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체증과의 전쟁에 지친 모스크바

2015-07-31     엘렌 리샤르

 베를린 장벽 붕괴이후, 자동차의 속도를 즐기는 세대로 인해 러시아 수도의 도로망은 정비가 절실해지고 있다. 모스크바는 현재 교통 체증 면에서 이스탄불과 리오데자네이로 등과 같은 세계 최대의 교통체증 도시들을 제치고 선두에 올라 있다. 모스크바에서 각 자동차가 점유하는 도로 면적은 유럽의 대도시에 비해 4배나 적다. 한때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국민들에게 소련을 “미국보다 합리적으로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

 “난 자동차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자동차는 내 인생이다. 난 러시아 자동차 지굴리를 비롯해 미국과 독일 차를 몰아 봤는데, 최근에는 일제 차들을 좋아한다”라고 파티복 대여회사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는 전 정비사 안드레이 가라치추크는 말한다. 그가 팔을 뻗어 ‘마즈다 자동차의 3세대 최신모델인 마즈다-6’의 문을 연다. 차에 탄 그가 후진기어를 넣고 후광 카메라에 의지해 크렘린 근처에 위치한 한 건물의 안뜰을 벗어난다. 이 40대 남성이 향한 곳은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40km 떨어진 셰레메티예보 공항이다. 그는 이 근처에 있는 오두막을 주택으로 개조해 거주하고 있다. 그는 “보통 (출퇴근 하는데) 1시간에서 최대 1시간 10분이면 족하다”고 말한다.
2013년 모스크바는 이스탄불을 비롯한 리오데자네이로와 중국의 톈진 등을 제치고 최대 교통체증 도시가 되었다.(1) 모스크바 역사상 교통체증이 가장 심했을 때는 2008년 5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많은 도로들이 경찰에 의해 폐쇄돼, 차량통행이 외곽 순환도로(MKAD) 68km 구간에서 13시간 동안이나 금지되었다.(2) 그러나 이러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2,500km2에 달하는 이 거대 도시(파리와 파리 교외의 면적은 760km2임)의 교통 흐름이 원활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침 출근시간엔 엔투지아스트대로(3) 14km, 즉 MKAD와 ‘정원벨트’(4) 사이를 주파하는 데 평균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
자동차산업은 러시아가 자본주의 사회로 급격히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인데, 이는 러시아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60년대 이전엔 자동차 공장들은 상품 수송에 필수적인 트럭생산에 전력을 다했다. 1953년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사후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르며 해빙이 시작되는 동시에 사회주의적 소비사회의 등장이 전망되기도 했다.
1966년에 이탈리아 피아트자동차는 구 소련과 9억 달러에 달하는 역사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자 중 한명인 톨리야티의 이름을 딴 도시인 톨리야티시(市)에 바스자동차 공장을 지었다. 이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러시아 최초의 대중 모델이자 피아트-214를 쏙 빼 닮은 바스-2101이 생산되었다. 사람들은 바스-2101의 시리즈 번호와 저렴한 가격을 연상하며 이 자동차를 “코페이카(kopeïka, 러시아의 가장 작은 화폐단위)”라고 정겹게 불렀다. 물론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정은 이 차를 구입할 수 없었다. 대출을 받아 ‘일제 자동차’를 구입해 운전하고 다니는 가라치추크가 어느 날 자신의 아버지가 학교로 몰고 왔던 ‘코페이카’의 번호판을 회상하며 말한다. “1980년이었는데, 번호가 1254 MNT이었다. 차를 구입하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장애인이라 우선권이 있었다. 1980년대 초반엔, 10개의 층계참이 있는 건물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은 고작 5-10대에 불과했다.”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등장한 것은 러시아 내수분야에서 현대화가 시작되었음을 상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동차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적 삶의 방식 도구인 자동차가 러시아 국민의 ‘프티부르주아’ 욕망을 고양시킬 위험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1966년에 컬트 코미디 영화 ‘자동차를 조심 하세요’가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영화는 “차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차를 구입할 생각을, 차를 소유한 사람은 차를 팔아치울 생각을 한다”라는 우스꽝스러운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되었다. 관객들은 보험사 직원이 고객의 차량을 훔쳐 팔아넘긴 대금을 고아원에 기부하는 장면을 감상했다. 이를테면 현대판 로빈훗이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척한 자동차 운전자들을 공격하는 셈인 것이다. 흐루시초프는 한때 사유재산 대체방안으로 택시 서비스와 자동차 대여업체의 활성화를 염두에 둔 적이 있다. 그는 1959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강연 때 “우리는 자동차를 미국인들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아방가르드적인 유토피아, 즉 카셰어링(car sharing)을 예고한 정책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모스크바가 이 같은 정책(택시서비스와 자동차 대여업체의 활성화)을 시도하려 했다가 실패했다는 것은 자동차 부문에선 이 도시가 워싱턴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1985년, 인구 천 명당 당 소련과 미국의 자동차 보유율은 각각 44대와 744대였다.(5)
1980년대 중반부터, 개방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해 부르주아화에 대한 혐오감은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개방됐다. 외항선의 간부를 지낸 볼로디아 폴론전이 소파에서 일어나 낡은 사진들을 가져온다. 그는 차량들로 가득한 노랗게 변질된 벌크선의 갑판 사진들을 보여주며 과거를 회고했다. “1990년대엔 선원들이 경유지 체류 때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었다. 난 암스테르담에서 처음으로 내 자동차를 구입했다. 갈색 볼보였는데 맘에 쏙 들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난 행복했다. 어느 날 저녁, 난 기분전환을 위해 즉흥적으로 내가 자란 샤볼로프스카이아 거리 근처에 있는 돈 수도원까지 내달렸다. 그곳에 있던 한 남자는 내게 수도원에서 훔친 성상(聖像)을 건네며 구입을 권유했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는 여전히 사치품이었다.”
1990년과 2013년 사이, 주민 천 명당(6) 러시아의 자동차 보급률은 58대에서 273대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최고의 부자 도시인 모스크바의 자동차 보급률은 (물론 자국 내 대부분의 지역보단 높은 보급률을 자랑했지만) 유럽의 주요 도시를 따라잡지 못했다. 2013년, 인구 천 명 당 모스크바의 자동차 보급률(360대)은 런던(341대)보다는 높았지만, 프랑스 수도권(479대)을 비롯한 마드리드(458대) 또는 뉴욕(454대), 애틀랜타(756)(7)와 같은 자동차 중심도시로 설계된 미국의 거대도시보다는 낮았다.
 
1930년대의 부실한 도로망으로
교통체증이 증가
 
그러나 모스크바가 세계 최고의 교통체증 도시로 전락한 것은 단순히 러시아인들이 자동차 대리점으로 몰려들기 때문은 아니다. 도심 도로들이 붐비는 것은 급속한 자동차 보급을 염두에 두지 못한 채 건설한 도로망 때문이다. ‘정원벨트’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초목이 무성하던 넓은 8차선 외곽도로는 그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 눈에는 모스크바가 넓은 도로를 갖춘 전형적인 자동차 중심도시처럼 보인다. 보행자들은 밀려드는 차량을 방해하지 않고 반대편 인도로 건너가기 위해 지하도를 이용한다.
모스크바 경제 및 교통정책 연구소의 소장인 미하일 블린킨은 “이 넓은 도로들은 1935년의 전반적인 재건 프로젝트의 산물이라, 자동차 통행과는 무관하게 미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썼다. 요컨대 이 도로들은 정권의 영광을 기리기 위한 횃불 행진, 장터 축제 또는 대중들의 행렬을 주관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지적한다. 모스크바의 전 시장 유리 루시코프(1992-2010)는 차선을 넓히고 신호등을 제거하면 모스크바의 가로수 길들이 도심 속의 고속도로 수준으로 전환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결과로 현재 크렘린 주변 반경 3km2에 모스크바 직장인의 40%가 밀집하며 교통체증이 가중되고 있다. 요컨대 넓은 도로의 효용성이 보기와 달리 신통치 않은 셈이다. 모스크바 전역에서 각 차량은 27m2의 도로를 차지한다.(8) 이는 서양의 대도시에 비해 4배나 작은 수치이다. 물론, 그에 반해 모스크바 도심을 연결하는 방사상 간선도로를 제외한 도로는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어 한산하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자동차 때문에 환경오염과 사고가 유발된다. 하지만 러시아에선 유럽에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러시아에선 매년 대략 2만 7천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2010년 한해에만, 운전자 1만 명당 6,7명이 사망했다.(9) 이는 영국과 스웨덴보다 12배, 독일과 일본보다는 9배가 많은 수치다. 운전자들은 사고나 상대 운전자와의 언쟁을 대비해, 자신들의 진술을 증명할 요량으로 차량에다 블랙박스를 장착한다. 이 운전자들이 온라인 상에 올린 수천 건의 아마추어 동영상들은 전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되며 러시아 난폭 운전자들의 악명을 한층 드높이고 있다.
모스크바 운전자는 종종 주차 공간을 찾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로모노소브스키구(區)의 거주민들은 거주하는 건물 아래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자신들의 차 번호를 적어 놓아 경쟁자들의 주차 욕구를 단념시키고 있다. 모든 침입자들은 스크래치나 타이어 펑크를 각오해야 한다. 이 같은 긴장감은 정치적 논란의 씨앗이 된다. 실제로 자동차는 대중화되면서 “민주적인” 가치를 띄는 물건이 되었다. 가령, 사람들은 도로 위 특권층의 권력 남용을 점점 더 용인하지 않고 있다. 교통경찰의 뇌물 챙기기는 옛날부터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8년 전부터 택시를 몰고 있는 한 기사는 “교통 경찰은 봉급이 인상된 이후부터, 법을 보다 더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운전자들은 이제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교통체증을 뚫고 길을 틀 목적으로 달고 다니는 회전 경보등에 격분한다. 2010년, 한 경찰 노조는 교통 경찰들이 하루에 대략 100대에 달하는 공식 행렬 차량에 도로를 터주었다고 했다. 같은 해, 불만을 품은 운전자 단체인 ‘파란 양동이’가 등장했다. 길거리 행동에 나선 이 단체는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이들이 올린 동영상의 조회건수는 10만에서 20만에 달하고 있다.
이들의 지지자들은 “주요인사” 차량 지붕에 파란 양동이를 씌워 이들의 회전경보등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이 단체는 2010년 2월에 발생한 치명적인 사고가 계기가 되어 탄생했다. 정유회사인 루크오일(Loukoïl)의 부사장 아나톨리 바르코프를 비롯한 그의 운전사와 경호원이 탄 벤츠가 시트로엥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산부인과 의사인 이 차의 운전자 올가 알렉산드리나와 시어머니 베라 시델니코바가 사망했다.(10) 파란 양동이 운동 주창자인 표토르 쉬쿠마토프는 “당시, 우리는 힘 있는 자들에 대조되는 시민의 취약성에 항의했다. 소련 시대엔, 자동차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이젠 그런 시대는 지났다. 난 자동차 대중화 시대의 1세대에 속한다. 우리는 (자동차에 대한) 다른 심리를 지녔다”고 말한다.
 
교통 민주주의를 위해
길거리 행동에 나선 시민들
 
운전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친(親)크렘린 성향의 젊은 단체인 이른바 ‘나시(Nachi, ‘우리들의 것’이라는 뜻-역주)’는 2010년 스톱-크람(Stop-Kham), 즉 ‘무례한 운전 중지’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의 주동자인 드미트리 치우구노프는 “우리는 1년 만에 활동이나 지지자들의 결집 측면에서 나시(친크렘린 활동)를 추월했다. 그래서 우리는 독립했다”고 했다. 크렘린에서 유행하는 보수적인 가치를 추종하는 이들 세력은 난폭 운전자들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상에 올림으로써 이들을 재교육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 이들은 도로 보호난간 뒤에 몸을 숨긴 채 교통체증을 피해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갓길 운전을 선택한 차량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상에 올렸다. 모범 운전자들로 구성된 동호인들은 갓길 운전자들에게 오던 길로 되돌아가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이들이 저항하면 이들 차량의 앞 유리창에 “난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 난 내가 원하는데다 주차한다”란 스티커를 붙인다. 이 같은 행위는 텔레비전 방송용으로도 그만이다. 자신을 정치전문가로 여기는 치우구노프는 “난 모스크바 북단에 위치한 가난한 백인 빈민지역인 비리울리오보 출신이다. 우리는 긍정적인 행동의 모범사례를 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이다. 애들을 교육하는 데 이 같은 모범 사례가 필요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국가안전의 문제이다”라며 웃는다.
2010년 10월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시장으로 임명하고, 직선제로 바뀐 2013년 시장선거에서(11) 재당선된 현 모스크바 시장 세르게이 소뱌닌은 교통문제를 자신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시장에 취임한지 채 2년도 안 돼, 그는 유럽 대도시에선 평범한 조치들인 버스 전용차선제와 유료 주차장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여론조사나 참여민주주의를 무시한 채 밀어붙이기식으로 가동되어 일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운전자와 도로의 안전예방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소련 교통노조의 후신인 모스크바운전자연합(UMA)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관할하는 주차구역만 15만 곳에 달하는데, 모스크바시(市) 교통국은 자신들과 딱 두 번 만나 주차 문제를 논의했다고 주장한다. 유리 루시코프 전 시장은 임기동안 유서 깊은 기관인 UMA에 대한 배려를 많이 했다. 그래서 이들이 운영하는 주차시설들은 양철로 지은 개인 주차시설물이 전면적으로 철거될 때에도 남아 있을 수 있었다. 1990년대부터 사람들은 건물들 사이의 녹지 공간에 양철 주차시설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크렘린 외곽은 이 같은 주차시설물로 넘쳐났다. 현재 모스크바는 UMA에게 토지임대 갱신을 거부한 채 이들의 토지를 민간 투자자들에게 임대해주고 있다. 이로인해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이 단체는 2만 개의 주차시설물을 잃었다. 이들이 잃은 주차공간은 유료주차장이나 카센터로 전락해 개인에게 매도되었다. UMA의 회장 루빈스타인은 “우리는 극단주의자들이 아니라 평화주의자들이다. 우리는 (정부와)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며 길거리 시위에 내몰린 자신을 애석해 했다.
집단행동을 조직하는 게 힘든 국가에서, 항의시위는 개별적이거나 심지어 개인주의적 성향을 띈다. 가라치추크가 주차되어 있는 한 차량을 향해 외친다. “이것 좀 봐, 차량 번호판에 CD가 붙어 있는 것 좀 봐! 도로교통센터의 순찰차가 차량 번호를 확인해 견인차를 불러 견인시킬까봐 이들의 단속 카메라를 피할 목적이겠지? 왜 아니겠어, 견인차들이 모스크바를 휩쓸고 다니는데”라며 목청을 높인다.
수도 행정구역의 급격한 확장은 러시아를 강타하고 있는 정부의 수직적인 개념(중앙집권체제)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서둘러 시행한 이 같은 정책(수도 확장 정책)은 사실 중앙정부의 비효율적인 일처리를 한 눈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2010년 6월,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위대한 모스크바” 건설을 염두에 두고 국회건물을 비롯한 일부 연방기관들을 수도에 새로 편입된 땅으로 이전시키겠다고 했다. 모스크바 시장은 곧바로 설계에 들어갔다. 2012년 7월, 수도는 21개의 자치단체를 흡수해 이를 “새로운 모스크바”라고 명했다. 이로써 모스크바의 면적은 수도가 남부와 남서부로 확장된 이후 두 배나 증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러시아 정부는 중심부에 거주하는 주민 200만 명을 인적이 드문 새로 편입된 땅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타대학교의 지리학자 로버트 아르겐브라이트는 “이 같은 개념은 기본적으로 잘못되었다. 확장된 구역은 모스크바 도심의 기존 축인 포돌스크나 힘키지역과 동떨어져 있다. 소뱌닌 시장은 이 구역이 노동자 지역으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구역은 위대한 모스크바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데다 복지예산에도 짐이 되기 때문이다”(12)라고 진단한다.
가라치추크의 일제 자동차는 45분 동안 골목에 묶여 있다. 그래도 그는 교통체증이 부적절한 대중교통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다른 운전자들은 지름길, 곧 붉은 광장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5차선 간선도로 트베리 거리로 방향을 틀었다. 드디어 한 운전자가 길을 터준다. 도로 끝 쪽에 위치한 벨라루스 역까지 늘어선 차량들이 켠 주차등 만이 반짝이고 있다. 운전대를 잡은 그는 마치 철학자처럼 “정체 땐 난 음악을 듣는다. 신경질을 낼 필요가 없다. 다른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물론 적절한 대중교통 수단이 있다면, 난 당연히 그것을 이용할 것이다”라고 침착하게 말한다. 러시아인들은 이제 오랜 숙원(적절한 대중교통의 도입)을 꿈꾸는 데도 지쳤다.
 
 

글‧엘렌 리샤르Hélène Richard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파리 7대학 불문학 박사.
 
(1) Wendell Cox, ‘Traffic congestion in the World : ten worst and best cities’, Newgeography.com, 2014년 5월 9일.
(2) Agence Ria Novosti, 2013년 8월 21일.
(3) Yandex Probki(러시아 구글지도), 2014년 12월.
(4) 모스크바는 4개의 도로망으로 이어져 있다. 첫째, 오른쪽 강변 구(舊)도시 중심가를 끼고 도는 도로. 둘째, 전철 노설을 따라 뻗은 일명 ‘정원벨트(ceinture des jardins)“라 불리는 도로. 셋째, 2004년에 완공된 모스크바 도심 순환도로. 마지막으로, 2012년도 이전에 조성된 모스크바 외곽 순환도로(MKAD)이다.
(5) 러시아 연방정부 통계청(Rosstat), 2003년, Stacy C. Davis (sous la dir. de), ‘Transportation Energy Data Book’, 미 에너지국, 워싱턴, 2011년 6월.
(6) Rosstat, 2014년.
(7) Institute for Mobility Research, Megacity Mobility Culture. How Cities Move on in a Diverse World, Springer, Heidelberg, 2013년.
(8) 유럽 대도시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100m2를 차지하는 반면에, 미국의 운전자들은 200m2를 차지하고 있다. Mikhaïl Blinkine와 Rechetova Ekaterina, <도로의 안전의 역사와 외국의 경험사례 및 제도 (La Sécurité routière. Histoire, expériences étrangères, institutions)>, Editions du Haut collège d’Economie, 모스크바, 2013년.
(9) Evgueni Chinilov, ‘행렬 중지(Un coup d’arrêt aux cortèges)’, Gazeta.ru, 2010 년 12월 23일.
(10) 2010년 9월, 러시아 법정은 올가 알렉산드리나에 사고 책임이 있다는 판결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11)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거행된 시민들의 “정직한 선거” 캠페인 시위 이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도시의 시장 선거가 직접 선거로 바뀌었다.
(12) 이 지역 주민의 생활수준은 모스크바 주민의 생활수준보다 높다. 수도로 편입된 이 지역 주민의 평균 퇴직연금 수령액은 5천 7백 루블에서 1만 2천 루블로 증가했다. Vladimir Kolossov, <위대한 모스크바(Le grand Moscou)>, 2013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