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와 러시아의 새로운 전쟁터 ‘발칸’

2015-07-02     장 아르노 데랑스, 로랑 제슬랭

 우크라이나에 이어 발칸반도가 동서 대립의 새로운 무대가 될 조짐이다. 러시아는 경제적인 이유뿐 아니라 지정학적인 이유로 이 지역에 투자를 재개하며 공을 들이고 있지만 전통적인 우호관계에도 불구하고 발칸국가들이 점점 더 유럽연합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많은 것을 기대하기 힘든 처지다.

 

세르비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가 러시아와 서구가 대치하는 최전선이 될 것인가? 지난 2월 24일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한 존 캐리 미 국무장관은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발칸지역을 연관시켜 언급한 것은 러시아가 먼저였다. 2014년 3월 러시아 정부가 크림자치공화국을 합병하며 내세웠던 논리는 아이러니하게도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당시 유고슬라비아 공습을 합리화할 때 내세운 논리와 비슷하다. 두 경우 모두 인류의 대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올해 2월 7일 뮌헨에서 개최된 국제안보회의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코소보는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 없이도 독립선언을 한 반면 크림은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결정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다시 우크라이나와 발칸지역을 연관시켰다. 결론적으로 크림이 분리독립하고 후에 러시아 연방으로 귀속된 것은 코소보의 독립선언보다 국제법에 더 합당하다는 것이다.(1)

이러한 상황에서 세르비아의 남부 도시인 니스에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합작으로 설립된 긴급구호센터는 끊임없는 의혹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센터는 2012년 러시아 위기관리부 블라드미르 푸츠코프(2) 차관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2014년에 니스 공항의 활주로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옛 컴퓨터 공장 부지에는 본부가 건립되었다. 건물 앞에는 십여 대의 소방차와 역시 십여 대의 오프로드 차량이 주차되어 있고, 행진하는 군인들처럼 열을 맞춰 세워진 창고에는 발전기, 담요, 텐트, 의약품 상자 등이 가득 차 있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최신 설비를 갖춘 통신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세르비아와 러시아를 동시에 연결해서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니스 긴급구호센터는 언론에 모든 것을 공개했다. 빅토르 사피야노프 센터소장은 40여 명의 상임직원이 일하게 될 것이며 완전하게 투명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긴급구호센터는 러시아 연방 지역 밖에서는 처음 설립된 것으로서 일종의 시범 사업”이라고도 덧붙였다. 사피야노프 소장은 자신은 생페테르부르크에서 시민안전을 담당했고 “2002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구호 활동을 지휘”했다고 밝혔다. 물론 군대경험이 있는 것도 인정했다. 작년 5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세르비아에 홍수재해가 발생했을 때 센터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러시아 구조대를 파견해 구호활동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이 센터가 모양새는 구호기관이지만 실제는 첩보조직일 것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약 7천명의 군인이 주둔했던 코소보의 미국 군사기지를 빗대어 “러시아의 본드스틸 캠프”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호활동으로 다른 활동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밝혀내기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러시아 위기관리부와 세르비아 내무부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이 센터는, 러시아가 세르비아 나아가 발칸지역을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2008년 센터 설립을 내용으로 한 협정에 서명한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전 대통령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센터는 러시아의 정치적 의지의 산물이다. 러시아 정부가 센터 설립을 제안했다. 하지만 군사활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처음부터 확실히 못을 박았다.”

타디치 대통령은 두 번의 임기 동안(2004-2012) 러시아와의 전통적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세르비아를 친유럽 성향의 국가로 변모시켰다.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유럽연합에 가입하고자 하는 우리의 정책방향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던 때인 2012년 3월 1일 세르비아는 유럽연합 후보국 지위를 얻었고, 같은 시기에 러시아는 세르비아의 에너지시장에 진출하는 열쇠를 손에 넣었다. 타디치 대통령은 2008년 12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세르비아 국영 석유회사(NIS)의 지분 51%를 러시아 가스회사 가스프롬(3)에 매각하는 협정에 조인했다. 매각금액은 분석가들이 평가하는 것보다 1/5에서 1/3이 싼 4억 유로였다.(4) 이 협정으로 러시아는 탄화수소를 자국으로 들여오는 것뿐 아니라 세르비아 내 유통에도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친러시아 민족주의 성향의 극우 정당인 세르비아 진보당(SNS) 소속의 토미슬라브 니콜리치 대통령은 2012년 5월 6일 대선에서 타디치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작년 3월에 있었던 조기 총선에서 SNS는 절대과반을 차지하며 다수당이 되었다. SNS는 2008년부터 친유럽을 기조로한 현대화정책을 채택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신임 총리 역시 더욱 강화된 친유럽 정책 노선을 천명했다. 이런 일은 신념에서 나온 것이건 아니면 기회주의적인 선택이건 간에 군사적 중립이라는 세르비아의 신성불가침 원칙이 언젠가 금이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르비아 정부는 유럽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익과 전통적 우호관계를 이유로 러시아에 대한 국제 제재조치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했다. 친미성향의 베오그라드 소재 유로아틀랜틱연구소(CEAS)의 옐레나 밀리치 소장은 세르비아가 “유럽통합을 추구하면서 외교정책을 유럽연합의 정책과 노선을 맞추어야 하는 등 운신의 폭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르비아가 아직 그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양극화된 세계에서도 여전히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에너지 수입 문제로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는 발칸국가들

세르비아의 이웃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도 러시아와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말 러시아와 슬로베니아 기업인들이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라냐에서 모였고, 올해 2월에 열린 러시아-크로아티아 경제 포럼은 러시아 제재 중에 개최되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유럽연합의 회원국인 두 나라는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열의는 보이지 않고 있다. 헝가리 석유가스 회사(MOL)는 보유하고 있는 크로아티아 석유회사 INA의 지분을 러시아 거대 석유회사 로즈네프트에 매각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2014년 초 유럽연합의 명령으로 현재 거래가 중지된 상태이고, 그 결과 크로아티아 석유산업의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이권이 가장 첨예하게 걸려있는 분야가 에너지이다. 다른 분야에서의 교류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 지역 국가들의 제1의 무역 상대국은 러시아가 아니라 유럽연합이다.

2014년 10월 16일에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베오그라드를 공식 방문했다. 세르비아와 러시아의 우호관계를 다시 한 번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베오그라드 해방 70주년 기념식의 일환으로 계획된, 티토 장군의 서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군사 퍼레이드에 푸틴 대통령을 주빈으로 초청하기 위해 공식 기념일인 10월 20일을 앞당겨 실시했다. 기념행사는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다. 세르비아는 니스 구호센터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에게 외교관의 지위를 부여해달라는 러시아의 요청을 거부했고 그에 대한 답으로 푸틴 대통령은 가스 수입 대금 2억 유로를 인하해 달라는 부치치 총리의 요구를 수락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6주 후 12월 1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우회해서 유럽으로 공급되는 천연가스관 사우스스트림 (South Steam) 사업의 중단을 발표했다.

사우스스트림 사업이 중단된 것은 2014년 10월 5일 불가리아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한 후 재선된 보이코 보리소프 총리가 유럽연합의 압력으로 가스관이 불가리아를 통과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불가리아에서는 기본적으로 에너지 문제와 러시아와 미국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좌‧우파를 가른다. 총선 승리 후, 보리소프 총리는 서둘러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을 초청해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이고 불가리아가 범대서양 거대시장에 참여하고 셰일가스 개발을 위한 탐사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세르비아 현행법상 셰일가스 개발을 위한 수압파쇄법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케리 국무장관 역시 불가리아가 ‘에너지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다시 말해 러시아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사우스스트림 가스관이 통과하는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와 가스 공급망 연결이 예상되는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에게 있어 사업의 중단은 물론 좋지 않은 소식이다. 그리스와 터키 국경을 통과하는 가스관(터키스트림)으로 많은 부분 대체된다고 해도 말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함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르비아계 스릅스카 자치공화국의 밀로라드 도디크 대통령은 사우스스트림 사업 중지로 인한 피해가 수십억 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6) 스릅스카 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투자 역시 에너지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2007년 스릅스카 정부는 NIRS 정유회사 지분의 65%를 러시아 회사 니에프티가진코르에 매각했다. 덕분에 러시아 회사는 2개 정유공장과 주유소 체인망을 보유하게 되었다. “스릅스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민영화”라고 도디크 대통령은 주장했지만 이 계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앙이 되었다. NIRS의 적자는 계속 쌓여만 가는데 러시아 회사는 약속했던 투자를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니에프티가진코르는 러시아 국영기업 자루베즈네프트가 4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60%는 신분이 확인되지 않는 세 사람이 가지고 있다. 스릅스카에는 니에프티가진코르의 진짜 소유주는 다름 아닌 공화국의 일인자일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많다.(7)

“도디크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스릅스카 사무소의 책임자인 타냐 토피크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도디크 대통령은 수많은 러시아의 투자계획과 차관을 발표한다. 러시아를 지지하는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약속했던 러시아 차관을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지만 그 약속들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뿐 아니라 유럽연합 그리고 세르비아와 힘겨루기를 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여전히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스릅스카는 분리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 실시에 대한 가능성을 몇 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언급하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고 데이톤 평화협정(1995)이 낳은 1국 2체제를 위협하는 중앙집권화에 대한 시도 자체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크림에서 실시된 주민투표는 도디크 대통령에게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스릅스카가 주민투표를 실시해서 독립을 선포하고 러시아가 승인하게 되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사망선고를 받게 될 것이고 이것이 서구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이다.

러시아는 이미 발칸 국가와 공고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굳이 이 지역에 러시아와 서구의 대립구도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을까? 미국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미 국방부 크리스틴 워무스 부차관은 2015년 2월 말 하원 국방위원회 청문회에서 러시아는 “몬테네그로 같은 나토 회원국이 아닌 작은 나라들에 집중해서 지역의 불안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몬테네그로 정치지도자와 러시아의 신흥재벌들과의 밀착 관계

몬테네그로는 2006년 독립을 한 후 매우 특이한 상황에 처해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친유럽과 대서양 정책을 주창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투자는 계속 받아들이고 있다. 러시아 신흥재벌이며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올레그 데리파스카가 2005년에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알루미늄 콤비나트(KAP)를 인수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알루미늄 제왕’은 몬테네그로의 중요한 기업 하나를 죽이고 말았다. 거대한 투자를 약속했지만 돈 한 푼 쓰지 않은 것이다. 현재 KAP는 파산을 신청했고 데리파스카는 몬테네그로 정부를 제소한 상태다. 그러면서도 데리파스카는 포르토 몬테네그로 마리나 개발과 같은 여러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표는 남서부의 조그만 마을 티바트에 있는 옛 해군기지 자리에 아드리아해에서 가장 호화로운 마리나를 건설하는 것이지만, 말할 것도 없이 사업의 실제 자본구조를 알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식 투자자들 이외에도 “차명 투자자들이 있을 것이며 총리인 밀로 주카노비치도 그들 중 한 명일 것”이라고 경제분석가 데얀 미요비치는 말한다.

10여 년 전부터 몬테네그로의 해안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건설사업은 모두 이 같은 수상한 자본구조 때문에 의혹을 받고 있다. 유명 해안 도시인 부드바에 있는 스플랜디드 호텔은 공식적으로 르위트 파이낸스 몬테네그로라는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던 시기 KGB 국장을 지냈던 빅토르 이바넨코의 소유이다. 이바넨코는 메나테프 은행과 러시아 제1의 석유회사인 유코스를 설립해 억만장자가 된 인물이다. 푸틴 대통령이 정적(政敵)인 미하일 코도르코프스키를 감옥에 넣으며 유코스 소유주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도 이바넨코는 건들지 않았다. 몬테네그로의 시사주간지 <모니터>는 2005년 이반넨코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지금도 빅토르 장군이라 불리고 있다. 몬테네그로의 정치인, 폭력배, 러시아의 마피아, 그리고 정보원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현 몬테네그로의 총리인 주카노비치의 가족도 스플랜디드 호텔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주카노비치 총리는 몬테네그로 공산당(SKCG)의 후신인 사회민주당(DPS)의 총수로 1989년부터 총리와 대통령을 번갈아 맡고 있다. 동생인 알렉산다르는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큰 민간은행 사장이고 변호사인 누나 아나 콜라레비치는 굵직한 민영화 사업을 진행했다. 가족 재산의 많은 부분이 총리의 아들 이름으로 되어 있다.

몬테네그로 정치지도자들과 러시아의 신흥재벌과 정보조직과의 밀착 관계는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 당시 세르비아와 함께 국제 제재조치를 당하고 있던 몬테네그로는 대규모의 담배 밀수로 생존하고 있었다. 이렇게 구조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주카노비치 총리가 1997년 자신의 멘토였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와 관계를 끊고 친서방 정책을 채택했을 때도 러시아는 그리 불편해하지 않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그랬다.

2014년 5월 22일 몬테네그로는 러시아에 대한 유럽연합의 제제조치에 동참했다. 그러자 “러시아 투자자들은 몬테네그로를 떠났다. 2014년 4분기에 이미 부동산 가격이 15% 하락했고 2015년에도 하락은 멈추지 않고 있다”고 이반 다지치 몬테네그로 프로스펙트 부동산 회사의 대표는 불만을 토로한다. 러시아 투자는 2013년에 이미 30% 하락했고 루블화의 하락으로 구매력을 잃은 러시아 고객들의 이탈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와 몬테네그로가 진짜 헤어졌는가? 아니면 연출일 뿐인가? 발칸의 작은 나라들을 유럽연합이나 나토에 트로이의 목마로 이용하는 것이 러시아에게는 더 좋은 작전이 아닐까?

몬테네그로는 2010년 12월 유럽연합 공식 후보국의 지위를 얻었고 현재는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작년 봄에 심각한 부패 상황과 조직범죄를 이유로 후보신청이 거부되었다. 하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몬테네그로에 침투해 있는 수많은 러시아 정보원들의 존재 때문이다. 야당 인사인 네보사 메도예비치는 “25명에서 50명의 몬테네그로 정보원들이 러시아와 연결되어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8) 주로 전 유고슬라비아 군대의 장교들로 2006년 몬테네그로에 새로운 군대가 창설되었을 때 합류한 사람들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문제는 몇 달 후에 다시 제기될 것이다. 국회투표나 국민투표를 통해 가입 여부가 결정될 텐데 여론은 갈라져 있다. 야권 성향의 일간지 <비예스티>의 젤코 이바노비치 편집장은 주카노비치 총리가 국민투표를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문제로 야당은 완전히 분열할 것이다. 야당은 친서방 세력과 전통적인 친러시아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상황을 활용하며 정권은 또다시 자신들을 유럽이 두려워하는 ‘러시아 괴물’과 맞서 싸우는 수호자로 자처하고 이를 위해 부패와 조직범죄를 무차별적으로 저지를 것이다.”

냉전의 분위기에서는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만 하면 어떤 행위도 허용된다… 몬테네그로의 주카노비치 총리나 스릅스카의 도디크 대통령 같은 발칸의 독재자들은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적인 긴장과 경쟁관계를 영리하게 이용할 것이고 세르비아의 부치치 총리 같은 신참은 양 진영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으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열강의 각축전에서 하수인으로 사용되고 버려졌던 발칸의 비극을 역사는 잘 알고 있다.

글·장 아르노 데랑스Jean-Arnault Dérens, 로랑 제슬랭Laurent Geslin

번역·임명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국제사법재판소는 2010년 7월 22일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국제법상 위법행위가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2) 푸츠코프는 세르비아를 방문하고 며칠 후 2012년 5월 12일 위기관리 장관에 임명되었다.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푸틴 대통령의 측근 세르게이 쇼이구의 후임이다.

(3) 읽기. Catherine Locatelli, ‘크레믈린의 지원 아래 급성장하는 가스프롬(Gazprom, le Kremlin et le march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 5.

(4) Marina Glamotchak, ‘발칸지역의 에너지 전쟁(L’enjeu énergétique dans les Balkans)’, Technip, Paris, 2013.

(5) 읽기. Hélène Richard, “사우스스트림 사업 중단의 진짜 이유(South Stream, les raisons d’un aband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 5.

(6)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브로드 정유공장 러시아식 파산(Bosnie-Herzégovine: faillite à la russe de la raffinerie de Brod)’, <Le Courrier des Balkans>, 2015. 1. 7., www.courrierdesbalkans.fr.

(7) Cf. <Privatizacija drzavnog kapitala u Bosni i Hercegovini>, Transparency International Bosna i Hercegovina, Banja Luka, 2009.

(8) ‘북쪽에서 온 친구: 러시아 첩보활동의 무대가 된 몬테네그로(Ces amis qui viennent du froid: le Monténégro, plate-forme de l’espionnage russe)’, <Le Courrier des Balkans>, 2014. 8. 1.

<보충기사1:우크라이나에서 치르는 발칸 전쟁>

중단된 발칸전쟁이 우크라이나의 돈바스에서 다시 재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그레브의 한 언론과 인터뷰한 크로아티아 군인들은 한결같이 우크라이나에 배치되어 세르비아 민병대와 1990년대 치렀던 전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이들 대부분은 극렬 민족주의 전투부대인 아조프에 소속되어 있다.(1) 축구클럽 디나모 자그레브의 울트라 서포터인 배드블루보이즈(Bad Blue Boys)의 회장을 지냈던 데니스 셀레는 우크라이나가 ‘유럽 기독우파의 마지막 전선’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2)

세르비아 당국은 수십 명의 세르비아인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민병대에서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세르비아인들이 지원하는 것은 세르비아 군대 편에서 함께 싸워준 러시아 코사크 민병대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러시아 군정보국인 GRU의 고위 장교를 지냈으며 2014년 5월에서 8월까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국방장관을 지낸 러시아인 이고르 스트렐코프 대령은 1992-1993년에 도네츠크 병사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밝혔다.

알렉산다르 사비치는 팔과 상체 전체를 덮고 있는 문신에 대해 기꺼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러시아 정교의 성인들, 보스니아의 옛 세르비아계 지도자인 라도반 카라지치의 초상, 십자가, 세르비아와 러시아의 전통적인 상징물들이 그려져 있다. 세르비아 남부 도시 니스에 있는 카페에서 만난 사비치는 20년 전 러시아에서 결성된 오토바이족 모임인 밤늑대의 세르비아 지부의 책임자로 2014년 3월 초 크림에 있었다고 말한다. “발라클라바와 세바스토폴 사이의 도로에 배치되어 치안을 담당하며 폭력사태를 막았다”고 한다. 이들 중 적어도 세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싸웠다는 이유로 세르비아 경찰에서 해고되었다고 한다.

돈바스에 있는 세르비아 지원병들은 TV사회자였던 라도미르 포쿠카가 결성한 ‘기병’부대에 속해있다. 2014년 4월, 포쿠카는 세르비아 내무부 소속 반테러부대의 대변인직에서 사임했는데 베오그라드에 소재한 반파시스트 페미니스트 단체인 ‘검은 옷을 입은 여인들’을 공격하라고 훌리건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글·장 아르노 데랑스Jean-Arnault Dérens, 로랑 제슬랭Laurent Geslin

 

번역·임명주

 

(1) ‘ 크로아티아 외인부대 아조프 전투부대(Ukraine: la "Légion croate" se bat dans les rangs du bataillon Azov)’, <발칸 서한(Le Courrier des Balkans)>, 2015. 2. 16, www.courrierdesbalkans.fr

(2) ‘Denis Seler: "Ukraine is the last bastion of the Christian Europe"’, 2014. 12. 9, http://ukrainiancrusade.blogspot.fr.

(3) ‘Serbian mercenaries fighting in eastern Ukraine’, Deutsche Welle, 2008. 8. 14, www.dw.de.

 

<보충기사2:마케도니아, 제2의 우크라이나 되나>

 올해 초부터 마케도니아 공화국을 휩쓸고 있는 혼란은 러시아와 서구의 갈등을 말해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북쪽으로 코소보와 이웃하고 다민족으로 구성된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는 현재 야당인 사회민주당의 조란 자에프 대표가 매일 조금씩 공개한 녹음파일로 나라 전체가 충격에 빠져있다. 녹음 파일을 통해 민족주의 성향의 니콜라 그루에프스키 총리 내각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부패를 저질렀는지, 어떻게 사법부와 언론을 감시하고 조종했는지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이 녹음이 어떻게 야당 대표의 손에 들어갔는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자에프 대표는 정보부에 ‘변절자’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반정부세력을 돕기로 결정한 외국 정보기관에 의심의 눈초리가 모아지고 있다. 5월 초부터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는 ‘색깔 혁명’(1)의 선례에 따라 그루에프스키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고 정부청사 앞에서 점거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루에프스키 총리가 이끄는 마케도니아 혁명기구 - 마케도니아 통일 민주운동당(VMRO-DPMNE)은 2006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뒀다. 당시 이들은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국 가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규모 민영화 추진과 조세와 소셜 덤핑으로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지만 아직 해외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마케도니아는 여전히 경제침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리고 국가명과 관련해서 그리스와 분쟁을 해결하지 못해(2) 유럽연합이나 나토에 가입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태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그루에프스키 총리는 고대의 영광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점점 더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서방은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오래 전부터 그루에프스키 총리의 비위를 맞춰왔지만 2년 전부터 점점 더 다루기 힘든 상대가 되었다. 그러자 그루에프스키 총리는 러시아와 세르비아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전통적인 친불가리아, 반세르비아 정책의 후계자로 자처하는 장본인으로서 이러한 정책변화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는 천연가스관(터키스트림)이 마케도니아를 통과하기 때문에 마케도니아 정부를 지지하고 있고, 서방에 대해선 마케도니아를 ‘흔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그루에프스키 총리는 반정부 시위에 대한 대응으로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며 시간을 벌고 있는 중이다.

글·장 아르노 데랑스Jean-Arnault Dérens, 로랑 제슬랭Laurent Geslin

 

번역·임명주

 

(1) Colour revolution. 2000년 초반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비폭력 민주운동을 일컫는다. 구 유고연방의 불도저 혁명(2000), 조지아의 장미 혁명(2003),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2004),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2005), 레바논의 백향목 혁명이 대표적이다. (옮긴이 주)

(2) 그리스가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은 그리스 문화유산에 속한다고 주장하며 마케도니아 국명사용을 반대하고 있어 1995년 이후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Formal Yugosalv Republic of Macedonia, FYROM)’이라는 임시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이후 유엔의 주도로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