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독의 정신병리학

2015-07-02     비르지니 뷔에노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인터넷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나요? 방문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습니까? 며칠 동안 인터넷 없이 지내기가 힘든가요?” 잡지에 실린 ‘오먼 테스트’의 질문지 일부다. 인터넷 의존증을 진단하는 데 쓰이는 평가지다.(1) 이런 종류의 테스트를 해보면, 사실상 인터넷 사용인구의 절반이 인터넷 의존증인 것으로 진단된다. 요컨대 사상초유의 이 위력적인 전염병이 현재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인 셈이다. 가령, 중국은 이미 이 ‘질병’을 공중보건 부문에서 해결해야 할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그런가하면 국제네트워크조직들도 인터넷 의존증과 관련하여 표준진단법과 임상실험, 치료 절차 및 예방 프로그램 등을 수립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오늘날 인터넷 없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인터넷 사용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다. 점차 많은 이들이 인터넷 활동으로 인해 삶의 다른 영역을 침범당하고 있다. 가령, 사회성이 저하되거나 일이나 학업에도 많은 지장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는 이것을 무조건 질병으로만 보아야 하는 걸까? 사실상 의학계는 이 현상의 병리적인 특성을 놓고 아직까지 전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인터넷 의존증을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SM-5)(2)에 편입하려던 시도는 신뢰할 만한 관련 자료가 부족해 좌절됐다. 그러나 이후로도 계속 논의는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17년 국제질병분류(ICD) 발표를 앞두고 세계보건기구(WHO) 내에서 현재 인터넷 의존증을 둘러싼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이버 중독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셉 바이젠바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가 동료 연구원들에게서 “강박적으로 프로그래밍에 몰두하는 어떤 열중 현상”(3)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건강도 내팽개친 채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장시간 컴퓨터에만 매달리는 성향을 보였다. 바이젠바움은 이것을 ‘정신장애’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판단했다. 1990년대 인터넷 광풍으로 인터넷에 대한 우려와 열광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이버세계의 이용 양태나 인터넷이 잠재적으로 중독성을 띠는지 여부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다. 가령, 인터넷 사용자의 익명성이나 현실회피 성향, 인터넷 접속률과 인터넷상의 상호작용 등을 주제로 각종 연구가 이뤄졌다. 연구 결과, 사이버중독은 게임 중독‧음란물 중독‧통신 중독, 이렇게 세 가지 형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사이버중독이 애초부터 진지하게 질병으로 다뤄진 건 아니었다. 본래는 한 짓궂은 장난이 시초가 되어 출발했다. 뉴욕의 정신과 의사 이반 골드버그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등재된 질병 수가 자꾸 늘어나는 현상(DSM에 실린 질병 수가 1952년 106종에서 1994년 400종으로 크게 증가했다)을 비꼬기 위해 1996년 ‘우스꽝스러운’ 질환을 하나 창조해냈는데 그것이 바로 ‘인터넷 중독’이었다.(4) 그는 한 인터넷 심리치료카페에 인터넷 중독증이라는 가상의 질병에 대한 임상적 징후를 설명하는 글을 장난으로 꾸며 올렸다(처음에는 사이버카페에 인터넷 중독증의 증상을 설명하는 글을 장난으로 올렸는데 정말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상담 문의가 이어졌다-역자).

같은 해 ‘인터넷 중독’은 조금 더 정식적인 절차를 통해 본격적으로 의학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피츠버그 출신의 심리학자 킴벌리 영은 기존의 ‘병적 도박’을 위한 진단기준을 변용해 ‘인터넷 중독’을 위한 진단 기준을 만들어내고, 이를 인터넷 카페를 통해 유포했다. 이 임상의는 실험을 지속하기 위해, 인터넷에 배너 광고를 띠우고, 야후에서도 ‘인터넷 중독’(Internet addiction)이라는 검색어를 사들였다.(5) 그런데 광고가 나간 다음 정말로 인터넷 중독증으로 의심되는 환자들의 상담 의뢰가 쇄도했다. 이후 비로소 ‘충동’(어떤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강박적 행동을 조절하기가 힘들거나 혹은 완전히 조절이 불가능한 상태)의 심리적 기제는 인터넷 사용으로 생겨난 심리적·사회적 문제들의 원인임이 규명됐다. 사실상 인터넷은 인터넷 접속에 대한 억누르기 힘든 욕망을 일으키거나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동안 사용자로 하여금 허전한 기분에 시달리게 하는 등 많은 병폐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이혼의 원인이 되거나, 업무나 학업에 지장을 주거나, 재정적 어려움을 가중하는 등 각종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인터넷 중독’을 정의하려는 노력

  2013년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SM-5) 편찬에 참여한 연구진은 이 ‘병적 도박’을 ‘충동조절장애’(6) 항목에서 제외시켰다. 한시도 컴퓨터 화면을 떠나지 못하는 증상은 오히려 ‘물질 사용 및 중독성 장애’(7)라는 새로운 항목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견은 금세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DSM-4) 편찬에 참여한 앨런 프랜시스와 행동장애 이론가 스탠 필리가 중독 개념을 생물학적 차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다.(8) 사실상 ‘의존증’을 ‘중독증’으로 바꾸고, ‘억제하기 힘든 욕망’이라는 징후를 이 중독증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인터넷 중독, 도박 중독, 마약 중독이라는 이 세 가지 중독에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일정한 생물학적 위험이 존재해야 했다. 더욱이 이론적으로 도파민의 비정상적인 분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이 ‘욕망’을 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진단하는지 아는가? 그저 환자에게 다음과 같이 간단한 묻는 게 전부이다. “당신은 다른 생각은 하기 힘들 정도로 마약 복용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9)

사실 이것은 매우 중차대한 문제다.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경우, 인터넷 중독을 진단받은 사람(그것이 진짜 진단이든 아니면 오진이든 간에 상관없이)이 욕망을 억제하기 위한 약물 치료를 처방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일간 인터넷 없이 생활하기가 어려운 현상을 그저 단순히 생리적인 욕구를 나타내는 징후로만 보아야 하는 것일까? 혹은 모든 사회·학업·직업 생활이 온통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징후인 건 아닐까? 사실 인터넷 세계에는 없는 것이 없이 모든 것이 전부 존재한다. 심지어 인터넷은 치료약도 제공한다. 가령, 인터넷은 임상의와 사용자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서로 의견을 교류하는 장을 제공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온라인 심리상담을 통해 치료 도구로도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찾게 되는 중독성 강한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접속 시간을 제한해주는 등 흥미로운 치료법도 제공한다. 사용자가 금지된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손목에 약하게 전기충격이 흐르게 하는 파블로프 포크(Pavolov Poke)라고 불리는 손목 받침대가 대표적인 예다. 인터넷 중독은 비단 의학적인 논란만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정치적인 차원의 비판도 함께 제기한다. 최근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SM-5) 편찬에 참여한 연구진은 중국의 정신과 의사 타오 란의 진단을 추가연구를 통해 향후 포괄해야 할 기준으로 포함시켰다. 타오 란 박사는 “학업 및 업무 이외의 용도로 하루 6시간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중독을 판가름하는 준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생산성에 따라 각각의 사회적 활동에 서열을 매기는 이 같은 의학 진단은 대체 어떤 규범과 가치를 기준으로 하기에 가능한 걸까? 타오 란 박사는 인터넷 중독이란 개념에서 학업과 업무 시간을 제외시킴으로써, 오히려 이 개념의 허점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말았다. 그의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 학업이나 업무상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인터넷 접속을 종용당하는 현대 사회에서, 앞으로는 오로지 경제적 유용성이라는 암묵적 기준만이 건강한 활동과 병리적인 활동을 판가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하루 8시간씩 사무실 태블릿 PC 화면에 파묻혀 지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 반면, 하루 6시간씩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리적인 증상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SM-5)에 소개된 이런 인터넷 중독 현상은 다른 사회적 배경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비디오게임이나 소프트웨어, 사회관계망서비스 산업 등 중독 성향을 수익 기반으로 삼는 여러 IT 도구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인터넷 중독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 중독 문제를 오로지 신경의학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관련 연구나 해법의 폭을 상당히 제한하는 결과만 낳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인터넷 중독에 대한 관리는 각 사회나 문화나 정책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이뤄지기 일쑤였다. 한 번도 국제적으로 표준적인 관리법을 수립하기 위한 시도가 없었다. 가령, 미국과 중국은 모두 인터넷 중독이 신경학적 질환일 수 있다는 일반적인 가정에는 동의하면서도, 이 질병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리해오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은 민영화된 경쟁적 치료시스템을 통해 인터넷 중독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반면에, 중국은 군국주의의 분위기가 풍기는 교정시설을 만들어 환자를 강제입원 시키거나 환자 스스로가 병을 인정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한편, 프랑스와 캐나다 퀘벡주는 각 사례별로 해법을 달리하며 사회·심리적이면서도 포괄적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일본은 2006년 킴벌리 영의 진단 기준이 국내에 번역된 이후로 이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치료센터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글·비르지니 뷔에노 Virginie Bueno

번역·허보미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비 마약중독’, <Toxibase>, 제6호, 2002년 6월.

(2) Gérard Pommier, ‘병명을 제조하는 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2월.

(3) Joseph Weizenbaum, <컴퓨터의 성능과 인간의 이성 : 판단에서 계산까지>, Editions de l'Informatique, 블로뉴비양쿠르, 1981년.

(4) David Wallis, 'Just Click No', <The New Yorker>, 1997년 1월 17일.

(5) Kimberley S. Young, 'Internet addiction : The emergence of a new clinical disorder', <CyberPsychology & Behavior>, 제1권, 제3호, 1996년.

(6) Ting-Kai Li, Charles P. O'Brien, Nora Volkow, 'What's in a word? Addiction versus dependence in DSM-5',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제163권, 제5호, 앨링턴(버지니아), 2006년.

(7) Nancy M. Petry, Charles P. O'Brien, 'Internet gaming disorder and the DSM-5', <Addiction>, 제108권, 제7호, 호보컨(뉴저지), 2013년.

(8) Allen Frances, <Saving Normal : An Insider's Revolt Against Out-of-Control Psychiatric Diagnosis, DSM-5, Big Pharma, and the Medicalization of Ordinary Life>, Harper Collins, 뉴욕, 2013년/ Stanton Peele, 'Politics in the diagnosis of addiction', <Huffington Post>, 2012년 5월 15일.

(9)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5th ed.>, 미국정신의학협회, 워싱턴 DC,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