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부역의 은밀한 재현

2015-07-15     아니 라크루아 리

미국인 역사가 로버트 팩스턴은 저서 <비시 프랑스>에서 필립 페텡 원수가 프랑스인들에게 ‘방패’ 역할을 했다는 프랑스 역사가 로베르 아롱의 의견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렇게 로버트 팩스턴이 비시 체제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꾼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비시 정부와 프랑스의 대독 협력 문제를 다룰 때 ‘심리’, ‘윤리’라는 개념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레지스탕스를 강조하는 부분이 조금 약해졌다.

프랑스 국립문서보관서가 주최한 ‘대독 협력(1940-1945)’ 전시회는 50년간 연구의 결과물로서 ‘나치 부역의 다양한 얼굴’을 조명한다. 전시회를 맞아 큐레이터인 드니 페샹키와 토마 퐁텐의 저서(1)도 소개된다. 언론인, 하수인, 경찰 등 나치 부역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유대인 탄압에 앞장서며 나치에 부역한 경찰청장 르네 부스케는 1949년에 감옥에서 출소한 후 인도차이나 은행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본 전시회는 비시 체제의 기원, 프랑스 공화국을 배반하는 음모, 초기 파시스트 연맹의 결성으로 1924년부터 서서히 준비되어 오던 제3공화제의 붕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고 당시 엘리트층에 대해서도 거의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는다. 또한 비시 정부의 군대에 대한 언급도 없고 나치에 부역을 한 고위 가톨릭 사제는 알프레드 보드리야르(1942년에 83세의 나이로 사망)밖에 다뤄지지 않는다. 특히 보드리야르는 유대인의 지위 부여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전시회에서는 대독 경제 협력의 또 다른 역사, 대독 협력 시대 당시의 브로커, 한량,소소한 사기꾼, 부랑자들의 또 다른 역사에서 다뤄진다. 유대인 넝마주이였다가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된 시절에 막대한 재산을 모은 조제프 주아노비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위스 역사가 필립 뷔랭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비시 체제의 프랑스는 대독 협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의 현실에 적응해가며 사는 복잡한 사람들이 있었다.

비시 지지자와 레지스탕스의 역사를 재조명한 베네딕트 베르제 셰뇽(2)은 비시 정부와 페탱 원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오래 동안 노력했다.(3) 페탱 원수는 카굴라르(카굴라르: 제 3공화제(Third Republic)의 전복을 꾀하여, 1932-40년에 활약한 프랑스의 비밀 결사대)인가 아니면 1940년 전에 프랑스 정치인 피에르 라발과 손잡고 음모를 꾸민 인물인가? 저자는 증언 기록은 소개하지만 경찰 기록은 따로 소개하지 않는다. 저자는 페탱을 심리적으로 다룬다. 질서를 중시하고 반유대주의 성향이었기에 페탱이 대독 협력의 길을 간 것이지 원래부터 학살을 즐겨하는 성격은 아니었다는 분석이다. 페탱은 외국에 있는 유대인만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 사는 모든 유대인도 목표물이 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 페탱의 잘못이 약간은 면죄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페탱은 ‘평화적인 유럽의 재건’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독일과 프랑스의 협력을 위해 충실히 노력했을 뿐이다. 베르나르 코스타글리올라(4)는 저서를 통해 비시 체제에서 해군 장관을 지낸 프랑수아 다를랑에 대해 설명한다. 다를랑 장군은 프랑스를 배신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했다는 것이다. 코스타글리올라는 다를랑 장군에 대해 패배에 겁을 먹은 무능한 장군으로 보고 있다. 다를랑 장군은 페탱 원수, 막심 베이강 장군과 함께 군사 혁명을 준비했으며 영국에 우호적인 친영주의자였기에 영국에 대한 반감이 심했던 알제리의 항구 메르스 엘케비르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클로드 바르비에는 <글리에르의 후작>(5)에서 레지스탕스가 담당한 군사적인 역할을 별로 대단하지 않게 다루고 있으며 심지어 ‘글리에르 전투는 발발하지 않았다’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1944년 3월 27일에 독일이 이미 모든 것을 해결했고 레지스탕스들은 도망갔기 때문에 공격이고 방어고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민병대의 대장이자 부스케의 후임인 조제프 다르낭 장군은 조르주 를롱 대령과 함께 독일의 개입을 원치 않았고 나치의 삼엄한 비밀 경찰서에 잡혀 있던 레지스탕스들을 오히려 몰래 빼내주었다고 저자 바르비에는 말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기록과는 실제로 완전히 다른 에피소드들이 있는 것이다.

글·아니 라크루아 리 Annie Lacroix-Riz

번역·이주영

(1) Denis Peschanski, Thomas Fontaine, <대독 협력. 비시-파

리-베를린 1940-1945 (La Collaboration. Vichy-Paris-Berlin

1940-1945)>,Thallandier, 파리, 2014년.

(2) Bénédicte Vergez-Chaignon, <비시 지지자와 레지스탕스(Les

Vichysto-résistants)>, Perrin, 파리, 2008년.

(3) Bénédicte Vergez-Chaignon, <페탱(Pétain)>, Perrin, 파리,

2014년.

(4) Bernard Costagliola, <다를랑 : 철저한 대독 협력(Darlan.

Collaboration à tout prix)>, CNRS Editions, 파리, 2015년.

(5) Claude Barbier, <글리에르의 후작(Le Marquis de Gliè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