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큰 고개는 넘었다
2009-07-03 이상헌 | 전 JP모건 장외파생팀장·국제재무분석사
미 은행 미실현손실 1조달러 ‘뇌관’…실물회복 지연땐 악순환
세계경제가 2007년 미국 주택시장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금융 불안으로 위기를 맞은 이래 벌써 2년이 다 지나가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은 2006년 미국 주택시장의 상승세가 꺾이면서 이미 시작됐으나 이것이 미국과 유럽 대형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위기, 심지어 지급불능 위기로까지 번지게 된 것은 2007년 8월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금융기관들의 유동성·지급불능의 위기를 초래한 금융위기는 2008년 9월에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신용경색이 금융권 밖의 실물경제에 이어 미국 밖의 전세계로 번지면서 2008년 4분기에 이르러서는 미국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6%대의 역성장을 했다. 2009년 1분기에 이르러서도 경기 추락이 멈추지 않고 유럽의 경우에는 지난해 4분기보다도 크게 악화된 14%대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1930년대의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에 미국이 지난해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안을 실행하고 다시 7천800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 출동을 결정했으며, 연방은행은 위기 전에 8천억 달러에 불과했던 자산 규모를 2조2천억 달러 규모로 키우며 자금시장에 대대적으로 신용을 공급했다. 위기의 진원지인 선진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가 전무후무한 규모의 파격적인 금융 및 재정 정책을 내놓으면서 지난 3월 이후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금융위기는 끝난 것인가?
3월 금융시장의 대반전
지난 3월 미국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대책으로 주목할 만한 정책들을 쏟아냈는데 다행스럽게도 일단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해 시장심리의 대반전을 이끌어냈다. 그중 주목할 만한 것이 네 개가 있는데, 이 중 세 가지가 대형 은행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이었으며 나머지 한 가지는 금융권 밖의 신용경색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금융 시스템과 관련한 세 가지란 은행자산의 시가평가제도의 개선, 은행들의 자본건전성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민관합동 펀드에 의한 은행의 부실자산 매입이고, 나머지 하나는 연방은행이 직접 자금을 풀어 모기지 채권이나 미국의 국채 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에 힘입어 미국의 은행주 인덱스는 지난 3월 이후 2배 이상으로 가치가 상승했고 미국의 일부 대형 은행들은 시장에서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데 성공하며 급기야는 정부에 의해서 투입된 구제금융자금(TARP)을 상환하는 곳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림1>은 TED 스프레드라고 불리는 것으로 통상 3개월 국채와 3개월 만기 LIBOR 금리(London Inter-Bank Offered Rate·런던 시장 은행 간 여신금리) 간의 차이로 이번 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 지표인데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인 지난 2007년 수준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을 알 수 있다. 통상적으로 신용위기가 발생하면 은행들은 현금을 극단적으로 선호하게 되며, 그 결과 현금과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단기국채의 수익률은 내려가게 되지만 은행들 상호 간에는 자금의 여·수신을 기피하게 돼 금리가 상승하게 됨으로써 이 두 금리의 차이는 벌어지게 되며 시장의 신용상태가 양호해지면 금리 차이는 축소된다.
<그림1> TED 스프레드의 추이
자료: <블룸버그통신>
장기금리 상승은 은행엔 되레 호재
2009년 1분기에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거의 대부분이 흑자 전환한 것으로 결산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산 발표 직전에 회계기준원(FASB)이 발표한 회계기준의 변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계기준원은 금융기관의 시가평가 기준을 엄격한 시장가격 기준(Mark to Market) 방식에서 좀 더 유연한 기준인 모델 평가(Mark to Model) 방식으로 변경했다. 즉, 유동성이 크게 떨어지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의 경우 신뢰도가 낮은 시장가격보다 자산의 미래 현금흐름을 추정해 그 현재가치를 계산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에 의해서 대부분의 대출자산은 시장가격보다 은행들의 선의의 추정에 의한 자산평가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서 일부 비판적인 견해도 있으나 사실 미국이 도입한 시장가격 기준은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는 시행하지 않는 엄격한 기준으로 미국이 실질적으로는 외국과 기준을 맞춘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출자산들의 수익성에 대해서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매킨지사에 의하면 현 금융위기로 인한 은행들의 부실대출 규모는 대략 3조 달러에 달하며, 그중에서 이미 평가손을 계상한 부분은 1조 달러 정도이며 아직 평가손을 계상하지 않은 부분이 2조 달러나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러한 관측은 대체로 비관론자에 가까운 누리엘 루비니 교수 등의 견해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남아 있는 미실현 손실 2조 달러 가운데 절반 정도가 미국 은행들의 대출손실이고 나머지는 해외 금융기관들에 의한 것이므로 미국 은행들이 앞으로 실현해야 할 미실현 손실은 약 1조 달러에 달할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러한 시나리오를 결코 예측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지난번 미국 재무부에 의한 스트레스 테스트의 결과로서 미국 내 자산의 60%를 보유하는 19개 대형 은행들의 대출손실이 최악의 경우 6천억 달러에 달할 것임은 위의 추정과 대체로 평가가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그림2> 미국 내 부실대출 자산 규모
자료: 블룸버그 WDCI(Write-Downs and Credit Losses), 매킨지 분석
한편 구제금융 자금 7천억 달러를 필두로 정부의 재정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국채 발행이 크게 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공급 과잉 우려로 장기금리가 크게 상승함에 따라 주택담보 대출금리도 크게 오르는 등 실물경제에의 파급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은행들에 오히려 큰 수익 개선을 안겨줄 전망이다. 은행들의 업태라는 게 단기조달 장기투자임을 감안하면 현재 2년물 국채와 10년물 국채 간 금리 스프레드가 2.6% 대로 역사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인 점은 은행들의 예대마진을 크게 늘려줄 것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 찾는 게 관건
위기의 진원지가 된 미국을 중심으로 은행 시스템의 상황에 대해서 점검해보았는데,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시장 반응과 은행의 수익성 개선 전망 등으로 볼 때 큰 고개는 넘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실물경제가 얼마나 빨리 회복할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실물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서 빠르게 회복하지 못한다면 다시 실물 부실이 심화돼 금융 부문에 부실이 쌓이게 되어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위기를 불러온 많은 원인에 대해서 초미에 간략하게 언급했으나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그것은 미국의 과소비와 중국을 비롯한 수출입국들의 과잉 저축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신용이 과잉 공급되고 그에 따라 버블이 발생했으며, 부채로 쌓아올린 버블이 붕괴되면서 일어나는 부채 디플레이션이 현 상황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그림3>에서 보듯이, 미국의 경상적자는 미국 소비자들의 저축으로의 회귀에 의해 급격하게 축소돼 그 결과로 세계적으로 무역이 줄어들고 있다. 금융위기가 끝나고 실물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한 후에 동아시아형 수출입국 모델이 진정한 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림3> 미국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
자료: calculated risk 블로그
<그림4> 미국의 무역적자 추이
자료: calculated risk 블로그
글 이상헌
JP모건과 CLSA증권에서 장외파생상품 팀장을 역임한 미국 공인재무분석사(CFA)로, 현재 네이버의 파워 블로그 ‘헷지드 월드’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