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농업의 프롤레타리아, 목동들
2015-07-31 미쉘 디디에
프랑스 산악 지대에 늑대가 출몰한다는 것은 종(種) 다양성을 위해서는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이 포식자가 귀환했다는 것은 공격에 취약한 가축 떼의 속성과 조방((粗放)적인 사육 방법으로 보아 골칫거리인 셈이다. 목농과 아름다운 경관을 보존하는 것에 민감한 방문객들도 보통은 고지대 방목이 목동들의 인내심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프랑스 서부, 베르코르 지방, 가파른 절벽이 마치 하늘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 같다. 프랑수와는 17,000 헥타르에 달하는 광활한 고지대 자연 보호지역에 있는 커다란 오두막집에서 2.500 마리의 새끼 양들을 보살피고 있다. (1) 허브과 일종인 푸이요 가시덤불을 지나고 감송풀(2) 잔디위로 뻗은 계단을 지나면 목동들의 일터인 신비로운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감시견 한 마리가(3) 아마도 며칠 전 있었던 늑대의 습격 때 물려 죽은 양 한 마리를 막 다 뜯어 먹었다. 10마리 남짓의 탐욕스런 매들이 뼈 주위를 맴돌고 있다.
프랑수와는 매우 친절하다. 거기에 정착하기 전에는 바다 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매우 건장하고 열정도 있으며 놀라울 정도로 노하우도 풍부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증언에는 특히 고용과 노동 조건 에 대해서 말할 때, 분노에 가까운 어떤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내 소유의 나귀를 몰고 물을 찾으러 가야하고 동시에 늑대의 공격을 알리기 위해서 양떼 곁을 항시 지켜야 합니다.”
삶의 불안정에 직면한 목농업자들
오로르는 끔찍한 조건하에서 일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그만 둬야 하는 21세기 목동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18살 때부터 목동일 을 시작했고 목동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어떤 회한을 드러낸다. “아름답고 상태가 좋은 양들을 보면 떠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녀는 가장 최근의 고용주가 제시한 조건에는 분노를 드러낸다. “황폐화된 오두막, 4월 기온이 섭씨 4도인 새벽에 물을 찾으러 가야 하는 일.” 몇 해 전에는 오두막에서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니스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조금 더 품위 있는 삶을 원한다. 고용주들의 멸시를 견디기 힘들어 주거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어 사직할 때마다 비탄에 잠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용주들이 살롱-드 –프로방스 목동 학교를 졸업한 신참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목동의 운명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갖는 모순을 드러내준다. 우리들 대부분은 좋은 제품, 개방적인 아름다운 경치, 즉 잘 정돈된 산책길을 원한다. 그렇지만 사회는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줄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는 무관심하다. 많은 이들이 매력적인 대형 포식자의 귀환에 열광해 곰이나 늑대의 보호에 앞 다투어 동참하면서도 이들의 귀환의 결과를 제 일선에서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목동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프랑스에서 목농은 목축분야에서 아직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치즈와 원산지 보호 표기 자격(AOP)을 획득한 육류와 같은 양질의 제품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방에 따라서 봄부터 가을까지, 양(150만 두), 소(43만 두), 염소와 말이 자연 속에서 방목된다. 사육되는 다섯 마리 중 한 마리 (60,000) 꼴로, 한철 내내 540만 헥타르 규모의 자연 속에서 길러지고 있다.(4) 농림부는 목동의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나 피레네에 1천 명, 알프스와 마시프 상트랄에 수 백 명, 쥐라와 보즈, 코르시카에 에 수 십 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동물들의 존재는 여름철 고지대 목장의 잔디와 지중해의 산책로, 대서양 연안의 다습한 지역의 자원들과 수 세기 전부터 인간과 초식 동물들이 만들어온 경관들에 그 가치를 더해준다.
1972년의 목농 법에 따르면 사육 농가들은 목농 집단을 구성할 수 있으며 그래서 계절별 목초지를 공동 관리할 수 있다. 물론 이 목농 집단에도 책임이 부과되지만, 매우 불안정한 노동조건으로 목동을 고용할 수 있다. 이 직종이 겪는 어려움은 1992년부터 늑대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귀환하면서 더 가중되었다. 이로부터, 해결책을 알지도 못하면서, “늑대를 보존하면서도 양떼를 보호해야 한다는” 서로 모순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목동들의 고민만 더 커졌다. 고립되어 거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은 오래 지속된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동안 신경을 곧추 세우고 있어야 한다. 수백만 유로의 가치가 나가는 동물 재산을 책임져야 하는 목동들의 심리적 압박감도 대단하다.
양떼를 지키는 목동은 대략 1,500마리에서 3,000 마리 정도의 양떼에 풀을 먹이기 위해서 날이 새자마자 몰고 나간다. 그리고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서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야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낮 동안은 양들이 풀을 뜯는 동안 병들거나 절뚝거리는 어린 양들을 보살펴야 한다. 한 여름에는 잠잘 시간조차 부족하다. “만일 아픈 양이 없거나, 관광객들이 찾아와서 개가 짖지 않으면 잠깐 동안은 오수를 즐길 수도 있다”라고 세르즈가 말한다. 그는 예순을 갓 넘겼는데 벌써 많이 늙어 보인다.
알프스 북부의 우유 농장에서는 목동들은 암소의 젖을 짜내기 위해 새벽 3시에 기상해야 한다. “저녁에는 10시 전에는 잠자리에 든 적이 거의 없다”고 잘미쉘이 덧붙인다. 낮 시간에는 치즈 제조인들을 돕거나 식사 준비를 돕기도 한다. 목동 노동의 양태는 보살피는 가축의 종류, 장소, 계절에 따라 다양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고립, 특히 고독, 태양, 비, 추위와 하루 11시간의 노동을 공통적으로 갖는다. 엘리안느는 몰블랑과 마주보는 졸리 골짜기로 가축을 이동시키는데 2013년 “매 달 눈사태를 경험했다”고 한다. 여러 세월을 보내다 보니 자연이 주는 공격성이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세르즈는 강력한 햇볕에 약해진 시력 때문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산에 오른다”고 한다.
목동들은 자연 환경의 풍요로움을 보존하면서도 가축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들은 수 천 헥타르를 관리하며 물질적 혹은 비물질적 재산을 만들어 낸다. 가죽 떼를 관리(감시, 가축들의 건강 상태 체크, 질병 탐지, 관리 및 치료 등등)하고, 목농 자원을 보존(목초 달력, 장비, 시설 유지 및 관리)하고, 자연 환경을 보호 (관광객들, 기타 동반 협력 업체와의 관계 유지, 식품 환경 조치, 포식자들로부터의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기대치가 목동들도 이제 점점 더 높은 학교의 졸업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여성의 참여도 매우 높은 편이다. 반대로 이직률이 높고 그 기간도 짧다. 남성의 경우에는 5년, 여성의 경우 2년 정도 버텨낸다. 상당히 높은 비율의 노동자들이 빈약한 노동 조건, 낮은 보수, 그리고 노동법 비 준수로 일찍 그만둔다. 파스칼은 “계약 기간이 마감될 무렵, 자신의 유급 휴가를 고용주가 거부했다”고 한다.
목동들 중 대다수는 주로 목농업 집단으로 구성된 목농, 농업, 목축업 소속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노동고용 계약은 해당 도의 집단 농업 협약에 근거한다. 이 계약의 규약대로라면 이들은 주당 44시간 노동 시간에 기초한 시간당 최저 임금 수준으로 보수를 지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의 노동 시간은 무한대에 가깝다.
대부분의 계약은 한시적이다. 이것이 직장의 안정성, 직업 교육 계획, 은행에서의 대출을 어렵게 한다. “나는 고지대 하계 목장에서 1년9개월을 일했다. 가족의 삶도 거기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매년 해당 목농 집단은 내 채용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존엄하게 미래를 세울 수 있겠는가?”라고 레일라는 하소연한다.
목동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가족과 함께 거주하기 때문이다. 매 년 봄이 되면 그들은 거처를 떠나야 하므로 이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의 학교도 옮겨야 한다. 새로운 주택이 주어지지만, 법원이 1996년 7월 1일 규정한 기준에 한참 미달된다. 이들이 목초지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 공로는 지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 일해왔는데 어느 날 고용주가 신참이나 다른 누구를 채용하기 위해 아무런 명백한 이유 없이 해고를 통지했을 때 그 분노는 그만큼 심각하다.
알프스 고원지대를 잠깐이라도 돌아보면 이곳 상황도 다른 곳보다 그다지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도 루마니아나 코소보출신 목동들이 처한 상황은 비참하다. 고용의 안정성은 바랄 것도 없거니와 1,200 유로의 월급으로 고용주나 가축 떼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운 좋게 고용된 노동자조차도 사회 보장혜택도 없이 허름한 주거지에서 살고 있다”고 목동 박물관의 관장이자 인류학자인 기욤므 르보디(Guillaume Lebaudy)가 전해준다. 중부 유럽에서 온 노동자들은 알프스 프랑스 지역에도 많이 있다.
목동생활에 환상 갖는 견습생들 적잖아
이 직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면 역설적으로 발부리가 걸리는 셈이다. 고용주들은 언제나 손쉽게 다른 대체 노동자를 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직종은 인생의 어떤 전환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꿈과 환상의 직업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사부와 지방의 라 모트-세르보렉스의 농업 진흥과 직업 교육 센터의 목동 교육 책임자인 베르나데트 타세는 “지원자들이 동물들과 함께 대 자연 속에서 활동함으로써 다시 재탄생하고 싶어 하는 동기에 고무되어 있다”고 한다. 견습생들의 경력도 다양하다. 때로는 목축과는 거리가 먼 경력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제라르는 이세르의 목동 협회에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 여름 동안 일할 고지대 목장을 찾습니다. 저는 샹후스에 사는 요리사인데 삶을 좀 바꿔보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동들의 이력을 조사한(5) 투르 대학의 도미니크 바슐라르가 지적하듯이, 목동은 여러 방목지를 경험한 후에야 이루어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70대인 또 다른 제라르는 “산이란 것을 그렇게 쉽게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소한 서 너 계절을 보내봐야 겨우 짐작할 정도지요”라고 말한다. 플로랑스는 첫 날 저녁 800헥타르의 대지에서 소 600여 마리의 한 가운데서 울었다고 한다. 극도의 피로감과 온순하지 않는 가축 떼들 그리고 고독이 그녀를 무너지게 한 것이었다. 그 이듬해는 더 수월했다. “오직 좋은 추억만이 산에 또 오르게 만든다”라고 중간 고지대 정도의 산에 가축 떼를 몰고 다니는 도미니크가 회상한다. 목농은 다양한 자격을 갖추고, 자발성과 도무지 알 수 없는 산악의 변덕스런 날씨와 예측할 수 온갖 종류의 사고에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단호함을 갖춘 개인들을 필요로 한다.
2001년 빅-캉-비고르 지역의 직업 간 대표회합에서 몇 가지 제안들이 있었다. 제한적이지만 장기고용 계약, 일자리 보장 등이 그것이었다. 이는 노동 조건과 기존 노동자에게 다음 계절에도 일자리 등과 같은 최소한의 보장을 규정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14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일자리 잃을까 두려워 노조결성 꺼려
이세르의 가축떼 감시원 노조가 생기기 이전에는 그 어떤 목동 노조도 없었다. 모두가 고용주들과 부딪쳐 일자리를 잃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조을 결성할때만이 이 직업이 인정받고 직종 간 혼합 위원회에서 존재를 드러낼 기회가 될 것이다. 정부 부처 간 보고서는 “고용주 대표들과 노동자 대표기구간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아리에즈와 오트 알프스 지역에서는 벌써 협상이 진행되어 채용 조건의 틀을 협상하고 있다.
사회 심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파트릭 슈몰에 따르면 16세기에는 목동들이란 동물들을 잘 알고, 먹일 줄 알며, 질병을 파악하고 알아내고 치료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19세기에는 이들의 자격이 인정되어 공동체가 이들에게 주택을 제공하고 교사에 준해서 봉급도 주었다.(6)
글‧미셸 디디에Michel Didier
번역·이진홍
(1) 증언에 동의한 목동들은 성은 비공개로 해줄 것을 원했다.
(2)동물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가시 달린 식물.
(3)동물들은 앙떼를 인도하고 다시 데려오는, 이른바 목동견이라 불리는 안내 견을 데리고 있으며 돌발 사고에 대비해서 양떼와 함께 머무는 감시견도 데리고 다닌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종은 피레네 산악 개와 파투종이다.
(4) 프랑스 목농 협회( Association française de pastoralisme) (2000년 통계).
(5) Dominique Bachelart, <견습중인 가축 떼를 이끄는 목동. 미래의 전통을 위하여(Berger transhumant en formation. Pour une tradition d’avenir)>, 아르마탕, 파리, 2002.
(6) Patrick Schmoll, ‘구제도하에서의 농민 조직 – 오-린느의 목동 조합(Une organisation paysanne sous l’ancien régime : la confrérie des bergers du Haut-Rhin)‘, <탄-게브빌러 지역 역사 협회 백서( Annuaire de la Société d’histoire des régions de Thann-Guebwiller)> 20권, 2000-2003.