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옥죄는 '프랑코 망령'
‘강제퇴거 반대 플랫폼(PAH)’은 반(反)긴축정책을 내세운 포데모스당의 지지로 바르셀로나 지방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아다 콜로가 2009년에 설립한 단체이다. 이 단체는 스페인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180여 건의 외국인 난민 추방 건에 대한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집행관이 개입하는 당일에 시위를 벌이는 식인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7월 1일부터는 이와 같은 연대적 행동을 조직할 경우 해당 단체의 회원들에게 엄청난 벌금이 부과될 전망이다. 바로 지난 3월 26일 스페인 국회를 통과한 ‘시민 안전법’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법의 주요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PAH를 비롯하여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수많은 단체들의 활동을 법으로 금지하기 위해서다.
시민들이 15M 운동을 펴면서 대도시의 광장을 점거한 일(2011년 5월 15일 시민 수만 명이 마드리드 도심에 모여 긴축정책과 부정부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일-역주)은 스페인 내 가장 보수적인 정치 계급의 심기를 건드렸다.(1) 2011년 11월 총선에서 승리한 국민당(우파)은 집권 직후부터 집회의 자유와 관련된 행동에 엄격한 규제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2012년 10월 2일, 국민당 소속의 크리스티나 시푸엔테스 의원은 공공장소의 사용을 ‘합리화’하겠다고 밝혔다. 2012년 3월 29일에 대규모 파업이 일어난 이후, 보수주의자들은 펠립 푸이그가 TV3에서 언급했던 ‘시위 참가자들이 두려워할 수 있는 법적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차였다. 마리아노 라호이 정부의 내무부장관인 호르헤 페르난데즈 디아즈는 2012년 4월 11일,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은 채 폭력 사건들의 ‘양적 급증’ 때문에 형법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였다. 시위는 또 다른 형태의 테러 행위라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날, 그의 꿈은 현실화되었다.(2)
형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 일명 ‘재갈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스페인에서 일어나는 사회운동의 다양한 저항 형태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금지한다. 광장 점거, 유인물 배포, 벽보 부착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재갈법은 집회 및 시위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을 금지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기관 앞에서 시위를 벌일 경우 최대 60만 유로까지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아나이스 프랑케사 형법 변호사가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이 개정안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과거에는 형법에 해당되던 일부 행위들이 이제부터는 행정법에 의해 합법 여부가 가려지게 된다는 점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 방어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형법이 보장하는 권리들이 침해될 소지가 있습니다.”
법조문의 모호성도 이러한 우려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사용된 개념들이 불분명하고 애매해 다양한 해석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시민의 안전을 상당히 위협할 수 있는 객관적으로 위험한 행위’를 정확히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은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UN인권이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의 경우 자신의 행동이 법에 부합하는지 부합하지 않는 지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법조문을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작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시위를 강력 통제하려는 스페인의 보수주의자들
개정된 형법 하에서는 단순한 저항 운동도 테러 행위가 된다. 연좌농성 같은 평화적인 행위도 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 이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들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무기 징역’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자유 박탈과 안전 조치는 교화와 사회 재적응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헌법 제25조에 어긋나는 일이다. 스페인에는 이미 40년형을 선고한 사례도 있다.
반면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취득한 사람은 이제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개정된 형법에서는 스페인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정부패 범죄에 대한 처벌을 높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금횡령을 저지른 공무원에 대한 처벌은 오히려 경감시켰다. 게다가 기업의 경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탈세는 그 금액이 연간 12만 유로를 넘어야만 범죄로 인정된다. 여기에 사기업이 정당을 후원할 수 있는 금액 한도는 무려 50만 유로나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뇌물수수와 부정부패로 2015년 1월 유죄를 선고받은 국민당의 전 재무 담당자 루이스 바르세나스는 더 이상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스페인 내 부정부패의 상징이 된 바르세나스는 최근 국민당을 분열시키고 있는 귀르텔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로, 증인 매수, 탈세, 돈세탁, 문서 위조, 공금 횡령, 소송 사기로 기소되었다.(3) 하지만 그는 셀 수 없는 범법 행위들과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회계 문서상의 천문학적인 숫자에도 불구하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체된 금액이 50만 유로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다 불법체류자를 모로코로 즉시 송환하는 법이 생겨났고, 프랑코 장군 독재 하에 저질러진 범죄들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해외에서 중대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를 추적하는 보편적 정의 원칙도 무시되고 있다. 닐스 무이즈닉스 유럽회의 인권위원은 이런 법들이 ‘굉장히 문제적’이라고 평가하였다.(4) 국제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와 UN은 스페인의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스페인 측은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글·세실리아 발데즈Cecilia Valdez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저널리스트.
번역·김소연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라울 기옌, ‘‘태양의 문 광장’ 민주주의의 연금술사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7월호.
(2) 세우따 멜리야(Ceuta y Melilla) 지역 국경의 난민 본국 송환에 관한 규정이 2015년 4월 1일 발효되었다.
(3) 귀르텔(Gürtel)은 독일어로 벨트란 뜻인데, 스페인 사업가 프란시스코 코레아를 지칭한다고 한다. 코레아(Correa)는 스페인어로 벨트를 의미한다.
(4) <Defiende tus derechos, defiende tu justicia> 인용, No somos delitos 협회 공보, 2014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