니 정치를 하면서 동의의 조작에 참여한다. 이 동의는 공론장이 포화상태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공론장은 모든 정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구체적인 행동과 선언 효과를 남발하는 군주,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군주, 군주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서는 한마디도 말할 수 없는 신하 각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는 군주, 친구들이 소유한 상업언론과 자신이 임명한 공기업 사장들이 쏟아내는 대통령에 대한 아첨, 강자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자신은 권력에 복종한다고 전혀 느끼지 않는 언론인들의 아첨, 그리고 정치를 인물 간의 경쟁 구도로 몰아가고 국민의 ‘당연한 여론’을 만들어 대통령에 아첨하는 여론조사로 포화된 공론장이다.

포화상태인 ‘그들만의’ 공론장

2005년 국민투표 직전, 거의 모든 신문의 논설위원들은 유럽조약에 대한 찬성 외에는 다른 가능성이 없다고 합창했다. 이들로 인해 사람들은 유럽과 민주주의에 대한 치유할 수 없는 일부 적대자들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찬성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소로 향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른 이유로 국민들이 반대표를 던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투표 결과로 확인되자 오피니언 리더들은 광분했다. 유권자가 바보이거나 실수를 했다는 것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후 심지어 니콜라 사르코지에 가장 적대적인 진영에서조차 “그와 대적할 인물이 아무도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공론장의 이러한 포화상태는 시민에게 미래를 앗아가버린다. 그들에게는 시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많으면 안 되고 단지 승인하기 위해 필요할 뿐이다. 어느새 나폴레옹 시절의 플레비시트(plebiscite)9)라는 보나파르트 독재의 기제가 변형된 형태로 프랑스에서 다시 부활한 것은 아닐까? 플로베르는 스당전투10) 직후 프랑스의 정치권과 언론이 함께 조장한 정신적 혼동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응했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다, 거짓 현실주의, 거짓 믿음, 심지어 거짓 갈보 [...] 그리고 상황을 판단하는 방식 자체가 거짓으로 꾸며졌다.”11)




글 알랭 가리구 Alain Garrigou
<기표소의 비밀>(Les secrets de l’isoloir, Paris, Thierry Magnier, 2008) 저자.

번역 김태수 asticot@ilemonde.com


<각주>

(1) “프랑스식 ‘발명품’인 보편선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8년 4월.
(2) 당시 입후보자는 동시에 여러 선거구에 등록할 수 있었다. 여러 선거구에서 동시에 당선되면 한 선거구를 선택해야 하고, 그 결과 새로운 보궐선거를 해야 했다.
(3) 1894년에 실시된 이 규정은 기권자를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기권을 반복하면 선거인 명부에서 완전히 삭제되며 공직 임명과 승진에서 제외된다. 모든 기권자를 처벌하기에는 법원의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권자에 대한 실제적인 법적 처벌은 드물다. 그러나 이 제도는 사회적 낙인의 효과가 있다.
(4) Guillaume Courty & Guillaume Devin, <유럽연합의 건설>(La construction européenne), Paris, La D?couverte, 2009.
(5) Céline Braconnier et Jean-Yves Dormagen, <기권의 민주주의>(La d?mocratie de l’abstention), Paris, Gallimard, 2008.
(6) ‘민주운동’(le Mouvement démocrate, Modem)은 2007년 대통령 선거 직후 자유주의 중도연합(UDF) 리더인 프랑수아 바이루가 창당한 정당이다. 이 정당은 집권여당과 야당(좌파) 모두에 대해 독립적인 정치적 입지를 표방한다.(옮긴이)
(7) TNS Sofres-Logica 여론조사 결과, 2009년 6월 7일.
(8) John Langshaw Austin, <Quand dire, c‘est faire>, Paris, Seuil 1991(1970).
(9) 플레비시트(plebiscite)는 국가의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집권자가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묻는 제도이며 국민투표(referendum)의 왜곡된 형태로서 보나파티즘(나폴레옹 독재)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하였다.(옮긴이)
(10) 보불전쟁(1870-1871) 당시, 스당(Sedan) 전투에서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이 지휘하는 8만 3천의 프랑스 병사와 함께 프러시아군의 포로로 잡혔다. (옮긴이)
(11) 귀스타브 플로베르, “조르주 상드에 보낸 편지, 1871년 4월 29일”, <서신문 모음 Correspondance complète>,éditions L. Conard, Paris, 1926-1954, 6ème série (1869-1871) 229-230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