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B급 문화인가?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2015-07-02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문학장에 순수문학의 절대존재인 창비나 문학동네가 있다면, 음악장에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이 있다. 일반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런 음악장에서 대중문화를 즐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이나, 발레의 우아한 공연, 오케스트라의 중후한 화음 같은 순수문화가 아니라면, 록 음악이나 랩, 독립영화, 애니메이션 같은 비주류 대중문화를 접하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은 엘리트 계급을 위한 고급스러운 취향의 문화를 주로 공연하고 전시하는 곳으로, 처음부터 우리사회의 의식 속에, 또는 규정상에 비주류 대중문화가 감히 넘겨보기 힘든 장벽이 놓여 있는 것이다. 제도권이 순수문화에 무한한 관심을 쏟는 동안에, 문화는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문화에 무슨 등급이 있을까마는, 우리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주류 문화와 비주류 문화, A급 문화와 B급 문화처럼 구분짓기를 하다가, 급기야 신세대문화, 청소년문화, 주부문화, 중산층문화, 노동자문화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대중가수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 주류 문화인들(역사적으로 이들의 문화 역시 처음엔 비주류였다!)이 크게 반대한 것은 대중문화에 대한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일이었다.

예술적 창의성과 다양성은 새로운 기획과 실험이 자유롭고 풍부하게 이뤄질 때 생기는 법이다. 그러한 창조적 실험은 주류사회의 엄숙함이나, 국가권력이나 자본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과 비판정신이 맘대로 발휘될 때 발현된다. 실험적인 문화는 늘 당대의 주류적인 문화관습과 충돌하며 지배적인 사회적 가치와 갈등관계에 놓이기 마련이다. 또한 실험적인 문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들고,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 불온시된다. 그러다보니 실험적인 문화는 대항 성격을 지닌 반골문화로 인식된다.
한류의 인기가 초국경적으로 뻗치는 지금, 한국 문화의 구조가 지닌 가장 큰 문제는 문화산업에 자본이나 기술자원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예술적 창의성과 다양성을 찾기 힘들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문화 전반에 걸쳐 독보적 예술성을 갖춘 이른바 마이너 리그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특정의 소수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영화판에서는 대기업의 배급망과 체인점 영화관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대중음악은 소수의 대형 연예기획사들과 방송사들이 돈 잘 버는 10대 취향의 스타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저예산 독립예산영화가 제작되고 살아남기란 어렵고, 대중음악의 저변이 확대되기 힘들다. 또한 대중음악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다양한 소규모 무대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수많은 무명의 음악인들이다.
좋은 문화에 대한 기준은 어떤 것이든 국가권력과 자본이 임의로 정해서도 안 되고, 또한 그것이 하나뿐일 수는 없다. 각진 날을 세운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 침대 같은 하나의 잣대만으로 좋은 문화를 정의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문화는 나쁜 문화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독선이다. 그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물론 어느 사회에나 좋은 문화에 대한 다양한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그 기준들은 사회 내에 공존하면서 갈등하고 경쟁하며 발전한다. 다양한 집단들은 세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혹은 직업이나 계층에 따라, 교육수준에 따라 각기 나름의 기준이나 취향에 맞는 좋은 문화를 선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취향이나 기준에 대해 자신의 것만큼이나 관용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 비로소 사회 전체의 문화가 조화롭고 다양하며 창의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 좋은 문화를 선택하고 즐기고, 이를 통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느냐다. 그것도 주체적인 입장에서 말이다. 어쩌면, 광고로 얼룩진 매스컴의 홍수 속에 나 자신도 모르게 좋은 문화에 대한 취향과 기준에 어떤 편견을 갖게 된 것은 아닌지……, 한낱 문화산업의 광고전략에 따른 소비자 신세이면서 마치 자기 스스로 판단을 해서 좋은 문화를 선택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길들여지지 않은 대중문화의 미덕을 탐구한 <나쁜 장르의 B급문화>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이 발행하는 격월간지 <마니에르 드 부아>(Manière de voir) 111호의 <나쁜 장르의 문화>를 기본 텍스트로 삼았다. 또 한국 학자들의 글을 추가하여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해 한국 대중문화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했다. 저명한 외국 필진 29명과 국내 필진 7명의 글 총 38편을 실은 이 책은 세계 각국의 대중문화에서 꿈틀대는 창의성과 다양성, 자발성과 불온성, 그리고 그걸 수용하는 이들의 주체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1부 ‘스크린 위의 환상’에서는 미 할리우드에서 비주류 B급 영화로 취급되는 코미디 및 액션·좀비·공포 영화를 비롯하여, 할리우드 아류 또는 반(反)할리우드로 떠오른 아랍과 인도 영화의 흐름과 특징을 조망한다.
2부 ‘심심풀이용 대중문화’에서는 흔히 ‘시간 죽이기’용 잡소설로 취급받은 3류 대중소설과 공상과학소설, 연애소설, 추리소설의 숨겨진 가치를 드러내고, 미국 이외에 라틴 아메리카와 이탈리아 대중소설의 흐름을 보여준다.
3부 ‘길들여지지 않은 자들의 음악’에서는 주류 계급으로부터 외면받아아온 록, 하드록, 힙합, 랩, 재즈, 테크노 장르 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소개하고, 미국·프랑스·알제리·아프리카 등지에서의 대중음악 흐름을 진단한다.
마지막 4부 ‘한국 대중문화의 순응성, 또는 불온성’에서는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의 현실을 진단하고, 독립영화와 인디 음악의 가능성과 한계, 문화주체로서의 연예인과 10대 팬들의 위상 재정립에 대해 논의해본다. 세계화 혹은 지구화의 추세 속에 서구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제 3세계의 문화적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 책을 통해 지역적인 문화정체성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해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