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너희가 철학을 아느냐?

프랑스의 대표적인 석학 3인과 떠난 11일간의 ‘철학 유람기’
페리, 쥘리아르, 브뤼크네르 등의 ‘진정성 없는’ 지적 유희
돈도 많고 여유로운 유람선 승객들에겐 사교용 심심풀이

2009-08-06     세바스티앵 퐁트넬/언론인

배경사진1+인물사진 3장(페리, 쥘리아르, 브뤼크네르)

사진설명/ <뤽상부르 공연에서 조각배를 띄우는 아이들>, 1930-브라사이 ->프랑스판 8월호7면

‘사치, 안락 그리고 두통.’ 휴식과 성찰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일부 신문들이 주최한 유람선 여행을 규정짓는 단어들이다.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철학과 문학이 넘치고 풍요로웠던 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멋스런 여행을 직접 체험해보려는 의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미국의 <더네이션>, 프랑스의 <르피가로>가 호화판 유람선을 임차해 그런 여행을 주관한 장본인들이다. 승객들은 지식인들의 강연, 풍성한 식사, 문화 기행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철학 월간지 <필로소피>(Philosophie)가 주최한 철학 유람 여행에 한 언론인이 합류해, 이 시대의 대표적 철학자로 알려진 뤼크 페리, 자크 쥘리아르, 파스칼 브뤼크네르, 그리고 지식인 수백 명의 지적 향연을 가감 없이 전한다.

2009년 5월 13일 수요일

마르세유의 선착장에서 한 숙녀가 “가수들이 도착했다”고 말했다. 완벽하게 정확한 정보였다. 거의 흡사했다. 가수처럼 그들의 머릿결은 바람에 휘날렸다. 하지만 그들은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철학하는 사상가들이었다. 그것도 이름 없는 학자가 아니라 뤼크 페리, 자크 쥘리아르, 파스칼 브뤼크네르라는 석학들이었다. 그들은 열흘 동안 지중해에서 ‘철학 유람선’을 이끌 예정인데, ‘세계화 시대와 문명의 다양성’란 주제를 내세웠다.

석학 3인과 500명 승객을 태운 ‘철학 유람선’

오후 6시에 이들 석학과 5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프린세스 다나에’호는 시칠리아를 향해 출항했다. 이틀 후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2006년 개조된 호리호리한 외관의 이 유람선은 길이가 162m, 너비가 21m에 달했다. 배는 콩스텔라시옹, 머큐리, 비너스, 주피터, 새턴, 마르스, 넵튠으로 아름답게 명명된 7개 갑판들로 이뤄졌다.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곳곳에 240명의 승무원들이 배치됐다.

해가 떨어지자, 철학 잡지 <필로소피>와 함께 이번 ‘철학 유람선’ 이벤트를 공동 주최한 문화여행 전문회사인 ‘앵테르메드’의 사장이 여행 기간 중 강연을 해줄 3명의 철학자들을 공식 소개했다. “이분들의 자유로운 사고는 종종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기도 합니다.” 요컨대 그들은 우상 파괴자들이라는 얘기다. 이곳 바다로 떠나오기 며칠 전, 브뤼크네르는 <르몽드>를 통해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과감하게 고발했고, 페리는 2009년 6월 유럽선거 후보로 출마해달라는 집권우파인 대중운동연합(UMP)의 권유를 거부했다.(1)

승객들이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예외적 인물인 저널리스트 장프랑수아 라비유 역시 여행에 초대되었다. 라비유는 <LCI 채널>에서 그 유명한 ‘페리-쥘리아르’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 그의 참석은 선상에서 열정적인 논란을 뜨겁게 달굴 것이다.

2009년 5월 14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정오까지 빅토리아란 한 여성이 주피터 갑판에 위치한 카지노에서 ‘블랙잭 강의’를 열었다. 그러나 여행 내내 이 젊은 여성은 거의 텅 빈 장소를 혼자 차지하다시피 했다. 배에 탑승한 일부 음악인들이 슬롯머신을 찾았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토큰보다 철학을 더 갈망했다.

출발 전 각 탑승자들은 번호를 매겨 30여 명씩 나눈 그룹에 배속되었다. 각 그룹은 식사할 때나 강연을 들을 때, 심지어 산책을 나갈 때도 함께 움직였다.

오후 2시 15분 2002~2004년에 장피에르 라파랭 정부에서 청소년, 교육 및 연구부 장관을 지냈던 뤼크 페리가 주피터 갑판의 그랜드 살롱에서 1, 2, 3, 5, 6, 7, 8, 11 및 12그룹을 대상으로 첫 강연을 했다. 4, 9, 10 및 13그룹은 비너스 갑판의 영화관에서 생중계되는 그의 강연을 보게 된다. 주제는 ‘세계화 시대에 왜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가?’였다.

한쪽으로 치우친 철학자들의 세계화 평가

“세계화는 우리의 모든 동시대인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고 그가 말을 꺼냈다. “고뇌, 공포에 사로잡힐 때 사람들은 어리석어지며, 자기중심적으로 변합니다. 장관직을 맡았던 시절 첫 문장을 ‘우리는 불안합니다’로 말문을 열지 않는 방문객을 나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페리의 강연을 들으면서, 청중은 ‘세계화란 먼 바다로 떠나는 경쟁의 시작’, ‘혁신하지 않는 기업가는 죽은 기업가’, ‘기업은 영구혁명의 장소’ 등의 견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싶었다. 그는 청중을 휘어잡으면서 자신의 식견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규제받지 않는 세계화의 과도함, 소비의 남용에 도전하는 것이 아무리 적절하다 해도 대안세계주의자들은 시장 뒤에 꼭두각시 조종사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품고서 헛소리를 해대고 있습니다.” 시장의 배후? “아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웃기는 인간들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2003년 자크 시라크의 요청에 따라 포르투알레그레 사회포럼에 직접 참석한 적이 있는 페리는 “암소들이 아니라 대안세계주의자들이 참석했는데도, 일종의 가축시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페리는 “문제의 본질은 우파냐 좌파냐가 아니다. 자크 쥘리아르는 좌파지만, 나는 우파로 소문났지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담배를 마는 종이 한 장 두께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99.9% 의견이 서로 일치하며, 함께 당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요컨대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이 고통스러운 현상들을 낳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바디우, 랑시에르 같은 존재들, 유감스럽지만 나와 같은 존재들은 공적 생활에 대해 보상받기 위해 어떤 사생활을 가져야 할까요?” 그의 발언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를 자아냈다. “집단적인 것에 대한 혁명적 유토피아주의자들의 관심은 평범한 사생활에 대한 보상이 아닌가요?”

그의 강연이 끝나자 30분에 걸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다. 한 청중이 몸을 일으켰다. 쥘리아르였다. 그는 “아주 탁월했어”라며 페리에게 말을 건넨다.

지중해에 밤이 찾아오자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질과 디아밀라는 메르퀴르 갑판에 위치한 열대 분위기의 리도 바에서 연주하고, 장뤼크 뱅상트는 포르토 바에서, 오닉스 오케스트라는 그랜드 살롱에서 불후의 명곡들을 연주한다. 대다수 승객들은 하루가 끝나는 순간 프린세스 다나에호 위에서 벌어지는 매혹적인 장면에 관심이 없었다. 평균연령이 75살이라 밤 10시 이후에는 대부분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다. 유식해지기 위해 자유로운 사상가들을 만나 공부했고, 더욱이 피곤한 하루를 보냈기에 더욱 그럴 만했다.

2009년 5월 15일 금요일

유람선에 반입된 유일한 출판물이자 승객들이 선실에서 매일 저녁 마주치는 <라 가제트>(La Gazette)의 지면을 통해 편집인 브뤼크네르는 “유람선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러기에 유람선은 교통수단으로만 축소 해석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점심 식사를 들며 사람들은 철학 얘기를 꺼내지 않으며,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더욱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지난번 유람선 여행에 대한 좋은 추억들을 나눈다. 요컨대 바캉스 중인 것이다. 전날부터 테이블 풍경은 전혀 변화가 없다. 철학자들은 자기들끼리,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든다. 아이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베이비시터들이 아이들을 돌보기 때문이다. 페리는 아내와 아이들, 동생, 제수와 함께 탑승했고, 쥘리아르는 아내 쉬잔과 가벼운 여행을 하는 중이다. 시의 운율학에 푹 빠진 쉬잔은 5월18일 승객들에게 ‘프랑스시에 나타난 유람선’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철학자들, ‘평민들’과 거리두기

배에 탄 세 명의 철학가들이 유람선에 탑승한 ‘평민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드러났다. 승객들이 그들과 함께 여행할 권리를 값비싸게 지불했는데도 말이다. 창문이 없는 ‘넵튠’과 ‘새턴’ 갑판의 내부 선실에서 잠자며 4명이 함께 이용하는 가장 싼 가격은 1570유로인 데 비해 베란다, 냉장고 바, 발코니를 구비한 유람선 꼭대기의 방 가격은 4310유로다. 그곳에서는 3명의 강연자들이 머문다. 이 가격을 지불하면 승객들도 철학자들이 쉬는 시간에 수영장 근처에 나타나는 모습을 가까이서 목격할 수 있다.

오후 3시 정각에 강연을 시작한 브뤼크네르는 “행복은 서구의 발명품일까?”라는 질문에 답해보기를 제안한다. 철학자는 한 라디오 토론을 상기시켜주었는데, 그 토론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는 1시간 동안이나 행복에 걸맞은 ‘아랍어 단어’를 찾아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중국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오히려 ‘평정심’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서구 모델의 절대적 우위에 대해 그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랴.

저녁이 되자 승무원들은 난간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그리고 좁은 통로에 규칙적으로 몇m의 간격을 유지하며 우아하고 작은 플라스틱 봉투들을 설치한다. 프린세스 다나에호 승객들이 정말 많이 먹기 때문이다. 승객들은 테이블 예약을 할 필요가 없이 수영장 주위의 미모사 레스토랑에서 오전 9시까지 셀프서비스로 아침을 들고, 정오부터 점심을 들며, 오후 4시 반에 주전부리를 동반한 차를 마시고, 저녁 7시부터 두 번의 서비스를 받으며 저녁식사를 한다. 밤 11시 이후 살롱에서는 여전히 배고픈 자들을 위해 스낵이 제공된다. 어떤 날 저녁에는 주제별로 거창한 식사가 대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5월 20일에는 로코코 스타일 정찬이라 할 수 있는 ‘마니피크’란 뷔페가 제공되었는데, 승객들에게는 식사를 들기 전 15분 동안 ‘사진을 찍고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2009년 5월 16일 토요일

강풍이 불어 유람선이 수스항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선장이 알려준다. 튀니지에 하선하는 걸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배는 리비아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러나 폭풍우에는 이로운 점이 있다. 팬들 입장에서는 즐겁게도 페리, 쥘리아르와 리비유가 아침에 즉석으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상품인 페리-쥘리아르 토론’을 ‘마치 TV에서처럼’ 벌였기 때문이다. 주제는 ‘학교와 대학’으로 정했다. 이 주제는 이번 유람의 대주제인 세계화 시대를 맞이한 문명들의 다원성과 그다지 연관이 없다고 라비유가 인정했지만, 사회자는 ‘뤼크와 자크’가 요구하는 작은 토론의 쾌락을 거부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한 주제를 택했기에 청중은 교육부 장관을 지낸 페리의 견해를 가장 예의주시하고, 페리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수준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내 딸들을 공부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어요.” 박수가 이어진다. “파업을 벌이는 학생들은 자기 발에 총을 쏘는 꼴이지요.” 이번에는 우렁찬 박수. “학생들이 산업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완전히 미친 생각입니다.” 계속해서 우렁찬 박수가 이어진다. 만족한 라비유가 이번에는 즉석 행사를 제안했다. “1968년 5월 혁명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모든 사람은 갑판에 모여 물속으로 뛰어듭시다!” 방학을 맞이한 페리의 딸들이 배에 동승한 사실을 잊어버린 채, 실내는 소란스럽다. 자신의 아이들이 8일간이나 수업에 빠지고 나선 여행에서 아빠인 페리는 “오직 권리만 존재하고 그 어떤 의무도 없다고 확신하는 왕 같은 아이들의 통치”를 비난하지 않았던가?

그랜드 살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은퇴자는 “대학에서 데모를 벌이는 애들이 최상의 학생들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시험을 피하려고 데모를 벌인다”라고 상황을 정리한다.

닫힌 세계관에 막힌 토론

오후에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문제를 두고 새로운 토론이 벌어졌다. 쥘리아르는 반대 의견을 표명했고, 브뤼크네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브뤼크네르는 세계의 미래가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도 전개된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과격한 이슬람을 어떻게 물리치는가 하는 것”이라고 그가 말을 던졌다. ‘반대 진영’의 페리는 터키의 가입에 아주 호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그의 주장은 이웃의 주장과 상당히 유사했다. “진정한 문제를 다루게 되어 나는 만족합니다. 어떻게 이슬람을 유럽화시키는가 하는 문제이지요.” 페리의 말이 이어진다. “물론 문명의 충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격한 이슬람주의는 우리 세기의 주요한 재앙입니다.” 그는 “문제는 유럽연합이 7천만 명의 무슬림을 보유한 나라를 유럽에 끼워주는 데 흥미를 느끼는가 아니면 이 사람들이 광기의 지배를 받도록 내버려두는가 하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한 부인은 자신이 실제로는 옳지 않으면서도 ‘정치적으로만 옳은 생각’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내 입장에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은 반들반들한 반죽 속에 덩어리를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이교도들을 죽이라고 코란이 요구한다는 사실이 생각나네요. 내 영역 속에 이 사람들이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주장에 청중이 동의한다. 또 다른 여성 승객이 말을 받았다. “나는 레바논 출신 무슬림”이라고 그녀가 부주의하게 자기를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종교가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슬람이 정복자는 아니다”라고 평가하자 실내가 들끓었다.

브뤼크네르가 말을 이어받았다. “이슬람 세계 전체가 다시 이슬람화하고 있습니다. 무슬림들이 서구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서구를 증오합니다. 우리 서구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요. 무슬림들 자신도 수세기 전부터 그 어떤 것도 발명해내지 못한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유럽인들의 역할은 그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주는 데 있을 겁니다.”

바욘 출신의 한 은퇴한 의사가 발언 기회를 요구했다.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일부다처제, 할례”라고 주장하면서 “성적인 이유 때문에 난 터키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저녁 식사를 들면서 파리 출신의 또 다른 의사가 말을 꺼냈다. “페리와 쥘리아르는 똑같이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신할 수 있겠네요.” 그의 부인은 존경스러운 시선을 하면서 “당연하다, 서로 친구니까. 그들은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응수한다. “나는 페리의 지식 범위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철학·정치·종교·정신분석 등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알고 있다. 반면 쥘리아르는 아주 탁월하기는 하지만 종교·정신분석에 대해서는 글쎄…. 그가 그 주제를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남편이 이야기하자, “난 브뤼크네르가 좋다. 신경을 자극하는데다 생각하는 바를 잘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아내가 대꾸했다.

‘자본주의가 미쳤다. 그러나 자본주의만 한 것도 없다’, ‘세상은 다양성으로 충만하지만, 서구는 개화의 길로 세계를 인도할 임무를 떠맡고 있다’는 등 인위적인 자만에 취한 채, 승객들은 ‘철학 유람선’을 즐기고 있다. 유익한 세미나에 유쾌한 소풍, 풍성한 식사를 뒤섞고 있기에, 각자는 어리석게 선탠이나 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으며 안도하는 것이다. 촘촘하게 짠 시간표는 자기 성찰을 해볼 시간이나 배에 탄 스타 철학자들이 제공하는 강연을 되씹어볼 시간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2009년 5월 17일 일요일

사흘 동안 프린세스 다나에호는 리비아 바다에 머무르게 된다. 담배와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의 판매는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다행히 알코올이 없는 맥주는 허용됐다.

저녁 식사를 들면서 철학 유람선의 한 단골 여성 승객은 앙드레 콩트스퐁빌이 그 자리에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해에 페리, 한 독일 철학자와 함께 철학 유람선을 최초로 이끈 인물이다. “콩트스퐁빌은 아주 멋있어요. 무대 위의 레이몽 드보와도 같지요.”(2)

2009년 5월 19일 화요일

아침.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편집위원인 쥘리아르가 문명의 충격에 대해 강연했다. “이슬람주의를 서구와 대립하게 하는 갈등은 모멸감에 기초해 있습니다. 이슬람주의는 경제적 복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도에서 핵에 이르기까지 약자의 수단을 통해 군사적 복수를 원합니다.”

쥘리아르는 “서구의 헤게모니를 겨냥하는 이슬람 세력의 봉기를 이해한다”며 “매번 그 투쟁들이 (서구의) 보편적 가치를 대상으로 한다”고 지적했다. 시간 관계로 그는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저서인 <백인의 오열>(3)’이라는 주제로 넘어갔다. 멋들어진 일치였다. 오후에 브뤼크네르가 ‘서구 양심의 가책’이란 주제를 통해 강연하면서 평소처럼, ‘인텔리겐치아와 정치 및 언론 쪽의 대다수 엘리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회개 일변도로 흐르는 서구의 ‘신사상 조류’를 비판했다. 그런 다음 “이런 형태의 후회가 늘 일방적으로 이뤄졌다”고 유감을 표했다. “트로츠키주의나 환경론, 마오쩌둥주의도 자기 성찰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이와 반대로, “(자기 성찰을 도외시해온) 무슬림 지도층들이 약간이라도 자성을 한다면 서구인들의 불안을 덜어줄 것입니다.”

승객 중 가장 젊은 사람들은 수영장 뷔페에서 점심을 들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남부지방에서 근무하면서 교육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거북해하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미리 정복된 청중이고, 자신들이 무얼 듣게 되리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꽤 정교하게 관찰한 느낌이다.

2009년 5월 20일 수요일

리비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매 단계마다 앵테르메드사 소속 ‘문화 가이드들’은 그룹별로 승객들을 인도한다. 대학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놀랍도록 교양을 쌓은 승객들은 짓궂은 모습을 보이면서 자발적으로 대화를 교환한다. 키레네 고대유적을 방문하면서 그들 중 일부는 5세기경에 활동했던 키레네의 신플라톤주의 그리스 철학자인 시네시오스의 철학서 <대머리 예찬>에서 발췌한 일부 구절을 읽는 기쁨을 누렸다. “지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중에서 가장 지적이고 털이 없는 동물이 인간이다. 털과 이성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둘을 묶어놓은 모습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구나. 자신의 머리카락을 잃어버릴 행복한 기회를 누린 대머리는 이곳에서 가장 존경받을지니.” 프린세스 다나에호에 탑승한 철학자 세 명의 휘날리는 머리에 에둘러 경의를 표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오후가 끝나갈 무렵 길에 서 있던 아이들 3명이 여행객들을 태우고 벵가지 항구로 가는 버스에 조약돌을 던진다. 유리창 한 장이 가볍게 깨졌다. 이 때문에 같은 날 철학자들이 탄 차량이 이 지역의 레스토랑으로 향하다가 재빨리 방향을 돌렸다는 얘기가 들린다. 자마히리야에서 어떤 아메바들이 서구인을 노리고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저녁에 유람선은 리비아 바다를 떠났다. 승객들은 또다시 알코올을 들 수 있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 감정을 숨기려고 애썼다. “모든 술병은 아름답다!”라고 두 커플이 외쳤다. 여성들은 커피를, 남자들은 아르마냑을 주문했다.

2009년 5월 21일 목요일

예수 승천절이다. 벵가지로부터 367마일 떨어진 곳에서 프린세스 다나에호는 그리스 산토리니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페리는 ‘인권이 보편적인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전에 이미 예고한 것처럼 자신의 저서에 대한 사인회를 열었다.

1시간 후 철학자는 강연회를 끝내며 이미 며칠 전 자신이 결론을 내린 것처럼 우리가 사랑, 타자의 초월, 포스트 제국주의, 포스트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휴머니즘, 인간과 신의 휴머니즘, 인간의 얼굴을 한 성스러움의 시대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방해받지 않은 채 두 발을 온전하게 내디딜 수 있는 세계에서 자유롭고도 거짓이 없는 경쟁이 이뤄져야 진정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유럽인들은 종종 자본주의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정당합니다. 우리는 민주적이고, 세속적이며, 인권의 보루인 자본주의가 우리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정착되길 바랄 뿐입니다. 오늘날 중국은 자본주의 덕분에 인간화하고 있지요.”

청중 속에서 질문이 들려온다. “나는 철학자와 참여 정치인들에게 동시에 질문하겠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모든 비판을 소비에트주의라고 말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시킨 게 아닐까요?” 상처를 입은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다시 부르짖는다. “나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위기감을 못 느끼는 자본주의의 위기

오후에 페리-쥘리아르 토론이 다시 벌어졌다. 주제는 ‘위기’였다. “아르노와 볼로레 등 돈 많은 재벌들을 모델로 내세우는 사회를 나는 편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쥘리아르가 고백했다. 청중이 동요했다. 반면 페리는 그 표현에 미묘한 차이를 두었다. “나는 돈에 대한 증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난 돈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재산세를 많이 내지도 않습니다. 나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부실은행 중 하나인) 소시에테제네랄의 다니엘 부통 전 회장이 원래 기업가 출신이 아니라 관료 출신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와 반대로 내 동료 프랑수아 피노(구치 그룹의 총수)의 경우는 내게 아무런 문제도 주지 않았지요.”

이어 브뤼크네르가 나섰다. “차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은 자본주의를 파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볼셰비키주의자들조차 생각지 못했을 지고한 역설적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차후 대안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여러 형태들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다시 발명해야 합니다.”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산토리니에 승객들을 하선시키는 작은 보트 안에서 한 부인이 프린세스 다나에호로 올라오는 한 선원에게 말을 건넨다. “두 유 스피크 프렌치?” “노”라고 선원이 답한다. “잉글리시?” 영어도 역시 못한다. 분한 생각이 든 부인은 자기 남편 쪽으로 몸을 돌린 후 “조심하자. 아마 불법 입국자인가 보다”라고 말을 건넨다.

유람선 승객들은 다음날 비행기를 탔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짐을 찾는 그들 각자에게는 이미 다음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글 · 세바스티앵 퐁트넬 Sebastien Fontenelle

번역 · 이상빈 malraux21@ilemonde.com
파리8대학 불문학 박사. 역·저서로 <현대 프랑스문화사전>과 <나폴레옹의 학자들> 등이 있다.

뤼크 페리(Luc Ferry)

58살. 파리7대학의 철학교수이며, 프랑스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새로운 환경질서>(1992), <현대의 지혜>(1997), <현대 미학의 탄생>(2004), <종교 이후의 성직자>(2004) 등이 있다.

자크 쥘리아르(Jacques Julliard)

76살. 사회주의 노선의 현실정치에 가담한 실천적 지식인으로, 프랑스의 진보적 학술잡지 <레스프리>(L‘Esprit)와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편집위원을 지냄. 파리8대학과 파리 고등사회과학연구원의 역사학 교수로서 마르크시즘 강의. 주요 저서로 <대두되는 파시즘>(1999), <프랑스 지식인 사전>(2002), <문명의 분열>(2003) 등이 있다.

파스칼 부뤼크네르(Pascal Bruckner)

61살. 파리 정치학교(IEP)의 교수이며,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전체주의의 상관관계와 그 문제점에 천착한 프랑스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으로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백인의 오열>(1983), <고행의 폭정>(2006) 등이 있다.

 


 

<각주>

(1) <르 카나르 앙셰네>(Le Canard enchaîné), 파리, 2009년 5월 13일자.
(2) 앵테르메드사가 주최하는 다음 ‘철학 유람선’은 2010년 7월 23일부터 8월 4일까지 운행된다. 그때도 프린세스 다나에호를 빌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방문할 예정이며, 주제는 ‘이성의 모험’이다. 천문학자 위베르 리브스(Hubert Reeves), 이론 물리학자 에티엔 클라인(Etienne Klein), 철학자가 장피에르 뒤퓌(Jean-Pierre Dupuy)가 강연을 맡을 예정이다.
(3) 파스칼 브뤼크네르, <백인의 오열>(Le Sanglot de l‘homme blanc), Seuil, coll. “L’histoire immediate”, Paris,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