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트와 파시즘의 정략적 연애
‘비즈니스 프렌들리’ 무솔리니, 노동운동 봉쇄
아넬리의 피아트, 파시즘의 단물 빼고 결별
기업과 국가는 근대사회를 떠받치는 두 개의 헤라클레스 기둥이다. 그런 만큼 양자는 경제와 정치의 영역에서 권력을 나눠 독점하며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기업이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반면에 국가는 공공선을 추구한다고 생각되므로, 대개 기업보다는 국가가 더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기업은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지만, 국가는 절대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발전이 뒤처진 후발국의 경우에 국가는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유일무이한 권력의 원천으로 보인다. 후발국에서 국가가 산업화의 조물주 역할을 하며 기업은 국가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상투적인 인식이 나타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독일과 더불어 유럽의 대표적인 후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그런 인식이 오랫동안 학계 안팎을 풍미해왔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서 기업은 아무것도 아니며 국가가 전부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국가 주도의 경제적 ‘대도약’을 강조하는 낡은 경제 성장론이 오랫동안 학계를 지배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런 만큼 이탈리아에서 기업은 국가의 품 안에서 양육된 허약하고 부패한 제도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이로부터 ‘태만한 자본주의’라거나 ‘정치와 기업의 불건전한 유착’이라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들이 양산됐다. 마침내 파시즘이라는 미증유의 독재가 등장했을 때, 당시의 기업가들이 이를 가뭄 끝의 단비요,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로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각질처럼 굳어졌다.
아넬리와 무솔리니의 밀실 거래
189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창업돼 현재까지도 공격적인 팽창을 거듭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 피아트(Fiat)의 역사는 기업과 국가의 관계라는 문제를 푸는 데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피아트에 대해서는 그동안 천편일률적으로 국가에 의해 ‘보호받는 독점’이었다는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피아트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 파시즘 집권기였다는 점에서 피아트의 창업자 조반니 아ㅤㄴㅖㄹ리와 희대의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 사이의 밀실 거래가 피아트의 숨은 성장 동력이라고 간주돼왔다.
그런데 한 역사가가 서술한 아ㅤㄴㅖㄹ리의 전기가 그런 인식을 흔들어놓았다. 그는 피아트 회사 문서고와 정부 문서고들을 섭렵해 피아트의 성장 동력이 파시즘의 특혜만이 아니라 아ㅤㄴㅖㄹ리가 보여준 눈부신 기업가적 역량에 있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대량생산과 대중 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주의(포드주의)에 대한 일관된 신념과 국내 시장의 독점에 만족하지 않는 글로벌리즘의 혜안이 아ㅤㄴㅖㄹ리가 보여준 기업가적 역량의 생생한 사례로 제시됐다. 이후에 나온 다른 연구들도 최고경영자(CEO) 피아트의 기업가적 역량에 대한 용비어천가로 읽힌다.
그러나 진실은 조금 복잡하다. 아ㅤㄴㅖㄹ리가 보여준 기업가적 역량이 아무리 눈부셔도, 피아트의 발전에서 국가의 역할도 상당했다. 가령 고속도로와 같은 사회적 인프라의 건설과 전투적 노동운동의 봉쇄, 그리고 정부의 군수 발주를 비롯한 각종 특혜 등은 피아트의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었다. 심지어 무솔리니 정부는 집권 초기에 내부의 강경한 파시스트들의 반대에도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펼쳤다. 각종 규제를 철폐하면서 기업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 것이다.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하나의 역설이 눈에 띈다. 곧 국가의 개입 대신에 자유 경쟁을 위한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파시스트 국가의 철권이 필요했다는 역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역설은 ‘역설적이게도’ 반드시 파시즘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현대 자본주의의 운영 원리에 거의 보편적으로 들어맞는 진실로 보인다.
적당한 거리 유지하며 국가 활용
물론 피아트가 국가의 특혜를 누리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갔다. 아ㅤㄴㅖㄹ리는 구두쇠가 아니었다. 신세진 게 있으면 응당 보답했다. 이러한 피아트와 파시즘의 공생 또는 협력은 곧 많은 반파시스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렇기에 파시즘의 패망 뒤 피아트는 ‘피아트의 반파시즘’이라는 신화를 통해 기억을 저장하고 관리하려고 했다. 또한 피아트는 불가피한 것과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정당화가 통할지는 역사가 판단할 몫이다.
여하튼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피아트의 발전에서 기업가적 역량과 국가의 역할이 공히 중요했다는 점이다. 이 절충론에서 요점은 피아트가 국가의 보호와 원조를 한껏 누리면서도 기업 활동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끝내 지켜냈다는 것이다. 사실, 파시즘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말하다가도 느닷없이 반자본주의를 외치기도 했다. 특히 기업가들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별을 없애려는 무솔리니의 전체주의를 두려워했다. 물론 무솔리니가 립서비스의 달인에 불과했다는 세간의 조롱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에게 마음에 안 드는 기업가 몇몇을 ‘손봐줄’ 정도의 힘은 있었다. 금융계의 큰손인 리카르도 괄리노가 하룻밤 사이에 몰락한 게 그 증거이다. 아ㅤㄴㅖㄹ리도 그런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피아트의 경영에 대한 파시즘의 간섭을 물리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아ㅤㄴㅖㄹ리의 기업가적 역량의 정수는 기업 활동의 자유를 확보하면서도 국가를 활용하는 특별한 능력에 있었다고 하겠다.
이렇게 피아트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피아트가 보여준 현란한 ‘연애의 기술’이 그 묘책이 아니었을까 한다. 열이면 열 사람 각자의 연애 철학이 있겠지만, 모름지기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연애의 기술은 밀고 당기기의 방략이다. 너무 거리를 두면 결렬되기 십상이고, 너무 거리를 두지 않으면 구속되기 마련이다. 관건은 적절한 거리, 곧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아ㅤㄴㅖㄹ리는 탁월했다. 그는 국가의 특혜를 갈망하면서도 초연한 듯 행동했고, 그러면서 국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국가보다 더 큰 것(세계 시장)과 더 작은 것(지역 시장)에 열중했다. 예컨대 파시스트들이 피아트의 소련 진출이 볼셰비즘에 대한 동조요, 파시즘에 대한 불경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아ㅤㄴㅖㄹ리는 토리노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수룩하구먼. 그들은 내가 피아트에서 일하지만 레닌에게서도 주문을 받는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야.” 조급해진 쪽은 외려 피아트의 구애 대상인 파시스트 정부였다. 무솔리니는 피아트의 미지근한 태도에 화를 내면서도 피아트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했다.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는 피아트는 그만큼 매혹적인 상대였던 까닭이다. 구애 대상에 일방적으로 매달린 몬테카티니 같은 기업이 경영 간섭에 시달리며 부실을 껴안은 채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일은 피아트의 경우와 대조를 이룬다.
이쯤에서 피아트와 파시즘의 연애 ‘그 후’가 궁금할 법하다. 둘은 결혼에 골인해 백년해로했는가, 결혼하지도 못하고 이별했는가, 아니면 결혼은 했으되 파경에 이르렀는가? 비유는 비유일 뿐이지만 정답은 열렬한 사랑 없는 정략결혼까지는 갔지만 사별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파시즘이 독일 나치즘 편에서 전쟁에 가담한 뒤 패전을 거듭하며 파시즘은 돌연사했다. 피아트는 파시즘과의 관계가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많은 정보를 토대로 늘 올바른 결정을 내린 아ㅤㄴㅖㄹ리였지만, 정작 무솔리니가 참전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만큼 이탈리아는 전쟁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참전보다는 중립에서 얻을 게 더 많다는 것이 아ㅤㄴㅖㄹ리의 판단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ㅤㄴㅖㄹ리는 이탈리아의 선전포고 바로 전날 급작스레 무솔리니에게서 참전 결정을 통고받았다. 경제적 합리성에 익숙한 기업가에게 무모해 보인 참전이, 경제적 합리성과는 전혀 다른 견지에서 국가 이성의 논리적 귀결일 수 있었음은 참으로 흥미롭다.
한국의 권력운동에 던져 주는 시사점
지금까지 피아트와 파시즘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곱씹어볼 만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국가는 권력을 추구한다. 그런 만큼 기업과 국가는 하나가 아니며, 양자를 지배하는 논리도 다르다. 하지만 기업과 국가가 서로 영원히 타자인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기업은 항상 국가를 필요로 하며, 국가도 항상 기업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국가가 권력을 추구하듯이 기업도 그에 못지않게 권력을 추구한다. 일찍이 슘페터가 통찰했듯이, 기업가를 움직이는 힘은 이윤 추구에만 있지 않다. 기업가들에게는 성공의 결실(이윤)이 아니라 성공 자체를 스포츠처럼 즐기면서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려는 강한 권력 지향적 성향이 있다. 그렇기에 기업과 국가라는 두 개의 권력이 너무 근접하게 되면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본능적으로 서로에 대해 신중하게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로부터 기업이 항상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은 공허하고, 기업이 항상 국가에 종속된다는 주장은 맹목적으로 들린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편에 서는 게 아니라 양자가 보여주는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를 주시하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 경제적 자유주의나 국가 개입주의를 내세우며 그런 미묘함과 복잡함을 간단히 무시하려 든다면, 그는 자신이 실제 역사를 해석할 수 없는 각질화된 이론에 포박돼 있음을 실토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이론적인 극단론보다는 아ㅤㄴㅖㄹ리가 몸소 실천한 현실주의, 그러니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고 여러 테이블에 돈을 거는 태도가 차라리 역사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성싶다. 이런 현실주의의 우화는 필경 먼 나라의 경우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권력의 운동을 똑바로 보려는 사람들에게 썩 유용하리라고 본다.
글 · 장문석
영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탈리아 토리노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했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양현대사를 전공하고 있다. 저서로 <피아트와 파시즘> <민족주의 길들이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