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앞에서 작아지는 유럽연합

국제법 어긴 ‘가자지구 침공’ 응징 않고 미적거려
확고한 행동을 통해 중동 평화 정착에 이바지해야

2009-08-06     이사벨 아브랑/언론인

지난 4월 말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외무장관으로 구성된 일반 및 대외관계 이사회에서 유럽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강화에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지난해 12월 8일 유럽연합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격상’을 결정했으나 이후 12월과 1월에 벌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인해 양쪽의 관계 발전은 사실상 중단됐다. 만약 유럽연합의 이스라엘에 대한 방침이 단호하다면, 앞으로 유럽연합의 중동 정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다. 과연 그러할까?


“인접 국가에 대한 유럽의 선린정책의 전체적 틀 안에서 이스라엘-아랍 분쟁의 지속성과 중동 지역에서의 총체적 정치 발전을 감안해 유럽연합-이스라엘의 관계에 관한 모든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2008년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 지구에 대해 식민지 정책을 확대함에 따라 이 지역의 평화 정착 절차가 차질을 빚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해져 팔레스타인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스라엘이 애초 약속한 팔레스타인의 대외 교역 지원 등 일체의 협력 사항이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더욱 악화됐다.”(1) 이 인용문은 이스라엘이 가자 침공을 감행한 지 3개월,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적인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가 수립된 지 몇 주 뒤인 2009년 4월 23일, 유럽-이스라엘 관계의 발전을 위해 이전까지 적극적이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유럽의회와 유럽연합 이사회에 보낸 통신문 내용의 일부이다. 이 통신문은 “가자지구 봉쇄 조처가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세 이전에 이미 열악한 경제난에 처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중 플레이


일부에서는 유럽연합이 이스라엘과의 관계 증진에 미적거리는 것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6월 30일까지 유럽연합 순회 의장국을 맡고 있는 체코는 유럽연합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증진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전 체코 총리인 미레크 토폴라네크는 4월 26일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연합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팔레스타인 지역 평화 프로세스 진전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2)라고 단언했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다음과 같은 유럽연합 대외관계 집행관 베니타 페레로발트너의 언급에 대한 반응이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의 우호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 시점이 지금의 관계 수준에서 더욱 멀리 가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새 정부가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지속한다는 명확한 약속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개의 국가 성립이라는 해결책의 목표에 해를 끼치는 모든 행동의 중지를 기다리고 있다.”(3)

그러나 4월 27일 회동한 유럽연합의 외무장관들은 의장국 체코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유럽연합의 신임 의장국으로 예정된 스웨덴의 외무장관 칼 빌트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강화는 하나의 ‘선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유럽 담당 차관보인 브루노 르 매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유럽연합의 이익에 부합한다”면서도 “이스라엘에 관한 정치적 검토를 끝내고 새로운 정책 개요가 나올 때까지 유럽은 기다려야 한다”(4)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중동 평화 절차에서 유럽연합을 배제할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자신의 정책에 영향을 끼칠 모든 종류의 압력(경제 제재를 포함한)을 거부했다.

2007년에 유럽연합과의 관계 증진을 먼저 요구한 것은 이스라엘이었다. 2008년 6월 16일 유럽연합-이스라엘 제6차 관계장관회의는 이를 승인했다. 당시 유럽의회 북구 좌파-환경 교섭단체(GUE/GVN)장인 프란시스 부르츠는 이 과정에서 관계 증진의 내용과 방법뿐 아니라 투명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관계장관 회의록은 “특히 이스라엘-아랍 분쟁 해결의 실마리로 두 개의 국가(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호 승인과 국제적 승인) 원칙”(5)을 양쪽의 공동 이해와 목표에 포함시켰다.

이스라엘에 국제법 준수토록 해야

6개월 뒤인 2008년 12월 3일, 유럽의회 의원들이 경고하고 나섰다. 유럽의회는 독일 녹색당(Verts/Ale) 의원들의 지지를 업은 북구 좌파-환경 교섭단체의 제안에 따라 이스라엘이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정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승인을 미루었다. “왜냐하면 가자지구의 상황이 인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손을 내밀었으나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들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공은 현재 이스라엘 쪽에 넘어갔습니다”(6)라고 벨기에 유럽의회 의원인 베로니크 드 케이세르(사회당)가 말했다. 반대로 유럽-이스라엘 외무장관회의 의장 장피에르 주예(프랑스 전 유럽담당 차관보)는 양쪽의 관계 증진 계획을 옹호한다. 그는 양쪽의 관계 발전이 이스라엘에 유럽연합의 메시지를 더욱 잘 전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 몇 년 동안의 경험은 이러한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외무장관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유럽의회 의원들의 염려를 무시했다. 지난 12월 8일 프랑스가 유럽연합 의장직을 맡고 있을 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의 인도주의 규범과 애나폴리스 합의를 무시하는데도 이사회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증진을 결정했다.

유럽-이스라엘 각료회의의 설명을 보면, 양자의 협력은 “양자의 공통된 가치, 특히 민주주의, 인권 존중, 법치, 기본적 자유, 올바른 거버넌스 및 국제 인도주의 권리의 존중에 기초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7) 또한 “두 국가의 평화적 공존을 목표로 둔 해결책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각료회의의 결론 부칙은 이스라엘과의 정치적 대화를 강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정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양쪽의 국가·정부 수반 간 최고위급 회담이 예견 혹은 고려되고 있다. 또한 전략적 문제에 관한 비공식적 자문, 유럽연합의 안보정책에 관한 회의, 평화협정, 대테러 정책 및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위원회에 이스라엘 외무부 고위 당국자의 초대를 예견하고 있었다. 양쪽의 협력은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도 발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문서는 또한 양쪽 의원 사이의 대화를 증진할 뿐 아니라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유엔의 테두리에서 서부 유럽과 여타 국가 모임(WEOG)에서 이스라엘의 더욱 비중 있는 참여의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양쪽의 관계 강화는 2009년 4월부로 사실상 동결 상태이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전략적 측면에서도 양쪽의 긴밀한 협력은 지속되고 있다. 1995년 ‘바르셀로나 프로세스’(유럽-지중해 협력관계) 합의 그리고 2005년 4월에 채택된 선린정책의 일환으로 정해진 ‘행동 플랜’ 틀 안에서의 협력은 계속 이뤄지고 있으며 농수산업, 항공, 경쟁력과 과학기술, 대테러 정책을 비롯한 많은 영역에서 양쪽의 특권적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8)

이스라엘에 회초리 대신 당근?

국제법을 어기는 국가에 대해서 상이한 두 개의 전략이 공존한다는 점을 한 팔레스타인 외교관은 오래전부터 주목했다. 한쪽에는 회초리로 위협하고, 다른 한쪽에는 당근으로 계속 보상하거나 격려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강화 연기는 이 두 번째 시나리오에 국한된 것일까?

굴레 의원의 말을 들으면, 이스라엘과의 관계 증진을 위한 제안은 “2008년 12월 초 시점에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며, 더군다나 2008년 12월 말과 2009년 1월에 있었던 가자지구 학살 이후에는 옹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관계 증진에 관한 모든 절차를 동결하고 유럽-이스라엘 협력 관계 협정의 중지를 주장했다. 프랑스와 유럽의 수많은 비정부기구와 유럽의회 의원들도 그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만약 “분쟁 해결의 정치적 절차가 실패한다면 이는 두 국민의 평화 공존을 인정하도록 대화를 강요하는 데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강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굴레 의원은 강조한다.(9)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가 국제법을 분쟁 해결의 근본 원칙으로 받아들이기를 집요하게 거부하고 전임자의 정책을 계속 추구한다면 유럽은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과거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농산물 수출을 봉쇄했을 때, 그리고 제1차 인티파다(1987∼93) 당시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 소재 대학의 휴교를 단행했을 때에도 유럽연합은 이스라엘에 제재를 가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조처는 성공적이었다. 2002년 4월 10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 직후, 유럽의회는 유럽-이스라엘 상호협력 협정의 중지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이사회의 거부권에 부닥쳤다. 어쨌든 협정 2조와 79조에는 “양자의 관계는 유엔 인권선언에서 표명한 민주주의 원칙과 기본적 인권의 존중에 기초한다. …만약 한쪽이 현재의 협정에 명시된 의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상대방은 합당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과거 유럽연합은 중동 지역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테러집단’으로 간주할 때 이 기구를 인정함으로써 평화협정의 길을 열어놓았다.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라는 구상도 미국이 이 구상에 동의하기 전에 유럽이 먼저 제안했다. 유럽은 다시 이스라엘에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단순한 호소 이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글 · 이사벨 아브랑 Isabelle Avran
번역 · 김태수 asticot@ilemonde.com 


<각주>

(1) 유럽연합 이사회 및 유럽의회에 제출한 유럽집행위원회 문서 ‘2008년 유럽의 선린외교 정책’, 2009년 4월 23일.
(2) 2009년 4월 27일치 <AFP통신>에서 인용.
(3) 2009년 4월 24일치 <AFP통신>에서 인용.
(4) 2009년 4월 27일치 <AFP통신>에서 인용.
(5) EU-Israel Association Council - EU Statement. Eighth Meeting of the UE-Israel Association Council, (Luxembourg, 16 June 2008).
www.europarl.europa.eu/meetdocs/2004_2009/documents/dv/association_counc/association_council.pdf.
(7) ‘유럽연합과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관계 증진에 관한 각료회의 결론? 이스라엘과의 관계 강화’(www.delisr.ec.europa.eu/English/whatsnew.asp?id=1049).
(8) European Neighbourhood Policy-ISRAEL. MEMO/09/185, Bruxelles, 23 avril 2009. La communication de la Commission au Parlement et au Conseil d’application de la politique europèenne de voisinage en 2008 (23 avril 2009) et le rapport concernant Israèl sont accessibles sur. ec.europa.
http://eu/world/engp/documents_en.htm 참조.
(9) ‘유럽연합의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관한 유럽연합 결의문 제안서, 나탈리 굴레 상원 의원’, 2009년 4월 23일 프랑스 상원 녹음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