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상하이그룹’을 구성했을까?

2009-08-07     마르틴 뷜라르/<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공조

중국은 국내 안보와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1996년부터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과 더불어 ‘상하이그룹’을 구성했다. 이는 잠재적인 국경분쟁을 해소하고(최근 해결됨)(1) 안보 문제(분리·독립주의 대응)에 대한 검토, 관련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1990년대 중국은 실제로 신장성에서 강력해지는 카자흐 소수민족 운동과 인근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결성되기 시작한 위구르 정당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1992년 “동투르크스탄(신장성)(2) 민족자결권의 고취”를 목표로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온 150명의 대표자를 규합해 알마티(카자흐스탄)에서 ‘위구르국제연합’이 조직되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위구르 정당이 탄했다. 키르기스스탄 국영방송에서 위구르어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신장에서도 청취가 가능해졌다. 신장에서 사회적·종교적 요구가 대두되는 가운데 일종의 위구르 민족의 공간이 형성되었다.

중국 당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상하이그룹 회원국들은 지명수배된 위구르 운동가들이 자신의 영토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위구르 운동가들은 이들 국가에서 추방되어 투옥되고, 고문받고, 간혹 사형까지 집행되었다. 중국은 이렇게 국내 안보 문제를 해결했다.

2001년, 상하이그룹은 우즈베키스탄, 몽골, 인도, 파키스탄을 참관국 자격으로 참여시켜 ‘상하이협력기구’(OCS)가 되었다. 이 기구의 최우선 목표는 ‘세 개의 세력: 극단주의, 분리·독립주의, 테러리즘’과 싸우는 것이다. 과거 수많은 위구르 젊은이들을 받아들여 코란학교에서 교육했던 파키스탄도 중국과 국경을 거의 닫아버렸다. 관타나모에 수용되었던 22명의 위구르인들은 알카에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이 중 5명이 2006년 석방되어 미얀마로 망명했으며 17명은 2009년 석방되어 팔라우섬에 보내졌다.

중국 당국에 안보 문제와 경제적 이해관계는 밀접히 연관돼 있기도 하다. 신장은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에서 오는 석유와 천연가스 라인의 교차점이다. 1992년에서 2006년 사이 신장성과 인근 중앙아시아 국가 간의 교역량이 6배나 증가할 만큼 이곳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중국 정부는 신장 교통망 건설(도로·철도·공항 등)에 주안점을 두는 한편 인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교통망 건설까지 지원했다.

“지리적으로 신장은 28억 인구가 사는 광대한 지역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 상황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경제학자, 신장 자치정부 자문위원, 그리고 <신장의 발견>(3)의 공동 저자인 탕리지우는 설명한다. 그는 이 지역에 러시아, 특히 인도를 포함시킨다.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시장인데다 인근 국가 간의 문화적 친화성까지 증진하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7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우루무치는 다가올 여행 산업의 특수를 기대하고 있었다.

 



<각주>  

(1) 중국 전체 국경의 2%만이 러시아, 카자흐스탄과 국경분쟁 중이다.
(2) Thierry Kellner, <중국의 서역: 베이징과 새로운 중앙아시아(1991~2001), PUF, Paris, 2008.
(3) 탕리지우·쿠일 바옥신, <신장의 발견>, 신장인민출판, 우루무치, 2009.

글 · 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번역 · 김태수 asticot@il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