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포데모스, “그람시의 ‘진지전’이 우리의 전략”

2015-07-02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경제위기, 만인의 빈곤화,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등으로 유럽에서는 좌파가 부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직 이렇다 할 뚜렷한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지난 5월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주요 도시 의회를 장악한 신생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 (Podemos*)만이 유럽 좌파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포데모스의 지도자인 파브로 이글레시아스 사무총장이 그들의 도전에 대해 들려준다.

 
별로 놀랍지 않았다.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이끄는 그리스 정부는 독일이 헤게모니를 쥔 유럽연합(EU)의 운영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스가 약소국이긴 하지만, 국가 크기에 비할 수 없는 규모의 도발이었다. 게다가 유로존에서 경제규모가 4번째인 스페인에서 포데모스가 대권후보자로서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리스 시리자당 소속 정치인들은 우리가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는 것이 그들에게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당(포데모스당)의 정적들은 그리스 시리자당의 승리가 우리 당의 선거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힘을 실어 줄까봐 우려한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그리스 정부를 실패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당과 같이 그들 눈에 위협적인 존재를 제거하려고 한다. 시리자당을 압박하는 일은 결국 포데모스당에게도 동일한 대응을 할 것이며 대안은 없다는 점을 입증하겠다는 말이다. 요컨대 현재 스페인국민을 선동하는 “포데모스당에 표를 주시겠다고요? 그리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한 번 보시지요”라는 문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볼 때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무척 영리하다. 그는 독불장군 독일이라는 이미지를 구체화해서 대외정책을 비롯한 여러 독일의 이해타산이 다른 유럽국들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미미하지만 어느 정도 설득됐고 동유럽 국가 쪽으로도 노력 중이다. 그러니 협상테이블에서 독일이 그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시리자당과 포데모스당의 전략 차이
 
그리스 시리자당은 우리 당과 확연히 다른 상황에서 유사한 전략을 펼쳐왔다. 그들은 약화되고 붕괴된 정부의 제도적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재건하려고 노력 중이다. 국가가 긴축정책으로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재건하기 위해, 특히 공공정책 분야에서 필요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조세제도도 개편했다. 대외적으로는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협의체)의 헤게모니를 쥔 집단에 반론을 제기했다. 초반에는 독일이 유럽위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소극적인 비판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주류 의견을 분열시키는 것이 목표였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 당의 전략은 다를 것이다. 우선 그리스가 유로존 국내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4%에 불과하지만 스페인은 13%나 된다. 우리는 운신의 폭이 조금 더 크다는 확신을 가지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다. 또한 EU예산조약 개혁 문제도 다루어 투자부문의 공공지출을 늘리고 연금을 비롯한 사회정책을 확대할 뿐 아니라 소비를 제한하는 임금 인하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개혁조치들이 단행되고 나서야 우리는 유럽 차원의 부채 문제를 제기해, 부채상환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는 구조개편 등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와는 다른 유럽 차원의 전략만이 긴축정책이 아닌 다른 패러다임을 가능케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정적들, 특히 사회민주세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반대할 것이다. 우리는 스페인이라는 국가 내에서뿐 아니라 유로그룹에서도 얼마나 큰 저항에 부딪히게 될지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처럼 작고 힘없는 나라가 유로존에 얼마나 위협적인 요소가 됐는지 감안할 때 스페인이 사회민주세력 내에서 불러일으킬 반대의 규모는 훨씬 클 것이다. 유럽프로젝트는 긴축정책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지면서 경제적 사안에 대한 정치적 논의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과 연합할 가능성
 
이는 무엇보다 전략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꾸준히 분명하게 밝혀 온 바와 같이 우리의 주요 목표는 11월 총선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결정 하나, 어떤 상황 하나가 그 총선에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국민들이 품고 있는 변화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도 무시할 수 없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물론 선거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가 다른 정치세력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역량도 중요하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사회당과 힘을 합치실 겁니까?”라고 물으면 우리는 “그러려면 먼저 사회당이 180도 선회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할 거다. PSOE 내부에 두 개의 파가 있다고 알고 있다. 체제 또는 제도의 논리가 특징인 첫 번째 파는 우리를 막고 우리가 이끄는 운동을 멈추는 것을 선결과제로 삼고 있다. 그들은 이를 위해 국민당(PP)이나 신생 정당인 시우다다노스(1)와 연합할 것이다. 두 번째 파는 정당의 논리로 사고를 한다. 그들은 만약 우리와 연합하면 결국 PSOE가 내부 분열로 우리의 입지만 확대될 것을 알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페인은 15~25%의 지지를 받는 4개의 정당 체제로 향해 가고 있다. 그런 상황이니 타당과의 연합 여부는 결국 정적들의 내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거결과를 비롯한 여러 상황을 분석해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는 정당을 연합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2) 우리는 PSOE가 지방정부를 수립하도록 지지하는 대신 조건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 조건은 우선 비리의혹이 있는 전 정당대표 두 명이 각각 하원과 상원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안달루시아 정부가 살 거처도 마련해주지 않고 사람들을 내쫓는 금융단체와 어떤 계약도 체결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경제위기로 인해 학교와 병원에서 해고된 모든 사람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고위 직원의 수를 감축하라고 했다. 정부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PSOE의 길을 막지 않기 위해 내건 조건들이다. 우리 당의 득표율은 사회노동당보다 낮아서 운신의 폭이 제한적이다. 우리는 사회노동당의 집권을 방해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포데모스가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이 사회적 조치로 즉시 이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시우다다노스당의 등장
 
정적도 대세에 적응했고 대립의 언어는 바뀌었다. 현재 언론이 우리에게 전보다 덜 호의적인 것은 사실이다. 시우다다노스의 창당은 꽤 영악한 한 수였다. 이제 ‘변화를 추구하는 당’이 하나 더 생겼다. 그렇지만 시우다다노스는 상당 부분 기존의 자유주의 질서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두 당의 특징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당의 목표를 다시 설정했다.
우리의 핵심목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계의 중심점을 확보하는 것이다. 부르주아들이 말하는 정치적 ‘중도’와는 무관하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을 빌자면 이번 진지전에서 우리의 목표는 최근 재편된 정치 스펙트럼의 중앙을 횡단하는 진지를 우리가 차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상식’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시우다다노스당의 부상을 필두로 한 엘리트들의 반격으로 활동가능한 정치적 입지는 줄었다. 우리 일은 좀 더 어려워졌고 전략적으로 새로운 지성을 필요로 한다. 정적의 이런 시도는 우리 당 내부에서도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우선 시우다다노스당의 등장은 우리가 애초부터 실패라고 여기던 기존 좌우 논리로 우리를 다시 끌고 왔다. 기존 논리를 바탕으로 해서는 스페인에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이 축으로 돌아가 새로운 중심점, 재차 말하지만 정치 스펙트럼의 중도와는 무관한 이 중심점을 정립하는 데 실패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소수 엘리트)’을 대비하는 포데모스의 서민적 입장은 기존 극좌파의 입장으로 재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그렇게 되면 정치 스펙트럼을 가로지르겠다는 포데모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새로운 중심점이 될 가능성도 사라지게 된다. 또 우리 당은 위기이자 기회일지도 모르는 표준화라는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아웃사이더’도 아니고 새로운 당이라는 이미지도 사라졌지만 세력을 강화하고 경험을 쌓아 대중성을 확보했다. 이제 우리 당의 정치적 입장을 재정립하거나 다듬어서 반격을 저지하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닫혀 있던 곳의 문을 열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2015년 4월 15일 스페인 국왕이 유럽의회를 공식 방문했을 때 우리는 이미 이런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국왕 방문과 같은 행사는 우리에게 군주제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만든다. 무엇이 까다롭냐고? 군주제에서는 우리가 정계의 중심점을 차지하는 일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략 두 개의 옵션을 생각해볼 수 있다. 통합좌파당 등 좌파가 전통적으로 선택하는 첫 번째 옵션은 “우리는 공화주의자다. 우리는 군주제를 인정하지 않으니 스페인 국왕을 영접하러 나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저렇게 말하는 순간 우리는 기존 정치프레임에서 급진좌파로 간주되고 만다. 동시에 여러 현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또 구체제의 비리문제에 전임 국왕이 연루됐다는 의심을 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신임 국왕(3)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각계각층의 많은 국민들에게 반감을 사게 된다. 군주제는 여전히 스페인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은 체제이다. (…) 스페인 국왕 영접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 극좌파라는 기존 정치 분석틀에 편입돼 활동가능성을 제한받든지, 그 자리에 참석해 포데모스도 기성 정치인계급에 합류해 제도적 구조를 인정한 변절자나 군주주의자로 간주되든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한가? 우리는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렇지만 공식의례를 무시하고 일상생활에서 입는 옷을 입고 평소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갔다. 아주 사소하지만 포데모스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게다가 국왕에게 현재 스페인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설명하며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 DVD를 선물했다. (…) 물론 미묘하긴 하지만 우리가 이론적인, 다시 말해 무기력한 태도만 고수하지 않고 정치라는 게임의 문을 열어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지속하며 현상을 문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글·파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
 
번역·서희정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 이 글은 <뉴 레프트 리뷰>(2015년 5-6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발췌한 것이다. 2015년 5월 24일 스페인 지방선거 결과 분석 의견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위해 작성됐다.
 
(1) 2006년 카탈루냐에서 형성된 시민당에 뿌리를 둔 반부패보수정당
(2) 3월 22일 안달루시아 지방의회 재구성을 위한 조기선거에서 PSOE는 35.5%, PP는 27%, 포데모스는 15%의 득표율을 보였다. 안달루시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용 연합을 형성하기 위해 정당 간 이면공작이 치열하다.
(3)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비리의혹으로 인해 2014년 6월 19일 아들 펠리페에게 왕위를 양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