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협동조합 등 사회적 가치 중시하는 조직들 급부상
무늬만 ‘사회경제’ 포장, 진정한 대안으론 역부족

2009-07-03     안 드 케로강 | 정치학자

고삐 풀린 금융 자본주의에 맞서, 지구촌 곳곳에서 ‘경제와 사회의 융화’를 목표로 한 ‘사회적 경제’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오래전부터 일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 언급돼온 사회적 경제가 최근 야만주의적 자본주의의 결점을 보완할 대안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개인의 사익 추구와 단기적 수익을 자랑하던 금융 자본주의가 명백한 실패를 맞은 상황에서 사회적 경제의 근간이라는 협동정신과 상호부조 및 공동 연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과연 사회적 경제가 갈가리 찢겨진 자본주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시카고·디트로이트·클리블랜드의 일부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용대출을 해줘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회적 은행 ‘쇼어 뱅크’, 가까운 도시 철도역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자동차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게끔 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한 협동조합 ‘오토쿨’(Autocool), 페리고르 지역 연합 공동체에 속한 세 마을에서 식료품의 공동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창설한 지역민들…. 사회연대적인 기업들이 이제 새로운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지껏 사회연대적인 기업의 구실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며 ‘역사의 우발적 사건’으로만 치부하던 정치인들이 이제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적 연대를 위해 이런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눈에 띄는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12일 ‘사회적 경제 기업 학교’가 마르세유에서 문을 열었다. 이런 유형으로는 프랑스 최초의 학교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프랑스에서 생산 노동자 협동조합(Scop)의 수는 지난 8년 동안 3배나 증가해, 2009년 현재 1950곳에 달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2월 9일에 발표한 향후 계획에서 이런 기업의 창업을 지원하는 데 대대적인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2월 19일에는 유럽의회가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방안으로 사회적 경제의 중요한 구실을 강조한 결의안을 채택하며(찬성 580표, 반대 27표, 기권 44표), “유럽 내의 시장에서 사회적 경제 기업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연합체와 상호공제조합 및 재단을 법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제3의 체제’ 또는 ‘비영리 부문’

그렇다면 사회적 경제는 정확히 무슨 뜻일까? 유럽위원회는 ‘제3의 체제’라 말하고, 일부에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부문’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어쨌든 사회적 경제 부문에서는 연합체, 재단, 상호공제조합, 협동조합 등 다양한 주체가 활동한다. 그들은 금융의 지배자가 결정권을 갖는 자본주의 논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본의 축적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OECD-LEED(1)에서 정책 개발을 담당하는 안토넬라 노야는 “이익 창출만이 이런 단체들의 목표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 단체들이 자금의 안정적 운영과 조직의 영속성에 필요한 이익을 창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상호공제조합들의 연합체인 Euresa 사무총장 티에리 장테는 “사회적 경제는 예전부터 시장에는 있었지만 금융계에 없었을 뿐이다. 상인과 소비자의 간격을 떼어놓고 싶은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미국식 자선단체,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조직인 독일의 네츠(Netz), 브라질의 ‘공동체’, 프랑스식 생산협동조합 등 어떤 형태를 띠든 사회적 경제는 자본주의와 일정한 선을 긋고 민주적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고 그는 강조했다.(2) 그는 “개인의 성장, 자유의지에 따른 가입, 생산된 재화의 공정한 분배, 정부로부터의 독립, 연대라는 공동체적 가치, 공평한 관리를 원칙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주식 하나가 한 표를 행사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경제 조직에서는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할 뿐이다. 생산협동조합에서는 임금 노동자가 자본의 51% 이상을 보유하고, 투표권의 65%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들이 중대한 결정에 참여하고 조직의 위험까지 함께 떠안는다.

유럽식과 미국식으로 나뉘어

사회적 경제의 방향은 크게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집단 운영 방식을 중시하는 ‘유럽식’이고, 다른 하나는 용역 제공과 개별적인 관계에 치중하는 ‘미국식’이다. 이탈리아 토렌토대의 엠마노 토르티아와 카를로 보라가차의 평가를 보면, 재단 및 자선기관의 활동과 기업합동(트러스트)은 대부분 미국과 영국, 호주 등 앵글로색슨 국가에 몰려 있는 반면 유럽 대륙에서는 협동조합과 상호공제조합이 전통적으로 강세다. 일하는 부모가 자식 양육에서 중요한 몫(12% 정도)을 맡는 영국과 스웨덴에서는 소비자협동조합과 주택협동조합이 상대적으로 발달했다. 한편 독일에서는 보험 성격을 띤 상호공제조합이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발달했다. 프랑스에서도 지난 3월 24일 세 공제조합인 마시프(Macif), 마이프(Maif), 마트무(Matmut)가 합병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에서 마시프의 대표이사 로제 이젤리는 “우리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연대적 성격을 띤 대규모 공제 회사로 변신하려 한다”고 선언했다. 주로 지역적으로 특화된 부분에 집중하는 소규모 협동조합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발달했다. 건강공제조합은 벨기에와 아일랜드와 네덜란드에서 특히 활성화됐다. 프랑스에서는 건강공제조합 외에도 농업 부문의 협동조합이 발달했다(10곳 중 9곳). 게다가 프랑스 저축액의 60%가 이런 협동조합 성격의 금융기관에서 조성된다. 방크 포퓔레르, 케스 데파르뉴, 크레디 아그리콜, 크레디 뮈튀엘이 대표적이다. 현재 이런 금융기관에서만 5만 명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농산물 가공 부문(욥레), 유통 부문(시스템 위, 상트르 르클레르), 심지어 광학렌즈 부문(크리스, 옵티크 2000)에서도 협동조합이 결성돼 있다. 꽤 알려진 이름이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협동조합인지 아닌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이름들이 있다. 크레디 아그리콜의 경우 협동조합 성격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협동조합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리사크의 한 광학사는 광학협동조합을 언급하며 “조합 덕분에 우리는 전국적인 망을 이용할 수 있다. 조합에는 유연성이 있고 민주주의도 있다. 조합원들에게는 조합의 운영 방식을 감시할 권한까지 있다”고 확인해주었다. 또 모든 조합원이 자신의 사업이 바쁘더라도 관리위원 선거에 참여할 수 있고, 판촉을 위한 홍보 방법 같은 의제를 결정하는 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전국소비자협동조합위원회(FNCC)의 한 직원은 “조합원인 기업들은 집단적으로 협회나 조합에 소속돼 있지만 그들의 고유 자본은 그대로 보존하기 때문에 공개 매입의 대상이 되거나 양도되지 않는다. 이런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주체로서 장기적인 계획을 시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산할 제품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거나, 조합의 운영에 참여하고 싶은 조합원은 사회적 분담금을 납부함으로써 자격을 얻는다. 총회에서 그는 다른 조합원들과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할 뿐이다.

복지국가 퇴색하며 주목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정책이 약화되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던 부문들이 사회적 경제 부문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눈에 띈다. 예컨대 퀘벡에서는 2004년부터 여성단체와 환경단체 및 건강 관련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미국에서는 지역사회 개발 금융기관(CDFI)이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프랑스와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서는 실업이 심해지자 협동조합적 조직들이 공공사업 부문의 약화를 일시적으로 상쇄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에코텍 리서치 앤 컨설팅’의 선임 연구원 피터 로이드는 “기존 경제가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면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단기적 고용 형태인 임시직을 창출하는 조직들의 문호가 크게 넓어졌다”고 진단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으로 1천 명가량 직원을 고용한 논첼로의 사례는 무척 흥미롭다. 논첼로는 20년 전 포르데노네주의 정신건강센터에 의해 창설됐는데, 당시 이 센터 같은 유형의 요양기관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바람에 병원을 떠날 처지가 된 환자 6명과 정신과 의사 3명이 창설을 주도했다.(3) 논첼로는 장기 실업자, 정신질환자, 약물 중독 경력자 등에게 가전제품의 수거를 맡기고 그에 합당한 임금을 지급한다. 또한 노인과 어린이, 알츠하이머병 환자 등에게 전문 기술까지 가르친다. 얼마 전에는 최신 레이저까지 구입한 뒤, 가전제품을 분해해 수거한 부품을 가전업체인 자누시에 납품했다. 논첼로는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과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지하 수리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1만8600여 협동조합에서 40만 명가량이 일하고 있어, 일자리를 가장 많이 창출하는 부문 중 하나이다. 상당수의 이런 협동조합은 ‘녹색산업’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유럽에서는 협동조합 운동이 사용자와 자원봉사자와 임금 노동자 간의 제휴, 협동조합과 기업의 제휴를 허용하는 특별법 제정까지 이끌어냈다. 스페인에서는 특별법 제정 외에도 정치권과 공권력의 지원으로 노동자협동조합이 눈부시게 발달해, 몇 년 만에 1만7천 개 조합이 창설되고 10만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프랑스에서는 여러 행위자, 이를테면 임금노동자·자원봉사자·사용자·공공조직·기업·조합·개인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연합할 수 있는 ‘공동 이익을 위한 협동조합회사’(SCIS)에서 이런 가능성을 찾고 있다.(4) 현재 프랑스에는 아르티장 뒤 몽드, 에네르쿠프 등 134개가 있다. 이런 협동조합 형태를 띤 회사들은 과거에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이제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에서 주로 활동한다. 예컨대 에네르쿠프는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 재생에너지 분야 관계자의 협력을 유도하는 데 힘쓴다. 에네르쿠프 경영진의 설명대로라면, “협력에서 얻은 이익은 에너지 활용을 극대화하고, 재생 가능한 전기를 생산하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재투자된다”.(5) 누구라도 최소한의 분담금을 출자하면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분담금에서 세금 25%를 뗀 만큼의 권리를 갖는다.

새로운 법이 제정되면서 협동조합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지만 기존의 경제 모델, 즉 ‘사회적 기업’(entreprises sociales)과의 차별성이 희석되는 부작용도 없지 않다. 노야는 이렇게 지적한다. “사회적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만 협동조합과 똑같은 가치를 추구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사회적 기업이 공익을 추구하고 개인과 조직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노력한다는 조건에서 협동조합과 같은 지위를 누린다.” 영국에서 지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설립된 ‘공동체 이익 회사’(Community Interest Company)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회사의 자본금은 제한돼 있으며, 이익 배당금도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 ‘사회적 기업’과는 구별돼

이런 기업들은 권한을 분산하고,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금융자본보다 사회적 자본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띤다.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회사인 ‘베터 월드 텔레콤’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10년까지 매년 100만 달러를 자사가 설립한 재단에 출자할 예정이고, 매출의 3%를 기부금 형식으로 아동 지원, 교육, 환경에 투자하고 있다.(6) 또 풍력에너지를 사용해 서버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형 텔레콤 회사들에 비해 훨씬 저렴한 사용료를 책정하려 애쓴다.

1980년 인도에서 창립된 신개념의 국제 자선협회인 아쇼카 재단은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려 활동하는 개혁 운동가들을 선별해 지원한다. 현재 아쇼카 재단에 가입한 기업가는 1만 명을 훌쩍 넘어섰고, 그들은 서로 생각과 경험을 교환하며 세계 곳곳에서 ‘선행’을 베푼다. 이런 ‘혁신적인’ 기업이 사회적 경제의 진화에서 자연스레 등장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학자들이 있는 반면에, 그런 기업의 운영이 전혀 민주적이지 않으며 여전히 자본이 중심이라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장테는 “이런 ‘사회자본주의’를 어중간하게 흉내낸 기업들 때문에 자본주의가 한층 도덕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럼, 사회적 경제의 ‘순수파’ 조직이 있는 반면에 속임수로 그런 흉내만 내는 조직이 있는 것일까? 또 협동조합과 상호 공제조합은 여전히 애초의 미덕을 유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부 조합의 변화를 지켜보면 그렇지 않다. 게다가 대규모 협동조합과 다국적 기업을 구분하기가 힘들 때도 적지 않다. 은행업계의 경우, 금융위기와 관련된 위험 상품에 똑같이 노출된 점이나 경영진에게 과도한 보수를 지급한 점이 둘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상근 직원이 위압적인 경영의 ‘기계’로 변해버린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이다. 합병과 흡수 및 계열화에서 ‘큰손’ 구실을 하려는 목표 때문에, 양심적이지 못한 경영자들을 ‘효율성’을 빌미로 임명하기도 했다. 크레디 뮈튀엘이나 크레디 아그리콜과 같은 상호공제조합은 몸집을 키우려고 위험한 금융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2009년 5월 19일, 크레디 아그리콜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은 적은 배당금에 불만을 터뜨렸다. 방크 포퓔레르는 장인들이 설립했다는 역사를 고려할 때 투기를 했으리라 의심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탁월한 경영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던 이곳은 이제 방만한 운영으로 적자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방크 포퓔레르는 케스 데파르뉴와 손잡고 몸집을 키우는 경쟁에 뛰어들었다. 두 협동조합은 나틱시스 투자은행을 설립해 주식의 71.5%를 똑같이 나눠 보유했다. 나틱시스는 ‘유해한’ 금융 상품을 지독히 팔아댔던 것으로 밝혀졌다.(7)

다른 이유에서 탈선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나 공정한 거래가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인 프레데릭 카르피타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적절한 이익을 안겨주는 관계를 구조로 정착시키고 개발도상국의 농부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애초 원칙이 때때로 흔들렸다. 그는 얼마 전에 출간한 책에서, 카르피타는 “커피나 쌀, 목화를 소규모로 생산한 농부들에게 판로를 열어주기 위해서 대형 유통회사와 거래한다면 공정무역이 고결하게 지속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8)

그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막스 하벨라르’의 경영진은 윤리적 제품의 대중화라는 명분으로 그들의 전략을 합리화했다. 2000년 이후로 공정무역을 통한 판매액이 매년 평균 20%가량 성장했다. 덕분에 이런 윤리적 상품들을 5만여 슈퍼마켓과 2800곳 이상의 전문 매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카르피타는 “소생산자들에게 더 큰 시장을 열어준다는 핑계로 그들을 종속시키고 조합의 영혼을 내버릴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 때문인지 아르티장 뒤 몽드와 같은 조합들은 소규모 형태를 유지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사회학자 세르주 포강은 <연대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공제와 연대라는 개념을 재검토하자고 주장한다. 공제조합 체제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여러 조직에서 눈에 띈다. 대표적인 예가 ‘사회연대적 경제 촉진을 위한 국제 조직’(RIPESS)이다. 그 조직의 발기인들은 국가 단위의 조직들, 예컨대 페루의 ‘사회경제 조직 네트워크’, 퀘벡의 연대 경제 조직, 세네갈의 사회연대적 경제 조직 등이 결성되는 데 큰 몫을 했다.

노야는 “금융 분야에서도 혁신적 창조력을 발휘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캐나다 퀘벡에 있는 사회적 경제 건설 신탁회사는 15년간의 장기대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대자금, 장기자본, 사회적 금융, 웹을 통한 일대일 금융 등 투자자들이 신속한 자금 회수를 기대하지 않는 새로운 투자 방법이 많다. 인터넷 덕분에 사회적 경제 조직은 다양한 형태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브라질 등 약진… 국제연대도 기지개

앞으로 사회적 경제는 여전히 주변적 현상에 머물고 말 것인가, 아니면 지속 가능한 경제의 주춧돌로 각광받을 것인가? ‘이민자의 국제 연대 조직’(OSIM)의 말을 들어보면, 이민자들로 인해 상황이 공동 개발에 유리한 쪽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에서는 부족했던 농지개혁의 상당 부분이 사회적 경제로 넘어갔고, 현재 2만여 협동조합이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다. 전 노동운동가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특히 ‘땅 없는 농업노동자 운동’(MST)의 활동으로 브라질에서는 사회적 경제의 미래가 밝다.

이 운동을 통해 농부들이 조직화되면서 농산물의 생산과 가공 및 상품화를 한층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시골 지역에 건강과 교육 등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용이해졌다. 도시에 비해 손해 보던 농촌 문화의 재평가, 생물학적 농법, 종자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 특산물의 보호도 가능해졌다. 물론, 농부들과 농촌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빈도도 증가했다.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과도기에 사회적 경제가 ‘시민사회’적 경향을 띠었다. 또 협동조합이란 개념이 공산주의 시대에 사용됐다는 이유로 경원시돼, 사회적 경제 분야의 발전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건강공제조합들이 폴란드와 슬로베니아에서 조직되고 있는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에서도 사회와 경제 간의 균형 회복은 주된 과제이다. 경제학자 이냐시 삭스가 이론화한 ‘환경 친화적 개발’(ecodevelopment)이 회원국들에서는 주된 과제가 됐다. 환경 친화적 개발 모델의 궁극적 목적을 꾸준히 지향하면서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테는 “이런 경제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확실히 하고, 포괄적인 대안 경제라는 역할을 분명히 재천명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상황을 항상 정확히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족쇄에서 해방되려면 사회적 경제가 정치적 프로젝트로 승화돼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기업이 있을 뿐 아니라 사회를 구조화하는 모델도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경제 모델을 정치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관련 조직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했다. 2007년 몽블랑 회의에 모인 지도자들은 ‘전 지구적인 뉴딜’을 선언하며, 각국 정부에 사회적 경제의 실현을 위한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9) 수십여 건의 수평적 합동 프로젝트와 결연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다. 새로운 에너지 형태를 찾아내기 위해 기니의 여성과 네팔의 여성이 손잡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남아메리카와 남아프리카의 조합들도 연대해서 일한다. 콜롬비아에서는 이탈리아의 사회적 협동조합 협회의 지원으로 협동조합들이 조직됐다.

사회적 경제는 지금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경제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장테는 조심스레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경제가 국가 부채라는 무거운 짐을 해결할 수는 없다. 사회적 경제가 외환 보유액에 따라 반복되는 위기를 해소할 수는 없다. …사회적 경제가 기적처럼 세계경제를 해결할 거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결국 사회적 경제가 본래의 구실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책임은 사회적 경제의 몫이다.

글 얀 드 케로강 Yan de Keroguen
<공론장>(Place-Public.fr)의 공동 창립자. <바다, 다음의 도전>(2009)의 저자.

번역 강주헌 2nabbi@ilemonde.com
불문학 박사 출신의 문화비평가 겸 번역전문가. <선물> <해리포터 철학교실> 등 100여권의 번역서를 펴냈다.



<각주>

(1)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Local Economic and Employment Development의 약어.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지역경제와 고용개발을 뜻한다.
(2) 세실 랭보, ‘노동자가 되살린 기업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12월.
(3) 1991년에 통과된 기본법에서는 협동조합에 정신병 환자 사회 통합을 담당할 권한을 부여했다.
(4) 경영학 어휘로 ‘주주’(shareholder)와 ‘이해관계자’(stakeholder)는 다르다. 이해관계자는 기업의 운영에 관련된 임금노동자, 고객, 지방자치단체, 조합 등을 가리킨다.
(5) www.enercoop.fr.
(6) 이 회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한 달에 1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환경 의식 고취’의 알맹이를 상실한 허식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피가로 마가진>(2009년 4월 10일)을 보면, 이브 로셰, 파리 시청 등과 같은 조직들이 마케팅 전략으로 이 운동을 활용했다.
(7) 나틱시스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프랑스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금융기관이었다. 나틱시스는 2008년에 28억 유로의 순손실을 보았고, 2009년 1분기에 다시 18억 유로의 추가 손실을 기록했다. 2006년 말 나틱시스가 상장할 때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소액 주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8) 크리스티앙 자키오, ‘막스 하벨라르, 공정무역의 모호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9월.
(9) 제4차 몽블랑 회의는 오는 11월 9일과 10일에 샤모니몽블랑에서 ‘어떻게 해야 지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적 경제의 구실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전세계에서는 농업·어업·산업·소비·신용 부문에 관련된 75만여 개 협동조합이 1억 명가량의 임금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조합원 수는 7억7500만 명에 달한다. 유럽에서는 2008년 현재 협동조합, 공제조합, 연합회 등에 가입한 조합원 수가 약 2억4800만 명이다. 28만8천여 개 협동조합이 5천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공제조합과 협동조합이 보험시장의 30%를 점유하고(보험 관련 종사자는 850만 명), 신용협동조합의 경우 조합원 수는 3600만 명, 고객 수는 9100만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