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해방을 다시 외쳐야 하는 이유

[Dossier] 착취와 억읍을 넘어 혁명으로 1
세상 변화와 함께 새로운 해방 태동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비극을 넘어

2009-09-03     도미니크 비달|<르 디플로> 국제편집장

‘해방’이라는 단어만큼 투쟁의 시대를 간결하게 표현해주는 말이 있을까? 본래 성인이 된 미성년자들이 ‘해방’됐다는 표현을 썼지만 이제는 노예, 착취당하는 사람, 억압당하는 여성, 억제 속에 살아가는 소수자, 식민지배를 당하는 민족처럼 자유를 구속당한 모든 인간이 사용하는 표현이 되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사람이 꿈꾸던 것은 바로 억압과 지배에서 해방되는 일이었다.

인간의 해방은 단번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다.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운동에는 지름길이 없다. 오히려 구불구불한 길로 어렵게 나아가며 갑자기 진척되기도 후퇴하기도 한다. 두 가지 예를 비교해보자.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맹위를 떨치던 인종주의는 이제 확실히 약해졌다. 하지만 여성의 상황을 보자. 서구에서는 피임권과 낙태권이 보장되면서 여성의 권리가 분명 나아졌다. 공식적으로는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듯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남녀평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인간이 획득했다고 생각하는 성과 중에서도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거나 오히려 점차 약화되는 것도 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어느 정도 목표와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 채 고난의 기나긴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이같은 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인류와 개개인을 해방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무조건 뭔가에서 벗어난다고 좋기만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동전에는 앞면과 뒷면이 있는 법이다. 가령 공산주의와 감시 체제가 종식되면 자유를 찾긴 하지만 사회주의도 공산주의와 무조건 동일시돼 민주적 사회주의마저도 새롭게 생각하는 길이 차단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산업주의 논리 앞에서 환경이 파괴되자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즉, 새로운 대안을 다시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그 새로운 대안은 사회주의 운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00년대 대안 세계화의 물결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경제위기의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아직 뭐라고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실패한 정책을 대신해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

냉전시대 이후 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군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도 더 이상 미국의 그늘에 갇혀 있지 않다. 더구나 볼리비아혁명이 민주주의를 달성하면서 1960년대가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이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인도와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고, 러시아도 예전의 패권 부활을 노리고 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도 크고 있다. 바야흐로 다원주의 세상이 다가오는 셈이다. 한마디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새로운 해방이 태동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폴 엘뤼아르의 시가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몇 명이었지만
갑자기 군중이 되었네
언제나 그렇지

자유와 해방, 태곳적부터의 꿈

태곳적부터 세대를 거쳐 인간은 자유를 열망한다. 인간은 자유를 위해 갖가지 지배에 대항해오고 있다. 노예, 농노, 제3세계 국가, 근대 프롤레타리아는 해방을 위해 일어났다. 매 시기에 지식인이 해방을 위한 투쟁에 동참했고 철학적인 토대를 제공했다. 해방을 위한 투쟁이 18세기에는 계몽주의를 탄생시켜 이성과 자유를 남겼다.

이같은 인본주의 사상은 프랑스혁명의 토대가 되었고, 프랑스혁명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나갔으며, 제2차 프랑스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코뮌에서도 다시 나타났다. 이 인본주의 사상은 1905년 법률 제정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프랑스공화국은 정교분리를 선언하게 되었다. 동방에도 인본주의 사상은 ‘아랍의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각종 형태 중 최악의 것은 노예제도다. 노예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일어난 지 20세기 이상이 지났지만 세계에는 아직도 노예가 존재한다.

글·도미니크 비달 Dominique Vidal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여성의 우월성에 관하여>(200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