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과 기아 사이의 북한

2009-07-03     <르몽드 세계사>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 강대국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에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의 핵 집착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1958년 미국의 한국 내 핵무기 배치와 2002년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전략 채택이 북한의 핵 집착에 대한 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냉전시대에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을 배치하자 북한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발족시켰다. 미국은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전시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기존 병력으로 침략을 막아낼 수 없는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소련이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유럽에 배치된 전략 핵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전면전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뜻이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전쟁 개시 이후’에는 아무런 제재 없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핵전쟁’ 시나리오를 포함한 군사훈련 실시는 미국의 의도를 설명해주었다. 물론 미국의 목적은 한반도에서의 재래식 공격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핵 전문가 피터 헤이스가 지적했듯이 북한의 실제 핵공격을 ‘구상 가능하며 나아가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보는 미국의 위협에 북한이 ‘과잉 견제’ 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1958년 핵무기가 배치되고 30여 년이 흐른 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한국 내 핵무기 철수를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8년 동안 북한의 핵무장을 동결시킬 수 있는 북-미 간 제네바합의(1994) 체결의 가능성이 열렸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과 경제 원조를 기대하면서 군부의 강경 노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동결’ 합의를 결정했다.

그러나 의회의 다수를 이루었던 공화당이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바람에 클린턴 행정부는 김 위원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의회 다수인 공화당원들은 ‘동결’ 합의의 일환으로 제공되는 중유를 끊어버리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북한과 같은 전제주의 국가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1994년의 제네바합의를 공격했다. 그들은 북한 체제를 붕괴시켜야 하며, 한국이 북한을 흡수하거나 적어도 북한의 체제 변환을 도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제네바합의 지지자들은 북한에 대대적인 개혁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우선 관계를 정상화하면 북한의 정치적 자유화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난항을 거듭하는 협상


2001년 1월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클린턴 행정부가 공화당 정부에 인계한 제네바의 기본 합의를 유지하기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2002년 9월 20일, 부시 행정부는 미국 국가안전보장전략을 발표했다. 미국이 잠재적인 적대국가로 분류한 북한과 그 밖의 다른 ‘불량국가’들을 상대로 예방 전쟁을 개시할 권리가 있음을 선포한 것이다. 2002년 12월 12일에 미국이 기본 합의를 파기한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었다. 그러자 북한은 1994년부터 핵 프로그램을 감시해온 국제 감시단을 추방했다. 북한의 강경파는 미국의 국가안전보장전략을 통해 그동안 자신들이 합의에 대해 불신을 품었던 것이 옳았다고 평가하면서 핵 프로그램을 재개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농축 우라늄으로 무기 제조를 계속한 것은 1994년의 제네바합의를 위반한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이 채택한 새로운 노선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농축 우라늄으로 핵무기를 제조했다는 증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2005년 초 한국의 고영구 국가정보원 원장은 “농축 우라늄 무기 제조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설비를 북한이 수입할 수는 없었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미국 백악관은 이라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보를 조작한 것이다.

북한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와는 상관없이,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의 체제 변화를 요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2005년에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같은 해 9월 19일 북한·한국·중국·일본·미국·러시아 6개국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북한은 미국이 경제·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면, 그 일정을 맞춰 핵무기 생산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05년 말에도 구체적인 일정에 관한 협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따라서 북한이 작전용 핵무기를 실제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출처 <르몽드 세계사>
번역·권지현 yein20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