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뜸부기’는 어디 숨었나

갈등과 결별하고 고향과 화해하려 돌아온 생오지
마음 속에서 사라진 뜸부기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2009-08-06     문순태 소설가

환경이 생각을 만드는 것 같다. 특히 작가에게 환경은 작품세계에 밀접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평생 역사적·공간적 환경 속에 끝없이 자신을 투영시켜 작품의 소재를 찾고 주제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어떤 역사적 환경을 체험했으며 어떤 자연 공간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흥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체험한 역사적 환경은 6·25와 4·19, 5·16, 5·18 등이다. 이 중에서 내 소설에 절대적 영향을 준 것은 열두 살 때 산골 마을에서 겪은 6·25와 마흔 살 때 광주에서 체험한 5·18 항쟁이다. 거대 담론이 사라졌다고 하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6·25와 5·18의 상흔이 무겁게 똬리를 틀고 있고 거의 모든 작품에 그 상처의 파편들이 켜켜이 박혀 있다. 6·25의 상처에는 이념 갈등 속에서 무이념적 인간들의 억울한 죽음이, 5·18의 상처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청춘들의 넋이 도사리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한때 문학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진실하게 복원하기 위해 “문학은 역사의 칼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평생을 묻은 할머니와 베트남 며느리

요즘 내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공간은 자연환경이다. 6·25 때 추방당하다시피 하여 산골 마을을 떠난 나는 52년 동안 광주에서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답은 물론 집터마저 깡그리 팔아버리고 “징그러운 고향에 절대 돌아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한테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원한과 두려움의 공간이었으리라. 아버지한테 6·25의 상처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이념 때문에 생긴 갈등의 시대와 결별하고, 고향과 화해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도시에서 가진 것 없이 밑바닥에서 살아오는 동안, 나를 지배했던 생각은 비정하고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경쟁 대상이었고 욕망의 과녁이었다. 무엇이든지 나를 무너뜨리고 짓밟고 소외시키려는 적으로 보였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분출처럼 솟구치는 고층 건물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자동차며 악취를 풍기며 대량으로 쏟아져나오는 쓰레기와 소음들. 나는 그 속에서 늘 외롭고 불안했다.

나는 광주에서 붙박이로 살다가 52년 만에 무등산 뒤꼭지에 자리잡은 생오지 마을로 들어왔다. 화려한 유채색의 공간에서 초라한 무채색의 공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2006년 5월, 연둣빛 봄이 무르익을 무렵 오지 중의 오지라는 생오지로 돌아온 나는 낯선 공간에 대한 충격과 감동으로 마음이 떨렸다. 자동차길에서 1.5km 떨어져 있고 ‘바깥 생오지’ ‘안 생오지’ 합해서 14가구밖에 안 되는, 한갓진 골짜기 마을 생오지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도시가 숨 가쁜 경쟁 속에 화려하고 풍요로운 변화의 공간이라면 생오지는 느리고 초라하고 궁핍하고 정체된 공간이다. 시간 밖의 시간 속에 살아가듯 느리고, 자연 외에는 변화가 없는 이곳에 진정한 아름다움과 오염되지 않은 순박한 삶의 진정성이 옴씰하게 남아 있음을 알았다.

   
▲ 전남 담양의 생오지로 가는 들판. 문순태 산문집 <생오지 가는 길> 오상조 사진 중에서. 눈빛출판사 제공

자연의 생명력이 살아 있는 생오지에는 마을 앞 오래된 소나무 때문에 평생 고향을 떠나지 못했다는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콧구멍만 한 방에서 태어나 그 방에서 결혼하고 평생을 살다가 죽어간 앵두 할머니, 고향에 혼자 남아 87살이 되도록 굽은 허리로 농사를 짓고 있는 청국장 할머니, 문화적 이질감 때문에 고생하다가 청국장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베트남 며느리, 농업 후계자로 빚만 지고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가 있다.

산업사회 이후, 우리 농촌은 날이 갈수록 황폐돼갔다. 배웠거나 건강한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노인들과 무능력자들로, 세상은 이들을 실패한 인생이라 치부한다. 그러나 내가 이들과 함께 살면서 깨달은 것은 고향에 남아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욕심 없는 이들이야말로 삶의 진정성을 오롯이 간직한 참사람이라는 것이다.

내 열 번째 창작집 <생오지 뜸부기>(책만드는집)는 내가 생오지에 들어와 살면서 쓴 작품들로, 생오지 사람들의 꾸밈없는 삶의 이야기다. 독자들은 이 소설집을 읽고 내가 변했다고 한다. 도시에 사는 동안 거대담론에 매몰되다시피 했던 내 소설이 생오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미시적 세계와 자연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시에 살면서 역사와 사회 변화 속에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집착했다면, 생오지에서는 역사 대신 자연과 무욕의 인간을 통해서 세상을 보려고 했다. 향기도 없고 코딱지처럼 작은 코딱지꽃을 통해 우주를 보려 했다. 꽃의 키 높이로 나를 낮추고 세상을 보니 모든 것들이 더욱 명징하고 신비롭게 보였다.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을 뽑으면서 풀이름과 이름에 얽힌 설화 같은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웠다. 놀라운 자연의 생명력 앞에서 한없이 낮아지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자연의 일부인 내 존재감을 새롭게 일깨우기도 했다.

나는 생오지에 들어와서 새롭게 귀가 열렸다. 처음으로 오염되지 않은 원초적 생명의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자동차 소음이며 온갖 기계음에 지배당한 도시와는 다르게, 이곳은 자연의 소리가 그대로 살아 있는 공간이다. 눈 뜨고 있는 하루 내내 내 귀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로 꽉 차서 흥건히 젖어 있다. 나는 얼마 전에 머레이 쉐이퍼가 쓴 <사운드스케이프>(부제 ‘세계의 조율‘)를 읽고 나서 느낀 바가 컸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랜드스케이프’에 매몰되다시피 했던 내가 사운드스케이프(소리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나는 비로소 눈으로 보는 세상보다 귀로 듣는 세상이 더 신비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명한 날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배경음으로 깐,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는 세상의 어떤 오케스트라보다 장엄하고 아름답다.

생오지 코딱지꽃 통해 우주를

“새들의 오케스트라 단원 수가 가장 많을 때는 여름날 아침 동틀 무렵이다. …새들은 해가 떠오르기 전에 최상의 컨디션과 저마다의 음색으로 한껏 목소리를 뽐내며 바이올린과 피아노, 하프, 오보에, 플루트, 클라리넷, 트럼펫, 피콜로, 심벌즈 등의 악기 소리를 낸다. 딱새는 힛힛힛, 삐쭈삐, 찌이히찌, 쇠솔새는 쪼-리, 쪼-리, 쪼-리, 쪼-리, 큐-웃, 큐-웃, 소쩍새는 솥-적다, 솥-적다, 박새는 뽀로로 로로, 쪼쪼, 쯔-비, 쯔-비, 쯔쯔비, 개개비는 개개개개개, 개액개액, 굴뚝새는 초르-초르-초르 하고 소리 낸다.”(<생오지 뜸부기> 중에서 )

마을이 소쿠리 속처럼 움쑥하게 자리잡아 연꽃잎이 에두른 듯 산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탓으로, 골짜기의 물소리는 들릴 듯 말 듯 낮은 음으로 좔좔 도란거린다. 사방의 소나무 숲에서는 바늘처럼 가늘고 뾰쪽뾰쪽한 잎들이 바람에 급히 회전하면서 가야금 산조의 휘모리 가락 소리를 낸다. 빌딩 사이를 감고 돌며 귀신 소리를 내는 듯한 도시의 바람소리와는 다르다. 이곳에는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가 그대로 살아 있다.

<생오지 뜸부기>에서 나는 이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들려주고 싶었다. 도시에서 살아온 이 소설의 화자는 어지럼증과 두통에 시달리다 생오지에 온 뒤, 자연과 호흡하면서 건강을 되찾는다. 그런 그가, 사라지고 없는 뜸부기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뜸부기를 보았다고 하지만 그 실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뜸부기는 1970년대 이후 사라지고 없는 천연기념물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논이나 습초지에서 뜸-뜸-뜸 하고 울었던 뜸부기. ‘뻐꾹뻐꾹 뻐꾹새 산에서 울고,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운다’는 <오빠 생각>이라는 노래에 익숙했던 그 뜸부기는 농약 때문에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왜 소설 속 화자는 사라져버린 뜸부기를 찾아다니는가. 결국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엇 때문에 뜸부기 찾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사라지고 없는 뜸부기는 무엇인가. 이 소설에서 ‘뜸부기’는 알레고리다. 희망일 수도 있고 믿음과 사랑일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마음속에 사라져버려 아쉬운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인생은 사라진 것, 잊혀진 것,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찾아나서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소설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경계 허물기와 생오지라는 골짜기 마을의 작은 공간을 통해, 인간의 욕망 때문에 사라져버렸거나 잊혀진 것들을 찾아서 생명력과 함께 본디 모습으로 복원하려 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보니, 유년 시절에 애착을 가졌던 것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리고 없어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콩 한쪽도 셋이 나눠먹는다’는 속담대로, 찐더운 인정과 공동체 정신이 사라진 것이 마음 아팠다.

비록 농촌은 피폐화됐지만 여전히 희망의 공간이다. 죽어도 고향을 떠나기 싫다던 오영기의 노모가 마지막에 화자에게 “선상님, 꼭 뜸부기 찾으씨요잉” 하고 말하는 것도, 뜸부기를 찾는 화자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나서 농촌을 희망의 터전으로 복원하라는 당부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에 “뜸-뜸-뜸, 소리는 땅이 아닌 허공에서 들려왔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쯤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고 한 것은 뜸부기가 현실과 이상의 한가운데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뜸-뜸’ ‘호-호’ 희망의 소리풍경

지금은 한여름 오후 2시. 오랜만에 비가 갠 청명한 하늘에서 짱짱한 햇빛이 묶음으로 쏟아져내리고 골짜기 안은 교교할 정도로 정적이 깊디깊다. 집 가까이에서 노래쟁이 휘파람새가 호-호-호 홋홋 정적을 깨뜨리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개울물 소리와 진양조 가락의 솔바람 소리 외에는 세상이 텅 빈 듯 고즈넉하기만 하다. 나는 정적을 뚫고 뒷산으로 소리 산책에 나선다. 숲 속 깊숙이 들어갈수록 잠시 잠들었던 소리들이 되살아나며 나를 에워싼다. 바람이 건듯 나를 휘감은 순간 내 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서투르게 휘파람새 소리를 흉내내본다.

글 · 문순태
1965년 <현대문학>에 시 추천을 받았고, 1974년 <한국문학> 소설 신인상 당선으로 데뷔했다. 이상문학상 특별상과 한국소설문학 작품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작품집으로 <징소리> <철쭉제> <타오르는 강> <41년생 소년> <된장> <울타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