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군, 대양 제패를 꿈꾸다

해군력 증강,서태평양 패권 노리며…

2008-09-29     올리비에 자젝 | 유럽 전략지능회사 연구원

 

올리비에 자젝<유럽 전략지능회사 연구원>

영유권·탄화수소 경로 확보위해 안간힘
서태평양, 중 '녹색선'vs 미'청색선' 분할 대치

2006년 중국 중앙방송국(CCTV)이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한편이 중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바로 '대국굴기(大國?起)'라는 프로그램이다.1) 이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前)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국제지도자들 및 역사학자들과의 대담을 통해 제작되었다. 미국의 히스토리 채널에서 영어로 방송될 정도로 구성의 치밀한 '대국굴기'는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9대 제국의 흥망성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1회당 50분, 총 12회로 구성된 '대국굴기'에 대한 중국인들의 열렬한 관심은 당연하다. 프로그램을 구상한 치안 쳉단 베이징 대학 교수는 "우리의 중국, 중국인, 중국 '민족'이 부활하였고, 다시 한 번 세계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고 했다. '대국굴기'는 위의 9개국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해양 지배력 강화 노력에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국굴기'는 수십 년 동안 공산당에 의해 이데올로기화된 역사적 담론과 결별하고, 19세기 나라를 기나긴 쇠약의 터널로 몰아넣은 오만하고 피해망상적인 무분별함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성장일로를 달리고 있는 한 대국의 외향적인 실용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정책의 두 가지 키워드는 조화와 평화다. '조화'롭고 '평화'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중국을 세계에 개방하고, 특히 세계가 중국을 향해 열리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신념인 것 같다.
2007년, 중국 전함들이 사상 유례가 없는 해군외교 노력을 통해,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러시아, 싱가포르, 스페인, 미국의 항구들에 공식 입항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해적 퇴치를 위한 국제작전에 참여했다.
중국의 이 같은 '연성권력(soft power)'을 향한 야심은 중국을 둘러싼 지역 환경과 두 가지 주요 쟁점을 고려하여 재조명되어야한다. 첫 번째 쟁점은 좁게는 타이완, 넓게는 중국 영해의 경계에 대한 영유권 분쟁과 관련이 있다. 영해의 경계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달라진다.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수용될 경우, 중국은 인도차이나 반도를 넘어 동남아시아의 주요 항로와 태평양의 광대한 해양지역까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두 번째 쟁점은 세계 제2의 석유수입국이 된 중국의 해양을 통한 탄화수소 수급 경로 보호와 관련이 있다.

 그중 첫 번째 쟁점이 결정적이다.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 중 13개 국가들과의 3) 국경분쟁을 우호적으로 해결했다. 현재는 중국-부탄, 중국-인도 간 다소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는 2건의 분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프랑스 국방부 전략문제 대표단의 로익 푸루아르에 따르면, 1만4,500 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양경계선이 모두 잠재적인 위기 및 분쟁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분쟁은 매우 근본적이며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4) 어쨌든 중국은 총면적 40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바다에 대해 완전하고 전적인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중국 당국은 타이완에 대해서도 "필요하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주권을 회수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타이완은 광대한 해양 바둑판위의 바둑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중국은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섬 근처의 조어도(일본명: 센카쿠) 영유권을 놓고도 일본과 대립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서쪽으로 450 킬로미터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은 대륙붕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를 일축하고 있다.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동중국해까지 중국의 영토가 확대된다. 중일 영토분쟁의 부차적인 쟁점은 자원문제다. 이 지역에 최대 2천억 입방미터로 추정되는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은 또한 남사군도(南沙群島:Spratly)와 동사군도(東沙群島:Pratas)를 둘러싸고 타이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와 영유권 다툼을 하고 있으며, 서사군도(西沙群島:Paracels)에 대한 영유권을 놓고 타이완 및 베트남과 대립하고 있다.
이들 해양도서에 대한 영유권 주장 외에도, 중국은 몇몇 해양경계선을 두고 일본 및 베트남과 대립하고 있다. 또한 어업쿼터를 둘러싸고 한국, 일본, 베트남, 필리핀과도 대립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언제나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잊고 있다. 이미 1950년대에 중국 해군은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지배했던 거의 모든 연안 섬들을 무력으로 회복했다. 1974년에는 월남군의 패배를 틈타 서사군도를 점령했고, 1988년에는 남사군도 근처, 베트남령 영서초(永署礁: Fiery Cross Shoal)를 무력 복속시켰다. 바로 이같은 전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과거 중국의 속국이었던 동남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옳든 그르든 중국의 해양대국 야심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1980년대 류화칭 해군사령관이 입안한 프로젝트에 따르면, 중국의 남중국해 수산자원이나 탄화수소자원 점유보다 중요한 것이 원양해군 건설이다. 5) 중국의 원양해군 건설은 일차적으로 지도에서 보듯, 일본에서 타이완과 필리핀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이르는 '녹색선'의 서쪽 영역을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해양 대국의 활동영역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 해군의 주요 경쟁상대는 일본 해군이다. 중국은 2004년 중국 핵잠수함 사건을 비롯한 반복적인 잠수함 기습을 통해 일본의 해군력을 '테스트'한 바 있다.
다음으로, 중국은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의 근해를 벗어나, 일본에서 미국의 서태평양 해·공군 전초기지 괌을 거쳐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지역의 먼 바다로 진출하기위해 이 불연속적인 마지노선을 강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근해의 '녹색선'과 미국의 제7함대가 전진 배치되어 있는 서태평양 '청색선' 사이의 해양공간에서 중국의 군사력 집중을 방해하는 주요 장벽은 타이완이다. 2008년 1월, 고첸헹 타이완 국방부 차관은 타이완과 필리핀 사이에 위치한 요충지, 바시(Bashi) 해로 주변에서 중국 해군의 활동이 강화되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일단 이 같은 장벽들이 사라지면 중국 해군은 두 번째 쟁점인 남아시아에서 안전한 탄화수소자원 수급 경로 확보에 좀 더 자유롭게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탄화수소자원 해상수급경로는 첫째, 아프리카와 근동에서 생산된 탄화수소자원을 말라카 해협을 통해 남중국해까지 수송하는 것이다. 말래카 해협 경로는 배수량 10만 톤 미만의 유조선들이 이용한다.
둘째, 역시 아프리카와 근동에서 생산된 탄화수소자원을 순다해협과 가스파르 해협을 통해 6) 남중국해까지 수송하는 경로로, 초대형 유조선도 통과할 수 있다. 셋째,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된 탄화수소자원을 필리핀 영해를 통해 수송하는 방법이다. 네 번째 경로는 대체경로로서, 근동과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탄화수소자원을 롬복해협과 마카사르해협, 필리핀, 서태평양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 중국의 항구들로 수송하는 경로다.
중국의 탄화수소자원 수급경로의 핵심 거점은 말래카 해협이다. 사실 중국의 총석유수입량의 80%가 말래카 해협을 통해 수입된다. 즉, 말래카 해협에서 분쟁 발발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정도로 말래카 해협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중국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들을 연결하는 철도망을 개발하거나, 시트웨-쿤밍 간 중국-버마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할 예정이다.7),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버마와 태국의 해양 액체천연가스 생산량 확대 개발을 지원하며, 나아가 이슬람세력이 발호한 태국 남부, 크라 지협을 통과하는 운하를 건설하는 등, 탄화수소자원 수급경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수급경로 다변화 프로젝트는 실현되기 어려우며, 설사 성공하더라도 중국의 4대 수급경로에 대한 의존도를 일부 줄이는데 그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해적의 창궐과 미국, 일본, 인도의 야심으로부터 이 4대 해상수급경로를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원양해군정책'이 강화된다.

 중국은 이른바 '진주목걸이' 전략을 수립했다. 진주목걸이 전략이란 말래카 해협으로 향하는 해로와 인도양 연안 사이를 연결하는 일련의 상설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현재 몰디브의 마라오, 버마의 코코섬,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파키스탄의 과다르에 중국 해군기지가 건설되었으며, 중국이 점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아프리카 해안에도 해군기지가 건설될 예정이다. 중국의 동맹국들에서는 이 해군기지들의 개?보수 및 유지를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과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이 동맹국들의 탄화수소자원 개발지역 보호를 목적으로 동맹국에게 자국 군함을 매우 관대하게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8)
태평양 지역을 향후 50년간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이 지역에서 중국의 강력한 경쟁상대는 인도와 일본이다. 먼저, 대(對)인도관계의 경우, 뿌리 깊은 불신이 중국과 인도라는 두 인구 대국을 갈라놓고 있다. 중국은 인도-파키스탄 카슈미르 분쟁에서 오랫동안 파키스탄을 지지했다. 또한 파키스탄 정부에 핵심 전쟁 물자를 제공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지역 강대국'을 꿈꾸고 있으며, 중국과 동일한 해양 대국 야심으로 무장한 채, 해군력 증강에 힘을 쏟고 있다. 인도의 해군력 증강의 공식적인 전략적 목표는 인도양을 '인도인들의 바다'로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의 '진주목걸이' 전략은 자국의 영해에 대한 부당한 침입으로 인식된다.
인도는 인도양을 '우리 바다(mare nostrum: 마레 노스트룸)'로 간주하며, 인도양 제해권을 내주지 않기 위해 2척의 항공모함을 건조중인데, 그중 첫 번째는 2010년 취역 예정이다. 인도는 건조중인 항공모함 외에도 러시아로부터 구형 항공모함 한 척을 구입하여 현대화 작업을 하고 있다.
중일관계는 이제 막 극단적인 경색의 시기를 지난 셈이다. 일본 해군은 중국 해군보다 훨씬 더 현대화되었고, 강력하며, 오래전부터 미국 해군과 다수의 훈련 및 작전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조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을 통해, 일본이 자국내에서 급격히 세를 불려가고 있는 국수주의자들의 비판대상인 평화헌법을 매우 거북해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한 중국의 대담한 시도에 직면하여 일본은 우유부단함을 보여줬을 뿐이다.
중국의 약진은 인도와 일본뿐만 아니라 결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중소국가들까지 걱정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을 견제하고자 이들 국가도 자국 해군을 빠르게 강화하거나 현대화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중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자유롭게 운신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미국의 일시적인 방임이 영구적으로 고착화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중국은 이 은 기회와 미국의 어려움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황해에서 남중국해까지 전 지역에 걸쳐 해군력 증강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외무역의 90%가 해운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해군기지, 하천항구, 댐, 해남도 산야 신기지를 비롯한 잠수함 기지 등이 속속 건설되고 있고, 현대화되고 있다. 2006년 해양산업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며, 세계 20대 항구 중 7개 항구가 중국에 위치한다. 중국의 해양대국을 위한 노력은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민간 분야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해양첨단기술' 프로젝트는 북두(北斗:Beidou) 위성항법시스템, 해양감시수단, 조선소 개발 등, 해군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병행 지원함으로써 선박건조 붐을 일으켰다.

인도 해군 '안티 중국' 세력으로 부상 
옛 명나라 '정화'의 발자취를 좇아…

 민간 분야의 경우, 중국은 1995년 일본과 한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조선대국이 되었고, 현재는 일본과 한국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선박공업집단공사(CSSC)와 중국선박중공업집단공사(CSIC)라는 2대 거대 국영기업을 앞세우고 있는 중국은 2020년경에는 세계 1위의 조선대국으로 발돋움할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분야에서 중국의 급부상은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 민간선박과 군함 건조는 국가 프로젝트에서 광범위하게 혼합되어 있으며, 동일 조선소에서 관리되고 있다.
2006년 발간된 제5차 중국국방백서는9) 1990년대 즈음 시작된 중국 정부의 해양대국 중요성 인식을 구체화하고 있다. 백서 상에서 국방정책의 우선순위가 전통적으로 지배적이었던 육군에서 해군 및 공군으로 이동했다. 해군과 공군은 중국 정부가 그야말로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다. 또한 점점 더 많은 해군 및 공군 출신 장성들이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강력한 중앙군사위원회로 진출하고 있다.10) 1992년, 해군과 공군 출신은 군대 엘리트 계층의 14%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2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3대 함대, 즉, 상하이의 동해 해군사령부, 잔지양의 남해 해군사령부, 칭다오의 북해 해군사령부는 전투기와 폭격기를 갖춘 독자적인 해군 항공대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대공방호 임무를 담당하는 4척의 루양급(級) 구축함이나 1990년대의 지앙웨이급함에 뒤이어 중국이 독자기술로 개발한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마안샨급 프리깃함 등, 더욱 현대적인 시스템이 등장했다. 1970년대 말, 중국 해군은 500척이 넘는 연안 초계정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초계정 수가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반면에 원양함대는 군함의 수가 60척에 달할 정도로 증가했다. 11)
중국은 수륙양용 분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남사군도나 타이완을 향한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100여 척의 전함들을 건조한 것이다. 또한 중국 해군은 소해정, 미사일 탑재 초계정, 신형 급유선도 발주했다. 이는 종종 외국의 참여를 가져왔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고속쌍동선 WPC를, 러시아에서는 소브레메니급 구축함과 킬로급 잠수함을, 프랑스 및 이탈리아에서는 전투체계를, 네덜란드에서는 함포를 수입했다. 12)
중국은 자국에게 가장 중요한 군사설비를 수입, 복제, 적용했으며, 자주 성능도 개선시켰다. 이 같은 성능 개선은 기술 제공 국가들을 매우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전자전쟁이나 엔진, 초고성능 전투체계 등 몇몇 분야에서 중국은 여전히 외국, 특히 러시아의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잠수함은 중국의 글로벌 해양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은 러시아제(製) 바랴크함의 개보수를 둘러싼 지속적인 루머에도 불구하고, 단 한 척의 항공모함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사실 미국 제7함대가 괌, 일본, 한국에 배치된 해군기지를 통해 타이완을 보호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억지할 수 있기를 기대하려면 현대적인 잠수함이 필요하다. 중국 해군은 유사시 5척의 공격 핵잠수함과 12기에서 16기의 사정거리 3,500 킬로미터의 탄도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잠수함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중국 함대는 30여척의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현재 20여척 이상의 신형 잠수함이 건조되고 있는 중이다.
제7함대는 이 같은 중국의 무장을 걱정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의회 및 행정부의 주요 직책을 제7함대 제독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은 중국의 잠수함 병력이 2020년경에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의 병력을 초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 던컨 헌터 같은 13) 몇몇 유력 의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매우 놀랐다. 중국의 공격 핵잠수함들은 2007년 한 해 동안 지난 5년 동안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정찰활동을 수행했다. 이 같은 걱정은 중국의 군사력에 대한 미 국방부 연례보고서에서도 암시적으로 드러난다.14)
그런데 미국의 걱정은 과장된 것이기도 하다. 우선 아무도 중국의 베스트 잠수함의 성능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사실 잠수함의 성능이 보잘 것 없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미국 해군은 다른 모든 국가의 해군이 보유한 공격 핵잠수함 숫자의 2배인 53척의 공격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에 존재하는 15척의 항공모함 중 12척이 미국의 항공모함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잠(對潛) 항공편대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더구나 비교적 중립적인 잡지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Quadrennial Defense Review)> 최신호는 15) 대립보다는 협력을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

 남아시아의 바다를 둘러싼 상황은 전면적인 군비확장경쟁과는 거리가 멀며, 인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해군이 형성하고 있는 4자축과 중국-파키스탄 2자축 간의 매우 가변적인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아프리카 대륙 진출 홍보매체인 차이나아프리카 공식사이트(Chinafrique.com)는 '500여 년 전, 암초에 좌초된 중국 선원들의 후손'인 와마카 샤리프라는 케냐의 어린 소녀의 모범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와마카가 중국인의 후손이라는 믿음으로 중국의 한 대학은 와마카에게 무료 입학을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와마카는 정화 함대의 신비로운 출발장소로 알려진 장쑤성의 타이캉에서 열린 '정화 항해의 날' 기념행사에도 초대받았다.
그렇다면 불안정한 동남아시아 바다의 미래는 어떠한가? 미국은 인도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해군뿐만 아니라 중국 해군과의 협력 및 교류 강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중국 해군과의 협력은 아마도 될 수 있는 한 중국의 급격한 해군력 증강을 통제하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미국의 가장 최근의 고육지책은 2007년 미국 해군이 제안한 '글로벌 해양 파트너쉽 이니셔티브(Global Maritime Partnership Initiative: GMPI)'이다. GMPI는 글로벌 해양 동맹에 기초한 프로젝트로, 중국을 비롯한 각 '동맹국'에게 '군함 1,000척'으로 구성된 해적소탕 함대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중국군 국방대학 전략연구소장인 양이가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이 장기간에 걸친 다양한 개입, 미국의 진짜 의도, 숨겨진 배경 등을 확인하지 않는 한, 그 같은 제안을 수용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19)

 중국은 글로벌 해양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두 번째 역사적 기회를 무산시킬 어떤 지연작전도 두고 보지 않겠다고 단단히 각오를 다진 것 같다. '황색 위험'은 일종의 환상처럼 나타난다. 그렇지만 중국은 아편전쟁도 여름궁전 약탈 사건도 잊지 않았으며, 20) 더 이상 누구도 중국을 위협하거나 강제하도록 좌시하지 않을 태세다. 따라서 중국은 몇 가지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비록 중국의 해군력이 압도적인 미국 함대의 그것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새로운 중국 해군은 역사를 통해 미래를 대비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중국 해군의 성과 하나하나는 상징적인 가치를 갖는다. 1989년, 세계가 중국 해군의 놀라운 성장을 목도하기 20년 전, 미국을 공식 방문한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최초 군함은 훈련선이었다. 당시, 그 누구도 '정화'라는 훈련선의 이름을 논평하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번역 : 박수현 domyosie@ilemonde.com>


 

1) 『대국굴기』 공식사이트, http://finance.cctv.com/special/C16860/01/index.shtml
2) 조셉 칸, 「수줍은 거인 중국이 과거의 잘못된 겸손을 지우려고 한다」, <뉴욕타임즈>, 2006년 12월 9일.
3) 아프가니스탄, 버마, 부탄, 북한, 러시아, 몽고,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네팔, 라오스, 베트남.
4) <국방 및 집단안보 리뷰>, 파리, 2007년 5월, p.31
5) Cf. 알섹산드르 쉘동-뒤플렉스, 「인민해방군 해군, 1949년부터 오늘날까지」, <군대 역사리뷰>, n°230, 파리, 2003년. 류화칭은 1985년 미국을 공식 방문한 첫 번째 중국 해군사령관이기도 했다.
6) 순다해협은 인도네시아의 자바섬과 수마트라섬 사이에, 가스파르 해협은 방카섬과 벨리퉁섬 사이에 위치한다.
7) 시트웨는 버마의 서해안에 위치하며, 쿤밍은 중국 남부 운남성의 항구도시이다.
8) 2007년 10월, 중국은 캄보디아에 9척의 초계정을 제공하였다. 시암만의 석유시설보호가 목적이었다. 자료: <국방뉴스>, 국제판, 스프링필드, 2008년 2월 18일, p.1.
9) 중국의 첫 번째 국방백서는 1998년 출간되었다.
10) 리쳉 & 스코트 해럴드, 「중국의 새로운 군대엘리트」, <중국안보>, 워싱턴, 2007년 가을, p.72.
11) 배수량 2천 톤 이상의 군함의 경우 '원양해군'으로 간주된다.
12) 베르나르 드레이예, 「중국의 해군증강」, <국방>, 파리, 2005년 12월.
13) 공화당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이자 미국방위산업 예산유지 옹호자.
14)
http://www.defenselink.mil/pubs/pdfs/070523-China-Military-Power-final.pdf.
이 보고서에서는 수많은 미국 및 유럽의 전략분석가들이 지나친 경계와 추측을 비판하고 있지만 중국의 진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15) 미국의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QDA)는 4년마다 미국 국방부에 의해 작성되는 보고서로, 20년에 걸친 미국의 국방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16) UCLA 중국연구센터,
http://www.international.ucla.edu/china/
17) <중국안보>, 위에서 인용.
18) 중국에 아편무역을 도입하기 위한 전쟁으로, 처음에는 영국만 참여했으나(1839-1842), 나중에는 영불연합군(1858-1860)이 주도했다. 영불연합군은 1860년 황제의 여름궁전을 약탈했다. 2004년 10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재소개된 빅토르 위고의 「버틀러 선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