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교육 탓일까?
2015-07-02 질 발바스트르
실업과 빈곤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그리고 정교분리의 원칙이 위협받을 때마다, 정치인들은 학교로 눈을 돌린다. 마치 학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지난 1월에 시사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총격 사건과 코셔 식료품 슈퍼마켓 인질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교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분열과 대립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현 정부는 모든 정책역량을 학교교육에 집중시킬 것입니다.” 2015년 3월 29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사회당이 패배를 한 날, 그리고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과 포르트 드 뱅센에 위치한 코셔 식료품 슈퍼마켓 인질 사건이 발생한 지 2달이 되는 날, 마뉘엘 발스 총리는 학교가 혼란, 불안, 야만적인 행위로부터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벽이라는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내비쳤다.
올해 1월부터 대통령, 총리, 교육부 장관이 차례로 학교를 두고 상투적인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은 테러 사건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로 정교분리원칙과 공화주의 가치와 권위에 대한 존중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 학교교육의 실패를 들고 있다. 실패의 증거는 무엇인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학생들이 묵념을 거부한 사례가 발생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보고만 있었습니다.” 1월 13일 발스 총리가 개탄했다. 나자트 발로-벨카셈 교육부 장관은 한 술 더 떠서 “학교가 제일선에 서 있습니다. 이제부터 학생들을 강력하게 처벌할 것입니다”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경험이 많은 1천 명의 교사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고 ‘새로운 시민의 길’이라는 수업을 통해 ‘국민의례’와 (국가(國歌), 국기, 신조 같은) ‘국가의 상징’을 다시 존중하는 교육을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1월 21일 올랑드 대통령의 경고가 덧붙었다. “이제부터 공화주의 가치나 교사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동은 무엇이든 학교장에게 보고될 것입니다. 결코 어떤 행동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언론 역시 정부의 정책을 충실하게 전달했다. 그런데 언론은 정부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이슈를 더욱 키우고 있다. TV 뉴스, 특별방송, 논평 시간에 평론가들이 비평을 쏟아냈다. 유럽1 라디오의 진행자 토마 소토가 질문을 던졌다. “학교가 프랑스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되고 있나요? 화가 나는 질문입니다.”(1월 13일) D8 TV의 진행자 아드리엔 드 말르레는 교육부 장관이 한 말을 거의 그대로 반복했다. “테러가 발생한 지 8일, 학교가 원리주의에 대항해서 제 일선에서 싸우고 있습니다.”(1월 15일)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의 마르크 부앙셰는 1월 19일 “학교가 프랑스가 앓고 있는 모든 병의 원인인가요?”라고 질문하고, 앞으로 학교 문제가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의 편집장 크리스토프 바르비에는 회한에 젖은 채 1월 14일자 사설을 썼다. “테러 이후에 프랑스 국민은 학교가 어떤 상태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종교적‧정치적 선전 때문에 학생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교분리원칙과 시민정신은 후퇴했다. 학교를 정상화해야 한다. 공화주의 가치가 씨를 뿌리지 못한다면 증오가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목소리에서 분명한 멜로디 하나를 끄집어 낼 수가 있다. 프랑스 학교가 정교분리원칙을 교육하지 못하면 ‘집단 이기주의’가 특징인 ‘문명 간의 충돌’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멜로디는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꼭 들어맞는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이든 이슬람 중학생의 치마 길이 문제든 상황에 대한 진단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문화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다른 문제들이 감춰져 있다. 언론이 ‘벽과 벽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갖다보니 벽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묵념 거부 사건을 계기로 언론은 유사한 사건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나는 샤를리다’라고 말하기를 거부한 학생들 이야기는 며칠 동안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는 ‘프랑스 공화국의 잃어버린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하루 종일 관련 특별 프로그램을 내보내기도 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사고’가 발생하는 서민지역이 뜻하지 않는 조명을 받게 됐다.
“1월 15일 목요일 아침부터 기자들에게 시달렸습니다”라고 센-생-드니 전국 중등 교원노조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도미니크 쇼뱅 교사는 그날을 기억했다. 같은 날, 일간지 <르파리지앵>은 묵념시간을 진행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클리쉬-수-부아 고등학교 교사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앞으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쇼뱅 교사는 인터뷰를 한 교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교사를 잘 알고 있어요. 전에도 문제가 있어 인사위원회에서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상관하지 않았다. “다른 기자들이 계속 찾아왔죠. 어떻게 해서라도 같은 학교의 교사와 인터뷰를 하려고 한 거죠. TF1 TV의 한 기자는 1시 뉴스에 내보내기 위해 거짓 인터뷰를 제안하기까지 했습니다”라고 쇼뱅 교사는 덧붙였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 묵념을 거부한 학생들
클리쉬-수-부아에서 성공하지 못한 TF1의 ‘1시 뉴스 팀’은 루베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곳 장-물랭 고등학교의 ‘아이들’이 기자들이 찾던 것을 주었다. 학생들이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마호메트 캐리커처를 비난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도를 넘었어요.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했어요.” 그러자 기자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많은 수의 교사들이 묵념의 시간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몇 주 후 우리가 루베에서 만난 교사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묵념 시간을 진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루베의 거의 모든 중학교가 그렇듯이 우선지정학교인 알베르-사멩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쥘리에트 페로 교사의 설명은 이렇다. “중학교 1학년 반을 맡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묵념의 의미를 설명했고 잘 진행됐어요. 문제가 있었던 반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은 작년에 개학할 때부터 문제가 많았어요. 문제아들을 모아 한 반을 만든 학교 정책 때문이죠. 아이들은 학교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개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반이 ‘쓰레기 반’이라는 것을 눈치챘어요. 사고가 나는 것이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1년 내내 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아들의 말썽은 공화주의의 가치와는 단절되는 행위가 아니란 말인가? 장-물랭 고등학교에서 몇 킬로미터 안 떨어진 반 데르 미르쉬 중학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고 있는 쥘리에트 두게 교사는 이 질문에 웃는다. “묵념을 시작하기 전에 15분 정도 수업을 멈추고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북아프리카 이민자 자녀들이었는데도 어떤 부정적인 의견도 없었어요. 문제가 있었던 반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몇 분 후에 교감이 다시 묵념을 하자고 학생들을 붙잡았다. 그것도 점심시간에. “12시 20분에 중학교 학생들을 모이게 하자 그때 소란이 있었어요.” 두게 선생님은 말한다. 학생들은 배고프다고 말한 것이지 테러를 옹호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릴 지방 교육청은 묵념과 관련해 십여 가지의 크고 작은 사고를 보고 받았다. 지방 일간지 <노르 에클레르> 기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1월 13일자 1면에는 경고성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테러 이후 반복되는 사고로 긴장에 휩싸인 루베’!
마르세유의 상황도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만난 생텍쥐페리 고등학교 역사지리 교사인 스테판 리오는 1,600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중 80%가 학비지원을 받고 있다. 여기서도 교사들의 증언은 언론이 묘사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묵념은 감정적인 결정이에요. 그런데 교육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을 비난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했어요. 학생들이 유머의 아이러니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샤를리 에브도식의 ‘급진적 자유주의’ 코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역사지리 교사인 나의 입장에서는 캐리커처의 역사, 정교분리원칙의 역사, 19세기 이후 언론의 역사에 대한 수업을 하고 학생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리오 선생님은 답했다. 학교가 정부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하부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은 문제로 가는 지름길이다….
릴 근교 와티니에 있는 볼테르 중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엘렌 두게 교사는 문제의 묵념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항상 수업을 미리 준비해요. 묵념은 수요일 전날 정해졌어요. 어떻게 다음 날 아침에 학생들에게 캐리커처나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가르칠 수 있겠어요? 극히 일반적인 것만 말할 수밖에 없고 틀린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해야 했어요,” “기자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에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게 교사는 묵념이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요구로 결정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디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학교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미디어가 말하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일부 언론(1)이 ‘북쪽 학교’ 혹은 ‘게토 학교’라고 이름 붙인 마르세유의 생텍쥐페리 고등학교는 심심치 않게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스테판 리오 교사는 “기자들은 나에게 연락할 때마다 이슬람 학생들이나 흑인 학생, 북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의 숫자를 물어봅니다. 나는 나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추방당한 아이들이라고 대답해요. 그러면 언론은 ‘종교’와 ‘집단주의’라는 벨을 마구 울려댑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 경제적으로 불투명한 미래를 말한 것입니다”라고 언급하여 언론의 행태를 꼬집었다.
‘프랑스 공화국의 잃어버린 아이들’에 헌정하는 프로그램에서 배를 곯는 아이들, 집이 없는 아이들, 공부할 공간이 없는 아이들을 다루었는가? 이것이 바로 페로 선생님이 매일 부딪히는 현실이다. “언론은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얼마나 우스운 질문인가요! 여기 아이들에게 급한 것은 일단 사는 것이에요. 국가의 지침을 존중하라고 요구하지만 국가는 동네를 저버렸어요.” 페로 교사가 가르치고 있는 중학교 유리창에는 유리 대신 나무판이 대어져 있다. 바닥 타일은 떨어지고 화장실은 마지막으로 개보수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할 수조차 없다.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수십 헥타르의 산업단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젊은 선생님이 내린 결론이다.
종교적 몽매주의, 이기적 집단주의, 과격 이슬람운동뿐 아니라 실업, 빈곤, 불평등과 같은 프랑스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실재하는 것이든 만들어낸 것이든 간에)에 대한 해결책을 논할 때 항상 학교를 언급하지만, 학교는 삐걱거리는 프랑스 사회모델의 배수구나 마찬가지다. 학교는 더 이상 정치인들이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공화국의 초석이 아니라 끝,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이 되고 있다. 사회를 구하기 위해 학교에 지침을 쏟아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교사들은 이런 아이러니에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긍정하는 건 아니다.
루베는 1930년대에 세계적인 모직물 생산지였다. 하지만 섬유산업이 ‘임금이 낮은’ 지역으로 대규모로 이전하면서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4년 콩파스 경제사회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45%의 가구가 빈곤선 아래서 살고 있다.(2) 루베-투르쿠앙 지역에서 섬유산업은 1974년에 35%를 차지했고 1985년에는 21%, 1990년에는 11.3%로 계속 하락했다. 현재는 4%에 그치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서비스 분야로 이직했고 수십 년 동안 투쟁하며 얻어냈던 사회보호장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불특정 기간 계약(CDI)이 특정 기간계약(CDD)과 임시직으로 대체되고 있다. 임시직은 노르-파-드-칼레 지역에서 1995년에서 2003년 사이 95%나 증가했다. 40시간, 39시간, 35시간 주당 근무시간은 유연한 시간제 근무로 변했다. 법정 주당 근무시간은 사라져버리고 연간 고용 계약과 정해지지 않은 근무시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고민해서 선택하고 투표한 변화가 학교가 기초하고 있는 사회적 체제를 체계적으로 갉아먹고 있다.
벨가셈 가족은 1950년대 말 루베에 정착하고 섬유산업체에서 일했다. 벨가셈 가족의 이야기는 악화된 사회와 경제와 학교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장남인 부지드 벨가셈은 1970년대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열여덟 살에 튀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술 학위를 받았습니다.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만 졸업하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어요. 졸업 후에 나는 바로 라 르두트 포장부서에 취직했지만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6개월 후에 반덴베르그 모사공장으로 옮겨 갔어요. 다시 6개월 후에는 라 토세 방직공장으로 옮겨 전문기술자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했습니다.”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
20년 후 루베의 경제상황은 180도로 달라졌고 벨카셈 가족의 막내 아제딘은 큰 형 부지드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 했다. “막내 동생은 1990-1995년에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도 실업자 수가 이미 3백만을 넘어섰었죠. 동생은 몇 년 동안 임시직으로 건설분야에서 일했습니다. 40세인 지금 알베르 사멩 중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임시계약직이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그렇다면 부지드 벨가셈의 아이들의 상황은 어떨까? “아이들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요. 큰 아들 메디는 28세인데 안정된 직장을 아직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아 전자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어요. 현재 투르쿠앙 중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고 그것도 계약기간이 1년이에요. 계약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둘째 아들 사미르는 술집을 차렸지만 곧 문을 닫을 것 같아요. 지금은 누구나 학교에 갈 수는 있지만 졸업하면 아무 것도 없거나 아무 일이나 해야 합니다.”
학교조차도 태풍을 피할 수 있는 항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페로 교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임시교사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학교에 보조교사, 단일고용계약(CUI) 교사, 직업지원계약(CAE) 교사, 대체교사 등 임시직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이들은 내일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 나절 일하고 한 달에 600이나 700유로 받으며 생존하고 있어요. 작년에 한 동안은 정식교사보다 임시교사의 숫자가 더 많을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스템은 봉급자에게 고용불안을 초래하고 있고, 혼란스러운 경제의 희생자들은 서로 얼굴을 맞댄 채 일하고 있죠.”
39세의 프레데릭 쇼몽은 북부 루베에서 천 킬로미터 떨어진 남쪽 마르세유의 생텍쥐페리 고등학교에서 CUI 계약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열여섯 살 때부터 피자배달원, 스키장 진행요원, 주차장 경비, 도매시장 배달원, 제품 운반원, 청소원 등 노동시장의 ‘현대화’를 최전선에서 경험했다. 지금은 주당 20시간 일하고 675유로를 받는 감독교사를 하고 있다. 2003년 정식 감독교사직이 폐지되면서 봉급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근로조건도 악화되었다.
프레데릭 쇼몽에게 감독교사직은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매달 며칠 동안은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대형유통회사에서 배달과 하역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생선 상자, 고기 상자를 나르느라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서민지역의 ‘프랑스 교육 모델’이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 밖에서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고 학교에서는 직업이 일정치 않은 어른들에게 감독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학생들에게 공화주의 가치를 믿으라고 요구한다…
생텍쥐페리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상드라 드 마랑은 마르세유 북부 학생들의 상황은 루베의 상황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콩파스 연구소에 따르면 마르세유의 빈곤율은 25%에 이른다. “8년 동안 이 학교에서 일했어요. 그 동안 학생들의 상황은 심각하게 악화되었습니다. 처음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매춘, 중증 정신장애, 방황하는 아이들 같은 위험한 상황에 처한 청소년의 경우를 매년 3~4건 보고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12~15건에 이릅니다. 가정방문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학생들이 살고 있어요. 창문도 없고 가구도 없는 집에서 땅바닥이나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자요.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피부병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북쪽 지역의 실업률은 50%가 넘는다. 그리고 많은 주민들이 무직에서 임시직 사이를 오가고 있다. 북쪽의 섬유 도시 루베와는 달리, 서비스 산업이 많은 마르세유는 수많은 허드렛일로 산업도시로서의 면모를 잃었다.(3) 항구의 모습이 변한 것이 이를 가장 잘 대변해준다. 전통적으로 마르세유가 영위했던 산업인 식품(식용유, 비누), 선박수리, 제련 등은 백만여 명의 크루즈 여행객들과 상위 중산층을 위한 거대한 쇼핑몰로 거듭났다.(3) 장-클로드 고댕 마르세유 시장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테라스 뒤 포르 쇼핑몰(190개의 상점과 식당을 영국회사 해머슨이 관리하고 있다)과 레 부트 들라 마조르(7,200평방미터 쇼핑몰)는 쉬는 날 없이 계속 문을 열고 정기적으로 야간개장도 하고 있다. 토요일 오후 쇼핑몰을 걷다보면 지나칠 정도로 유연한 근무시간과 불분명한 고용 계약서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생텍쥐페리 고등학교 학생들의 부모들을 만날 수가 있다. 오네의 청소원, 세큐리타스의 경비원, 바와 레스토랑의 종업원, 상점 판매원…
테라스 뒤 포르 쇼핑몰에서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드 마랑 복지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는 생존하는 것이 되었어요. 설사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임금수준과 근무여건이 형편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어요? 언론에서 비춰주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에요. 우리는 물속에 잠겨 있는 얼음 덩어리를 매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에요!”
루베의 벨가셈 가족이나 생텍쥐페리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언론이 지적하는 대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프랑스 공화국의 잃어버린 아이들’이다. 1월 테러 사건은 몇 년 전부터 언론과 정치에 느꼈던 분노와 배신감을 조금 더 강화해주었을 뿐이다. 부지드 벨가셈은 “나는 사회당 지지자였습니다. 노동자는 좌파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투르쿠앙과 루베에서 사회당 후보들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면서 전단지도 돌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사회당 정부에 분노하고 있어요. 나는 더 이상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항상 투쟁을 했어요. 프랑스 민주노동 연맹(CFDT) 노조원이었으며 다니던 회사의 직원 대표를 맡기도 했죠. 나는 동료들과 함께 근로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위해 싸우고 뭔가를 얻어냈습니다. 우리는 존중받기 위해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1월 테러 사건 이후에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죠. 그런데 내 막내동생을 위한 표현의 자유는 왜 말하지 않는 걸까요? 내 자식들 그리고 나의 표현의 자유는 왜 말하지 않는 걸까요? 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는 일방향이고 몇몇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입다물라고’ 말합니다. 정부나 언론은 내 자식들과 나 같은 북아프리카에서 온 노동자들을 때리기 위해 테러사건을 이용하고 있어요. 내가 사랑했던 프랑스는 인권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나라였습니다. 오늘날의 프랑스는 인권은 점점 더 무시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시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글·질 발바스트르Gilles Balbastre
다큐멘터리 <학교와 미디어의 정보조작(Cas d'ecole)>(2015)의 감독이기도 하다.
번역·임명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르몽드>, 2013. 6. 21.
(2) Louis Maurin, Vilaine Mazery, ‘프랑스 100개 마을의 빈곤율(Le taux de pauvreté des 100 plus grandes communes de France) ’, <Compas Etude>, n°11, Paris, 2014. 1.
(3) 읽어보기, Franéois Ruffin, ‘부자가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라(Penser la ville pour que les riches y vivent heureux)’,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