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에 반(反)하는 경제학의 궤변
2015-07-02 질 로티옹
툴루즈 1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장 티롤은 2014년에 수여받은 노벨경제학상이 증명해 주는 것처럼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경제학자이다. 게다가 독과점기업들에 대한 규제, 시장의 불완전성 혹은 금융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 기업가와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그는 이들에게 전문가적 평가와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해고의 단순화, ‘단일 고용 계약’(1) 혹은 심지어 탄소배출세에 대한 글로벌 단일 가격을 제안하기도 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가 터진 후, 그는 은행 규제에 대한 국회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갓난아이를 목욕물과 같이 버리면 안 된다. 혁신적인 조치로 나름대로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 채권예탁이나 파생상품을 문제 삼지는 말자. 반면에 남용되지 않도록 필요한 기술적 조치들을 취해야 할 것이다.”(2) 금융위기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 퇴직연금, 거주지를 잃어버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이 견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앞서 인용한 말을 하던 순간까지 티롤은 노동과 금융 시장에 관심을 갖는 등 경제학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티롤은 더 거대한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다. 그는 시카고학파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개리 베커(Gary Becker, 1930-2014)의 노선을 따라, 경제학이 가장 다양한 행동들을 연구하는 과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다양한 행동에는 투표하고, 마약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혈액을 수혈하고, 늙은 여성이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일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경제학 영역에 집어넣지 않는 행동들도 포함된다.
그는 그런 과학만이 우리로 하여금 시장의 미덕을 누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의 결점들을 찾아내고 잘 구상된 대중정책을 통해 그것들을 고치면서 말이다. 또한 그런 과학은 대부분 우리의 도덕적 판단에서 생겨나는 혐오의 감정들을 검토하도록 만들면서,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철학자, 정신분석학자, 사회학자, 법학자, 정치학자 등), 대부분의 시민 사회나 종교가(3)―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포함된다― 도덕적 판단에 기반하여 시장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원칙적으로 경제학자들의 최근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다고 그가 설명한다.
그의 말을 믿는다면,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그 많은 과학으로, 그리고 그 많은 최근의 작업을 통해, 세상이 더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암적인 금융, 환경파괴나 불평등의 증가, 대규모 실업은 사람들의 눈에 ‘문명의 발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이 잘한다고 인정받은 영역들에서 발생한 문제들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도덕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 혁신적인 작업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티롤에 따르면, 세상은 주목을 끌려는 의지, 진정한 아량, 이타주의 등과 같은 정신적 자질들을(사람들은 이런 자질들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지 않다) 갖춘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개인들은 자신들의 유용성을 극대화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티롤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유용성이란 것은 합리성의 징표다. 이런 세계관은 두 가지 특성을 드러낸다(예전에는 이 두 가지 특성이 경제학자들에게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언급되지도 않았다). 첫째, 사회는 주체들이 있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목표를 정의하는 행위자들의 기호(嗜好)들만이 존재한다. 둘째 각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와 자신이 기대하는 타인의 행위에 대한 비용과 혜택을 계산하고 이 결과를 유일한 근거로 삼아 행동을 결정한다.
인간을 수학적 형식화로 그려낼 뿐인 경제학
이런 용어들로 형식화된 이론을 적용한 사례는 넘쳐난다.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경우의 수가 많고 또 모든 영역에 관계되기 때문에, 상호작용은 이 이론에 최대의 일반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이런 이론의 세계에서는 기묘하게도 사회적 관계들이 빠져 있다. 가난한 자와 부자도 없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리는 과정과 고유한 개성을 가진 개별 남성과 여성도 없고, 이민자도 없고, 테러리스트도 없고, 예술가도 없다. 오직 당당한 경제주체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접근 방법의 매력은 수학적 형식화와 연관이 있다. 수학적 형식화는 우선적으로 그 자체가 추론 속에 도입시키는 엄격함에 의해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연쇄적인 증명이 엄격하다고 해도 결론이란 것이 가설의 적정성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경우에 있어서, 개인이 자신의 ‘욕심’, 자신의 ‘너그러움’ 혹은 ‘주목을 끌려는 의지’(원칙적으로 이런 것들은 심리학적 특성들이다)에 부여하는 중요성의 강도가 현실적으로 대부분 0이나 1이라는 단순 숫자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이런 연산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 없이 행위들을 방정식화한다고 우리는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은 인간을 사소한 것으로 그리고 ‘행동’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시킴으로써, 행동과학의 지위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인류학, 심리학 혹은 언어학은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심지어 태어나기 전에도 사회와 독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왜냐하면 “갓난아이가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그의 부모들이 갓난아이를 다른 것이 아닌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기”(4) 때문이다.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개인이란 존재의 형성이 타고난 잠재적 개성을 단순히 펼치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5) 우리는 우리의 ‘기호(嗜好)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 우리의 기술적·사회적 환경에 의존하고 있다. 다듬어진 부싯돌에서 핸드폰까지 인류의 모든 진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술제품들의 구성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고등정신 기능들이(미학적 감각, 개념적 사고, 비판 정신) 존재하는 사회 상황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 세상에 이미 존재했던 문화적 혹은 상징적, 그리고 기술적 실현들을 획득하면서 발전하는 것처럼, 인간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분절된 언어도 이처럼 발전해 간다. 이 점은 레프 비고츠키(Lev Vygotsky)가 1920년대에 보여주었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롤은 자신이 엄격한 방법으로 현사회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모델에 기반하여 기업가들과 정치가들에게 망설이지 않고 자신 있게 추천하는 권고들이 합당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모델화한 경제 주체가, 자기 견해의 적절성을 뒷받침하고 도덕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인간이란 종을 충분히 대표한다는 점도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도덕의 영역과 더불어 몇몇 영역들의 상품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근거를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일은 아마 칭찬받을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경제학자들의 최근 작업과 도덕적 감정들의 방정식화가,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회과학들보다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티롤의 태도는 기득권들 중의 하나를 경제학자들에게 보장하면서,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를 경제학자들에게 맡기라고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경제학자들의 작업은 기득권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그 기득권을 악착스럽게 없애는 것이다. 최근의 역사는 “‘전문가’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전문가가 민주적인 토론이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전문가 자신이 민주적인 토론을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글·질 로티옹Gilles Rotillon,
번역·고광식
(1) 올리비에 블랑샤르(Olivier Blanchard)와 장 티롤(Jean Tirole),
‘일자리 보호와 해고 절차,’ <경제 분석 위원회 보고서>, 2003년 10월 9일.
(2) 디디에 미고와 질 카레즈, ‘국제 금융위기에 연관된 정보 보고서,’ 의회,
파리, 2008년 11월 5일, www.assemblee-nationale.fr.
(3) 장 티롤, ‘도덕과 시장,’ <레제코>, 파리, 2014년 12월 7일.
(4) 프랑수아 플라오(François Flahault), <로빈슨의 역설>, 밀에뉘,
파리, 2005년.
(5) 질베르 시몽동, <정신적 그리고 집합적 개별화>, 오비에, 파리, 1989년.
(6) 레프 비고츠키, <고등정신 기능들의 발전사>, 라디스퓌트, 파리,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