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지혜로운 소비’의 함정

만족감을 위해 현명하게 명품을 사는 것보다
지혜롭게 인생 사는 방법에 더 큰 가치 두어야

2009-08-06     모나 숄레/<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골방에 갇혀 문 열쇠를 달라고 소리치는 수감자를 어떻게 하면 단념시킬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의 곡예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소리 높여 찬양하고, 이 작은 공간에서 곡예사 말고는 문 밖으로 나가는 데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믿게끔 하면 된다. 이런 원리처럼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경기 후퇴의 조짐이 보이자 그 즉시 소비자들의 통찰력, 놀라운 적응력, 생각지도 못한 갖가지 절약 방법들을 연일 보도했다.


서민들은 참으로 용감하다. 이들은 세상을 혼란 속에 빠뜨렸던 금융기관들을 재정적 어려움에서 기꺼이 구제해준 뒤, 넓은 아량으로 용서했다. 뿐만 아니라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짜증을 내거나 이 불행의 원인이 도대체 뭘까 생각해볼 법도 한데, 그러기는커녕 어려운 상황을 잘도 참아낸다. 그래서 ‘구두쇠닷컴’ 사이트에서 절약 요령을 배우고, 중고 물품을 거래하고, 룸메이트를 구해보기도 하며, 차 같이 타기 운동을 벌이고, 비행기 대신 소형차를 이용한다. 또 소박한 식당의 ‘경제위기 특별 메뉴’를 5유로에 즐기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집수리 강좌를 듣고, 직접 채소를 키우고, 끈기 있게 모은 할인쿠폰을 한가득 들고 나와 장을 본다.

경기 후퇴에 대한 소비자의 놀라운 적응력

덕분에 이들은 진정한 가치, 이를테면 화합, 인간적 따스함, 작은 기쁨과 같은 것들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게 된다. <뉴스위크>의 스티브 터틀 기자는 2009년 3월 26일자에서 “나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하며 구두쇠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들은 평소 불평도 가장 적다”며 “항상 검소하게 살아오신” 그의 부모님에게 존경을 표했다. 노동과 성실에는 언제나 보답이 따른다. 이것이 바로 현 위기가 주는 교훈이다. 호황기 시절, 누가 이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가?

   
▲ <목력의 큰 꽃송이들>, 1997-마리네트 퀴에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경기 후퇴란 연기처럼 사라진 재산, 길거리로 내몰린 가족들, 대량 해고, 미래에 대한 불안, 미결 처리된 요금청구서, 궁핍한 생활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물질주의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혹시 당신이 현 경제 시스템의 부당성에 맞서 끝까지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이라면 ‘위기에 대항하는 자세’를 갖길 바란다. 2009년 2월호 <마리클레르>는 “유리컵의 물이 벌써 반이나 비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직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인생에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 우리는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하며, 독자에게 위기 대처 비법을 알려준 바 있다. 아마도 고집쟁이들은 “서너 번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웃음 요가”를 시도하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해답의 만능 열쇠는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니, 각자 마음가짐과 정신세계를 변화시켜보는 것”이다. 현실세계를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자.

언론의 의도적인 알뜰소비 정보

3월 19일 <누벨 옵세르바퇴르>가 소개한 ‘알뜰소비족의 시대’ 혹은 2월 19일 <르포앵>이 제안한 ‘2009년 새로운 절약 비결 안내글’과 같이, 연일 쏟아지는 기사들은 경제 문제에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검소한 생활습관이 몸에 밸 수 있도록 한다. 실제로 알찬 절약 정보를 접한 독자들은 그만큼 정보에 투자한 보람을 느낀다. 예를 들어 <LA타임스>는 대학 시절 받은 학자금 대출 5만 달러를 갚으며 생활하는 젊은 정보기술자의 절약 방식을 언급하고 있다. 신문을 보면, 그는 “저녁 시간, 전등을 켜는 대신 바깥 창문을 열어둬 외부 불빛이 집안으로 들어오게 한다”(1)고 한다. 왜 우리는 이것을 진작 알지 못했을까! 또 2009년 5월호 <마리클레르>는 뉴욕 기성복 브랜드의 인터넷 주소들을 소개하며, ‘패션주의자들’의 뒤를 이어 나타난 ‘불황경제주의자들’에게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절약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편 2009년 1월 10일 <엘르>는 ‘엘르’자가 새겨진 티셔츠와 “모든 스타일에 잘 어울리고 단 한 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큼지막한 구슬 목걸이”를 소개하며 독자에게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옷 잘 입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종종 전시체제 때와 비교되곤 하는 경기침체기는 보잘것없는 것으로도 기적을 만들어내는 빈틈없는 주부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부각시킨다. 2009년 4월 11일 <뉴욕타임스>는 스프링필드와 버지니아 지역의 여성들이 듣기에도 꽤나 소름 끼치는 ‘슈퍼 알뜰 맘’ 그룹을 형성했다고 전한다.

<뉴욕타임스>는 또한 ‘검소한 생활의 재발견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는 제목 아래, 미국 미주리주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켈리 사이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테이블 종이 냅킨 대신 면 소재의 유기농 냅킨을 사용하며 새로운 생활습관의 기초를 다졌는데, 경제위기 기간의 익살스럽고 소박한 생활습관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여러 가지 만족감 중에는 “지구를 이롭게 한다”는 기쁨도 있기 때문이란다. 사이크 부인은 “경제위기가 가져다주는 즐거운 생활습관들을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엘 파이스>는 여기에 한술 더 떠 “담배를 끊는 데는 경제위기만큼 좋은 처방이 없다”고까지 말한다.(2) 당신은 현 경제 상황에 일말의 책임이라도 져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가? 그러나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검소한 생활을 하지 않은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해도, 좀더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은 언제나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말 보너스 용도로 벌써부터 총 110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따로 챙겨둔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직원들은 그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

부자들도 체험하는 ‘검소한 생활’

장바구니를 들고 ‘초특가 할인’ 간판이 걸린 식료품 상점으로 향하는 손님들은, 아마 자신들이 그렇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절약 열풍에 너무나도 잘 합류하고 있는 부류이다. 이제 낭비와 허영은 가장 저속한 행동으로 간주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제하며 간소한 생활을 할수록 더욱 대접받는 세상이 온 것이다. 평소 절약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어서 심지어는 부자들도 이러한 체험을 해보고 싶어한다. 설령 ‘초특가 할인’이라는 것이, 가격표에 적힌 “나는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구합니다”라는 문구보다는 이들에게 외관상 덜 흥미롭더라도 말이다. 작가 겸 여행가 실뱅 테손은 4월 1일 <피가로>의 부록 <에콜로 쉭>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3) 식의 엄격하고 교훈적이기만 한 자연주의적 삶을 살짝 비꼬았다. 그는 진정한 환경보호의 노력은 우주와 인간의 조정과 화해를 바탕으로 이뤄지며, ‘하나의 축제’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러한 축제를 시작하려면 유목 생활을 했던 옛 선조들의 지혜에서 영감을 얻어 “가치 있는 고결한 물건들만을 구입하라”고 권장한다. 테손은 “나는 키르기스 사육업자가 사용하던 요리용 고기 칼, 티베트 대상 행렬의 짐승몰이꾼들이 갖고 다니던 가죽 담배쌈지, 투아레그족 낙타꾼들의 찻잔 세트를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고 한다. 친환경 먹을거리를 손수 만들 수 없는 <피가로>의 독자들은 차선책으로 파리의 대형 식료품점에서 15.90유로짜리 유기농 과자를 조심스레 집어들 것이다. 물론 가격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우주와의 화합을 위한 이 작은 행동을 두고 인색하게 구는 건 그리 우아해 보이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양모를 소재로 한 팔걸이 없는 쿠션 의자가 1600유로에 판매됐는데, 이는 키르기스의 목축업자에게 시샘과 질투를 안겨줄 만한 일이다.

불경기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없다면, 경제력이 있는 소비자는 적어도 그들이 사려 깊고 합리적인 구매를 위해 카드를 긋고 있다는 느낌이라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유명 명품 제조업체들은 저마다 자사 브랜드가 진정한 가치를 지녔고 상업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관습을 대표한다며 부자 소비자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한다.(4) 그 결과, 명품 브랜드의 구매는 곧 낭비가 아닌 투자라는 공식이 성립하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물어보겠다. 만약 훗날 당신의 5대째 후손이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행성으로 주말 우주여행을 떠나기 위해 그들의 불연성 잠옷을 당신이 유산으로 남긴 800유로짜리 여행용 가방에 챙겨넣는다면, 이때 이 800유로의 지출은 낭비인가, 아니면 투자인가? 조너선 테퍼만 기자는 2009년 4월 6일 <뉴스위크>에서 ‘명품 옹호’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고가품 쇼핑을 통한 절약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그는 “에르메스 넥타이나 처치스 구두와 같이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또 당신이 어떤 명품을 구입하든지 유행을 타는 디자인은 피해야 한다. 세월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기본 스타일을 고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결국 소비자는 돈 쓰는 사람일 뿐

중요한 것은, 소비자는 돈이 많든 적든 결국 소비자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2008년 12월 4일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그 누구도 불경기 때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소비자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언론들은 저마다 들떠서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한 물품 목록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제품으로는 콘돔(경기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의 성적 욕구도 커진다), 재테크 입문서, 요구르트 제조기, 제빵기, 정수 겸용 물병, 채소 씨앗 세트, 긴장완화제 등이 있었다. 2009년 2월 26일 잡지 <챌린지>는 ‘프라이스 미니스터’라는 인터넷 사이트 창립자인 피에르 코슈스코모리젯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 간 물품 거래 및 중고 거래’ 사이트에 수많은 상업광고를 노출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물건 매매를 시작하면 나중에는 더욱 많이 사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곳곳에서 참신한 발언을 한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보답이 뒤따른다. ‘부자들을 지키자’ 협회는 “만약 50살에 롤렉스 시계가 없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인생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선언한 광고업자 자크 세게라에게 환호의 표시로 카시오 시계를 선물했다.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한 경제동향 전문가는 “오늘날의 관건은 지혜롭게 소비하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이 얼마나 멋진 모순적 표현인가. 그렇다면 지혜로운 인생을 사는 방법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좀더 두고 볼 일인 것 같다.

글 · 모나 숄레 Mona Chollet
197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으며 기자와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제네바에서 문학 학사를 받은 뒤 릴 고등저널리즘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현재 파리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로 일하며 문화비평 사이트 ‘P?riph?ries’를 운영하고 있다.

번역 · 이보경 leebk3611@ilemonde.com 


<각주>

(1) <Courrier international>, 2009년 2월 12일치 인용.
(2) Ibid.
(3) 미국의 철학가 겸 시인(1817~62), 특히 ‘자발적인 궁핍함’을 지지했다.
(4) ‘여배우 혹은 샌드위치-여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5월 18일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