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를 타락시키다

국가의 논리도 시장의 논리도 무시한 사익 추구의 달인
속임수 정치에 놀아나는 이탈리아인들의 착각과 환상

2009-09-03     카를로 갈리 | 정치학자

녹슬지 않는 정치인.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바로 그렇다. 집에 여자들을 불러모으고 마약을 들여와 성대한 파티를 벌였다는 스캔들에 휩쓸렸지만 베를루스코니는 끄떡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베를루스코니는 이번 스캔들을 사법당국, 언론, 선거에 패한 야당이 악의를 품고 유포했다고 주장한다. 베를루스코니의 전략이 통한 것은 허울뿐인 경제자유주의와 반이민 정책 덕분이라기보다는 이렇게 뻔뻔한 성격, 법을 무시하는 태도 덕분인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식의 정치가 대중에게 ‘먹힌다’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가령, 그에 대해 이탈리아의 잔잔한 하늘에서 번뜩이는 번갯불 같다느니 효과적인 민주주의와 투명한 시장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UFO 같다느니 하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이탈리아의 역사, 민주주의와 시장 원칙이 그로 인해 더욱 쇠퇴한다고 볼 수 있다.

1978년, 이탈리아 전 총리 알도 모로가 붉은 여단(극좌과격파 테러조직-옮긴이)에 암살당한 적이 있다. 그해부터 이탈리아는 정치적인 목표와 개혁 의지를 상실했다. 공화주의를 세운 데 기여한 ‘반파시즘’ 사상이 서서히 약해지면서 이탈리아의 시민의식 또한 떨어졌고, 사회질서의 근간이라 할 정치와 법의 역할이 경제에 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해왔다. 여기에 자유경제도 수사학적인 용어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것의 본질은 친기업적인 인기 전술일 뿐이다.

이기주의 팽배 속 시민의식 실종

이탈리아는 영향력이 큰 이익단체에서부터 소규모 단체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익단체들이 서로 나뉘어 권력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민정신은 실종된 지 오래다. 지금 이탈리아에는 시장 논리도, 국가 논리도 없다. 오로지 특권, 패거리 논리만이 통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기준이 점점 사라지면서, 사회가 난장판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은 불법이 판을 치면 모두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다수는 교묘하게 무임승차하는 것을 선호한다. 법을 준수하려는 노력 없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돼 있는 것이다.

정부를 포함해 사회 곳곳에 부패가 심해지고 있는데, 이런 일은 모두 ‘나’ 혹은 ‘내 가족’만을 중시하는 생각 때문이다. 합법성·투명성·보편성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반면, 개인 이익과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점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법, 권리와 의무보다는 술수와 특혜가 더 잘 통한다. 가뜩이나 이탈리아는 경제·사회·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데 여기에 윤리도 땅에 떨어지고 있다. 신뢰로 대표되는 사회 자본이 손실되고 있는 셈이다.

무능한 좌파가 우파인 베를루스코니에게 기회를 주었다. 확신도 없고 많은 모순점에 부딪히던 좌파 정권은 소수 가톨릭계 인사들과 손잡고 지식인(참고로, 지식인은 점점 줄고 있다), 공공 분야 샐러리맨, 은퇴자로 이루어진 정치세력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에밀리아로마냐와 토스카나 같은 중앙 이탈리아에 속한 몇몇 지역에서만 승리를 거뒀다. 다른 곳은 모두 우파가 세력을 차지했다.

우파가 이렇게 세력을 장악한 것은 베를루스코니 덕이었다. 부패 청산을 위한 피에트로 검사의 ‘마니풀리테’(깨끗한 손)의 사법 절차 때문에 공화국의 정당 시스템이 붕괴될 정도로 상당수 정치인들이 처벌되자, 베를루스코니는 ‘대중의 반란’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베를루스코니는 1990년대 들어 국민들 사이에 일기 시작한 정치, 문화, 나아가 엘리트 계급에 대한 반발심을 유리하게 이용했으며, 지금도 계속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반지성적·반엘리트적 카리스마 발휘

미디어 재벌 출신답게, 베를루스코니는 막강한 언론 플레이와 카리스마를 통해 대중을 장악하는 포퓰리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탈리아 국민들이 어떤 성향이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두려워하는지를 잘 파악해 이를 정치 전략에 활용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능수능란한 언변을 구사해 냉소적이고 반제도적인 정치문화를 심어준다. 그가 스스로 내세운 가치들은 이처럼 반지성적이고, 반프티부르주아적인 이탈리아 사회의 전통적인 믿음과 관련이 깊다.

실제로, 베를루스코니는 무한한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언행일치가 안 되는 그의 실체를 잘 보여주는 예가 있다. 우선 베를루스코니는 의회와 논쟁을 벌이지만 실상은 의회에선 그의 당이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베를루스코니는 사법권에 반대하지만 실제로는 면책특권을 통해 사법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어한다.

베를루스코니는 또 ‘공산당’을 증오할 때 불안감을 조성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 ‘공산당’은 우파가 남용하는 용어로 비판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 다수의 가치에 반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베를루스코니에게 공공 영역은 비판의 장이 아니라 홍보, 프로파간다, 포퓰리즘의 장이다.

베를루스코니 식의 정치는 권위와 카리스마에 기대기만 할 뿐 당연히 반파시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또한 베를루스코니 식의 정치는 자유민주주의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언론과 방송의 자유 탄압, 외국인 혐오증과 사회적인 공포심 유발을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당의 권력이 아니라 개인의 권력, 양분된 사회의 패거리 정치다. 베를루스코니는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를 내세워 포퓰리즘적이며 허상적인 단결을 일시적으로 이끌어낼 뿐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경제와 사회적으로 더욱 양분하고 있다.(1)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을 가리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말뿐인 정치인들과는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방치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옳다. ‘방치’라고 해서 무한한 자유를 준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각 정당이나 이익단체가 특권을 늘려가면서 힘없는 단체가 피해를 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정신이 퇴색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기 때문에 ‘방치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정상적 사회의 정상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베를루스코니 자신이다. 이제 이탈리아 정치권의 끝없는 이권싸움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어 있다. 베를루스코니라는 비정상적인 지도자의 집권으로 국민의 도덕 불감증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보편적인 법 자체가 비정상적이며 베를루스코니가 이를 상징하는 대표 주자다. 공직은 각종 개인적인 특혜로 둘러싸여 있으며 베를루스코니는 이를 정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한다.

베를루스코니의 유권자는 부유층과 권력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산층, 샐러리맨, 일부 노동자들도 좌파 정부의 무능함에 실망해 베를루스코니에게 표를 던진다. 유권자들은 희망과 환상(그리고 적개심)을 더 원하는데 우파가 이를 간파해 키워주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작금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베를루스코니는 말과 행동이 달라 사회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모두에게 감세를’이라는 2001년 공약은 어떻게 된 것일까? 오히려 우파 정부는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공약과 달리 서민층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잠깐 집권한 좌파 진영의 로마노 프로디 정부가 시장의 자유경쟁을 위해 기업 담합을 막는 조치를 마련했고 이 덕에 소비자들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집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하지만 다시 등장한 우파 정부는 오히려 대기업들에 유리한 수정법을 서둘러 만들어 로마노 프로디 정부의 자유경쟁 시도를 모두 수포로 돌려버렸다.(2)

한마디로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강자가 이기는 구조를 공고히 한다.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자신이 머리 회전이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속고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실망과 매력을 동시에 안겨주는 마술사처럼 행동해 이탈리아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절대로 국가를 혁신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를 이대로 방치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있을 뿐이다.


글·카를로 갈리 Carlo Galli
볼로냐대에서 정치사상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에밀리아로마냐의 그람시 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여성의 우월성에 관하여>(2009) 등이 있다.

 


<각주>

 

(1) 베를루스코니에게 좌파는 ‘이탈리아의 적’이다. 2009년 6월 30일자 <라 레푸블리카> 참조.
(2) 2009년 4월 30일자 ‘경쟁과 시장 위원회’ 연례보고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